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50
성자 추적 (2)
3월 13일 오전 5시 35분.
새벽녘의 노원구는 우울한 도시였다. 적어도 재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좌초된 배처럼, 익사 당한 시체처럼, 이 도시에는 사람의 숨통을 조여 오는 우울함이 물씬 풍겨오고 있었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어째서 이런 인상을 받았는지 되새겼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비라면 중랑구와 동대문구에서도 지긋지긋하게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욱하게 깔려있는 안개 때문에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안개라면 서울이 멸망한 이후 어딜 가도 매연처럼 깔려있기 마련이었으니, 이제 와서 우울하게 여기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재환은 우의를 뒤집어쓴 채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우울함을 느낀 이유는 사람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 사방을 둘러봐도 주변에는 비를 맞으러 나온 사람들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찻길에서, 인도에서, 상가 앞에서,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대학가와 관공서까지.
어디를 가 봐도 사람들이 멍하니 비를 맞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저체온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비를 맞고 있었고, 하나같이 울고 있거나 울 것 같은 얼굴로 멍하니 있었다.
재환은 그들 중 몇몇을 흔들어 말을 걸어봤지만, 그들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넋이 나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아갔다.
서울에서 불가해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이제 유난 떨 일이 아니었다.
‘미쳐버리면 그럴 수도 있지. 정신이 나가면 비 맞는 걸 좋아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저들이 미쳐버린 근원이 무엇인지 생각하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뿐만이 아니라 괴물들 역시 비를 맞으며 흐느끼고 있음을 발견했다.
처량하고, 가련하게. 괴물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음색으로 구슬프게 울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속삭임의 정보에 따르면, 저 괴물들은 본래 울음 따위에는 취미가 없는 괴물들이었다.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괴물도, 노래하길 좋아하는 괴물도, 춤추길 좋아는 괴물도, 공중제비가 특기인 괴물마저도 모두 자신의 기벽을 무시한 채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대부분의 괴물들이 자신의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역시 기이한 현상이라고 봐야 했다.
‘차라리 잘 됐어.’
재환은 우는 괴물 중 하나의 목을 탈바꿈으로 썰어버리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우는 것에 몰두한 괴물들은 저항마저 하지 않았다.
‘괴물이라고 미쳐버리지 말란 법은 없다는 거니까. 이제야 좀 공평해졌네.’
핏물이 빗물에 씻겨나가자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그는 괴물의 피를 입에 머금은 뒤 다음 괴물을 썰어버리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괴물은 전부 죽여야지.’
그가 탈바꿈을 휘두를 때마다 괴물의 울음소리가 그쳤다. 그들은 숨통이 끊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흐느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야 성자를 잡으러 갈 때 방해받지 않을 테니까.’
길가에 널려있는 괴물의 목을 썰어버리는 일은 사냥이라기보다는 수확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의 눈에는 이 기이한 형상의 괴물들이 피라는 열매를 맺어내는 나무와 다를 바 없어 보였고, 그렇기에 그는 괴물의 피를 취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목가적이기까지 한 목 수확 작업은 동이 틀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괴물의 목을 썰어내던 그때, 그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역겨운 기운을 느꼈다.
사냥꾼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빗줄기를 넘어 그의 감각을 자극했다. 괴물의 악취에는 무덤덤해질 수 있어도, 사냥꾼 특유의 동족 혐오는 그에게도 아직까지 익숙해질 수 없는 감각이었다.
‘쫓아가 보자.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고…’
그는 핸드캐넌을 매만진 뒤 사냥꾼의 악취를 쫓아 발걸음을 옮겼다.
‘…방해될 것 같으면 죽여야지.’
시간이 되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살인을 거리낄 이유는 없었다. 일단 시간이 되돌아가면 죽은 사람 역시 되살아나고, 여차하면 그 역시 자살을 함으로써 죗값을 치르면 그만이었다.
