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43
입 없는 자의 비명 (1)
3월 11일 12시 03분.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과 함께 그의 의식은 천상에 지상으로 처박혔다. 별의 진리를 깨우쳤던 기억은 시간의 격류에 휩쓸려 마모되었고, 남게 된 것은 한 줌의 티끌에 불과했다.
하지만 고작 한 줌의 재에 불과할지라도 지혜가 없는 미물에게 천상의 지식은 과분했다. 그렇게 천상의 지식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하자 머릿속의 기억체계가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뇌가 과부하 되기 시작하자 그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발광했다. 찰나의 순간에 수십 가지의 생각이 동시에 스쳐 지나가자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나는누구인가무엇을위해숨을쉬고있는가무엇을위해살아왔으며무엇을위해살아가고있는가영원이란무엇이며찰나란무엇인가어째서어째서생명은태어나서로를죽이며죽어간단말인가…’
찰나의 순간에 미물이었던 시절에는 알 수 없었던 지식이 요동치자 그의 뇌가 순식간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뭍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다 숨을 거뒀다. 성자의 지식을 얻게 된 인간의 말로였다.
* * *
3월 11일 12시 03분.
또다시 시간이 되돌아갔음에도 성자가 되었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그는 발광해야 했고, 그때마다 뇌가 녹아내리며 숨을 거둬야 했다.
그리고 죽은 횟수가 백 번을 넘어갔을 무렵, 죽음의 고통이 누적되면서 그의 의식은 점점 마모되기 시작했다. 죽음의 기억이 성자의 기억을 덮어씌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죽고, 되살아나고, 다시 죽어가는 윤회가 끊임없이 반복되자 그의 뇌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피로가 누적되자 강제로 기능을 정지한 것이다.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는 안식이란 무엇인지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죽음이 삶이 되고, 삶이 죽음이 되는 세계에서, 어떻게 안식을 얻어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계속해서 몸이 되살아나는 세계에서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란 정신의 죽음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암브락사스는 사람을 식물로 만들어 구원하려 했던 것이다.
가장 지고한 형태의 사랑을 깨우치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분에 겨운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자 감사함과 죄책감이 복받쳤기 때문이다.
그는 달빛이 내려앉은 방 안에서 홀로 흐느꼈다.
그러자 그 소리에 이끌린 곰 인형 하나가 방문을 부수고 그의 앞에 나타났다.
거구의 곰 인형이 다가오자 그는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이 집에는 괴물이 산다. 괴물이 된 아버지가 살아있다.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는 괴물이 이 집에 살고 있었다.
재환은 곰 인형을 보자 무의식적으로 팔을 벌려 포옹을 하려 했다. 무엇이라도 껴안아서 위안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곰 인형은 기꺼이 그를 껴안았고, 푹신하게 감겨오는 곰 인형의 감촉이 상냥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위안을 얻은 것은 한순간이었고, 그는 곧이어 위안을 얻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허리가 부서지는 통증이 뇌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성자의 기억에 억눌렸던 속삭임이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괴물을 사냥하지 않으면 아침은 오지 않는다] [괴물의 피를 마셔 힘을 취하라] [악몽의 근원인 달을 사냥하라]익숙한 속삭임과 함께 그의 의식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죽었을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사냥꾼으로서 살아왔던 날들이 주마등이 되어 펼쳐졌다.
‘아… 그랬지…’
죽음이 임박한 찰나의 순간에 그는 떠올렸다.
‘나는 나밖에 모르고 있었구나.’
그는 괴물이 된 아버지를 떠올렸다. 괴물이 된 아버지에게 죽은 어머니를 떠올렸다. 괴물이 된 사람들과 괴물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성자에게 유린당하는 도시의 모습과 성자가 된 자신에게 멸망당하는 도시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까지 이 모든 기억에서 도망치고 있었다고 생각하자 후회와 부끄러움이 떠올랐다.
‘기회가… 기회가 한 번 더 있다면…’
의식이 꺼져가기 시작하자 그는 다짐했다.
