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5
아무도 서울을 나갈 수 없다 (1)
바깥으로 나온 그는 주변에 널려있는 괴물을 슥 훑어봤다.
‘완전 아수라장이구만.’
괴물들은 다들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뛰어다니길 좋아하는 괴물은 자동차를 밟으며 껑충거렸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 괴물은 바닥을 훑으며 쓰레기를 주워 먹었으며, 낚시를 좋아하는 괴물은 주변에 움직이는 것을 낚기 위해 갈고리를 던져댔다.
상황은 총체적 난국에 가까웠다.
‘그나마 서로 취향 존중은 안 하는 모양이지만.’
괴물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기호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을 방해하는 것들에게만 적대적이었다.
뛰어다니길 좋아하는 괴물이 다른 괴물이 던진 갈고리에 낚였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괴물이 땅을 기어 다니던 괴물을 집어삼켰다. 가로등 빛을 가지고 놀던 괴물은 빛을 싫어하는 괴물이 던진 가시에 가슴을 찔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재환은 겁에 질린 사람들에게 조언을 건넨 뒤 앞으로 나섰다.
“조용하게, 흩어져서 움직이세요. 그래야 한 명이라도 더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던 사람은 괴물에게 살해당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앞서갔던 사람은 살아남아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재환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일깨운 뒤 앞으로 나섰다. 여기까지가 그가 도와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걷기 시작했다. ‘흩어져서 움직이자’는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는지 뒤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은 자극만 안 하면 돼. 선공형만 조심하자.’
괴물의 근처를 지나가는 것은 숨 막히는 일이었다. 생긴 것도 끔찍한 것들이 사람까지 죽인다니. 최악에 가까운 조합이었다.
하지만 그는 주변에 있는 괴물들이 어떤 것에 관심을 보이는지 알 수 있었고, 이를 활용해 괴물을 자극하지 않으며 이동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괴물은 ‘비선공형’이라고 분류된 덕분에 얌전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주의를 끌지 않을 수 있었고, 간혹 위험한 괴물이 보여도 피해서 가면 그만이었다. 덕분에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 국도까지 걸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제야 좀 조용하네.’
국도는 아파트 단지에 비하면 한적했다. 교통사고로 고장 난 차들이 늘어서 있을 뿐이었다. 그는 표지판을 따라 서울 밖으로 나가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서울 밖으로 나가려면 또 죽겠지. 아니면 영영 미치거나.’
그는 차선을 따라 걸어가며 생각했다. 서울 밖으로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만약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빠져나가지 못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해보고 후회하는 것과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는 해보고 후회하는 것을 선택하곤 했다.
나름의 신념이었지만, 이 신념이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옳은 일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선택하고 난 다음에는 미련이 남지 않았다. 그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재환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국도를 따라 걸어갔다. 도로를 따라 걷는 것도 순탄한 일은 아니었다. 밤이 되면 안개가 더욱 짙어졌고, 안개 너머에서 드문드문 괴물이 나타날 때면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돼.’
그는 서울의 끝자락을 향해 계속 걸었다. 다행히 서울의 끝을 향해 갈수록 괴물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시점부터는 아예 괴물이 나타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괴물이 아예 안 보이니까 괜히 불길하네. 기분 탓인가?’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국도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괴물은 점점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의 숫자는 점차 늘어났다. 처음에는 열 명 정도만이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백 명이 넘게 보였고, 서울 밖으로 나가는 경계에 도착했을 때는 어림잡아 이천 명이 넘는 사람이 도로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모두 서울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서울의 끝자락에 도착한 그들을 맞이한 것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람들을 막아선 경찰들이었다. 경찰들은 몰려온 인파를 통제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시민 여러분! 모두 돌아가 주십시오! 서울 바깥으로 나가시는 건 위험합니다!”
“밤에 나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하다못해 해가 뜰 때까지라도 기다려주세요!”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시위 진압용 버스 위에 올라가 확성기를 들고 말했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걸 보니 계급이 높은 경찰인 것처럼 보였다.
“서울 외곽을 넘어서면 정신질환에 걸릴 위험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서울 외곽의 안개에는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성분이 있습니다!”
