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52
우는 괴물 (2)
3월 12일 오후 9시 35분.
사냥을 어느 정도 마무리 지은 재환은 텅 빈 상가 건물의 안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그는 우의를 벗은 뒤 건물 안에 버려져 있던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지랄 맞은 동네야···.’
그는 한숨을 내쉰 뒤 서울 곳곳에서 꿈틀거리는 성자들의 기척에 집중했다. 암브락사스가 서울을 떠난 이후, 성자들의 움직임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었다. 아직 그 숫자와 규모는 어렴풋하게 느껴질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우울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나 상대하는 것도 이 지경인데, 저걸 다 죽이려면 몇 번을 더 죽어야 할까?’
성자를 상대하는 일은 별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아득했다. 그는 인간을 죽일 생각이 없었던 암브락사스를 상대하면서 죽은 숫자를 세는 것조차 하지 못할 만큼 죽었고, 이 기억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그의 머릿속에 피로를 쌓았다.
하지만 그는 우울함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숨을 돌린 뒤 돌이켜보면 괴물에게 살해당하는 일은 이제 감기에 걸리는 것만큼이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오히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얻어가는 것이 있다면 기쁘게 감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 쉬웠던 적이 없지. 처음부터 그랬어. 처음부터 아주… 지랄 맞았지.’
서울은 언제나 불가해했다. 푸른 달이 뜨고, 안개가 깔리며, 사람들이 괴물이 된 뒤, 이 도시는 그에게 영원한 악몽이었다.
괴물이 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 괴물이 된 아버지를 살해한 이후, 이 사실 자체는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재환은 죽음에 이를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것에 이제 익숙해져 있었다. 아무리 강한 자극일지라도, 계속 반복되면 당연한 일이 되어 무뎌지게 된다.
그러니 설령 죽는 일이 있어도 나중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그의 뇌는 서서히 이 악몽 속에 절여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세상이 지옥 같아도, 할 일은 해야지. 어차피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거면, 할 수 있는 만큼은 발버둥 치기로 했으니까.’
영원히 잠드는 선택지는 이제 고를 수 없었다. 암브락사스가 내려준 ‘낙원의 사다리’를 걷어찬 이상, 그는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녀의 낙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끝난 일이야. 다시 돌아갈 마음도 없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지친 정신을 가다듬는 것을 끝낸 그는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실성한 성자의 흐느낌에 귀를 기울였다. 그 목소리에 담긴 비탄을 되새기던 그는 묵혀뒀던 의문에 대해 떠올렸다.
`저 괴물은 왜 달이 아니라 암브락사스한테 집착하고 있어. 그 이유를 알아야 돼. 그리고…`
그는 지하철에서 챙겨온 핸드캐넌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느낌으로는 심장을 맞춘 것 같았는데… 내가 뭘 착각한 건가?’
권총의 가늠쇠로 150m 거리를 저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핸드캐넌은 도시에 나타난 괴물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기 위해 제작된 물건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장거리 사격에 적합한 무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민첩과 전투 각성제로 강화된 신경은 그의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고, 그는 높은 확률로 심장을 맞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빗나갔을 수도 있지. 내가 무슨 권총 사격 전문가도 아니고, 무조건 맞추란 법은 없으니까. 그게 아니면…`
그는 지난 일을 복기하며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는 별의 심장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어렴풋하게 짐작해왔던 예감이었다.
‘성자들한테도 소중한 거니까, 내가 모르는 속임수나 방어 수단 같은 게 더 있을지도 모르지.’
별의 심장은 지상에 내려온 성자가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닻이다. 성자들이 모종의 목적으로 지상에 내려온 이상, 의도치 않은 상황에 의해 닻을 잃는다는 것은 본래의 목적을 다 하지 못한 채 지상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실성한 성자일지라도 심장을 지키기 위한 수법 같은 것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무작정 시도해 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위험해.’
그는 창밖에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봤다.
비는 이전보다 이른 시점부터 내리고 있었고, 성자는 이전보다 가까운 위치에서 나타났다. 이는 시간이 되돌아갈수록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는 최악의 결과를 대비해 둬야 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한 최악의 결과는 바로 시간이 되돌아갔을 때 저 실성한 성자가 그의 눈앞에 곧바로 나타나는 경우였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알았지…’
그는 배낭에서 챙겨온 생수병의 뚜껑을 열고 물을 마셨다.
‘회귀하자마자 죽고, 회귀하자마자 죽고… 그렇게 영원히 반복되면… 그때는 정말 끝장이겠지.’
최악의 결과를 떠올린 그는 곧바로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지독한 생각에 사로잡혀 익사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정보가 더 필요해. 성자가 뭐하는 괴물인지 알면 상대하기 더 편할 테니까. 그리고…’
그는 한때 암브락사스의 화관이 씌워졌던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잠깐이긴 했어도, 나도 그놈들이랑 똑같은 괴물이었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 당시의 기억은 그를 백번 넘게 죽인 트라우마였고, 아무리 희석되어도 꺼림칙한 악몽이었다.
하지만 별이 된 괴물을 상대하려면 그들이 어떤 괴물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이제 자신의 머릿속에 잠들어있는 진리의 편린을 마주 봐야 했다.
‘할 수 있어. 지혜는 이제 충분하니까. 이제 와서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
결정을 끝낸 그는 기억을 더듬어 암브락사스의 지배인이 되었을 당시에 얻은 지식을 떠올렸다.
* * *
그날의 기억은 무의식이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잘게 으스러뜨려 먼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혜를 얻은 그의 뇌는 먼지가 된 기억을 끌어모았고, 잘게 으스러졌던 기억은 한곳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그림의 형태로 재구축되기 시작했다.