‘이번에는 좀 더 나은 끝을…’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허그베어가 그의 머리를 껴안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시 눈을 뜬 뒤에야 다짐을 끝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좀 더 나은 끝이… 되었으면 좋겠어.’
수십 번을 넘게 죽은 끝에 뇌는 더 이상 성자의 기억을 회상하지 않았다. 생각을 함부로 했다간 목숨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기억의 흐름을 차단한 것이다.
* * *
3월 11일 12시 03분.
몸이 으깨지는 고통 덕분에 의식은 한층 더 선명해졌다. 그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정도는 간신히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래… 나는 사냥꾼이었지. 사냥꾼이었고…`
창 바깥에서 내려오는 달빛을 바라보자 정신이 한결 차분해졌다. 덕분에 그는 마침내 ‘그날’의 기억을 부정하는 것을 그만뒀다.
`…괴물이었지. 아주 끔찍한 괴물.`
흐릿해진 기억 너머로 화관을 썼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의 일은 꿈이나 환상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그의 오른손에는 화관 문양의 낙인이 새겨져 있었다. 암브락사스가 그를 치하하기 위해 남긴 선물이었다.
성자의 시점으로 봤을 때는 감격스러운 일이었지만, 인간의 시점으로 봤을 때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재앙이었다. 그리고 그 재앙의 주인공이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화관 문양을 손톱으로 벅벅 긁어냈다. 하지만 피부가 찢어져도 낙인은 그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것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사냥꾼이 가장 위험한 괴물이 된다는 게… 이런 뜻이었어.`
괴물이 된 사냥꾼을 처음 만났을 때 속삭임은 경고했다. 사냥꾼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괴물이 되는 법이라고. 그 사실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이 떠오르자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숨을 헐떡거리고 있을 때, 그의 귓가에 익숙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괴물을 사냥하지 않으면 아침은 오지 않는다] [괴물의 피를 마셔 힘을 취하라] [악몽의 근원인 달을 사냥하라]그는 속삭임의 목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처음 죽었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나면서 그의 의식을 되살렸다.
`그래… 지금은 사람이야. 사냥꾼도, 괴물도 아니라, 사람이라고.`
그는 심호흡을 하며 현실을 직시했다. 생각이 정리되자 조금 전에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괴물에게 죽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우선… 우선은 괴물을 죽이고 생각하자. 그래야 비명이라도 마음껏 지를 테니까. 그리고…`
그는 소방도끼를 집어 든 뒤 안방의 문을 열었다.
`…지혜가 있어야 생각이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안방의 문이 열리자 허그베어가 달려들었고, 그는 허그베어의 포옹을 옆으로 피한 뒤 뒷목에 도끼를 꽂았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솜씨에 허그베어가 쓰러졌다.
재환은 쓰러진 허그베어를 향해 도끼를 몇 번 꽂아 넣는 것으로 숨통을 끊었다.
그렇게 사냥이 순식간에 끝났고, 재환은 부모의 시신을 이불로 덮은 뒤 괴물을 죽여서 얻은 피로 지혜를 올렸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느껴지던 고통 조금 완화되는 것이 느껴지면서 생각하는 것이 한결 더 편해졌다.
‘그래… 역시 그랬던 거야. 지혜가 부족하니까 그 지랄이었던 거지.’
추측이 들어맞자 온몸에 희열이 샘솟았다.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날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뇌가 녹아버렸던 것이다. 자신의 뇌 속에서 요동쳤던 혼돈을 진정시킬 방법을 떠올린 그는 소방도끼를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 순간 다른 일들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지혜를 모아 생각의 자유를 되찾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지혜에 굶주려있었다.
그는 바깥으로 나가 괴물을 사냥했다. 그리고 괴물의 피를 마실 때마다 모두 지혜를 올리는 데 사용했다. 머릿속에 깔려 있던 안개가 걷혀나가는 것이 느껴지자 그는 환호했다.
‘그래, 이거야.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심장이 뛰는 소리와 함께 생각의 흐름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피를 마셔서 지혜를 얻는 것으로 생각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사냥이란 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지혜가 오르자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지혜가 30을 넘어서자 성자에 관한 지식이 떠올랐다.
