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40
낙원의 지배자 (1)
취조가 끝나자 재환은 훈방 조치되었다. 한사랑이 스스로의 의지로 자살했고, 재환이 고의로 이를 유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참작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그가 사냥꾼으로서 도시의 치안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 반영되어 그가 일으킨 소동의 책임은 경고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다음부터는 사전에 협의 없이 이런 일을 벌이시면 안 됩니다. 이번엔 초범이라서 봐 드리는 거니까요. 아시겠죠?”
재환은 경찰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경찰서를 나오기 전에 그에게 부탁했다.
“혹시 시간 나시면 강철우 그 인간한테 전해주세요. 내가 부탁했던 거, 그냥 신경 끄라고요. 이제는… 다 필요 없는 것 같으니까요…”
경찰은 그 말에 의아해하는 듯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이상한 액체’를 마신 사냥꾼이 미쳐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이상, 사냥꾼들의 인지 능력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얌전하더라도, 언제 괴물처럼 미친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법이었으니까.
경찰서를 빠져나온 재환은 곧바로 군부대를 향해 걸어갔다. 군경과 같이 싸울 수 없고, 사냥꾼과의 협력도 파탄 난 이상, 선택지가 하나로 좁혀졌기 때문이다.
‘신경 쓰지 말자. 지금까지도 혼자서 잘했으니까. 처음 괴물을 죽였을 때도 혼자였고, 처음 성자라는 걸 죽였을 때도 혼자였어. 이번에도 혼자서 못하란 법은 없는 거야.’
그는 기억을 더듬어 의식에 불을 지폈다. 지난날의 기억을 되새기자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발걸음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그래, 차라리 잘 됐어. 괜히 누가 뒤지고 미치는 꼴을 보느니, 혼자 지랄하는 게 속 편하니까. 미치고, 죽고, 괴물로 변하고. 그런 꼴을 굳이 더 많이 볼 필요는 없잖아. 그러니까 잘 된 거야. 잘 됐지.’
그에게 몸의 상처는 대수롭지 않았다. 어차피 죽어서 다시 시작 말끔히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의 상처는 달랐다. 머릿속에 새겨진 상처는 흉터가 되어 다음 생에도 욱신거렸다.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 아닌 이상, 정신의 상처는 꾸준히 누적되어 그의 머릿속에 쌓여갔다. 결국 기억이 누적된다는 것은, 그에게는 저주이기도 했다.
한사랑이 자살한 충격을 어느 정도 진정시킨 그는 안개가 깔린 거리를 걸어가며 생산적인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했다. 그녀가 죽은 것에 책임감을 느끼는 대신, 그녀가 어째서 자살했는지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했지. 용산구로 간다고 했어. 그리고 권총으로 자기 머릴 쐈고.’
그녀의 행적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죽은 사람이 어디론가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식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환은 어째서 그녀가 자살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위대한 피를 마신 한사랑은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했고, 그 이후에는 내새의 존재를 확신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죽으면 시간이 되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녀는 자살할 때 망설임이 없었다.
‘아직 확신하긴 일러. 그냥 미친 건지. 아니면 나랑 같은 현상을 겪고 있는 건지. 어느 쪽이든 아직 물증은 없으니까.’
그는 내심 각오하고 있었다. 서울은 넓고, 사람은 많은 만큼, 시간이 되돌아가는 사람이 그 혼자일 거란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연중에 생각해뒀던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어쩌면… 내가 죽어서 시간이 되돌아가는 게 아닐 수도 있지. 그냥 시간이 되돌아가는 걸 내가 기억하는 게 전부일 수도 있으니까.’
도대체 어째서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되돌아가는 것인지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에 얽힌 비밀은 서울에 내려앉은 안개처럼 음험하게 그의 정신을 옥죄었다.
