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45
사냥하거나, 사냥당하거나 (1)
3월 12일 오후 9시 25분.
재환은 자신의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수백 마리의 괴물을 모두 사냥한 뒤 벤치에 앉아 자신의 상태창을 떠올렸다. 성자를 사냥하러 가기에 앞서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레벨: 161] [강화 가능 능력치(+1)] [근력: 40] [민첩: 15] [체력: 20] [내구: 20] [재생: 15] [지혜: 99] [현재 지력: 33]자신의 레벨과 능력치를 살펴본 그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암브락사스의 피와 괴물을 사냥한 피로 레벨을 대량으로 올렸음에도 그의 안색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부족해… 역시 그냥 괴물로는 부족해…’
근력과 체력을 높여서 쉴 틈 없이 괴물을 학살했음에도 레벨이 오르는 효율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레벨이 150을 넘어서자 평범한 괴물 50마리를 잡아야 레벨이 겨우 1 오를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배가 불러서 괴물의 피를 마시지 못할 지경이 되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노가다로 올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거지. 젠장할.’
성자가 얼마나 끔찍한 괴물이 알고 있는 이상, 준비는 아무리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몸의 상처는 시간이 되돌아가면 원상태로 복구할 수 있었지만, 정신의 상처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암브락사스처럼 정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 성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는 지금 남아있는 한 줌의 이성마저 유지할 수 없게 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성자들이 다 암브락사스처럼 순순히 죽어줄 리도 없을 테고.’
그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암브락사스를 꺾었을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암브락사스는 지혜를 높이고, 그녀의 초대를 받아 시련을 이겨내는 것으로 퇴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암브락사스를 꺾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가 처음부터 인간에게 악의를 품고 있었다면, 그는 자신이 몇 번을 회귀해도 그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암브락사스… 암브락사스…”
암브락사스에게 유린당했던 일을 떠올리자 트라우마가 자극받으면서 손끝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사냥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나아졌던 증상이 재발하자 그는 괴물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괴물을 죽이는 것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불안감이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처에 있던 괴물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는 것을 깨닫자 그의 얼굴에 좌절감이 피어올랐다.
“암브락사스… 암브락사스…!”
그는 근처에 있던 화단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을 거칠게 뜯어냈다. 그리고 이를 얼굴 가까이 가져가 향기를 탐닉했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 피어올랐던 좌절감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암브락사스… 암브락…사스…”
이름 모를 꽃에서는 풀 내음밖에 나지 않았다. 암브락사스가 피워낸 꽃에 비하면 향기가 없는 것과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아름다웠던 정원의 풍경을 떠올리는 촉매로 쓰기에는 충분했다.
찬란했던 정원, 자애로운 쉼터, 모든 게 평화로운 낙원의 이미지가 그의 정신을 치유했다. 덕분에 그는 머릿속이 꽃밭이 되는 기분과 함께 간신히 손끝이 떨리는 것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암브락사스는 하늘로 돌아갔음에도 여전히 그의 흉터이자 쉼터였다.
간신히 정신을 진정시킨 그는 숨을 내쉬며 되뇌었다.
‘그래… 이렇게 개복치처럼 굴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사냥꾼이야, 사냥꾼이라고. 사냥감이 아니라… 사냥꾼이라고.’
그는 강박에 가까운 수준으로 자기 자신에게 되뇌었다. 암브락사스의 정원에서 영원히 쉬는 것을 포기한 이상, 언제까지고 옛날의 기억에 의지해 응석을 부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꺾은 꽃을 짓밟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근처에 있던 괴물은 거의 다 죽였으니, 새로운 사냥터를 찾으러 떠날 시간이었다.
재환은 창밖에서 자신이 괴물을 학살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주민들을 향해 외쳤다.
“저는 지금부터 중랑구 대피 구역으로 갑니다! 거기엔 경찰이랑 군인이 있으니, 따라올 사람은 따라오십시오!”
그의 외침이 끝나자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주민들이 그의 반응에 아무도 호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아파트 단지를 유린하던 암브락사스도 없고, 근처에 떠돌던 괴물도 없으니 굳이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아직 식량이 고갈되기엔 이른 시기였던 것 역시 크게 작용했다.
재환은 주민들이 바깥으로 나오지 않자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들을 버린 뒤 혼자서 사냥을 하러 가고 싶었지만, 저들을 데리고 가야 군경에게 괴물의 피와 총기를 더 적극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다 죽여 버리는 게 아니었는데…’
그는 사냥에 몰두하던 자기 자신을 자책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모처럼 괴물을 죽여 뚫어낸 길을 그냥 낭비하는 것도 아쉬운 일이었기에 그는 다시 한 번 주민들을 향해 외쳤다.
“선착순 10명! 제한시간 10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지른 목소리가 아파트 단지에 울려 퍼졌다.
“군인도 있고 경찰도 있는 대피소로 갈 사람, 단 10명만 데리고 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하루 종일 괴물을 사냥하던 괴인의 목소리에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이 동요했다. 그들은 괴물을 사냥하는 저 괴인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망설였지만, 한편으로는 군인과 경찰이 지키는 대피 구역이 있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언제 누가 괴물이 될지 모르는 시기인 만큼 치안이 안정된 지역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었다.
결국 10분이 지나자 100여 명의 사람들이 대피소로 가기 위해 모였고, 재환은 그들을 이끌고 대피소를 향해 출발했다.
`군부대에 가면 탄약 창고 기습 루트도 알아두자`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것에 피로를 느끼며 되뇌었다.
