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41
낙원의 지배자 (2)
박격포를 다섯 발 적중시켰을 때, 재환은 사격하는 것을 그만뒀다.
효과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박격포에 맞을 때마다 암브락사스의 꽃봉오리는 폭발했고, 꽃봉오리가 찢어질 때마다 암브락사스는 비명을 질렀다. 암브락사스가 울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암브락사스는 박격포를 연달아 맞았음에도 죽지 않았다. 마치 아직은 죽을 수 없다는 것처럼, 끊임없이 재생해 다시 형태를 갖췄다. 파괴되는 것보다 재생되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던 것이다. 그 경이로운 수준의 재생력을 지켜보던 재환은 이를 악물었다.
`왜 반격을 안 하는 거지?`
그는 박격포를 쏘면서도 언제든지 회피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생에 수백 가닥의 덩굴이 비처럼 쏟아졌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대비해도 모자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브라삭스는 끝내 반격을 하지 않았다. 그저 덩굴을 흐느적거리며 그에게 흐느낄 뿐이었다.
`오렴. 언제든지 오렴. 지치고 힘들 때면 언제든지 오렴. 너를 위해 쉼터를 지어뒀어. 이제 잠들기만 하면, 영원히 쉴 수 있는 거야.‘
그녀는 자애로운 목소리로 그를 유혹했다. 꿈결 같은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봄바람처럼 불어왔다.
‘지금이라도 오렴.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오렴.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꿈처럼 느껴질 거야. 모든 게 긴 악몽이었던 것처럼 영원히. 영원히 꿈꿀 수 있도록. 너를 위한 안식처가 준비됐어.`
끊임없이 목소리가 들려오자 재환은 박격포를 장전하는 것을 그만뒀다. 그리고 그 대신 방독면을 착용한 뒤 암브락사스가 임한 아파트를 향해 걸어갔다. 박격포로 죽일 수 없다면, 직접 약점을 찾아내 수류탄을 선물하는 편이 나을 거라는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재환은 앞으로 걸어가며 탈바꿈을 분해해 칼의 형태로 변형시켰다. 혹시라도 암브락사스가 덩굴을 쏟아낼 때를 대비해 무기를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얌전하더라도, 상대가 괴물인 이상 언제 돌변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덩굴은 쏟아지지 않았다. 그 대신 남아있던 수십 마리의 정원사들이 길가에 무릎을 꿇고 그를 맞이했다.
아무런 말도, 행동도 없이. 정중하기까지 한 태도로 무릎을 꿇은 채 절을 하고 있었다.
재환은 잠시 멈춰선 뒤 대로의 양 끝 변에 주욱 늘어선 정원사들을 훑어봤다.
그리고 그들의 목을 하나씩 배어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저항을 하든, 저항을 하지 않든, 괴물을 남겨둔다는 것은 후환을 남겨둔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항하지 않는 괴물을 썰어버리며, 그는 마침내 암브락사스가 둥지를 튼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그는 아파트 건물 위를 올려다봤다. 옥상에 맺힌 꽃봉오리는 여전히 고고했다. 100m도 안 될 높이였음에도, 느껴지는 거리감이 까마득했다. 마치 별을 올려다보는 것만 같은 감각에, 그는 정신이 아연해지는 것만 같았다.
별의 아이란, 별에서 태어난 아이란, 별이 된 아이라는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불가해했다.
아무리 지혜를 올렸어도, 제대로 우화한 성자에게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 것이다.
재환은 숨을 몰아쉰 뒤 눈을 질끈 감았다. 정황상 저 꽃봉오리가 약점일 가능성이 큰 만큼, 그는 저 꼭대기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저 정상에 올라 꽃봉오리를 꺾어내는 것만이 지난날의 악몽을 극복해낼 유일한 방법이었다.
각오를 끝낸 재환은 눈을 떠서 현관을 직시했다. 그러자 암브락사스의 꽃과 덩굴이 만개하여 아파트의 현관을 가득 메운 모습이 보였다.
사월의 봄날처럼 싱그럽기까지 한 생명의 요람은 이전에 봤을 때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덜 기괴해져 있었고, 더 아름다워져 있었다.
그는 그 변화를 눈치챈 뒤 의아해했다.
‘뭐지? 왜 달라진 거지? 왜 지난번이랑… 달라진 거지?’
피어오른 꽃들이 이전보다는 덜 기괴해진 모습을 보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이전에는 손가락, 입술, 귀 등이 마구잡이로 뒤섞여있던 꽃들이, 이제는 여느 꽃들처럼 꽃잎과 잎사귀를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마치 조잡하게 조합된 흉물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서 조형물로 승화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는 암브락사스가 만개했을 때도 보지 못했던 예술품이었다.
