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46
사냥하거나, 사냥당하거나 (2)
샬롬.
사냥꾼의 무덤.
묘비처럼 창백하게 늘어선 고딕 건물들이 오래된 숲처럼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고,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안개의 벽이 있으며, 사냥꾼이 서로를 사냥하는 도시.
그곳에 되돌아온 재환은 건물 곳곳에 설치된 증기기관이 입김을 내뿜는 모습을 보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냥꾼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흐릿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력 때문이겠지. 예전에는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는 안개의 벽이 다가오는 것을 흘끗 바라본 뒤 광장이 있는 중심부를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을 재촉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귓가에 속삭임이 들려왔다.
[육신과 영혼, 보물과 지식을 건 결투가 성사됐다] [무덤은 하나. 시체는 둘] [산 자는 여명을 이끌고, 망자는 무덤에 잠들라] [찾아내어, 죽이고, 그 시체를 넘어 사냥을 계속하라]그는 사냥꾼의 냄새를 의식하며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건물 사이를 걸어갔다. 사냥꾼과 싸우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그의 신경은 잔뜩 곤두서 있었다. 오죽했으면 아직 상대와의 거리가 제법 멀게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주변을 두리번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이름 모를 증기기관이 취익! 하며 증기를 뿜어내는 소리와 함께, 거리를 걸어가던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제 광장이 눈앞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광장이 보이는 걸 확인한 그는 근처에 있던 건물 중 적당히 높아 보이는 건물 하나를 찾아 탈바꿈으로 문을 부쉈다. 그리고 건물 내부에 설치된 계단을 따라 4층까지 올라간 뒤 창문 너머로 광장을 바라봤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어.’
그는 광장이 잘 보이는 것에 흡족해하며 K1을 장전했다. 그는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사냥꾼을 사냥할 계획이었다.
‘비겁해도 어쩔 수 없지.’
그는 창밖에서 사냥꾼이 다가오는 것을 직감하며 K1을 겨눴다.
‘애초에 저쪽은 이미 망자라고 했으니까. 이미 죽은 사람을 상대로 예의를 지켜봐야 뭐 하겠어.’
양심의 가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만났던 사냥꾼인 지그문트는 예의를 아는 신사였고, 그에게 탈바꿈을 양도받기까지 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사람과 짐승을 나누는 기준이 양심과 예절이라면, 미리 자리를 선점해 상대를 기습하는 것은 짐승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도 몸을 뺏기는 것 보단 나으니까…’
그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창밖을 바라봤다. 달빛에 비친 고딕 건물들이 시체처럼 창백했다.
‘남한테 떠넘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여기까지 왔으면 내 손으로 끝을 봐야지.’
각오를 다지며 사냥꾼이 나타나길 기다리던 그때, 건물 사이에서 정장을 입은 남자 하나가 터벅터벅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샬롬에 민간인 따위가 있을 리 없으니, 사냥꾼임이 분명했다.
재환은 K1으로 상대를 조준하며 숨을 멈췄다. 눈대중으로 어림잡아 봤을 때 거리는 대략 200m정도 되어 보였다. 집중해서 단발로 사격하면 맞추지 못할 거리는 아니었기에 그는 표적에 시선을 집중한 뒤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방아쇠가 거의 다 당겨졌을 때, 그는 표적이 된 사냥꾼이 자신을 향해 얼굴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냥꾼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보자 불길한 기분이 심장을 찌르는 것을 느꼈다. 저 사냥꾼은 역시 자신의 위치를 확신했다는 판단이 뇌리를 스쳤다.
‘이미 늦었어. 이 정도면 못 맞출 거리는 아니야.’
상대가 자신의 위치를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해야 할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은 허공을 질주해 사냥꾼의 머리에 꽂혔다. 총알이 사냥꾼에게 명중한 것을 본 재환은 허탈한 표정으로 표적을 바라봤다.
“미친…”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은 뒤 곧바로 사격 자세를 잡았다.
‘머리를 맞았는데 안 죽는다고?’
총알은 분명 머리에 명중했다. 얼굴에 따로 보호구를 쓴 것도 아니었고, 피가 흐르는 것도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사냥꾼은 잠깐 비틀거렸을 뿐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총알을 맞자 기쁜 듯이 함성을 지르며 재환이 자리를 잡은 건물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재환은 조정간을 연발로 바꾼 뒤 K1을 난사했다. 사냥꾼이 달리는 속도가 워낙 빨랐다 보니 단발로 저격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찰나의 순간에 그는 K1의 탄창을 전부 비워냈고, 사냥꾼은 총알을 대여섯발 가까이 맞았음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사냥꾼이 자신이 자리를 잡은 건물 앞까지 도착했을 때 그는 재빠르게 탄창을 갈아 끼운 뒤 K1을 계단에 겨눴다.
‘총으로 죽일 생각은 하지 말자.’
사냥꾼이 계단을 부서뜨릴 기세로 달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재환은 숨을 참았다.
‘탈바꿈으로 직접 썰어버리는 것 말고는 답이 없으니까.’
그는 탈바꿈에 톱날이 달려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며 방아쇠를 천천히 당겼다. 사냥꾼의 내구력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사냥꾼의 근력으로 썰어버리는 것까지 버티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구원처럼 느껴졌다.
‘난사하고. 권총 꺼내고. 톱날을 박아 넣는 거야.’
앞으로 취할 행동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계단에 시선을 집중하던 그때, 계단 아래쪽에서 야구공 크기의 구체가 계단 아래쪽에서 튀어 올라왔다.
