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49
성자 추적 (1)
3월 13일 오전 1시 35분.
숙소로 돌아온 재환은 손등에 새겨진 금색 낙인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해. 오지 말라고 그러면 가고 싶고, 오라고 그러면 가기 싫어지니까.’
원래대로였다면 용산역에 있는 ‘사냥꾼의 무덤’에는 언젠가 방문할 계획이었다. 그곳에는 서울에서 가장 격이 높은 네 성자 중 하나인 ‘사냥꾼 성자’가 있었고, ‘사냥꾼 성자’의 피를 마셔서 지력을 높인다면 이 악몽을 끝낼 실마리를 얻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샬롬에 방문한 뒤, 그는 용산으로 가려는 계획을 다시 점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후 더 이상 샬롬으로 가는 입구가 보이지 않았고, 그 당시에 들려왔던 ‘속삭임’이 ‘사냥꾼의 종착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한 번 들어가면 아예 못 나올 경우도 생각해야 돼. 괜히 무덤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 테니까.’
끝없이 시간이 되돌아가는 이 도시에서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란 정신의 죽음을 의미했다. 몸이 죽은 것은 돌이킬 수 있어도, 정신이 망가지는 것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으로 샬롬에 방문했을 당시에 고립되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낯선 도시에 홀로 남겨졌던 경험은 기이한 존재들을 상대해온 그에게도 악몽처럼 다가왔다.
‘그때 자살했으면 서울에서 깨어났을까, 아니면 샬롬에서 깨어났을까.’
잠시 눈을 깜빡이자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샬롬에서 아무리 자살해도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무수히 자살을 한 끝에 정신이 망가져 버리는 상상을 하게 되자 그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무력함을 실감했다.
‘아직도 멀었어. 암브락사스 때는 운이 좋았던 거니까.’
그는 ‘속삭임’이라는 기이한 존재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능력치를 올리고, 무기와 장비를 갖춰도, 공간 자체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불가해한 존재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샬롬의 뛰어난 사냥꾼들 역시 결국은 몰락했다는 사실까지 떠올리자 그는 괴물을 사냥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인지 의문을 품었다.
‘미친 짓이야… 미치지 않고는 못할 짓이지…’
그는 창밖에서 쏟아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안개 낀 도시를 적셔오는 빗소리가 질척거렸다. 이대로 생각을 계속하면 수몰되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자 그는 생각을 그만뒀다.
‘생각할 시간에 움직이자. 괴물을 죽이다 보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지.’
괴물을 죽이러 나서는 것은 이제 설레는 일이었다. 근육을 사용해 괴물의 피와 살을 분리해낼 때면 잡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움직여 괴물을 살해하는 것을 좋아했고, 이제는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괴물을 죽였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 따위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고, 설령 있다고 해도 망설일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괴물 사냥이야말로 최고의 우울증 치료제였다.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자 저편에서 성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 ■■■■■! ■■■■■!] [■■■■■! ■■■■■! ■■■■■!] [■■■■■! 제발 ■■■■■! 제발…!]‘그래… 저것도 잡으러 가긴 해야지…’
미뤄둔 숙제를 떠올리자 그의 입가에 음울한 미소가 걸렸다. 진정한 의미의 괴물이란 성자밖에 없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전에 쉽게 잡을 수 있는 성자부터 잡으러 가자. 수류탄 몇 개 던지는 걸로 성자 하나를 죽이면 남는 장사니까.’
행선지를 정하는 것이 끝나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괴물이 된 마태오 신부가 거점으로 삼은 대형 마트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원래대로였다면 제 자리에 있어야 할 ‘성자의 알’이 으깨져 있었기 때문이다.
* * *
건물의 옥상에 도착한 재환은 마태오 신부도, 성자의 알도 보이지 않자 주변을 경계했다. 성자의 알이 으깨져 있으니 스스로 부화했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아진 지력으로 주변을 살폈음에도 사냥꾼과 성자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 동안 주변을 살피던 그는 으깨져 있는 알을 향해 다가갔다. 으깨져 있는 성자의 알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했고, 괴물의 피는 태양에 의해 증발했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늦게 온 건가?’
지금까지 마태오 신부를 만났던 것은 3월 11일 저녁부터 3월 12일 새벽 사이의 일이었다. 그러니 3월 13일 새벽은 예정보다 하루 늦게 이곳에 방문한 셈이 되었다.
‘누가 부숴버린 건가? 한사랑? 아니면 강철우?’
그렇게 그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낯선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남자인 것 같기도 하고, 여자인 것 같기도 한 이 목소리에는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호감을 이끌어내는 매력이 담겨있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알려줄까?]그는 속삭임이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날개가 수백 장 달린, 아득하게 거대한 크기의 까마귀가 거미줄에 걸린 채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지력이 낮았을 때에는 아득하게 보였던 것이 이제는 뚜렷하게 보이자 그는 온몸이 굳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사냥 대상: 날개 달린 주시자, 크로드] [분류: 관리자] [지식을 관리하는 성자. 대화에 응하지 말 것] [필요 지혜: 99]지력이 높아진 덕분인지 속삭임은 저 성자를 상대하려면 지혜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괴물은 암브락사스의 환영에서 보았던 ‘까마귀’였고, 99라는 지혜는 저 괴물을 마주 보기 위한 최소 조건에 불과했다.
그는 크로드가 푸드덕거리는 날개 사이로 돋아나 있는 눈들을 바라봤다. 어림잡아 수백만 개는 넘어 보이는 저 눈알들은 까마귀 성자가 다른 괴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지 능력을 지녔음을 드러내는 상징물이었다.