그 모습을 노려보던 재환은 발걸음을 멈춘 뒤 생각에 잠겼다.
`함정이겠지. 누가 봐도 수상하니까.`
모든 정황이 그에게 경고했다. 암브락사스가 반격하지 않은 것. 정원사들 역시 반격하지 않은 것. 그리고 이곳까지 오는 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것까지. 하나하나 따져보기 시작하면 이대로 후퇴한 뒤 샬롬으로 가는 편이 나았다. 그러면 적어도 다음 생에는 더 강해져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샬롬으로 가는 선택지를 떠올리자 이를 악물었다. 샬롬에서 패배할 경우 몸을 빼앗긴다는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냥꾼이 암브락사스를 처치한다고 생각하자 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죽여도 내가 죽여야지. 죽어도 내가 죽고.’
그동안 암브락사스에게 당해왔던 일을 떠올리자 샬롬으로 간다는 선택지가 사라졌다. 만약 자신이 아닌 다른 사냥꾼이 암브락사스를 죽인다고 생각하자 미쳐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에는 쌓인 암브락사스가 남긴 상처가 너무 깊어진 뒤였다.
재환은 꽃과 덩굴로 뒤덮인 아파트의 유리문을 부순 뒤 내부로 진입했다.
방독면 너머로 물씬 풍겨오는 꽃향기가 소름 돋을 정도로 감미로웠다.
* * *
아파트 내부는 이미 암브락사스의 정원이 되어있었다. 복도는 물론이고 벽과 계단까지 암브락사스의 줄기가 없는 곳이 없었다. 이곳은 살점으로 피워낸 꽃과 잎사귀의 정원이었다.
내부로 들어선 재환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며 잠시 멈춰 섰다. 버튼만 누르면 곧바로 옥상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순진한 생각이란 것은 알고 있어도 쉽게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하지만 잠시 엘리베이터를 응시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은 뒤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열려있는 모습이 괴물이 입을 벌린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기분 탓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강렬한 이미지였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던 재환은 12층까지 올라왔을 때 잠시 멈춰 섰다. 25층 정도로 보였던 아파트를 절반 가까이 올라왔음에도 아무런 저항이 없는 것에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이렇게 저항이 없을 줄 알았으면 아예 휘발유를 챙겨올 걸 그랬어. 그랬으면 아예 건물째로 불을 지르는 건데.`
그는 박격포 탄환을 가져오느라 휘발유를 챙겨오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바닥에 깔린 꽃잎을 밟으며, 벽에 돋아난 가지를 꺾고, 흩날리는 꽃가루를 넘어.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며.
그는 하루 종일 계단을 등반했다.
정상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 * *
얼마나. 얼마나 오래 걸었을까.
시간 감각마저 흐릿해질 무렵, 계단을 따라 올라가던 재환은 계단을 올라가는 대신 계단실의 방화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방화문의 문턱을 넘어가 현관문에 새겨진 호수 번호판을 살펴봤다.
[1ㄷ09ㅗ3ㅇ2ㅎ0ㅗ1]이번에도 호수 번호판은 엉망진창으로 적혀있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는 다른 집 앞의 현관문도 살펴봤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4ㄷ0ㅎ18ㅗ2ㅗ1ㅇ0] [ㅗ02ㅗ20ㄷ5ㅎㅇ01] [1ㅇ0ㄷㅗ22ㅎ10ㅗ7]현관문의 호수 번호판을 읽어낸 그는 다시 계단으로 돌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가슴 안쪽 주머니에 넣어둔 수류탄을 매만졌다.
‘자살할까.’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가 된 것만 같은 감각에 정신이 멍해졌다. 그는 방독면 너머로 숨을 들이켜며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계단을 올라가도, 다른 현관문을 열어젖혀 봐도, 눈에 보이는 벽들을 부숴봐도, 옥상으로 향하는 입구는커녕 바깥으로 나가는 출구도 보이지 않았다. 1시간을 넘게 이 아파트를 방황하던 그는 꽃가루에 질식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이미 끝장난 건 확실해. 여기서 빠져나갈 단서 같은 것도 없으니까. 그나마 유일한 단서는…’
그는 방독면을 벗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뒤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의 귓가에 낯선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었던, 상냥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괴물을 사랑하지 않으면 새벽은 오지 않아] [괴물의 꽃을 받아 힘을 취하렴] [생명의 근원인 달을 사랑하는 거야]‘…유일한 단서는, 이 속삭임밖에 없으니까.’
지금까지 들려왔던 ‘속삭임’과는 이질적인 내용이었지만, 그는 이 ‘속삭임’에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무작정 거부하기에는 목소리가 너무 감미로웠기 때문이다.
