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53
우는 괴물 (3)
3월 13일 오전 1시 35분.
중랑구와 동대문구를 오가며 밤낮없이 괴물을 사냥한 재환은 레벨을 176까지 올린 뒤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했다. 그에게는 현재 총 세 가지의 선택지가 남아있었다.
첫 번째 선택지는 지금 이 상태에서 대전차 로켓이나 박격포 등을 활용해 공격에 나서는 것이었다.
화력만 놓고 보면 폭발물보다 듬직한 것이 없었고, 대전차 로켓이나 박격포 등을 활용해 강력한 공격을 먼저 꽂아 넣을 수 있는 점은 언제나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박격포 같은 걸로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으면 그게 최선이긴 하지. 잘만 풀리면 아예 날로 먹을 수도 있으니까.’
그의 몸으로 발휘할 수 있는 파괴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언제 성자의 지식이 갑자기 떠오를지 모르는 이상 항상 지혜를 먼저 올려야 했고, 그렇기 때문에 근력에 투자할 능력치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근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몸을 만들려면 내구 역시 어느 정도 같이 올려야 했으니, 폭발물을 사용해 선공을 하는 것은 쓸 수만 있다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선택지였다.
‘문제는 그걸로 끝장이 안 날 경우겠지. 암브락사스 때도 그래서 애먹었으니까.’
그가 지금까지 만난 성자들에게는 모두 재생 능력이 있었다. 괴물이 된 마태오 신부가 그랬고, 암브락사스가 그랬으며, 블레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폭발물로 큰 타격을 주더라도 심장에 결정타를 꽂아 넣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계속 피해 다니면서 레벨 업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지. 지금까지 저 괴물은 그냥 울고만 있었으니까. 아무리 레벨 업 효율이 안 좋아도, 레벨이 높은 쪽이 더 유리할 테고.’
저 실성한 성자의 추적 능력이 후각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리할 수 있는 결론이었다.
저 괴물은 그가 150m 거리까지 가까워졌음에도 그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고, 결국 그가 칼날비에 의해 피를 흘리고 난 다음에야 그의 존재를 인식한 뒤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비가 내린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그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저 괴물을 피해 도망치며 레벨을 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우울증도 노원구에서만 퍼진 걸 보면, 비 자체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봐도 될 거야. 이게 언제 칼날비로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 당장 날 찾아서 죽일 능력은 없다고 봐도 되겠지.’
성자의 힘은 무한하지 않았다. 만약 성자가 전능한 존재였다면, 그는 자신을 원망하는 저 괴물의 털끝도 건드릴 수 없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성자들이 지상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에는 제약이 있으며, 이를 넘어서는 힘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겸사겸사 다른 지역에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내가 몰랐던 걸 더 알아내거나 그럴싸한 장비를 구할 수도 있는 거니까. 문제는…’
그는 서울 곳곳에서 꿈틀거리는 성자들의 기운을 느끼며 꺼림칙해 했다.
‘그때까지 다른 성자들이 얌전히 있겠냐는 거지.’
서울은 아직도 미지로 가득 차 있었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요동치는 성자들의 기운은 수상쩍었고, 한강 부근에 있을 심장 성자의 세력 역시 꺼림칙했다. 또한 곳곳에서 만나게 될 사냥꾼들 역시 그에게 호의적이란 법은 없었다.
그러니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괴물을 사냥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지였다.
‘레벨 오르는 속도도 문제고. 이대로 가면 앞으로는 하루에 10레벨 올리는 것도 힘들 거야.’
레벨이 오를수록 괴물을 사냥하는 속도는 빨라진다. 군부대와 제휴해서 괴물의 피를 얻는 것까지 고려하면 하루에 수백 마리 분량 이상 괴물의 피를 마시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에 반해 레벨이 오르는 속도는 일정 구간을 넘어서면 기하급수적으로 느려졌다. 처음 3일 안에는 레벨을 150 이상 올릴 수 있어도, 그 이후에는 괴물을 500마리 이상 잡아야 레벨이 10 정도 오르는 수준으로 느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에 널린 괴물을 사냥하는 것으로 레벨을 올리는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인내력을 시험하는 가시밭길이 될 것이 분명했다.
