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42
낙원의 지배자 (3)
암브락사스.
암브로시아이면서 아브락사스이신 분.
땅에서 태어나 별로 승천하시어
이 땅에 사랑을 비추시는 고귀한 어머니.
소녀이면서 처녀이며, 성녀이면서 성배이신 분.
열매를 베어 물면 천상으로.
씨앗을 깨트리면 천국으로.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암브락사스여.
그대야말로 아가페의 화신.
어리석은 인간을 신세계로 인도하는 목자.
이 미천한 자를 거두어 이 땅에 사랑이 임하기를.
가장 지고한 형태의 사랑을.
모두에게 전달할 수 있기를.
이 땅에 사랑이 임할 수 있도록 거두어주시길.
* * *
[어서 가렴] [이 땅을 낙원으로 개간하는 거야]꽃가루가 머리에 내려앉는 것과 함께 세례가 끝났다.
화관을 쓴 남자는 자신의 모습을 살펴봤다. 언뜻 봤을 때는 세례를 받기 전과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풍경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주변을 떠다니는 꽃가루가 별빛처럼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꽃가루는 바람을 따라 넘실거리며 사랑을 속삭였고, 흘러넘치는 사랑의 물결에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애가 담겨있었다.
화관을 쓴 남자는 꽃가루의 물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랑을 담아 애틋하게. 자상한 몸짓으로 꽃가루를 불렀다. 그러자 꽃가루의 물결은 구름이 되어 그의 손에 모였고, 그는 애틋한 얼굴로 꽃가루를 쓰다듬었다. 이 꽃가루의 물결은 작은 은하수였고, 꽃가루의 구름은 작은 성운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그는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성자였다.
화관을 쓴 남자는 입김을 불어 꽃가루를 날려 보냈다. 그리고 꽃봉오리 속에 잠든 소녀에게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했다.
위대하신 어머니.
피어오르는 사랑 암브락사스를 위하여.
그는 이 땅을 개간해 낙원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 * *
화관을 쓴 남자는 옥상에서 서울을 바라봤다. 그동안은 미처 볼 수 없었던, 가장 찬란한 네 성자의 모습이 이제는 선명하게 보였다.
저 까마득한 천상에서 거미가 실타래를 엮는 모습이 보였다. 화관을 쓴 남자는 그녀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이 땅의 인간은 달빛에 미쳐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고고한 거미에게 영광 있으라.
시선을 내리자 구름 아래에서 날개가 수백 장 달린 까마귀가 거미줄에 묶여있는 것이 보였다. 화관을 쓴 남자는 그를 경멸했다. 저 떠버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간이 승천해버렸는지 생각하자 원통할 지경이었다. 우둔한 까마귀에게 망각 있으라.
한동안 천상을 응시하던 그는 시선을 돌려 지상을 살펴봤다. 그러자 지면에서 맥동하는 오물과 생명수의 수맥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화관을 쓴 남자는 수맥의 중심부에서 요동치는 심장에게 찬사를 보냈다. 저 심장이야 말로 무수히 많은 생명을 먹여 살린 젖줄이었다. 위대한 심장에게 영원 있으라.
심장에게 찬사를 보내던 그는 시선을 내려 지하를 바라봤다. 달빛조차 닿지 않는 심연 속에서 태엽을 감는 사냥개들이 보였다. 그릇에 피를 모아 태엽을 감는 그들의 모습이 딱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번제의 굴레에 갇힌 사냥개들을 애도했다. 가련한 추적자들에게 안식이 있기를.
네 성자를 바라보던 그는 옥상에서 내려와 거리로 나아갔다. 이제는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개간할 시간이었다. 씨앗을 심고, 꽃가루를 뿌려서, 고통과 절망 따위는 없는 세계를 구현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성자 암브락사스에게 화관을 받은 지배인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사명이었다.
땅으로 내려온 그는 손바닥에 입김을 불어 꽃가루를 날려 보냈다. 그러자 땅바닥에서 썩어가던 살점에 닿은 꽃가루가 사랑을 피워낸다.
아! 죽은 자가 산 자를 피워내는 이 생명의 이치!
아름답기 그지없는 풍경에 그는 눈물을 흘리고 싶은 지경이었다.
하지만 감동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거미줄에 매달려있던 까마귀가 그에게 속삭였기 때문이다.