`일일이 절차 밟는 것도 귀찮고, 여차하면 혼자서 총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자신의 뒤에서 안도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은 뒤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믿고 따라온 사람들을 짐짝 취급했다는 생각이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양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내가 미쳤지…”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내뱉은 뒤 사람들을 이끌고 나아갔다. 안개 낀 거리를 걷는 그의 어깨는 축 처져있었다.
그리고 그가 대피 구역에 도착했을 때, 그의 어깨에 빗방울 하나가 무심하게 떨어졌다.
* * *
3월 13일 오전 1시 23분.
대대장과 면담을 끝낸 뒤 숙소에 도착한 그는 창밖에서 쏟아지는 비를 멍하니 바라봤다. 빗방울로 시작했던 빗줄기는 이제 소나기가 되어 세차게 떨어지고 있었다.
“비… 비라…”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서울에 안개가 깔린 이후 지금까지 비가 내린 적은 없었다. 적어도 그가 기억하는 한 그랬다. 무수한 죽음을 겪는 이후 처음 내리는 비를 보며 그는 생각에 잠겼다.
‘성자가 한 짓이겠지.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니까.’
암브락사스가 천상으로 돌아간 이후 서울에 잠들어있던 성자들의 기척이 점점 더 활발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봄이 지나자 신록이 우거지는 것처럼, 곳곳에 성자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점점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 비 역시 성자가 활동하기 시작한 영향이라고 생각하자 머릿속이 서늘하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암브락사스 때의 일을 생각하면, 이것도 그냥 놔두면 안 되는 게 맞을 거야. 가만히 두면 무슨 미친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그는 암브락사스가 서울 전역을 낙원으로 만들었던 일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성자를 사냥하고 싶었지만, 그는 암브락사스를 상대하며 얻은 교훈을 되새기며 충동을 억눌렀다.
‘갈 땐 가더라도 준비는 끝내고 가야지. 아직은 레벨도 더 올릴 수 있고…’
그는 자신의 손등에 새겨진 샬롬의 문자를 바라봤다.
‘…샬롬에 가서, 문신을 더 받을 수도 있으니까.’
샬롬에서 무기와 지식을 얻는 것은 길게 바라보면 유용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였다. 샬롬에서 얻게 된 물건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시간이 되돌아가면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가는 이 세계에서 무기와 지식을 계속 누적시킬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강점이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무기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 세상에서 샬롬에 가는 것은 구미가 당기는 선택지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주저해왔던 이유를 떠올리며 창밖에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봤다.
`몸을 뺏긴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 몸을 내어주는 것 자체는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이제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없었으니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몸으로 무슨 일을 저질러도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몸을 내어줬을 경우 자신의 정신은 어떻게 되는지 생각하면 망설여지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아예 의식이 끊어진 상태가 될지, 꿈을 꾸는 기분으로 의식만 남게 될 것인지, 그리고 시간이 되돌아갈 경우 자신의 의식과 몸을 차지한 사냥꾼의 의식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까지 생각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다중인격자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상상력이 부풀어 오르자 그는 생수를 마시며 심호흡을 했다. 상상력이야말로 공포의 양분인 만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는 것은 신경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그렇게 샬롬에 가는 것을 망설이고 있을 때, 그는 먼 곳에서 한 성자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감지했다.
섬뜩한 감각이 피부를 따라 뇌까지 파고드는 것과 동시에, 그는 흐릿하게 들려오는 성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음역대였지만, 지력이 높아진 덕분에 그 의미를 읽어낼 수 있었다.
[돌아와! 돌아와요! ■■■■■!] [■■■■■! ■■■■■! 제발 다시 돌아와!] [■■■■■! ■■■■■! ■■■■■!]그는 애타는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는 성자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지력이 높아졌음에도 목소리의 주인이 발음하는 ‘누군가’의 이름을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겠지. 발음이 뭉개져 있거나, 아니면 내가 모르는 이름이거나.’
저편에서 비명을 지르는 성자의 기척을 느껴지자 그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 괴물을 사냥하라고 충동질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괴물을 죽여라. 괴물을 죽여서 피를 취해라. 위대한 피와 별의 심장을 취해 인식의 한계를 넓혀라. 성자와 눈높이를 맞춰서 그들을 사냥하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그는 자신이 쥔 플라스틱 생수병이 우그러트려지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자신이 충동적으로 성자를 사냥하러 가려 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한숨을 내쉬었다.
‘진정하자. 진정해야지. 함부로 행동하면 그대로 끝장날 수도 있으니까.’
그는 숨을 몰아쉬며 삐걱거리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사냥꾼으로서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샬롬으로 가자. 아무리 샬롬에서 지는 게 위험해도, 성자한테 지는 것보단 낫겠지. 잘하면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성자들을 죽여서 이 악몽을 끝낼 수도 있는 거고.’
그는 시끄럽게 울부짖는 성자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우의를 챙겨 입었다. 그리고 군대에서 받아온 총과 수류탄, 그리고 우산을 챙겨서 비가 내리는 밤거리로 나아갔다. 그는 우산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지하철을 향해 걸어갔다.
‘사냥꾼이 아무리 지독해도, 성자만큼은 아니겠지. 진짜 괴물이랑 괴물에 가까운 인간은 다른 거니까.’
그는 부디 자신의 짐작이 맞길 바라며 캐비넷에서 탈바꿈을 꺼냈다. 이제는 자신의 몸을 칩으로 삼아 도박판에 올라가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