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51
우는 괴물 (1)
수락산의 초입에 도착하자 뾰족한 상록수와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사냥꾼을 맞이했다.
노원구 시민뿐만이 아니라 서울 전역과 경기도의 시민들까지 포용하던 이 명산은 인적이 끊기자 안갯속에서 음산하게 그 자태를 과시했다.
우의를 뒤집어쓴 채 주변을 살피던 재환은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수락산의 오르막길을 올려다보며 경계심을 높였다.
모든 게 기괴하게 일그러지는 서울에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수락산의 모습이 오히려 생경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예상에 부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등산로를 따라 수락산의 초입을 오르던 재환은 아스팔트 길을 따라 느릿하게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산은 변하지 않았어도, 산속에 있는 사람들은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서울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서울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서울 밖으로 나가면 안 돼……”
하산객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비를 그대로 맞은 채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고,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드문드문 보일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재환은 그들을 쉽게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었다. 지력이 높아진 덕분에 그들의 머리 위에 늘어진 거미줄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거미 성자 짓이겠지. 여기도 서울이랑 경기도의 경계니까.’
거미줄이 연결된 사람들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거미줄의 인도에 따라 서울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전파한다.
원래대로였다면 시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경찰과 군인이 통제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이들을 통제해야 할 경찰과 군인 역시 인간인 이상 산 정상에서 들려오는 성자의 비명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
[■■■■■,..! ■■■■■…! ■■■■■…!] [■■■■■…! 어디에! ■■■■■…!] [나를 봐요 ■■■■■! 날 봐요 ■■■■■!]재환은 정상 부근에서 들려오는 성자의 비명을 들으며 혀를 찼다.
‘이제야 좀 제대로 느껴지네. 저런 걸 매일 듣다 보면 맛이 가는 것도 당연하지.’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역시 성자의 비명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저 성자의 비명에는 비탄이 담겨있었고, 성자의 비탄은 사람과 괴물에게 전염되어 우울의 우물로 인도한다. 괴물의 피를 마신 사냥꾼처럼 지혜를 얻은 자들이라면 버텨낼 수 있어도, 그렇지 못한 자들은 그대로 우울 속으로 익사하고 만다.
재환은 거미줄에 의해 거미의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향해 탈바꿈을 꺼내 들었다.
성자를 상대하러 가기에 앞서서 방해가 될 만한 요인은 미리 제거해 둬야 했기 때문이다. 저들이 언제 성자의 꼭두각시가 되어 자신의 발목을 잡을지 모르는 이상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는 같은 말을 중얼거릴 뿐인 사람들의 거미줄을 배어버렸다. 그러자 거미줄이 끊긴 사람들이 실을 잃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재환은 쓰러진 사람이 숨을 쉬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저 거미줄은 사람들의 목숨 줄이었다.
‘편히 쉬시고…’
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사람들의 거미줄을 끊었다. 저 거미줄이 사람들의 목숨줄이란 걸 알게 되었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의 거미줄을 끊어버리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다음엔 이런 식으로 보지 맙시다.’
사람의 목숨줄을 끊는 감각은 그다지 유쾌한 것이 되지 못했고,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목숨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이런 시대가 되어도 할 짓이 못됐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괴물을 죽이는 것만큼 즐겁게 느껴진다면, 그때는 마음마저 괴물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괴물을 죽이는 괴물이 되는 건 상관없었지만, 사람을 죽이는 괴물이 되는 것은 그에게도 꺼림칙한 일이었다.
* * *
쏟아지는 빗속에서 그는 사람들의 머리에 연결된 거미줄을 베어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자가 아닌 괴물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확인한 뒤 미소를 지었다. 괴물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희열이 심장을 타고 온몸에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는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만 같은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며 괴물을 향해 걸어갔다.
‘사냥꾼이면 괴물을 죽여야지. 사람은 사람이고, 괴물은 괴물이니까.’
안개 낀 등산로를 걷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는 괴물을 죽여서 정신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구원처럼 여기며 괴물을 찾아 목을 베었다.
괴물 역시 저항하지 않는다는 점은 사람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럼에도 괴물을 죽이고 피를 취한다는 행위는 메마른 마음에 단비가 되어 그의 정신을 되살렸다.
그는 온몸에 활기가 도는 감각을 만끽하며 등산을 계속했다. 그리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아스팔트 길이 끊기고 흙길이 나타났다.
그는 흙길을 흐느끼는 괴물의 피로 물들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비가 내려 진창이 된 흙길이 그의 발목을 잡았지만, 그는 흙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등산을 계속했다. 그리고 깔딱 고개의 가파른 바윗길을 넘어 산 정상으로 나아갈수록 안개는 점점 짙어졌고, 비는 더 거세게 떨어졌다.
[■■■■■… ■■■■■… ■■■■■!] [돌아와요… ■■■■■… 돌아와 줘…] [■■■■■… ■■■■■… ■■■■■…]재환은 수시로 들려오는 성자의 목소리로 정상까지의 거리를 가늠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목소리 역시 점점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바위로 이루어진 산 정상을 올려다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뼈가 가죽 바깥으로 튀어나온, 7m 크기의 짐승이 웅크린 채 흐느끼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냥 대상: 쏟아지는 자상, 블레인] [분류: 추종자] [실성한 성자. 본래의 이성과 지성을 잃은 괴물] [칼날비에 주의할 것] [필요 지혜: 49]속삭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재환은 공격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바위틈에 모습을 숨긴 뒤 사냥감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봤다.