상냥하게 불어오는 봄바람과도 같은 목소리는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그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 이 목소리 덕에 기운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속삭임은 암브락사스의 것이라고. 이 속삭임에 넘어가면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게 될 것이라고. 이성이 아닌 본능의 목소리가 이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속삭임’이 들려올 때마다 그의 주변에 꽃이 피어났고, 피어난 꽃은 스스로 엮여서 화관이 되었다.
[너에게는 자질이 있어] [이 땅을 낙원으로 개간할 자질이 있는 거야] [내 손을 잡아 영원을 누리렴]수류탄을 매만진 채 화관을 바라보던 재환은 낯선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며 확신했다. 저 화관을 쓰게 된다면, 그는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암브락사스의 사랑에 몸을 맡겨, 영원토록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미래가 눈앞에 선명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낙원의 정원을 여는 열쇠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열쇠를 쥐기만 한다면, 그는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토록 바라 마지않았던 결말이, 이 악몽을 끝낼 방법이 너무나도 손쉽게 그의 눈앞에 마련되어있었던 것이다.
간절히 바랐던 탈출구가 눈앞에 마련되어있다고 생각하자 그는 고뇌했다.
‘그냥 죽거나. 미치고 죽거나… 둘 중 하나 골라야 되면, 당연히 그냥 죽는 걸 골라야지. 골라야 되는데…’
하지만 그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지 않았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이번보다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겪어왔던 서울은 그만큼 부조리한 지옥이었고, 누가 언제 미쳐버릴지도 이상하지 않은 마굴이었다.
만약 괴물의 피로 목을 축일 수도 없었다면, 그의 정신은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 분명했다. 이 끔찍한 재앙을 버티기에 그의 정신은 여전히 연약하기 짝이 없었고, 이제는 슬슬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죽여야지. 괴물은 죽여야지. 죽여야 되는데…‘
그는 화관을 향해 손을 뻗으며 되뇌었다.
‘미치지 않고는 답이 안 보이니까.’
자기기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합리화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괴물에게 몸을 맡겼다가 어떤 식으로 미쳐버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정신이 한계에 몰리자 암브락사스가 끊임없이 속삭였던 ‘사랑’이라는 것에 이끌리기 시작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유혹을 무시하기에, 그는 이미 지쳐있었다.
‘그래. 드디어 올 게 온 거야.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지.’
결정을 끝낸 그는 수류탄에서 손을 뗀 뒤 암브락사스가 건넨 화관을 받아냈다. 그리고 본능에 몸을 맡긴 채 화관을 머리에 쓰자, 그의 귓가에 속삭임이 들려왔다.
[이제야 나도 알았어] [이제야. 이제야 나도 너를] [사랑할 방법을 찾아낸 거야]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놀라움에 그의 동공이 커졌다.
그가 괴물을 보고 있을 때, 괴물 역시 그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화관을 벗어던지면 괴물이 되는 것만은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살하고, 다시 도전한다면, 다음에는 더 나은 방식으로 도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성자가 내리는 지식을 받아들였다.
괴물을 죽이려면 괴물이 되어야 하는 법.
아는 것이 힘인 이 세계에서, 괴물이 되는 것보다 빠르게 괴물의 지식을 얻는 방법은 없다.
그 사실을 깨우친 그는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다정한 감각에 몸을 맡겼다. 그러자 머릿속의 무지함이 사라지면서 몸의 구석구석에 행복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알의 껍질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각막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눈알을 깨고 나와 꽃처럼 피어오른 시신경은 의식을 개화하여 신세계를 맞이했다.
그는 이제 볼 수 있었다.
저편에 펼쳐진 낙원의 계단은 영원토록 지지 않을 봄날의 정원처럼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인간의 의식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천상의 사랑이 그곳에 있었다.
화관을 쓴 남자는 방독면을 벗은 뒤 숨을 들이켰다. 이제는 꽃가루의 달콤함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그동안의 번뇌가 깔끔하게 사라졌다.
숨을 들이켜던 남자는 천상의 정원에 닿기 위해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옥상에 도착한 그는 꽃봉오리에 앉아 날아갈 준비를 하던 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그와 마찬가지로 화관을 쓰고 있었다.
남자를 발견한 소녀는 꽃봉오리에서 내려와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어 소녀에게 존경을 표했다.
소녀는 미소를 지은 채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이 세상을 네 색채로 물들이렴] [이 땅이 낙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야]감미로운 목소리가 뇌를 울리는 것과 함께 그는 별에서 내려온 지혜를 몸소 전해 받을 수 있었다. 무수한 지혜가 온몸에 퍼지는 것과 함께, 그는 ‘속삭임’이 어째서 그녀를 ‘암브락사스’라고 이름 붙였는지 마침내 깨달았다.
그녀는 암브로시아였고, 아브락사스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는 기꺼이 그녀의 별빛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우화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