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54
우는 괴물 (4)
거리가 가까워지자 재환은 탈바꿈을 곡괭이 형태로 변형시킨 뒤 괴물의 몸에서 빛나는 별빛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칼날과도 같은 피부 조직이 으스러지면서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
괴물의 몸에서 빛나던 불빛 하나를 꺼트린 재환은 곧바로 뒤로 물러섰다.
머리를 잃은 괴물이 자신의 몸에서 마구잡이로 칼날을 뿜어낸 뒤, 주변에 무수히 많은 칼날을 떨어뜨려 방벽을 세웠기 때문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온몸에 칼집이 새겨졌을 것을 생각하자 서늘한 긴장감이 피부를 적셨다.
근접전이 불가능해지자 그는 거리를 벌린 뒤 핸드캐넌을 꺼내 들었다.
‘빨리 끝내야 돼. 시간 끌면 내 쪽이 무조건 불리하니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칼날은 내구로 강화된 피부를 찢고 상처를 새겼다. 내구를 어느 정도 올려 둔 덕에 상처 자체는 생채기에 불과했지만, 이 상처들은 괴물이 비명을 지를 때마다 더 깊어지면서 출혈을 유발했다.
‘앞으로 32개.’
그는 칼날 방벽의 틈새로 새어 나온 괴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뼈대는 서서히 자라나기 시작했고, 피부와 근육이 찢어진 자리에는 칼날이 돋아나 방어력을 강화했다.
그는 그 모습을 역겨워하며 별빛이 있던 지점 중 하나를 겨냥했다.
칼날이 가로막고 있기는 했어도, 핸드캐넌의 파괴력이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씩 없애면 돼.’
그리고 그의 판단은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증명되었다.
핸드캐넌이 불을 뿜자 칼날들이 부서지면서 괴물의 가슴에 지름 50cm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그 순간 괴물은 세 개의 별빛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
상처를 입은 괴물은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던 성자는 자신의 비탄과 울분을 담아 도시 전역에 외쳤다.
[여기다! 여기에 괴물이 있다!] [심장을 먹는 괴물이 여기에 있어!] [괴물을 죽여! 심장을 먹은 괴물을 죽여!]재환은 괴물이 하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핸드캐넌에 탄환을 넣었다. 그가 알고 있는 한, 서울에서 괴물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산 사람은 정원사로, 죽은 사람은 꽃과 나무로.
서울의 모든 시민들을 직접 괴물로 만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사람과 괴물을 구분하는 것에 연연하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이 되돌아가는 이 도시에서 괴물이 된 사람과 괴물이 될 사람의 구분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남은 총알은 다섯 발.’
그는 몸을 추스르는 괴물에게 또다시 핸드캐넌을 겨눴다. 전투 각성제의 효과로 체감 시간이 느려지자 찰나의 순간마저 길게 느껴졌다.
‘그 안에 끝내야 돼.’
그는 가늠쇠 너머로 시선을 집중했다.
괴물의 비명은 여전히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그는 괴물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렇기에 담담하게 괴물의 어깻죽지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이걸로 26개 남았지.’
어깻죽지 근처에 있던 별빛 세 개가 한 번에 부서졌다. 그는 쏟아지는 칼날비를 맞아가며 재장전을 시작했다. 머리, 목, 어깨의 피부가 찢어지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아직이야. 아직 더 버틸 수 있어.’
칼날비는 여전히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고, 그중에는 단두대로 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칼날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흑묘 반지에 의지해 괴물을 죽이는 것에만 집중했다.
조심하는 것은 흑묘 반지가 깨질 정도의 치명상을 입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
칼날이 쏟아지는 소리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겹치는 거리에서, 그는 괴물의 남은 어깻죽지를 겨냥했다. 아직 괴물이 눈을 뜨지 못했을 때 피해를 누적시켜둬야 했다.
하지만 가늠쇠 너머로 괴물을 겨냥하던 그의 귓가에 사람들이 울부짖는 함성이 들렸다.
그들은 마치 심해에서 기어 나온 아귀처럼, 찢어지고 갈라진 음성으로 기괴하게 비명을 질렀다.