속삭임으로 알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으니 외형으로 알아낼 수 있는 특징과 약점은 직접 파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혜가 높아진 덕분에 성자의 모습을 직접 봐도 정신이 이상해지는 감각은 들지 않았다.
‘실성한 성자라… 일단은 덩치 큰 늑대인간 같은 걸로 보이긴 하는데…’
‘실성한 성자’라고 불린 이 짐승의 얼굴은 늑대를 닮았지만, 팔과 다리는 사람처럼 길쭉했기에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또한, 곳곳에 튀어나온 뼈에 의해 찢어진 털가죽은 저 짐승이 정상적인 포유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재환은 그 모습을 보고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지혜가 높아진 덕도 있었지만, 그동안 봐왔던 괴물들에 비하면 이 정도의 외형은 오히려 얌전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심장이 바로 보였으면 좋았겠지만… 이러면 어쩔 수 없지.’
살가죽이 심장을 감추고 있다면, 살점을 파헤쳐 드러내면 그만인 일이었다.
결심을 끝낸 재환은 전투 각성제를 꺼내 왼손의 정맥에 투여했다. 약물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자 정신이 차갑게 가라앉는 감각과 함께 주변의 모든 것들이 느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이 0.5배속으로 느려진 것만 같은 감각을 만끽하며, 그는 수류탄 세 개를 꺼내 손가락에 끼웠다.
‘할 수 있어. 민첩도 올려놨고, 감각도 예민해졌으니까.’
현재 그의 레벨은 182였고, 지혜를 제외한 능력치의 대부분을 민첩 위주로 투자한 상태였다. 민첩과 전투 각성제로 강화된 반사신경이라면 수류탄 세 개를 연달아 투척해 명중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 세 개가 산 정상에 자리 잡은 괴물에게 날아가는 것과 함께, 그는 핸드캐넌으로 성자를 겨냥했다.
‘심장이 보이면 심장을 쏘고.’
거리는 대략 150m. 권총을 쏘기엔 먼 거리였지만, 핸드캐넌이 권총의 모습을 한 대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던진 수류탄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괴물의 근처에 떨어진 수류탄들이 연달아 폭발하는 것과 함께 가늠쇠 너머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게 아니면 머리라도 쏴야지.’
예리해진 감각이 폭연이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을 길게 늘어뜨렸다. 그리고 빗물이 먼지를 쓸어내리는 것과 함께, 그는 폭연 너머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별빛을 포착했다. 별의 심장이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는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강렬한 폭음과 함께 핸드캐넌이 불을 뿜었고, 괴물을 죽이기 위해 제작된 탄환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핸드캐넌을 쏜 반동으로 손이 밀려났던 그 순간, 재환은 어느새 자신의 손등에 얇은 칼날이 박혀있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에서는 어느새 빗방울 대신 칼날 조각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냄새가 나. ■■■■■의 피 냄새가 나]손등의 상처가 화끈거리기 시작하자 그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칼날비란 게 이런 거였나. 이럴 줄 알았으면 내구 능력치나 올려둘걸.’
총알이 명중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칼날 세례에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K1을 지향사격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탈바꿈을 조작해 칼날 형태로 분해했다. 한시가 급한 만큼 무기는 최대한 가벼워야 했다.
[너, 너였구나. 너가 ■■■■■를 먹었어…]음울한 목소리와 함께 먼지 너머에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류탄과 핸드캐넌으로 만신창이가 된 털가죽 사이로 칼날로 이루어진 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는 모습이었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괴물은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내지르며 재환에게 달려들었다.
[■■■■■가! ■■■■■가! 날 떠났다고!]온몸에 상처가 늘어나는 고통은 전투 각성제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저 괴물이 비명을 지르자 온몸에 새겨졌던 자상이 더 깊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5초만 버티면 돼.’
그는 약 기운에 몸을 맡긴 채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기든 지든 5초 안에는 끝날 테니까.’
온몸의 상처가 깊어지자 흑묘 반지가 으스러지면서 상처가 일부 회복되었다.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감각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사람은 죽을 때를 깨달았을 때 더 자유로워지는 법이었고, 약 기운에 취한 그의 몸은 죽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괴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온몸에 칼날이 돋아난 괴물이 휘두른 팔을 피하고, 겨드랑이 가죽에 탈바꿈의 칼날을 꽂아 넣은 순간, 재환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상처가 깊어진 나머지 그의 몸이 한계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를 토한 재환이 비틀거리는 틈을 노려 성자가 울부짖었다.
[■■■■■가! ■■■■■가! ■■■■■가 날!]슬픔을 토해낸 성자는 재환의 몸을 칼날로 난도질했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괴물은 재환의 시체를 갈기갈기 찢었다.
[■■■■■가! ■■■■■가!■■■■■가! ■■■■■가! ■■■■■가! ■■■■■가!■■■■■가! ■■■■■가! ■■■■■가! ■■■■■가!■■■■■가! ■■■■■가!]그리고 마침내 재환의 몸이 잘게 으스러져 형상조차 남지 않았을 때, 괴물은 다시 몸을 웅크린 뒤 흐느꼈다.
[죽여…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실성한 성자의 울음소리가 수락산 정상에서 울려 퍼졌다.
* * *
3월 12일 오후 6시 35분.
비는 이전보다도 더 이른 시점부터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던 재환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입에 담았다.
“날 찾고 있어.”
그는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진동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나 때문에 그 여자가 서울을 떠났으니까.’
그는 저편에서 들려오는 성자의 비명에 귀를 기울였다. 비명이 울려 퍼지는 지점은 수락산에서 노원구로 내려와 있었다.
성자가 이전보다 더 가까운 위치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