아, 무의미하구나. 결국 모두 끝나고 다시 시작되기 마련인 것을. 결국 지고 말 꽃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더냐.
화관을 쓴 남자는 꽃가루를 올려보내 까마귀의 입에 덩굴을 피워냈다. 가만히 듣기에는 저 말이 거슬렸다.
낙원이 없다면, 이 땅을 낙원으로 만들면 그만인 것을. 그 누구도 고통받지 않을 천국을 이 땅에 구현하면 그만인 것을. 저 염세적인 까마귀는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
까마귀의 입을 틀어막은 그는 세상을 꽃과 나무로 물들였다.
거리에. 건물에. 시신에. 사람들에게.
세상천지가 암브락사스의 색채로 물들기 시작했고, 곳곳에 퍼져있던 정원사들이 한곳으로 모여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위대하신 분. 낙원의 지배인이시여. 부디 저희에게 지혜를. 사랑을 내려주시길.”
화관을 쓴 남자는 그 말에 미소 지었다. 남은 숫자는 수십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들은 암브락사스의 충실한 종복이었다. 이들에게 암브락사스의 사랑을 내리면, 그 숫자는 수천, 수만이 넘게 늘어나리라.
그는 정원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끝에서 핏방울이 흘러나왔고, 이와 동시에 암브락사스에게 내려받은 금언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자, 받아 마셔라. 이것이 내 피요, 살일지니. 너희에게 내리는 은혜의 증거이니라.”
정원사들은 손끝은 움푹 파이도록 변형시켜서 핏방울을 받아냈다. 그들은 황송해 하며 화관을 쓴 남자가 내린 피를 나눠 마셨다.
화관을 쓴 남자는 흐뭇한 표정으로 정원사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머리 위에 암브락사스의 꽃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이는 한층 더 달에 가까워졌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꽃과 잎사귀로 달빛을 받아낸 정원사들은 기쁨에 겨워 포효했고, 화관을 쓴 남자는 그들에게 명했다.
“자아. 어서 가거라. 이 땅에 사랑을 증명하라. 낙원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라. 낙원은 스스로 쟁취하는 자의 것임을, 저 달에게 증명하라.”
정원사들은 기쁨에 겨워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한 걸음 뛸 때마다 아스팔트 도로가 움푹 파였고, 돌풍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암브락사스의 사랑이 돋아났다.
화관을 쓴 남자는 돌풍을 일으키며 서울 전역을 질주하는 정원사들을 배웅하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를 향해 걸어갔다.
저곳에는 아직 미처 달의 은혜를 받지 못한 이들이 잔뜩 모여 살고 있었고, 그는 그들을 내버려둘 수 없았다. 행하지 않은 선이 행동하는 악만큼이나 잔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더 많은 것을 행할 수 있는 자로서, 그는 저들을 계몽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검문소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 그는 자신을 가로막은 수백 명의 군인과 경찰, 그리고 민방위를 보며 멈춰 섰다.
대대장은 확성기를 든 채 그에게 외쳤다.
“정지, 정지, 정지! 윤재환! 사냥꾼 윤재환은 지금 즉시 정지할 것! 이에 불응할 경우 발포하겠다!”
그 말에 화관을 쓴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윤재환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피어오른 의문을 접어둔 뒤 저들을 동정했다.
‘무지한 것들. 어쩌면. 어쩌면 이리도 어리석을까. 모든 생명에게는 사랑할 권리가 있음을.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음을, 어째서 아직도 모를 수 있을까. 아가페. 아-가페. 사랑을 나누자. 사랑을 나눠 이 땅을 천국으로 개간하자. 낙원이 이 땅에 있음을. 이 땅에 있음을 증명하여 달에게 바치자.’
결심을 끝낸 그는 손을 뻗어 꽃가루를 날려 보냈다. 어린아이에게 예방접종을 놔 주는 것처럼, 반려동물을 중성화하는 것처럼, 중환자에게 모르핀을 투여하는 것처럼, 그는 손을 뻗어 사람들에게 아가페를 선사했다.
그리고 손끝에서 아가페 가루가 퍼지는 것과 동시에 군경이 사격을 시작했다.