수십 명 정도의 경찰이 도로를 점거한 채 사람들을 막아서고 있었지만, 도로를 가득 메운 수천 명의 인파는 경찰의 경고를 들을 처지가 못 됐다.
“비켜! 다 죽게 생겼는데 무슨 개소리야!”
우락부락한 남자가 경찰 방패를 든 의경을 밀치면서 말했다.
“죽어도 우리가 죽지, 너네가 죽냐! 우리가 우리 갈 길 가겠다는데, 당신들이 뭐라고 막아!”
그 뒤에서는 중년의 남자가 호통을 쳤다.
근처에 있던 중년 여자 역시 거들었다.
“좀 비켜 봐요! 괴물이 나오는데 아침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그러자 그 뒤에 모인 군중이 시위현장을 방불케 하는 기세로 외쳤다.
“비켜라! 비켜라! 비켜라!”
“비켜라! 비켜라! 비켜라!”
사람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경찰들이 시위진압용 방패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다 합쳐봐야 수십 명 정도의 병력으로는 이 많은 인파를 막아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상황을 파악한 재환은 경찰의 표정을 훑어보며 생각했다.
‘경찰들이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은데···.’
시민들을 막아서는 경찰들의 기세는 처절했다. 흥분한 시민들이 발길질과 돌팔매질까지 하는 와중에도 그들은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막아섰다. 누군가 강요하거나 억지로 시켜서 하는 기세가 아니었다. 저들은 탈영과 직무유기가 속출하는 이 판국에도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정예였다.
경찰들이 필사적으로 시민들을 저지하는 모습을 본 시민들 중 일부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냥 다시 돌아갈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짓말 같지도 않고···.”
“생각해보면, 나갈 수 있는데 굳이 사람들을 못 나가게 할 이유도 없잖아.”
“어디 숨어 있다가 아침에 나가도 되는 거고···.”
“차라리 피난촌에 있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은데.. 피난촌에는 군인도 있잖아.”
재환은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시민들을 막아선 경찰들의 몸부림이 처절할수록, 흩어지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경찰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점차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저지선을 넘어서려는 사람들의 숫자는 적지 않았다. 그들이 필사적인 이유는 서울에 남아있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고, 재환 역시 그들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역시 서울을 빠져나갈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
재환은 계속 저지선을 넘어서려는 사람들과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다른 길을 찾는 게 빠르겠어.’
서울을 나갈 수 있는 길이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울은 넓고, 경찰의 인력은 한정되어있으니, 잘 찾아보면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었다.
‘그 거대 괴수가 이쪽으로 오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 그는 또다시 온몸이 굳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파트 단지에서 ‘불가해’의 울음소리를 듣기 직전에 느꼈던 감각과 비슷했다.
‘이번엔 또 뭐야?’
그는 불길함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근처에 거대 괴수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의아해하고 있을 무렵, 이변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하늘에 뜬 달이 순간 번쩍거렸고, 거대한 파동과 함께 가로등의 불빛이 거칠게 타올랐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안개 너머에서 살벌한 울음소리가 진동했다.
“————-!”
재환은 귀에 꽂히는 울음소리에 괴로워하며 몸을 웅크렸다. 주변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거나 겁에 질린 비명을 내뱉으며 괴로워했다.
‘방금 그건 뭐였지?’
한순간 기절할 뻔했던 재환은 간신히 정신을 차린 뒤 주변을 둘러봤다. 가로등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금 전의 비명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기절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환과 마찬가지로 멀쩡해 보였다.
그렇게 안심하려던 찰나, 재환은 몸이 굳어버릴 정도의 광경을 보고 말았다. 주변의 군중 중에서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달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모습이었다.
“달을 사랑하라, 달을 사랑하라···.”
재환은 근처에 있던 남자가 흐리멍덩한 눈동자로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며 뒷걸음질 쳤다. 단순히 저 남자의 행동이 이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저 남자의 몸에서 명백히 사람의 것이 아닌 ‘무언가’가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돋아나는 ‘무언가’는 얇은 뱀처럼 보이기도 했고, 커다란 지렁이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해저 생물의 촉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몸에서 ‘무언가’가 돋아나는 모습은, 애벌레가 날벌레로 우화하는 것만 같았다.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의 기이함을 자아냈다.