‘수류탄?’
그는 황급히 벽 쪽으로 몸을 붙여 엄폐했다. 저 구체가 수류탄이든 섬광탄이든 직격 당해봐야 좋을 게 없을 거란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직감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닥에 떨어진 구체에서 하얀색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연막탄. 아니면 독가스겠지.’
그는 방독면을 챙겨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숨을 참은 뒤 돌격할 준비를 했다. 저 연기에 무슨 성분이 들어있을지 알 수 없는 이상, 이 방 안에 그대로 있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이밍을 잡아 돌격하려는 순간, 계단 아래쪽에서 사냥꾼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동족상잔이라니. 참 못할 짓이야.”
그는 계단 아래쪽에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과 함께 K1을 왼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는 탈바꿈을 쥐었다.
아직 연기가 방 안을 메우려면 시간이 남았고 상대가 계단을 오르는 중이었으니, 상대의 윤곽이 보이는 대로 K1을 한손으로 지향사격 한 뒤 탈바꿈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사냥은 계속 돼야 하고, 피는 계속 모아야 하니까. 사냥꾼인 이상, 그게 우리들의 숙명인 거야.”
목소리도 들렸고, 발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상대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마치 유령을 상대하는 것만 같은 기분에 재환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계단 오르는 소리가 끝나면 난사하자.’
그는 모든 감각을 청각에 집중한 뒤 계단을 오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터벅, 터벅, 터벅.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끝나고 마루를 밟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는 K1을 연발로 난사했다.
총구가 불을 뿜으며 계단 주변을 벌집으로 만드는 것과 함께 그는 연기 속으로 달려들었다. 아무리 연기가 자욱해도, 그 역시 안개 속에서 싸우는 것에는 이골이 난 사냥꾼이었다.
그리고 그가 연기 속에 뛰어들었을 때, 그는 자신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신비 공방 출신 디에고.”
그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황급히 탈바꿈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무기는 아무것도 맞추지 못한 채 허공을 갈랐고, 그의 주변에는 여전히 사람의 윤곽이 보이지 않았다. 상대의 모습이 마치 안개 속에 녹아들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지 않자 그는 곧바로 판단을 끝냈다.
‘일단 계단을 내려가자. 여기선 승산이 없어.’
이 연기는 불가해했고, 숨을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판단을 끝내자마자 계단을 내려가려 했고, 곧이어 자신의 등을 떠미는 손길에 의해 계단을 구르고 말았다.
그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계단을 구르는 것과 함께, 디에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계단 끝까지 떨어진 재환이 간신히 몸을 추스르려했을 때, 그의 목에 칼날이 박혔다.
“전부 꿈처럼 느껴질 테니까.”
디에고의 말이 귓가에 스쳐지나가는 것과 함께, 그는 의식을 잃었다.
* * *
결투에서 승리한 사냥꾼은 지하철을 나와 서울의 거리를 살펴봤다. 그의 눈에는 이 거리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그는 이 사실에 개의치 않았다. 사방에서 괴물의 피비린내가 난다는 점은 그의 고향인 샬롬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사냥꾼은 사냥감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여기며 괴물의 흔적을 쫓았다. 그리고 괴물들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탈바꿈을 칼날의 형태로 분해한 뒤 달려들었다. 한 줄기 바람이 되어 날아간 사냥꾼의 칼날이 괴물의 급소를 정확하게 찔렀고, 그는 곧바로 칼을 뽑은 뒤 칼날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았다.
살아있는 몸으로 맛보는 괴물의 피는 황홀할 정도로 감미로웠다. 이 피의 맛을 본 것만으로도 지난날의 미련이 깔끔하게 사라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그는 마치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태어난 짐승이라도 된 것처럼 사냥에 몰두했다.
베고, 가르고, 찌르며.
그는 황홀경 속에서 칼춤을 추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괴물을 죽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더 많은 괴물을 죽여 그 피를 취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는 용산역 역사 앞에 멈춰선 뒤 자신의 사명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저 건물의 밑바닥에는 사냥꾼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냥꾼이 잠드는 곳. 피를 모은 사냥꾼들의 종착역. 최후의 사냥꾼을 빗어내는 아귀 지옥.
그곳을 발견하게 된 순간 그는 자신이 어째서 그릇에 피를 모았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역사를 향해 걸어갔다.
어둡고, 음습하며,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오는 역사 내부에 들어선 그는 역사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제단을 찾아냈다. 제단 위에는 사람 하나 정도는 넉넉하게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놓여져있었고, 그는 제단 위에 놓인 그릇을 멍하니 바라봤다. 저 그릇이 그의 관이 될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그릇을 바라보던 사냥꾼은 자신이 모은 피를 바치기 위해 그릇 위에 누웠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칼을 들어서 자신의 목젖을 베었다. 칼이 목젖을 가르자 피가 떨어져 그릇을 적셨다. 그러자 피 맛을 본 그릇에서 무수히 많은 팔이 뻗어 나와 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자신의 몸이 그릇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과 함께, 재환은 자신의 집에서 다시 깨어났다.
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재환은 몽롱한 기분으로 디에고의 말을 떠올렸고, 그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이 악몽을 꾼 것처럼 몽롱했다.
그는 창밖에서 내려오는 달빛을 흘끗 바라본 뒤 소방도끼를 가지러 가기 위해 움직였다. 결투에서 졌어도 아직 악몽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고민하며, 그는 안방의 문을 연 뒤 허그베어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가 꽂히는 촉감과 피비린내만이 현실감이 느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