또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올려놓은 레벨이 피치 못할 죽음으로 초기화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선택지 역시 함부로 고르기에는 꺼림칙했다.
‘그러면 남은 선택지는… 이게 제일 최악인데…’
재환은 마지막으로 떠올린 선택지를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구상한 마지막 선택지는 까마귀 성자와 대화해 조언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 까마귀가 명색이 ‘지식의 성자’인 이상,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선택지를 무시한 뒤 바깥으로 나갔다.
암브락사스가 예전에 환영으로 경고했던 것처럼, 까마귀 성자의 지식을 받아들였다가는 자칫하면 정신이 무너져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군대에서 대전차 로켓이랑 박격포나 받아오자. 이걸로도 안 통하면 그때 다시 레벨을 올리고 전략을 세워도 되는 거니까.’
재환은 저편에서 애타게 흐느끼는 성자의 비명에 귀를 기울였다. 사냥꾼인 이상 저 아우성을 언제까지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지혜에 사용하고 남은 능력치를 근력과 내구 위주로 투자한 뒤 대전차 로켓과 박격포를 보급받기 위해 이동했다.
상대가 수류탄으로 죽지 않는 괴물이라면, 더 강한 화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가장 간단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 * *
3월 13일 오전 5시 35분.
지금까지 알아낸 성자 블레인의 능력은 총 네 가지였다. 하늘에서 칼날을 떨어뜨리는 능력, 자신의 몸에서 칼날을 뽑아내는 능력, 칼날에 베인 상처를 악화시키는 능력, 그리고 마지막 능력은 피 냄새를 맡아서 상대를 추적하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노원구의 어느 사거리 한복판에서 블레인을 찾아낸 재환은 달라진 괴물의 모습을 보며 황당해 했다.
‘설마 하긴 했는데… 역시 저 괴물도 기억이 남아있는 건가…’
괴물의 모습은 이전보다 더 거대했고, 칼날은 더 빼곡하게 돋아나 있었다.
칼날로 이루어진 갑옷을 두껍게 둘러서 탱크나 다름없어진 저 모습은 저 괴물이 단단히 칼을 갈고 나왔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비슷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지난번에 상대했을 때보다 더 흉악해진 괴물의 모습을 보며, 그는 전투 각성제를 꺼내 정맥에 투여했다.
그리고 약 기운이 몸에 돌기 시작하자 군부대에서 받아온 판처파우스트3을 들어 올렸다.
‘화력은 박격포로 저격하는 게 최고긴 한데… 정확도를 생각하면 이쪽이 더 확실하긴 하지.’
표적이 평지에 있고, 거리와 좌표를 제대로 측정하기 힘든 상황인 만큼 박격포로 곡사 사격하는 선택지는 제외되었다.
‘이걸로 한 번에 못 끝내도 돼. 어차피 심장만 어디에 있는지 찾아낼 수 있으면, 마무리는 그다음에 해도 되니까.’
그는 골목에서 나와 대전차 로켓을 괴물에게 겨눴다. 거리는 대략 200m 정도였으니 전투 각성제로 강화된 집중력을 활용한다면 무난하게 명중시킬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며, 그는 대전차 로켓을 발사하고 난 뒤의 행동을 계획했다.
‘여차하면 근접전을 하면 돼. 심장도 가까이서 찾는 게 더 정확하고, 핸드캐넌으로 확실하게 마무리해도 되는 거니까.’
그리고 마침내 방아쇠가 완전히 당겨졌을 때, 판처파우스트3의 탄두가 성자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전투 각성제로 강화된 그의 감각은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이변을 감지했다. 성자를 향해 날아가던 탄두가 하늘에서 떨어진 두꺼운 칼날들에 의해 가로막힌 것이다.