무엇이든 끝없이 반복된다면 무뎌지기 마련이었고, 그렇기에 암브락사스는 이 세계에서는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괴물이 된 사람도 죽였고, 망자가 된 사냥꾼도 죽였지. 자살하려는 사람도 죽여 봤고.’
지난날을 떠올리자 고양감과 함께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와서 산 사람을 못 죽이는 것도 웃긴 일이지. 엄살도 정도가 있는 거야.’
그는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추적을 이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 마트에서 사냥꾼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사냥꾼은 중랑구 대피 구역에서 만난 세 사냥꾼 중 한 명인 설지훈이었다.
* * *
설지훈이 거점으로 삼은 대형마트는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보물창고였다. 보존 식량, 기호 식품, 생수와 음료와 같은 식료품부터 시작해서 공구, 소형 발전기, 의약품과 같은 생필품과 귀금속까지.
이 몰락한 서울에서 가치 있을 법한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이 대형 마트에 모여 있었고, 이 물건들을 모은 장본인인 설지훈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얘기는 종종 들었어요. 열심히 괴물 잡는 사냥꾼이 한 분 계신다 그래서, 언제 한번 뵙고 싶었거든요.”
설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악수를 청했다.
“설지훈입니다. 저보다 형님이신 거 같은데, 편하게 부르세요.”
재환은 일단 악수를 받아들이며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그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저 소년 역시 사냥꾼인 이상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을 기억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 설지훈은 의아해할 뿐이었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어요? 전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재환은 설지훈의 표정을 살피며 그가 자신을 기억하는지 가늠했다. 하지만 억양, 표정, 분위기만 봤을 때는 거짓말을 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그는 상대방을 떠보는 것을 그만뒀다.
“내가 착각했나 보네요. 신경 쓰지 마요.”
“음… 뭐, 괜찮아요. 제가 좀 흔하게 생긴 얼굴이라, 그런 소리 자주 듣거든요.”
설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마트의 식당 코너로 재환을 안내했다.
“그냥 인사만 하러 오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좀 앉아서 얘기할까요? 이제 사냥꾼도 얼마 없는데, 우리끼리 서로 좀 돕고 살아야죠.”
재환은 설지훈이 테이블의 의자에 앉자 그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핸드캐넌의 권총집에 손을 올렸다. 나이가 어려 보여도 사냥꾼은 사냥꾼이었으니, 긴장해 둬서 나쁠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환은 자리에 앉은 뒤 설지훈에게 말했다.
“용건만 간단하게 말할게요. 나는 지금 괴물을 잡으러 수락산에 가는 중이고, 산에 오르기 전에 정보를 모으러 왔어요. 보아하니 이 근처에서 활동하는 것 같은데…”
그는 주변에 쌓인 물자들을 스윽 훑어봤다. 여차하면 설지훈이 고생해서 모은 물자들은 모조리 물거품으로 만들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제스쳐였다.
“…왜 여기가 이 꼴이 됐는지, 아는 게 있으면 말해 봐요. 나는 그쪽이 뭘 얼마나 모으던지 관심 없으니까.”
지금까지의 알아낸 것들을 정리해 보면 설지훈이 어떤 인물인지는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괴물 사냥에는 별 관심이 없는 소시민. 자기 밥그릇부터 챙기는 생존주의자. 여차하면 도망칠 생각부터 하는 겁쟁이.
이런 인간을 대하는 방식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손익계산만 정확하게 하고, 이용할 부분만 이용한다면 언제든지 마음 편히 손절할 수 있는 유형이었기 때문이다.
재환이 자신의 용건을 말하자 설지훈은 씨익 웃었다. 상대가 자신이 모은 재물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자 약탈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것이다.
“여기도 원래 이러진 않았어요. 사람도 있고, 괴물도 있고… 뭐, 대충 그런 동내였죠.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까 이 꼴이 된 거죠.”
설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다들 비에 맞으면 익사하더라고요. 뭐에 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냥 계속 비를 맞는 거예요. 추위도 배고픔도 없이 계속 맞는 거죠. 그나마 우리 같은 사냥꾼은 좀 괜찮은 것 같지만요.”