재환은 생각에 질식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뿌연 담배 연기가 안갯속으로 녹아드는 것을 보자 마음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용산… 용산이라…”
지금 당장 용산에 갈 여력은 없었다. 암브락사스를 죽인다는 것은 모든 신경과 의식을 집중해도 승산을 가늠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용산을 향해 모험을 떠난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박이었다. 심지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무엇이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도박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재환은 담배를 입에 물며 거리를 걸어갔다.
‘이번에 죽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그 여자가 그냥 미친 여자인 건지, 아니면 뭘 알고 그런 미친 짓을 한 건지. 죽고 나서 확인해보면 어느 쪽이든 증명될 테니까.’
그렇게 한참을 터벅터벅 걸어가던 그는 군부대 앞에 도착했다. 그는 정문 앞에 멈춰선 뒤 담배 연기를 입에 머금었다.
이제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만 더 나아가기만 하면 암브락사스를 상대할 준비가 끝난다.
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아연해지는 괴물을 홀로 상대하러가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과 함께 암브락사스를 죽이려 했던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됐다는 게 실감 났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제 다음부터는 시간 낭비 안 해도 된다는 건 배웠으니까. 그냥 나 혼자서 잘하면 되는 거야.’
결심을 끝낸 그는 담배 연기를 내쉰 뒤 담배꽁초를 버린 뒤 대대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박격포와 포탄을 받으러 갈 시간이었다.
* * *
박격포 사격 훈련을 끝낸 재환은 마지막으로 대대장실에 방문했다. 창문을 열어둔 채 서류를 읽고 있던 대대장은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훈련은 끝났나?”
“네. 이제 출발할 생각입니다. 가기 전에 인사나 드리려고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재환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전하자 대대장은 창문을 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대대장실에 가득했던 담배연기가 빠져나갔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정말 지원은 더 필요 없나? 인력 지원이든, 화력 지원이든 말이야.”
그 말에 재환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더 부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박격포 몇 번 더 쏜다고 해서 뭐가 바뀔 것 같지 않거든요.”
대대장은 묵묵히 재환의 얼굴을 응시했다. 초연해 보이면서도 처연해 보이는 그 표정에 대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네가 아직도 미친놈처럼 보여. 미친놈이 아니어도, 또라이인건 확실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말이 통하는 미친놈이라는 것 정도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재환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마태오 신부 꼴은 되지 말라고. 괴물을 죽이러 갔다가 괴물이 되면 그것보다 비참한 일도 없지. 그 괴물 하나 죽인다고 서울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게 아닌 이상, 위험할 것 같으면 다시 돌아와. 무슨 말인지 알겠지? 작전상 후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란 거야.”
의외의 친절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재환은 이내 악수를 받아들였다. 말뿐인 위로일지라도 도망쳐도 된다는 말을 듣게 되자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재환은 대대장과 악수를 나눈 뒤 그에게 경례했다.
대대장은 그의 경례에 경례로 대답했고, 재환은 경례가 끝나자 대대장실을 나왔다. 대대장과의 인사가 끝났으니, 이제는 암브락사스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 * *
암브락사스에게 가는 길은 예상보다는 수월했다. 이전에 권속을 한차례 학살했던 것이 유효했는지 그 기세가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밀림처럼 우거졌던 암브락사스의 꽃과 나무들이 이제는 메마른 땅에 피어난 잡초처럼 드문드문 자라나 있었다.
재환은 암브락사스가 피워낸 ‘잡초’들을 사뿐히 즈려밟으며 암브락사스가 자리 잡은 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갔을 무렵, 안개 너머에서 암브락사스의 정원사 하나가 다가오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만.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이제 그만. 사랑도. 구원도. 천국도. 모두 너를 위해 준비했으니. 이제 그만…”
재환은 그 말을 들어주는 대신 등에 짊어졌던 박격포와 박격포 포탄을 내려놨다. 그리고 입을 놀리는 정원사를 향해 K1을 발사했다. 그 이후에 정원사가 비틀거리는 틈을 이용해 목에 탈바꿈을 꽂아 넣은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정원사는 죽어가면서도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애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로 괴물이 속삭였다.