“피 냄새다!”
“피 냄새가 났어!”
“피 냄새! 피 냄새! 피 냄새! 피 냄새! 피 냄새!”
“찾아! 피 냄새! 피 냄새를 찾아!”
“괴물을 죽여라! 심장을 먹은 괴물을 죽여!”
재환은 한순간 흐트러졌던 집중력을 다잡은 뒤 방아쇠를 당겨 괴물의 어깻죽지를 날려버렸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괴물을 사냥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격을 마친 그는 핸드캐넌을 재장전하며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자 건물 안에 숨어있던 생존자들과 비에 맞아 우울증에 걸려있던 사람들이 식칼이나 칼 조각 따위의 날붙이를 든 채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재환은 칼날비가 그들을 피해 떨어지는 것을 보자 혀를 차며 생각했다.
‘아까 그 비명이 이런 용도였나.’
괴물이 포효했던 것이 무의미한 헛소리가 아니라 사람들을 세뇌하는 정신 공격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그는 마지막 수단을 택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한 그는 남은 수류탄 네 개의 안전핀을 모두 뽑았다. 그리고 괴물의 주변을 둘러싼 칼날 방벽 너머로 수류탄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지금과 같은 물량공세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아껴뒀던 물건이지만, 지금은 자원을 아낄 타이밍이 아니었다.
‘죽든 죽이든. 어차피 둘 중 하나야.’
그는 으스러져 뼈대만 남은 자동차에 몸을 숨겼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엄폐물이었지만 이마저도 없다면 그대로 죽고 말테니 어쩔 수 없었다.
흑묘 반지와 내구 능력치가 저 칼날 폭풍에 버틸 수 있기를 바라야 하는 순간이었다.
펑!
수류탄들이 터지는 소리가 끝나자 칼날이 사방으로 튀겼다.
수류탄이 만들어낸 칼날 폭풍이 지나가자 재환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온몸에 칼날이 박힌 탓에 흑묘 반지는 깨졌고, 이마와 머리의 피부가 찢어져서 눈앞이 흐릿했다.
그는 눈가에 묻은 피를 닦아낸 뒤 몽롱해진 정신을 다잡았다. 지력으로 높아진 감각은 아직 괴물이 죽지 않았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남은 별빛은… 세 개인가…’
재환은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워 핸드캐넌을 겨눴다.
실성한 성자의 비명 소리.
칼날과 빗방울이 땅에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
미쳐버린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
그리고 폭발의 후유증으로 인한 이명 소리까지.
집중을 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니었지만, 그는 가늠쇠 너머로 시선을 모아 괴물의 가슴팍에서 빛나는 별빛 중 하나를 겨냥했다.
‘확률은 삼분의 일.’
그는 숨을 멈춘 뒤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어깨에 칼날이 박히는 감각이 서늘했다.
‘가챠치곤 나쁘지 않지.’
총성이 울리고, 칼날이 깨지고, 별빛이 부서진다.
그리고 총탄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본 재환은 행운이 결정한 결과에 승복한 뒤 탈바꿈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비명을 지르는 괴물을 향해 달려갔다.
‘어차피 도망칠 길은 없어.’
뒤에서는 성자의 목소리에 미쳐버린 수백 여 명의 군중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권속도 아니고, 총도 없는 군중들을 학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 사이에 저 괴물이 회복을 끝낼 게 뻔했으니 무의미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재환은 탈바꿈의 곡괭이 부분을 치켜든 뒤 남은 두 개의 별빛 중 하나라도 부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설령 이번에 죽더라도, 저 괴물의 심장을 부술 수만 있다면 승리는 그의 것이었다.
찢어진 상처가 성자의 권능에 의해 벌어지고, 끝없이 쏟아지는 칼날의 세례가 온몸을 난도질한다.
그는 전투 각성제의 진통 작용을 뚫고 넘어오는 통증에 이를 악물며, 별에서 내려온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탈바꿈이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졌을 때, 그는 괴물이 몸에서 뿜어낸 칼날에 온몸을 꿰뚫렸다.
[■■■■■, ■■■■■.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감각과 함께, 그는 괴물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의식을 잃었다.