[궁금하지 않니?] [알은 왜 깨졌을까?] [누가 깨뜨렸을까?] [어째서 깨뜨렸을까?] [애초에 알은 왜 있던 걸까?]순식간에 질문 세례가 쏟아지자 그는 귀를 막아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마태오 신부가 어째서 괴물이 됐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 끔찍할 정도로 감미로운 목소리에 하나라도 대답하는 순간, 까마귀의 노리개가 되어 영원토록 놀아나게 될 운명이 그의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재환은 순식간에 판단을 끝냈다.
‘대답하면 안 돼. 저게 다 미끼고, 함정이니까.’
그는 크로드에게서 눈을 뗀 뒤 대피 구역으로 돌아갔다.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미물이 하늘에 떠 있는 별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혜가 높아진 덕분에 미쳐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잘 가!] [다음에 또 보자!] [언제든지 기다릴게!]감미로운 목소리를 뒤로한 채 그는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그리고 거리가 멀어지자 까마귀의 목소리가 점점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거미줄이 까마귀를 옥죄고 있다는 사실이 구원처럼 느껴지는 밤이었다.
* * *
‘박격포로 잡는 건 힘들겠지. 애초에 그 정도로 죽을 크기도 아니었고.’
지력이 높아진 상태에서 까마귀 성자 크로드를 만난 것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력이 높아진 덕분에 크로드의 모습과 목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처럼 지력이 높아진 상태에서 지혜가 조금이라도 모자랐더라면 그는 크로드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죽어버렸을 것이 분명했다.
“하… 시발…”
그는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저걸 무슨 수로 잡냐…”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까마귀는 암브락사스보다도 격이 높은 성자였고, 순순히 심장을 내어줄 정도로 자비로운 성격도 아니었다. 그 증거로 그는 암브락사스가 보여준 환영 속에서 까마귀가 속삭인 지식에 의해 비참하게 죽어 나갔다.
‘모르는 게 약이면, 아는 게 독이지… 아는 게 독이야…’
재환은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입에 물었다. 그리고 도저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은 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마태오 신부가 그 꼴이 된 것도 그 까마귀 짓이겠지. 성자가 됐을 때의 이름이 같았으니까.’
속삭임은 성자가 된 마태오 신부를 ‘날개 달린 주시자, 크로드의 단말’이라고 불렀고, 성자가 되기 전에는 ‘크로드의 권속’이라고 불렀다. 그러니 정황을 살펴보면 마태오 신부가 괴물이 된 것에는 그 까마귀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컸다.
‘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듣고 난 다음에 정신이 나가버린 거겠지.’
시간이 되돌아가도 계속 미쳐있었던 마태오 신부를 떠올리자 담배 연기가 한숨이 되어 퍼져나갔다. 사냥꾼이자 신부였던 남자가 시간의 굴레 속에서 끝없이 미쳐있던 일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뿌연 담배 연기가 창문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아는 게 독이지. 아는 게 독이야. 그래도…’
그는 다시 담배를 피우며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지식이 더 필요해. 아무리 아는 게 독이어도, 계속 모르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
속삭임은 까마귀가 지식을 관리하는 성자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 까마귀가 성자들 중에서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괴물이고, 인간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일 정도는 손쉽게 해낼 수 있는 괴물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만약 이 가정이 맞다면, 정신이 무너지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괴물은 바로 저 까마귀일 것이다. 성자의 지식을 기억했다는 이유만으로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다 백번을 넘게 죽었던 기억은 아직도 그의 뇌리에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사냥꾼 성자도 나중에… 까마귀 성자도 나중에… 그러면 심장이랑 거미도 나중으로 미뤄야 되는 건가…’
가장 격이 높은 네 성자를 상대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암브락사스가 보여준 환영 속에서 그는 ‘심장 성자’를 살해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비록 환상 속의 일이었으니 실제로 가능할 거란 보장은 없었지만, 그 대단한 존재를 살해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이미지는 한 줄기 희망이 되어 그의 정신을 지탱했다.
‘그래.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암브락사스 때도 마찬가지였어. 안 될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는 거야.’
성자를 상대하는 일은 별을 올려다보는 것만큼이나 아득했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의 생각을 하는 괴물을 한낱 미물의 몸으로 상대하는 것은 불길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다를 게 없었다. 이제 수천에 가까운 괴물을 죽여 본 그에게도 성자는 아직도 불가해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의를 챙긴 뒤 거리로 나아갔다. 성자가 아무리 불가해한 괴물일지라도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한 재앙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암브락사스의 심장을 얻어냈던 기억을 떠올리며 꺾여버릴 뻔한 정신을 부여잡았다.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은 아니지. 성자도 마찬가지인 거고.’
그는 저편에서 들려오는 성자의 비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에게는 저 성자의 목소리가 울다 지친 아이의 것처럼 들렸다.
[돌아와요, ■■■■■, ■■■■■…] [■■■■■… ■■■■■… ■■■■■…!] [보고 싶어, ■■■■■… ■■■■■…]처량하기까지 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까마귀가 있던 곳을 우회해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목소리는 노원구의 수락산 부근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야. 목소리가 저렇게 된 건 저 괴물이 지치고 약해져 있다는 증거니까.’
성자라고 해서 전능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이 심해에 잠수하려면 잠수복이 필요한 것처럼, 그들 역시 지상에 머물려면 심장이라는 닻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제 성자의 심장을 찾아낼 수 있는 지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격이 낮은 성자를 상대로 얼마나 선전할 수 있는지는 언젠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일이었다.
‘그래, 성자라고 다 같은 성자는 아니지. 이름은 같아도, 체급 차이는 있을 수 있는 거야.’
그는 지금 상대하려는 성자가 부디 약해져 있길 바랬다. 이번에도 암브락사스를 상대했을 때처럼 지옥 같은 경험을 했다간 뇌가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