“그런 걸 감안해도 사람이 너무 없던데. 다른 일은 없었어요?”
“있었죠. 여기도 서울 외곽이니까, 다들 서울 바깥으로 도망치려고 했죠. 다들 잘 갔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요.”
노원구는 북쪽으로는 의정부시, 동쪽으로는 구리시와 남양주시와 연결되어있다. 조금만 걸어도 경기도로 넘어갈 수 있는 만큼, 서울 바깥으로 나가려는 사람이 많았을 거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노원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한 재환은 선명하게 들려오는 성자의 비명에 귀를 기울였다. 저 비명에 담긴 슬픔이 지혜가 부족한 사람과 괴물의 무의식을 자극했을 것이고, 빗물에 맞은 사람과 괴물의 정신이 익사 당했을 거라 생각하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수락산에 괴물이 있어요.”
재환은 그렇게 말하며 소용없을 게 뻔한 제안을 건넸다.
“저는 지금부터 괴물을 죽이러 갈 거고요. 협력할 생각 있어요?”
“어떤 괴물인데요?”
그 괴물에 대해서는 그 역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재환은 설지훈의 말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안 죽이면 다 같이 죽는 괴물.”
별것 아닌 괴물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설지훈을 데려갈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본인에게 괴물과 대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성자를 상대로 무력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예상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설지훈은 재환의 권유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지금 가지 말고, 형님도 저랑 같이 일하시는 건 어때요? 솔직히 그런 괴물을 그냥 잡는 건 아깝잖아요. 괴물을 잡으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한테 받는 게 있어야죠.”
설지훈은 그렇게 운을 떼며 은근한 말투로 설득을 이어나갔다.
“그 괴물이 그렇게 위험한 괴물이면, 깽판 치게 둔 다음에 죽여서 영웅 대접받는 게 낫지 않아요? 솔직히 우리도 목숨 걸고 괴물 잡는 거잖아요. 언제까지 자원봉사만 할 수도 없는 거고, 우리끼리 손잡으면 왕처럼 사는 건 일도 아니에요. 세상이 이런데 우리 몫은 우리가 챙겨야죠.”
재환은 싸늘한 시선으로 설지훈을 바라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지훈의 머리를 터트리는 일에 총알을 사용하는 것마저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지훈은 자리를 떠나는 재환의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중에 생각나면 다시 연락 주세요! 괴물도 뭉쳐 사는데, 우리도 뭉쳐 살아야죠!”
서울의 시간이 되돌아간다는 걸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설지훈의 행동은 미련한 일이었다.
암브락사스가 이 땅에 임했을 때에는 일주일 안에 멸망하는 것이 서울의 운명이었고, 암브락사스가 승천한 지금도 성자 하나가 활보하기 시작하면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것이 서울의 현주소였다.
성자 하나의 변덕으로 언제 모든 게 끝장날지 모르는 세상에서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행동이 오히려 생존과 거리가 먼 결과를 낳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끊임없이 물자 수집에 열을 올릴 운명인 설지훈을 미련하게 여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 역시 설지훈과 별다를 바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 암브락사스가 이런 기분이었겠지.’
까마득한 하늘 위에서 시간을 초월해 인간을 내려다본다면, 그 역시 다른 인간들과 다를 게 없었다. 괴물의 시체로 탑을 쌓아 성자에게 도전하는 것은 까마득한 일이었고, 그렇게 쌓은 탑이 바람 한 번에 무너져 버려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끊임없이 그에게 쉴 것은 권했고, 그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에 고집을 부렸다.
‘괴물은 안 죽이면 사냥꾼이 아니지. 적어도 괴물 사냥꾼은 아니야.’
재환은 설지훈을 내버려둔 채 수락산을 향해 나아갔다. 사냥꾼으로 사는 길을 택한 이상, 괴물을 사냥하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