뇌가 기억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그는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긴 뒤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눈을 덮자 시커먼 어둠이 시야에 들어왔고, 곧이어 그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빛이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광원.
가장 찬란한, 단 하나의 불씨.
그리고 그 주위에서 춤추는, 수많은 별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단 하나의 광원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풍경은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찬란했다.
하지만 지혜를 얻은 뇌는 슬기를 발휘해 빛에 취하지 않도록 방어기제를 작동시켰고, 별들의 진리가 담긴 이미지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왜곡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재환은 빛에 눈이 멀지 않을 수 있었다.
한참 동안 눈꺼풀 안쪽에서 펼쳐진 우주를 관찰하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별과 별 사이의 거리가 별빛마저 희미해질 정도로 아득히 멀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까마득했고, 그들이 발하는 빛은 가장 밝은 광원에 의해 묻혀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천상에 자리 잡은 별들은 서로 소통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 그는 어째서 성자들이 어째서 달의 사랑을 갈구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눈에는 저 광원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별들의 모습이 암브락사스의 사랑에 매료된 인간들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그들에게 저 빛은 시작이자 끝이었고, 하나이자 모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성자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저 빛에 의지해 세월을 보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광원을 해석하여 이를 맹신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긴 기다림 끝에 닻을 내릴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면,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래하여 광원을 찬미한다.
긴 겨울을 버티고 봄을 맞이한 씨앗처럼, 1달을 노래하기 위해 7년을 기다리는 매미처럼, 화사하게 피어올라 달의 이목을 끈 뒤 화려하게 퇴장하는 것이 그들의 배역이었다.
별들의 기원을 훔쳐보던 그는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 * *
천상의 지식을 엿보고 있던 의식이 지상으로 추락하자 멀미가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재환은 울렁거리는 속을 게워내기 위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고, ‘그릇’에 흡수되고 남은 괴물의 피를 쏟아낸 뒤 입을 닦았다.
“이 세상은 무대… 모든 남녀는 배우…”
그는 자신이 훔쳐본 진리의 편린을 해석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실성을 했다는 건… 배역을 잃었다는 것…”
그는 토사물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 주저앉아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지럼증이 가라앉고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하자 혼잣말을 하는 것을 멈춘 뒤 실성한 성자에 대해 떠올렸다.
‘가능성은 두 가지. 원래 미쳐있었거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감각에 집중하며 그는 나머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아니면 암브락사스 때문에 미쳐버렸거나. 정황만 보면 이쪽일 가능성이 더 크겠지.’
암브락사스에 의해 낙원의 지배인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을 방해하는 성자를 몇 번 제압한 적 있었다. 그 당시의 기억은 흐릿해졌기에 구체적인 과정은 알 수 없었지만, 성자들이 암브락사스의 힘을 꺼려했다는 감각만은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그래, 그래. 영원히 사는 관심 종자들이니, 멘탈이 깨지는 게 제일 무서웠겠지. 아예 반해버리든, 실연해버리든, 정신건강에는 해로운 법이니까.’
영생을 사는 자에게는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다. 그들에게 남는 것은 오직 기억과 감정뿐이며,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세월의 흐름에 풍화되어 사라진다.
그렇기에 격이 높은 성자일수록 정신에 간섭할 수 있는 능력이 강한 법이었고, ‘사랑’을 전파할 수 있는 암브락사스의 권능은 성자들에게도 치명적이었다.
‘다른 성자들이 날뛰기 시작한 이유가 이거였어.’
그는 숨을 내쉬며 자신이 얻은 지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성자들에게 제일 위험한 성자가 지상을 떠났으니, 이제 거리낄 게 없다 이거지.’
사랑이 미친 짓이라는 진리가 사람뿐만이 아니라 괴물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닫자 허탈한 심정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사냥과 사랑이라…’
그는 달에 미쳐가고 있는 서울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과 성자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가해한 부분들이 남아있었다. 달은 어째서 시간을 돌리는 것이고, 사냥꾼의 존재와 사냥꾼 성자의 존재 의의는 무엇이며, 달과 성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지.
그리고 괴물들이 미쳐 날뛰는 이 도시에서 인간의 배역은 무엇인지까지.
하나하나 파고들기 시작하면 인간의 두뇌로는 이해하기 힘든 의혹들뿐이었고, 상상하기 시작하면 불안장애와 망상장애를 일으키기 좋은 소재들뿐이었다. 사냥꾼에게는 의심과 진실이야말로 이 미쳐버린 도시에서 괴물보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지금 당장 집착하진 말자.’
그는 창밖에서 쏟아지는 달빛을 바라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괴물을 죽이다 보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될 테니까.’
달은 사냥꾼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총애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모든 것이 되돌아가는 이 서울에서 바뀌는 것은 사냥꾼과 성자뿐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상대는 시간과 공간을 제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괴물이었다.
그런 초월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일개 인간의 몸과 마음을 불구로 만드는 것 정도는 손쉽게 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일들을 돌이켜보면 어렵지 않게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이기도 했다.
‘차라리 자고 일어나면 정신병원인 게 더 나았을 텐데…’
그는 탈바꿈을 쥔 뒤 바깥으로 나가 괴물의 피를 취했다. 어떤 계획을 먼저 시행하더라도 괴물의 피를 마셔서 몸을 강화하는 것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악몽이란 게 참 쉽게 깨지 않네.’
이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심장이란 닻을 잃은 성자는 천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들이 지상에 남긴 피와 살은 그의 양식이 된다는 점뿐이었다.
설령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지옥일지라도, 그는 기꺼이 지옥으로 뛰어들 각오가 되어있었다. 이 인내력이야말로 그가 사냥꾼 노릇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결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