총탄과 수류탄, 기관총과 박격포를 쏟아붓는 것이 저들로서는 최선의 대처였겠지만, 이들의 저항은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화관을 쓴 남자의 몸이 찢어지면서 인간의 인지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피와 살점의 신비가 그대로 허공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미물들은 발광하고 말았다.
“안 돼 안 돼! 아니야! 난 못 본 거야! 못 본 거라고! 못 봤단 말이야!”
“끄으아아아아악! 아-니야! 저건! 저건 없는 거야! 없는 거라고!”
“엄마! 엄마! 왜 거기 계세요 엄마! 엄마!”
“함께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사랑을 행합시다. 모두. 모두들! 이 땅에 사랑을! 사랑을 행하여 달에 닿기를!”
미치고, 구토하고, 허공에 총기를 난사하면서.
수백 명의 군인, 경찰, 민방위는 그대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현장을 지휘하던 대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감투를 쓰고 있더라도 인간으로서의 격이 높아는 건 아니었으니까.
화관을 쓴 남자는 꽃가루를 모아 몸을 재생시킨 뒤 씁쓸하게 그 모습을 바라봤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저들이 비명을 질렀다고 생각하자 안타까운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는 죽거나 미쳐버린 사람들의 머리 위에 꽃가루를 뿌렸다. 저들을 나무로 만들어 안식을 선사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부디 낙원에서는 행복한 꿈을 꾸기를 바라며, 그는 도시 내부로 진입했다.
사람의 도시가 사랑의 도시로 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 * *
서울 전역에 봄을 선사하는 것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다른 사냥꾼과 성자들의 방해가 있기는 했어도, 사랑의 힘이 그 무엇보다도 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화관을 쓴 남자는 서울 전역에 봄이 만개한 것을 나른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저편에서는 만개한 암브락사스가 달을 향해 뻗어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이대로 영원히 그녀의 정원에 남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달콤한 일이 떠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감상에 젖어있을 때, 달을 향해 뻗어 나가던 암브락사스가 꽃잎을 보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로 영원을 원하니?”
화관을 쓴 남자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영원히 잠들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의 세례를 받아들였고, 이 악몽을 끝낼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낼 각오가 되어있었다.
‘악몽… 악몽… 왜 악몽을 끝내려 했지…?’
화관을 쓴 남자는 화관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 꽃이라도 피었는지 모든 기억이 꿈결처럼 몽롱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암브락사스는 어느새 소녀의 모습으로 다가와 그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녀는 그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만들어 준 정원은 잊지 못할 거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정원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법이니까. 좋은 걸 보여줘서, 고마워.”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등에 화관 문양의 문신이 새겨졌다. 보는 것만으로 황홀경에 접어들 만큼 아름다운 문신이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문신의 결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깨어나면 나를 다시 찾아오렴. 너를 위해 다시 화관을 엮어줄게. 언제든지. 얼마든지 말이야.”
그는 성자가 내려준 신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모든 것은 끝나기 마련일까요. 영원히 계속되면 좋을 텐데.”
암브락사스는 그 말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야. 찰나가 영원이고, 영원이 찰나니까.”
그녀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서울의 밑바닥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를 마신 달이 다른 별로 떠나가려 하자 사냥개들이 톱니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작별할 시간이 되자 소녀가 말했다.
“미안해. 더 쉬게 해 줄 수 없어서. 더 많이 알려줄 수 없어서.”
그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찰나야말로 영원이고, 영원이야말로 찰나라는 아이러니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비록 한순간의 꿈일지라도, 기억이 남아있는 한 이 풍경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꿈이란 찰나이기 때문에 영원할 수 있는 것이다.
소녀는 미숙한 성자를 어여쁘게 여기며 말했다.
“네가 기억하고 있으면, 정원은 영원히 너의 것이야. 언제까지고 너의 것이지.”
서울의 밑바닥에서 시꺼먼 닻이 용솟음치는 것이 보였다. 땅에서 솟아오른 닻은 그대로 달을 꿰뚫었고, 닻에 꿰뚫린 달은 피를 흩뿌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는 저 비명이 비탄이 아님을 알고 있다.
저것은 미물의 발버둥에 즐거워하는 환호성이었고, 달이 시간을 되돌리기 전에 부르는 전주곡이었다.
달이 기쁨에 겨워 비명을 지르는 것과 함께, 그는 암브락사스의 화관을 벗었다.
이제는 낙원에서 벗어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