“아직 늦지 않았다. 받아들여라. 받아들여서 안식을 얻어라. 오직 그것만이 구원…”
하지만 괴물의 애원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그가 괴물과 말을 섞는 대신 목을 썰어버렸기 때문이다.
재환은 툭 하고 떨어진 정원사의 머리를 밟았다. 퍽! 하고 터지는 감각이 썩 상쾌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쓰러진 괴물의 피를 마신 뒤 앞으로 나아가려 했을 때, 또 다른 정원사 하나가 나타나 그를 멈춰 세우려 했다.
“아직.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어서…”
정원사 하나의 목이 또다시 떨어졌다. 괴물의 피를 마신 재환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정원사가 또다시 나와 그에게 말을 걸려고 했고, 목이 떨어졌다.
20마리 가까이 정원사의 목을 썰어버린 재환은 또다시 다가오는 정원사를 노려봤다. 질리지도 않고 한 마리씩 나타나는 정원사를 바라보자 짜증이 솟구쳤다.
“사랑을. 자애를. 구원을. 안식을! 너의 앞날에 행복이 함께하기를! 모든 이들에게 사랑이 함께하기를!”
재환은 제멋대로 지껄이는 괴물의 입에 총알을 박아준 뒤 그 입을 탈바꿈으로 썰어버렸다. 그의 눈에 저 괴물들은 모기나 바퀴벌레와 다를바 없었다. 모조리 죽여야 할 버러지들. 갈기갈기 찢어버려도 시원치 않을 쓰레기들!
생각에 가속이 붙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는 괴물의 피를 마시는 시간마저 아껴서 앞으로 나아갔다.
“사랑이 기다린다! 네게도 사랑이!”
“차별없는 사랑을!”
“사라ㅇ…!”
그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정원사의 말이 점점 짧아졌다. 가속에 가속을 붙여서. 그는 잔디를 깎아내는 정원사처럼 괴물의 목을 쳐냈다.
괴물의 목이 떨어지는 낙화의 풍경이 한참동안 이어진다. 떨어지고, 나타나고, 또다시 떨어지는 순환이 반복되면서, 재환은 숨을 헐떡거렸다.
‘아직. 아직이야. 아직이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고. 괴물을 죽이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고. 설령 이 괴물을 죽인 다음에 또 다른 괴물이 나올지라도, 그 괴물을 죽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고.
그 증거로, 그는 결국 암브락사스가 뿌리내린 곳을 찾아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의 살점으로 피워낸 꽃과 나무 사이에서, 암브락사스는 아파트 하나를 둥지로 삼아 꽃봉오리를 만들어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며 저편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암브락사스의 자태를 살폈다. 아파트 외벽에 돋아난 덩굴은 흐르는 강처럼 꿈틀거렸고, 덩굴 곳곳에 피어난 잎사귀는 새의 깃털처럼 푸드덕거렸다.
그리고 아파트의 정점 부근에는 못다 핀 꽃봉오리 하나가 꽃가루를 받아들이며 맥동하고 있었다.
건물 하나에 담긴 생명의 이치를 보던 재환은 이를 악문 채 내려놨던 박격포와 포탄을 챙겨왔다.
고작 박격포 하나로 저 거대한 괴물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훈련 때 배웠던 조작법을 떠올리며 박격포 포탄을 장전했다.
실패할 때는 실패하더라도, 저 괴물에게서 비명을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그가 느낀 고통을, 저 괴물에게 그대로 되갚아주기 위해, 그는 박격포를 발사했다.
펑! 하는 폭음과 함께 아파트 옥상 부근의 외벽이 일부분 무너졌다. 옥상에 맺혀있던 꽃봉오리 역시 폭발의 영향으로 반쯤 짓이겨진 것이 보였다.
그리고 암브락사스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 함께,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다시 포탄을 장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