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55
익사 도시 (1)
3월 15일 오후 6시 15분.
달빛이 서늘하게 내려앉은 중랑구의 어느 골목길. 비가 내리고, 안개가 깔린 이 질척한 거리를 일곱 명의 시민들이 걸어갔다.
흐리멍덩한 눈동자, 익사체처럼 창백한 피부, 날붙이를 들고 있는 자세까지.
하나같이 정상과는 거리가 먼 자태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이한 요소는 바로 목소리였다. 그들은 마치 심해에서 기어 나온 망령처럼, 찢어지고 갈라진 음성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피… 화약… 심장… 냄새…”
“심장을 먹은 괴물을 찾아…”
“■■■■■. ■■■■■를 먹은 괴물을…”
재환은 상가 건물 2층에서 창문 너머로 그들을 내려다본 재환은 탈바꿈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상대와의 거리를 가늠한 뒤 타이밍을 맞춰서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떨어질 때의 가속도를 그대로 받아 탈바꿈을 내리치자 사람의 몸이 머리부터 가슴까지 세로로 갈라졌다.
깊이 박힌 탈바꿈을 강제로 빼내자 피와 살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는 자신이 베어낸 시민을 발로 차서 밀어낸 뒤 다른 시민들을 향해 탈바꿈을 휘둘렀다.
또다시 사람의 몸이 한순간에 토막 난다.
사냥꾼의 괴력에 비하면 사람의 몸은 너무 연약했고, 그는 거침없는 기세로 남은 시민들을 모두 썰어냈다.
자르고, 토막 내고, 으스러뜨리는 걸 반복하자 순식간에 인간 사냥이 끝났다.
그리고 괴물에게 홀린 시민들을 모두 해치운 그는 쏟아지는 빗물로 얼굴에 튀긴 피를 닦아냈다.
‘이걸로 이 근처는 다 정리된 건가…’
성자를 사냥하려면 성자에게 홀린 사람들부터 해치워야 했다. 성자 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었으니 방해가 될 만한 요소를 미리 배제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하지만 한 마을의 시민들을 모두 학살한 그는 표정에는 우울함이 녹아있었다. 그는 휴식을 피하기 위해 근처의 건물에 들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속도면 하루에 1,500명 정도니까, 앞으로 2주 정도만 더 미쳐 있으면 되는 건가.’
사람을 죽이는 일은 괴물을 죽이는 일에 비하면 손쉬운 편이었다. 괴물에 비하면 사람의 살가죽은 젤리처럼 연약했고, 뼈는 수수깡처럼 가녀렸다.
사람의 두개골 정도는 맨손으로도 으스러뜨릴 수 있게 된 그에게 사람을 죽이는 일은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러니까 경찰들이 사냥꾼을 경계한 거겠지.’
그는 착잡한 심정으로 우의를 벗은 뒤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먹고 제대로 날뛰면 괴물보다도 끔찍한 게 사냥꾼이니까.’
지난 3일 동안 중랑구에서 날뛰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전투에 능숙한 사냥꾼이 도시를 활보하면 일반인의 몸으로는 이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근력, 순발력, 지구력, 내구력까지.
모든 부분에서 사냥꾼의 신체 능력은 인간의 기준을 넘어섰고, 건물 사이사이를 넘어다니며 엄폐와 기습을 반복하는 사냥꾼을 일반인의 신체 능력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함정이라도 파고 기다리면 또 모르겠지만……’
그는 괴물에게 홀려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해했다.
‘이대로면 무난하게 다 죽어버리겠지.’
이성을 잃어버린 시민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자신의 가족과 이웃, 동료들이 학살당하더라도 눈을 깜빡거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처럼 탁한 눈동자로 괴물의 뜻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짐승이나 다름없어진 인간들의 모습에 그는 나직하게 탄식을 내뱉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남을 돕던 자원봉사자도 있었고, 언제 누가 탈영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자리를 지키는 군경이 있었으며, 이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챙기던 가족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한때 이 도시가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발버둥을 쳤던 적이 있었다.
그런 도시를 자신의 손으로, 괴물이 아닌 사람의 몸과 정신으로 멸망시켜야 한다는 것은 그에게도 비참한 일이었다.
‘익숙해질 거야.’
피와 살을 뒤집어써야 한다는 점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과 괴물을 죽이는 것은 다를 게 없었다.
익숙해지겠지.
그 역시 처음 괴물을 죽일 때에는 절망했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물을 사냥한 끝에 이제 괴물을 죽이는 일에는 익숙해졌다.
‘익숙해지고 있고.’
도축을 하는 정육업자가 고기를 다루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생선을 손질하는 요리사가 물고기의 살갗을 헤집는 것처럼, 능숙한 사냥꾼이 된 그는 괴물을 죽이는 일에는 이제 괴로워하지 않았다.
이는 시간이 되돌아갈 때마다 허그베어를 다루는 감각이 무뎌지는 것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제 허그베어를 죽여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괴물을 토막 내고, 사체에 천 쪼가리를 덮고, 피를 마신 뒤에는 집을 나오는 루틴을 기계적으로 반복할 뿐이었다.
‘이것도 무뎌질 거야. 결국은 무뎌지겠지. 괴물이든 사람이든, 본질은 결국 같은 거니까. 그리고…’
휴식을 끝낸 그는 우의를 다시 뒤집어쓴 뒤 자리에서 일어나 비가 내리는 거리로 나갔다.
‘…어차피 시간이 되돌아가면, 아무도 기억 못 할 테니까.’
시간이 되돌아간다면 이들은 모두 되살아난다. 그리고 이들은 그의 행적을 기억할 수 없으니, 목격자 하나 없는 살인 사건은 아무도 처벌할 수 없었다.