성자 중에서도 가장 밝게 빛나던 네 성자의 윤곽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들을 사냥해 피를 취하면 막대한 양의 지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
지혜가 60을 넘어서자 암브락사스의 권능과 염원에 관한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사람을 사랑하고, 구제하는 것을 달의 뜻이라 여기는 괴물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사냥의 실마리를 잡았다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혜가 90을 넘어서자 그의 미소는 사그라들었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이 달과 시간에 얽힌 비밀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기억을 되새겼다.
사냥꾼들이 달을 사냥하기 위해 닻을 던지고, 달이 비명을 질러 시간을 되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달은 마치 그들의 노고를 조롱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려 그들을 능욕했다.
‘달이 시간을 되돌렸어. 계속 되돌린 거야. 몇 번이고 되돌린 거지.’
알아서는 안 될 진실이 떠오르자 그는 괴물을 사냥하는 것을 멈춘 뒤 달을 바라봤다. 주변에 쌓인 괴물의 시체 더미 위에서 그는 달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시간만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기억까지 지워버릴 수 있는 거라면… 그러면… 그러면 나는…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진실을 마주하게 되자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달에게 복수한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실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저 하늘에 떠 있는 저것이 정녕 ‘달’인지도 알 수 없게 되자 그는 미쳐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약에… 내가 이미 미쳐있다고 가정해 보자.’
비현실적인 상황에 직면하자 그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서울은 애초에 이상해졌던 적이 없고, 단지 자신이 정신 질환에 걸렸을 뿐이라는 가정이 떠올랐다.
그러자 순간 지금까지 겪어왔던 모든 것이 말이 되는 것처럼 보였고, 단지 혼자서 미쳐있을 뿐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그래… 꿈인 거야. 여기는 애초에 꿈이었던 거지. 내가 미쳐있는 거고. 세상은 멀쩡한 거야…’
그렇게 스스로에게 속삭이던 그는 달에게 소원을 빌었다.
“차라리. 차라리 꿈이라고 해 줘요. 이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고 말해줘요. 아침이 되면… 다 멀쩡해지는 거야. 다 꿈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기만은 금세 끝나고 말았다. 달에게 소원을 빌어봐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직시하자 그는 허탈하게 웃음을 흘렸다.
‘여기가 꿈이어도, 내 꿈일 리는 없겠지.’
그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을 환상으로 치부하고 싶은 미련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다. 그의 상상력으로는 이보다 쉬운 결론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내 꿈이었으면, 아직까지도 못 깰 이유가 없으니까.’
그는 비탄에 잠긴 채 암브락사스가 둥지를 튼 아파트를 노려봤다.
“암브락사스…”
그는 괴물을 용서할 수 없었다. 괴물을 부리는 성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성자를 부리는 달을 용서할 수 없었다. 저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기 전에는,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그는 괴물의 피를 마셔서 지혜를 올렸다. 그리고 지혜가 99에 도달하자 머릿속에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지혜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다른 능력치를 모두 강화해 한계를 높이세요]지혜에 모든 능력치를 투자하는 것이 끝나자 그는 괴물을 사냥하는 것을 그만뒀다. 암브락사스를 상대하는 데에 다른 능력치는 필요 없다는 확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는 알아… 이제는 보여…’
손등의 화관 낙인이 지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암브락사스가 그를 부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 낙인이 정원에 들어서기 위한 초대장이라는 것을 확신하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또 죽을지도 몰라. 미쳐버릴 수도 있고, 자살할 수도 있지. 아니면 죽여 달라고 애원하거나.’
그의 몸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지혜가 없으면 생각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몸이 되었고, 자신이 몇 번을 죽었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이번에 암브락사스를 만나면 어떤 방식으로 미쳐버릴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방황하는 괴물의 틈을 지나쳐 암브락사스의 둥지를 향해 나아갔다. 불길에 이끌리는 불나방처럼, 지친 몸을 이끌고 나아갔다.
이 불가해하고, 불합리하며,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을 내지르기 위해, 그는 암브락사스의 둥지 앞에 마주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