* * *
3월 12일 오후 3시 35분.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보며 재환은 지난 싸움을 복기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애초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았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
성자의 심장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러니 그 괴물이 자신의 심장을 33개로 나눴던 것인지, 아니면 32개의 가짜 심장과 단 하나의 진짜 심장만 있었던 것인지는 아직까지 확인할 수 없는 요소였다.
‘너무 아쉬워하진 말자. 내가 부순 게 전부 진짜 심장이었어도, 심장을 재생시키지 말란 법은 없는 거니까.’
설령 그가 죽는 일이 있더라도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과는 무관했다.
그러니 지상에서 심장을 수복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그 성자가 심장을 수복시켰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죽은 사람이 몇 번이고 되살아나는 세계였으니, 부서진 심장이 재생되지 말란 법 역시 없었다.
‘그래도 아까웠어. 거의 다 잡은 거였는데. 누가 대전차 로켓이라도 한 번 쏴줬으면, 그대로 끝낼 수 있는 거였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바라는 것이 무의미한 가정이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일반인은 성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미쳐버릴 것이고, 사냥꾼은 애초에 그 숫자가 적은데다가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변수 덩어리였다.
하지만 한 끗 차이로 성자를 죽이는 데 실패하자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음부턴 인간 폭탄 같은 전술이라도 써야 하나… 젠장할…’
시간이 되돌아간다는 걸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사람을 희생시켜서 괴물을 사냥하는 것은 거리낄 게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사람의 목숨이야 시간이 되돌아가면 다시 살아나는 것이고, 그 무지한 자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수백 명의 군인과 경찰, 민간인을 구슬려서 무기를 쥐여준 뒤 성자에게 포격을 쏟아붓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는 선택지였다.
하지만 그 선택지를 떠올리자 그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미친 생각을 떠올린 자신이 역겨웠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처럼 안 보이는 걸 보면… 나도 이미 괴물이지.’
지력이 높아지면 사람과 괴물을 구분하는 감각은 더욱 예리해진다.
하지만 그는 수차례 회귀를 겪으면서 자신의 인간성이 점점 무뎌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육감은 예리해져도 양심은 무뎌진다는 아이러니에 그는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미련 가지지 말자. 어차피 사람들 데리고 가 봐야 행군하다가 죄다 정신병 걸렸을 텐데, 나한테 총구나 안 겨누면 다행이었겠지. 그리고…’
그는 당시에 성자가 흐느끼고 있었고, 성자의 목소리가 사람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떠올리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이제는 군인한테 손 벌리는 것도 힘들 테니까.’
괴물의 울음소리는 이전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들리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감각을 집중해 괴물이 자리 잡은 곳을 확인한 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주 칼을 갈았구나.”
괴물이 자리 잡은 곳이 최악의 장소라는 점을 떠올리며, 그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래, 이 정도는 해야 괴물이지. 이 정도는 해야 천상의 별이지. 이제야 좀 제대로 나서는구만.’
괴물은 이제 흐느끼고만 있지 않았다. 자신의 심장이 완전히 파괴될 뻔한 것을 직감한 괴물이 단단히 칼을 갈고 있다는 것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는 회기역에서 가져온 핸드캐넌을 만지작거렸다. 그나마 신내역이 아닌 다른 역에서도 샬롬의 장비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 그에게는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저번이 마지막 기회였을 수도 있겠어…’
재환은 착 가라앉은 기분으로 괴물이 흐느끼는 방향을 바라봤다.
‘이번엔 분명 지난번보다 저 지옥 같을 테니까. 아주… 지옥 같겠지.’
괴물의 울음소리는 중랑구 대피 구역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죽을 때마다 괴물이 착실하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지난번에는 칼을 들고 달려왔지. 그럼 이번엔 총 맞을 경우도 생각해야겠어.’
그는 이번에도 죽으면 저 끔찍한 괴물이 얼마나 더 가까이에서 나타날지 상상한 뒤,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섰다.
시간이 되돌아갔을 때 성자가 눈앞에 있을 거란 상상을 지우려면, 괴물을 사냥하여 잡념을 없애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