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56
익사 도시 (2)
3월 31일 새벽 1시 23분.
중랑구에는 이제 아무도 살지 않았다. 거리에는 빗물에 불어터진 시체들이 즐비했고, 그중에는 부패하여 악취를 뿜어내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한때 생존자들로 가득했던 이 도시에는 이제 시체에서 창궐한 구더기와 파리만이 거리를 활보할 뿐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빗물에 익사해버린 이 도시에서, 한 남자가 등에 폭발물을 짊어진 채 거리를 걸어갔다. 피로와 우울에 절여진 그의 몰골은 핏기를 잃은 시체들과 다를 게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끝내고 성자를 사냥할 준비를 하는 동안 시체가 널려있는 거리를 돌이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할 짓이 못 돼… 사람을 죽이는 건… 할 짓이 못 되는 거야…’
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참아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너무 많이 죽이고 나니까… 이제는 헛것이 들리잖아···.’
시체들의 근처를 지나갈 때면 사람을 죽였을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생하게 되살아난 기억은 시체들 사이에 깃들어 원망 어린 목소리를 속삭였다.
네가 죽였어. 네가 죽인 거야. 남자도 여자도, 어르신도 어린이도, 모두 네가 죽인 거야.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이었던 사람들이 모두 네 손에 죽었어. 네 무능함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떠올려 봐.
네가 괴물을 죽이지 못해서 우리가 죽은 거야.
재환은 시체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등에 지고 있던 폭발물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놨다. 그는 지친 몸에서 기운을 끌어모아 시체들의 목소리에 답했다.
“나는 괴물이야.”
목이 풀리지 않아 목소리가 갈라졌다. 한동안 제대로 말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괴물이라고.”
갈라지고 메마른 목소리에는 원한과 울분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얄팍한 기만은 오래가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괴물… 나는 괴물이… 괴물이… 아니지…”
시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들었던 것은 애초에 환청이었고, 그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재환은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는 그 사실 자체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옆에 있던 건물의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되뇌었다.
‘내가… 내가 정말 사람인가?’
유리창에 비친 그의 외형은 분명 사람이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이 세계에서 자신의 감각을 맹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력이 없었을 때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 지력이 높아지고 난 다음에는 괴물로 보였던 일들이 대표적인 예시였다. 마태오 신부의 육류 창고가 그랬고, 암브락사스의 권속들이 그러했다.
그러니 지력이 더 높아진다면, 혹은 지력이 더 높은 존재의 시점으로 본다면, 재환은 자신의 모습이 괴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더 강했거나, 더 유능했으면, 오늘 같은 꼴은 안 당했겠지.’
그는 나약해진 몸을 이끌고 성자가 울고 있는 근처의 골목길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등에 짊어졌던 폭발물을 배치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번 일이 끝나면… 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러 가자. 몸이 약해지니까 이딴 게 들리는 거야. 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괜찮고, 국밥 같은 것도 괜찮겠지. 소주나 맥주를 곁들이는 것도 괜찮을 테고. 뭘 먹어도 괴물의 피보다는 나을 테니까.’
사냥꾼이 된 이후, 그는 제대로 사치를 부려본 적이 없었다. 괴물을 죽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그를 사냥의 길로 내몰았고, 그 결과 그는 물보다 괴물의 피를 더 많이 마실 정도로 사냥에 몰두했다.
적어도 괴물을 사냥하는 동안에는 잡념이 떠오르지 않았으니 그에게는 괴물 사냥이 정신 안정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괴물을 죽이는 대신 사람을 죽이게 되자 그의 정신은 서서히 한계에 내몰렸다. 아무리 지혜가 높아졌어도 그의 몸이 사람인 이상 동족상잔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아도, 인간의 몸으로 인간을 죽이는 일은 몸이 거부할 정도로 역겨운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작업을 끝낸 그는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장비를 모아둔 상가 건물로 걸어가며 다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는 남아있는 기력을 끌어모아 자기 자신에게 되뇌었다.
‘이기든 지든, 저 괴물 잡으려고 이 지랄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돼.’
상가 건물에 도착한 그는 대전차 로켓을 챙긴 뒤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사거리 한복판에서 웅크려있는 괴물의 모습을 바라봤다.
저 실성한 괴물은 지난번보다도 더 흉악한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키는 거의 12m 정도로 커져 있었고, 빼곡하게 돋아난 칼날은 두터운 성벽을 연상시킬 정도로 견고했다.
마치 칼날로 이루어진 성벽을 보는 것만 같은 아득함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괴물이 그를 상대할 때마다 점점 본 실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막막한 기분이 든 것이다.
‘그래, 항상 이랬지.’
그는 미리 준비해둔 판처파우스트3으로 실성한 성자를 겨냥하며 생각했다.
‘괴물은 항상 괴물 같고, 그에 비하면 나는 항상 벌레 같았으니까.’
숨을 들이켠 뒤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방아쇠가 완전히 당겨지기 직전에 그는 암브락사스를 상대했던 일을 떠올렸다.
‘어차피 죽을 게 뻔해도, 발버둥은 치고 가 줘야지. 그래야 미련 없이 죽을 수 있을 테니까.’
방아쇠가 당겨지자 대전차 로켓 탄두가 불을 뿜으며 괴물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는 다 쓴 대전차 로켓을 내팽개친 뒤 미리 장전해둔 또 다른 대전차 로켓을 들어 올렸다.
폭연 너머에서 괴물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천상으로 돌아간 성자를 찾는 괴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하늘에서 칼날비가 세차게 떨어졌다.
‘언제 들어도 지옥 같은 목소리야.’