“꺄아아아악!”
“뭐야…! 이게 뭐야!”
“엄마! 엄마아!”
사람들의 경악이 울려 퍼졌고, 공포는 한순간에 퍼져나갔다.
이 도시에서는 누구든 괴물로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근처에 있던 사람이 실시간으로 괴물로 변하는 모습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모두가 패닉에 빠진 순간, 거리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총성이 흐른 자리에는 순간 적막이 찾아왔다. 모두가 총성에 압도된 것이다. 그리고 그 적막을 뚫고 확성기 소리가 퍼져나갔다.
“사격 개시! 전원 발사! 사격 개시!”
탕! 탕! 탕! 탕!
그는 고개를 돌려 총성이 난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경찰 여럿이 괴물이 되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몇 발의 총성이 더 이어진 뒤, 현장에는 괴물이 되다 만 시체가 여러 구 쌓여있었다.
총성이 울려 퍼지고 난 자리에는 고요한 적막이 맴돌았다. 시민들은 물론이고 권총을 발포한 경찰들마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 이 상황에 압도되어 온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적막을 깬 것은 버스 위에서 확성기를 들고 있던 경찰이었다. 그는 조금 전 첫 번째로 총을 발사한 사람이었다.
“오늘 밤, 서울 전역에 괴생명체 출몰 빈도가 급상승했습니다. 또한, 시민분들이 괴생명체로 변하는 빈도 또한 현저히 높아졌습니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경찰의 목소리에는 참담함이 묻어나와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울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통제하는 것은 잘못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찰이기 이전에 같은 서울 시민으로서, 여러분을 말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잠시 숨을 골랐다. 사람이 괴물이 되고, 괴물이 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이 상황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총 백만 명가량의 사람들이 서울 밖으로 나가려 했습니다. 그중 저희가 직접 배웅한 단체가 총 36팀 있었습니다. 인원으로 계산하면 총 1,082명이었고, 그분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습니다. 정신질환에 걸린 채로요.”
경찰은 그렇게 말한 뒤 확성기를 잠시 내려놨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을 둘러본 뒤 다시 확성기를 들어 올렸다.
“서울 바깥으로 나가려고 한 분들은 모두 백치가 됐습니다. 서울 인구 중 약 백만 명이 서울 밖으로 나가려다 정신질환자가 된 겁니다. 이것이 저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입니다. 그래도 나가길 원하시는 분들은, 믿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이제 막지 않겠습니다.”
뜻밖의 선언에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그 소란을 뚫고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상 중랑구 경찰서장 김태수 총경이었습니다.”
김태수 경찰서장의 일장연설이 끝나자, 경찰들이 모두 길을 비키기 시작했다. 능숙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한 것처럼 보였다.
집요하게 자신들을 막던 방해물이 사라지자 시민들은 오히려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동안 시민들의 불안을 키우지 않기 위해 숨겨뒀던 정보가 공개되자 동요한 것이다.
서울 밖으로 나가려던 사람이 백치가 됐다는 사실 자체는 다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 미쳐서 돌아왔다는 말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이 팩트인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재환은 경찰들 너머에 있는 ‘안개의 장벽’을 바라봤다. 지금 깔려있는 안개보다 몇 배는 더 밀도가 높아 보이는 안개의 영역이었다. 서울을 나가려면 저 안개의 장벽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지만, 저 안개가 어디까지 뻗어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들어가면 미쳐서 나오는 안개의 땅.
재환은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미쳐버리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어차피 이 도시는 지금 제정신으로 살기에는 적당한 곳이 아니었으니까. 이 판단이 정답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는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개의 장벽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속삭임이 그의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사냥 대상: 불가해(不可解)] [분류: 관리자]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괴물 중 하나.] [사냥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처음 거대 괴수를 봤을 때와 비슷한 내용의 속삭임이었다. 저 안갯속에도 괴물이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안개 자체가 괴물인 것인가.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재난 속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무지했으니까. 덕분에 재환은 안개의 장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저 안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면, 직접 들어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지한 덕분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