재환은 폭음을 듣자마자 곧바로 대전차 로켓의 탄두를 재장전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실성한 성자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냄새가 나… 역겨운 화약 냄새가 나…!]하늘에서는 어느새 칼날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폭연을 헤치고 나온 성자는 재환이 자리 잡은 방향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폭발의 여파로 털가죽이 찢어진 괴물의 모습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냄새가! 화약 냄새가! 심장! ■■■■■! 피! ■■■■■! ■■■■■! ■■■■■! ■■■■■! ■■■■■!!!]그 모습을 본 재환은 혀를 찬 뒤 대전차 로켓 탄두를 재장전하는 것을 그만뒀다.
‘젠장… 대기하고 있었던 건가?’
예상외의 상황이긴 했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그의 주변에는 아직 사용하지 못한 박격포 탄두와 대전차 로켓 탄두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재환은 괴물이 달려오는 속도와 거리를 가늠한 뒤 수류탄의 안전핀에 손가락을 걸었다.
‘5…4…3…2…’
속으로 숫자를 내쉰 재환은 조금 떨어진 건물로 달려가 엄폐한 뒤 폭발물을 두고 온 위치에 수류탄을 던졌다.
[나와! ■■■■■의 피를! ■■■■■를 내놔!]거대한 괴물이 달려오는 소리는 위압적이었다. 한 번 뛰어올 때마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고, 버려진 자동차들이 부서지는 소리는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로 거칠었다.
하지만 괴물이 달려오는 소리가 아무리 클지라도 폭음보다 클 수는 없었다.
재환은 수류탄이 터지는 타이밍에 맞춰서 귀를 막았고, 곧이어 땅이 뒤흔들리는 연쇄폭발이 도시 전역에 요동쳤다. 그리고 폭음이 끝나자 괴물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
건물의 지붕 아래에서 살벌하게 쏟아지는 칼날비를 바라보던 재환은 숨을 들이켠 뒤 폭발이 일어난 지점을 응시했다. 지력으로 괴물의 이동 경로를 가늠해 봤을 때, 저 상처 입은 괴물은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인지 자신이 자리 잡았던 사거리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개활지로 유인하는 걸 수도 있지만, 이러면 어쩔 수 없지. 지금 안 쫓아가면 내가 더 불리하고, 내구 능력치는 이럴 때 쓰라고 올려둔 거니까.’
현재 그의 내구 능력치는 60이었고, 근력 능력치는 46이었다.
그리고 미리 시험해 본 결과 내구 능력치로 강화된 피부와 근육은 떨어지는 웬만한 자상은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었고, 덕분에 그는 쏟아지는 칼날비를 넘어 괴물을 향해 달려가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
자상의 성자가 비명을 지르자 칼날비 때문에 생긴 생채기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저 비명을 계속 듣다 보면 그는 지난번처럼 죽고 말 것이 분명했다.
그는 전투 각성제의 진통 작용에 의지하여 앞으로 달려갔다. 지금이야말로 상처 입은 성자의 심장을 찾아낼 최적의 기회였다.
더 빠르고. 더 날렵하게. 그는 저 괴물의 몸이 재생되기 전에 그 속살을 들여다봐야 했다.
그리고 영원과도 같은 몇 초가 끝난 순간, 상처 입은 성자를 보게 된 재환은 괴물의 몸속에서 빛나는 33개의 별빛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멀리서 봤을 때는 하나의 불빛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자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그래, 이런 속임수였나.’
그는 심장을 겨냥하는 대신 괴물의 머리를 겨눴다. 33분의 1의 도박을 하느니 확실하게 움직임을 멈추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게 다 진짜일 수도 있지만, 그럴 일은 없길 바라야지.’
실성한 성자의 주변에는 큼지막한 칼날들이 마구잡이로 떨어지고 있었다.
날아오는 대전차 로켓 탄환을 막아냈던, 신기에 가까운 정확도를 보여줬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이는 저 상처 입은 괴물이 제대로 된 조준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고, 사냥감이 나약해져 있다는 징조였다.
그리고 핸드캐넌이 괴물의 머리를 터트리는 것과 함께, 그는 쏟아지는 칼날을 넘어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상처 입은 괴물이 어디까지 발악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