성자의 비탄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정신을 난도질한다. 하지만 재환은 지혜를 높여둔 덕분에 그 비명을 담담하게 흘려넘기며 괴물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괴물이 먼지 구름을 뚫고 나오는 것이 보이자마자 또다시 대전차 로켓을 발사했다.
그리고 대전차 로켓 탄두에 직격당한 괴물이 멀쩡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 이 정도로 죽을 리가 없지.’
괴물과의 거리는 대략 400m.
아무리 빨리 오려 해도 수 초 정도는 소모할 수밖에 없는 거리였다. 그리고 그 찰나의 시간을 이용해 그는 세 번째 대전차 로켓을 들어 올렸다.
‘와라, 괴물아.’
그는 폭발물을 설치해둔 곳을 향해 세 번째 대전차 로켓을 겨눴다. 이 폭발물이야말로 그가 준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여기서 둘 중 하나는 끝장나는 거야.’
세 번째 대전차 로켓 탄두가 허공을 가르고 나아갔다. 그리고 대전차 로켓 탄두가 군인을 죽여 약탈한 폭발물과 입 맞췄을 때,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실성한 성자를 휘감았다.
“——————————-”
폭발의 여파는 상당했다. 주변에 있던 콘크리트 건물들의 외벽이 반파되었고, 그 파편이 재환이 자리 잡은 상가 건물의 옥상까지 날아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재환은 미리 올려둔 내구 능력치로 날아오는 파편과 떨어지는 칼날비를 견뎌냈다. 그리고 아직 깨지지 않은 흑묘 반지를 바라본 뒤 몸에 박힌 파편들을 뽑아냈다.
‘아직도 안 죽은 건가.’
지력으로 강화된 육감이 그에게 경고했다. 아직도 괴물의 흔적이 느껴졌고, 괴물의 몸에 있던 별빛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그가 준비한 최대 화력의 폭발이 괴물의 칼날 갑옷을 뚫어내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마지막 수단이 허사가 되었을 때, 그는 탈바꿈을 집어 들며 판단을 끝냈다.
‘도망가 봐야 소용없겠지. 내 피 냄새를 맡은 이상, 도망쳐봐야 결국 따라잡힐 테니까.’
그는 허리춤에 있는 핸드캐넌을 매만졌다. 상황이 최악에 가깝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그는 이 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눌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자살을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저지른 살인을 무의미하게 낭비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메마른 가슴의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타오르는 것을 느껴졌다.
이 감정의 정체는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고, 괴물을 상대하면서 쌓여온 증오일 수도 있으며, 불가해한 재앙을 상대로 대적하려는 의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이든, 이제 끝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몸속의 피를 가열했다.
그는 정맥에 전투 자극제를 투여한 뒤 괴물을 맞이하러 내려갔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번엔 실패했어. 무슨 수룰 써도 못 이겼겠지.’
괴물의 포효가 울려 퍼지는 것이 들려왔다.
이제 앞으로 몇 분만 지나면 저 괴물이 그의 몸을 난도질할 예정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혈관이 흐르는 약 기운에 몸을 맡긴 채 나른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지금까지 지랄했던 것도 쓸모없는 일이었고. 사람들이 죽은 것도 무의미한 일이었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그의 얼굴은 담담했다. 상대가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 없는 재앙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오히려 마음의 짐이 줄어들었다.
해일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를 증오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인 것처럼, 상대가 도시 하나를 우울의 늪으로 익사시킨 재난인 이상 분노하는 것은 감정낭비에 불과한 일이었다.
‘저번이 마지막 기회였어. 그때 내가 모자랐으니까, 이번에는 정말 끝이겠지.’
다음번에 저 괴물이 얼마나 가까운 위치에서 나타날지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동대문구와 중랑구의 경계일 수도 있었고, 그의 집 앞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혜가 낮은 상태에서 성자의 악의가 담긴 비명을 듣는다면 그는 한낱 벌레나 다름없는 신세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는 파멸이 눈앞까지 다가왔음을 직감하며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발걸음이 가벼워졌음을 실감하며 탈바꿈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사람은 죽음을 각오했을 때 오히려 자유로워지는 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된 순간이었다.
‘부서질 땐 부서져도. 발버둥은 치고 가야지.’
부러진 칼날 갑옷을 입은 괴물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폭발에 직격당해 성치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몸속에 감춰둔 심장의 불빛은 드러나지 않았다.
괴물이 달려드는 그 찰나의 순간, 재환은 괴물의 머리를 향해 핸드캐넌을 발사했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속사였음에도 핸드캐넌의 탄환은 괴물의 머리를 꿰뚫지 못했다.
하지만 얼굴의 주변에 돋아난 칼날이 부서지면서 괴물의 시야를 가렸고, 재환은 그 틈을 이용해 괴물의 가슴을 향해 뛰어올라 탈바꿈의 곡괭이 부분을 내리쳤다.
“——————————-”
실성한 성자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 함께 칼날이 뻗어 나왔다. 쏟아지는 칼날에 온몸을 난도질당한 재환은 피를 토하며 땅에 떨어졌다.
흑묘 반지 덕분에 즉사는 면했지만, 이제 끝이 머지않았다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칼날비를 맞아가며, 그는 허리춤에 넣어뒀던 경찰용 리볼버를 꺼내 괴물에게 겨눴다.
‘다음에… 다음에 기회가 한 번 더 있다면…’
무의미한 총성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곧이어 괴물이 쏟아낸 칼날에 그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때는 꼭… 끝을…’
공허한 각오와 함께 그는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또다시 자신의 집에서 눈을 떴을 때, 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실성한 성자가 울부짖는 것을 듣게 되었다.
지혜가 부족했던 그는 성자가 울부짖자 비명을 지르며 의식을 잃었고, 이는 수백 번에 걸친 죽음의 전주곡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