언젠가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모를 일이었지만,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이상 그 누구도 그를
‘차라리 저 괴물이 더 정의로울지도 모르겠어.’
그는 흐느끼는 블레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른 마을로 넘어갔다.
‘저 괴물은 적어도 사람을 작정하고 죽이진 않았으니까.’
사냥꾼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조종하는 괴물과 괴물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사냥꾼 사이의 선악을 저울질하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마을에 도착한 그는 잡념을 없애기 위해 사냥을 나서서 피와 살을 뒤집어썼다. 무언가를 사냥하는 것에 몰입하는 순간, 그는 온전히 사냥꾼으로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체스 말이나 다름없어진 이 도시에서 정신줄을 놓지 않고 산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었다.
그리고 괴물에게 홀린 사람들과 도시 곳곳에 있던 괴물을 학살한 지 2주가 지났을 때, 그는 마침내 중랑구 내에 있던 사람과 괴물을 거의 다 없애버릴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잔당을 처리하고 성자를 상대하러 가는 일뿐이었다.
* * *
3월 30일 오후 9시 27분.
길고 지루한 살육의 나날이 막바지에 달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학교 건물을 거점으로 삼은 군인들을 처리하는 일뿐이었고, 이들을 해치우면 중랑구 일대에는 사람과 괴물의 흔적이 영영 없어진다.
그리고 습격을 시작하려 하기 직전, 재환은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이제 저들마저 해치우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 거라는 감각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는 자신에게 아직도 한 줌의 양심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워하며 지난 보름 동안의 행적을 떠올렸다. 자신을 스스로 설득하지 못하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필요한 일이었어. 그냥 싸워도 못 이긴 놈을 불리한 조건에서 상대할 순 없는 거니까.
괴물의 꼭두각시가 된 시민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수백 명씩 무리를 지어 대로변을 활보하는가 하면, 그를 찾기 위해 상가와 아파트를 뒤지거나, 자동차나 건물의 주변에 죽은 듯이 있다가 갑작스럽게 뛰쳐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난 보름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한 채 사람을 죽였고, 이는 서서히 그의 몸과 마음이 쇠약해지는 원인이 되었다.
‘괴물! 심장을 먹은 괴물!’
‘괴물이 나타났다! 괴물을 죽여!’
‘괴물! 괴물이야! 괴물이야!’
실성한 시민들이 내질렀던 단말마가 귓가에 맴돌았다. 재환은 자신의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헝클어트린 뒤 전투 각성제를 투여했다. 약 기운이 몸에 돌기 시작하자 그는 한결 차분해진 심정으로 단말마를 받아들였다.
‘그래. 내가 괴물이지.’
실성한 성자가 자신을 괴물이라고 불렀을 때는 이 정도로 괴롭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사냥에 집중하고 있었고, 실성한 괴물이 내지른 헛소리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름 동안 사람을 죽이면서 누적된 피로는 그의 인내심을 갉아먹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기 전에 이 사냥을 완수하러 나아갔다.
‘남은 건 대략 서른 명.’
예리해진 지력이 괴물에게 오염된 사람들의 위치를 속삭였다. 지력이야말로 그가 지난 보름 동안 생채기 하나 없이 시민들을 찾아 죽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학교의 정문을 지나 운동장으로 들어서자 열 명 남짓한 숫자의 군인들이 그를 발견했다. 그들은 보름 동안 비를 맞아 익사체와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괴물! 괴물! 괴물! 심장을 먹은!”
“괴물이다! 괴물이 나타났다!”
“심장을 먹은 괴물이야!”
갈라지고 불어터진 목에서 나온 목소리는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그들이 총을 겨누기도 전에 약탈한 k1을 단발로 쏟아 부었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한 탄창을 전부 비우자 익사체나 다름없던 군인들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전투 각성제와 민첩으로 강화된 시야에 열 명 남짓했던 군인들이 쓰러지는 모습이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그는 허무하게 쓰러진 군인들을 보며 우울해 했다. 저들이 조준은커녕 총을 제대로 들어 올리는 것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름 동안 빗물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테니, 저들은 이미 굶주리고 메마른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동정하지 말자. 그러면 밑도 끝도 없으니까.’
자신과 동년배의 청년들이 허무하게 죽는 모습은 우울한 일이었다. 저들이 탈영을 하지 않은 이유는 약간의 의리, 최소한의 사명감, 그리고 어디로 도망쳐도 괴물이 나온다는 압박감과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이 그들을 이 장마의 지옥에 수장시켰다.
하지만 재환은 이들을 동정할 수 없었다. 그는 중랑구 대피 구역의 모든 시민들을 죽였고, 그중에는 노약자도 포함되어있었다.
괴물이 사람을 가리지 않았으니, 그 역시 사람을 가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인 모든 사람들을 애도했다가는 그대로 익사 당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자 그는 서둘러 학교 안으로 진입했다.
학교 안에는 반쯤 송장이나 다름없던 군인들이 그를 향해 총구를 들어 올리려 했고, 그들은 운동장에 있던 군인들과 같은 결말을 맞이했다.
1층부터 3층까지.
교내에 있던 스무 명 남짓한 군인들을 모두 처치한 그는 시체가 널려있는 복도를 지나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저 멀리에 있을 괴물을 바라봤다.
[■■■■■. ■■■■■… ■■■■■…■■■■■…]그리고 괴물이 흐느끼는 소리를 듣던 그는, 자신이 저 괴물에게 분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름 동안 지치고 메마른 육신이 화를 낼 기운마저 아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이 마모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는 괴물을 바라보는 것을 그만둔 뒤 군부대의 무기고로 나아갔다.
저 괴물을 죽이는 것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제는 이 길고 지루한 사냥을 끝내고 싶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