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57
영겁 회귀 (1)
재환은 자신의 방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 쏟아지는 달빛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는 마지막으로 실성한 성자를 상대한 이후 수십 번의 죽음을 이 방안에서 겪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죽은 횟수를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3…2…1…”
무의식적으로 숫자를 세자 창밖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성자의 악의가 담긴 비명이 그의 뇌를 뒤흔들었고, 그는 머릿속이 난도질당하는 고통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지혜가 부족한 두뇌로는 저 비명을 견뎌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가 의식을 잃은 순간, 그의 눈과 귀 그리고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연약한 혈관이 성자의 비명으로 인해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피 냄새. ■■■■■의 피 냄새… ■■■■■…]실성한 성자가 피 냄새를 맡고 아파트로 다가왔다. 이 미쳐버린 괴물은 아파트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몸을 잘라냈고, 사람 하나 정도로 작아진 다음 아파트의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 ■■■■■… ■■■■■…]만신창이가 된 괴물은 죽은 사냥꾼이 사는 집 앞에 도착했고, 문을 베어버린 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을 껴안으려 다가온 곰 인형을 단칼에 썰어 버린 뒤 사냥꾼의 시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 ■■■■■…! ■■■■■!]시체를 확인한 괴물은 죽은 사냥꾼의 시체를 난도질했다. 사지를 가르고, 뼈와 살을 자른 뒤, 그 안에 있는 장기를 모조리 썰어버렸다. 이미 수십 번을 반복한 상황임에도 실성한 성자의 칼춤에는 울분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체가 잘게 조각난 살점 덩어리로 전락했을 때, 그는 잃어버린 고깃덩어리 앞에서 무릎 꿇고 흐느꼈다.
[■■■■■… ■■■■■… ■■■■■…]실성한 괴물은 시간이 되돌아갈 때까지 계속 흐느꼈다. 원래의 사명이 무엇이었든, 이 무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에게는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런 것들은 이미 그녀에게 바쳐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고, 모든 것을 바쳐서 자신의 사랑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과가 실연으로 끝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성자는 하염없이 흐느끼며 심장을 먹은 미물을 난도질하는 것을 반복했다.
실연의 고통이 마침내 정신을 무너뜨릴 때까지.
혹은 울다가 지쳐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될 때까지.
이 무의미한 분풀이는 계속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수백 번의 시간이 되돌아갔고, 실성한 성자는 마침내 탈진하여 수락산으로 되돌아갔다.
* * *
300번. 400번. 혹은 365번을 넘게 죽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숫자를 세던 재환은 자신을 죽였던 성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자 의아해했다.
‘숫자를… 잘못 센 건가…?’
마치 지난날들이 꿈처럼 느껴지자 그는 눈을 감은 뒤 다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3…2…1…’
하지만 숫자를 세는 것을 반복해도 실성한 성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몽롱한 기분으로 창밖에서 쏟아지는 시퍼런 달빛을 바라봤고, 곧이어 비가 그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꿈을 꾼 건가?’
실성한 성자에게 살해당한 기억은 희미하게나마 남아있었다. 그는 실성한 성자가 악의를 담아 내지른 비명에 의해 온몸의 피를 쏟아내며 백 번을 넘게 죽었다.
그리고 시체를 난도질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 괴물이 비명을 지르는 대신 그의 몸을 산채로 난도질하려 했던 것도 기억났다.
그는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성자를 보자마자 실성했고, 실성한 성자는 발광하는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렇게 이백 번을 넘게 더 살해당하고 나자 어느 순간부터 블레인은 그의 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집 근처에서 비명을 지르거나 흐느꼈고, 그 비명을 들은 재환은 수십 번을 넘게 실성한 뒤 허그베어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렇게 수백 번이 넘는 죽음을 경험한 재환은 멍한 시선으로 달빛을 바라봤다.
‘꿈은 아니야. 꿈이었으면 달이 파란색일 리가 없으니까. 전부… 전부 현실인 거지.’
그에게 이 세계는 지독한 악몽이었다.
아버지는 괴물이 됐고, 어머니는 괴물이 된 아버지에게 살해당했고, 괴물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으며, 불가해한 존재들은 그의 인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유린했다.
그리고 설령 죽는 일이 있더라도 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없다는 점이 그에게는 가장 끔찍한 진실이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생각해봐야 기분만 나빠지니까.’
그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 뒤 의자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는 자신의 몸이 삐걱거리는 감각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마치 식물인간이 된 것처럼 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그는 허탈한 심정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런 날이 언제 한 번 올 줄 알았지.’
방 안에서 일어난 소음을 듣고 허그베어가 문을 부쉈다. 그는 허그베어에게 껴안기며 자신의 상태를 진단했다.
‘머리가 맛이 가면 몸도 맛이 가는 거니까.’
평범한 인간의 두뇌로 수백 번이 넘는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죽음의 기억은 그 자체만으로도 뇌에 스트레스를 가하기 마련이었고, 기억이 누적될수록 그 부담은 점점 쌓여갔다.
그러니 그가 인간인 이상 한계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뇌가 제대로 기능을 못 하게 되는 것은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허그베어의 포옹이 시작되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의식이 사라졌다. 그리고 으스러진 시체를 달빛이 비치는 것과 함께, 그는 또다시 자신의 방에서 깨어났다.
* * *
자신이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재환은 움직이는 것을 그만뒀다. 움직이려고 해봐야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고, 설령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무언가가 더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죽으면, 언젠가는 아예 생각할 필요도 없어지겠지.’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달이 지는 것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그의 몸은 서서히 야위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할 만큼 했어. 적어도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은 했지. 다른 놈들이 자기 사는 것만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괴물을 죽이러 다녔으니까.’
지금까지 그는 숨을 고를 정도의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도시를 누볐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폐가 헐떡거리는 지경이 되도록 자신의 몸을 몰아붙였고, 정신이 한계에 내몰릴 때마다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며 괴물을 사냥했다.
하지만 그 결과 그의 몸과 정신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해서 얻은 거라고는 수백 번을 죽은 스트레스로 반쯤 식물인간이나 다름없게 된 몸뚱아리뿐이었다.
‘그래… 차라리 잘 됐어. 어차피 계속 원점으로 돌아오는 건데, 이대로 돌아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어차피 다들 미쳐가는데, 나만 미치지 말란 법은 없는 거니까.’
세상은 이미 미쳐있었고, 그 역시 미쳐가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성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완전히 미쳐버리게 된다면 지금까지 흘려온 피가 무의미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피를 흘리고, 괴물의 피를 취했는지를 생각하면 차마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마침내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한편으로는 구원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목을 죄어오던 사냥꾼의 업에서 드디어 해방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 그에게는 썩 마음에 드는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병가를 낸 회사원이 된 기분으로 의자에 앉아 말라죽는 것을 한동안 만끽했다.
그리고 굶주림과 목마름을 견디기 힘들 때면 종종 재채기를 했고, 그럴 때면 허그베어가 나타나 그의 괴로움을 해소해주었다.
죽고 되살아나면 몸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가니 먹고 마시는 걱정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삶도 죽음도 무의미해지는 이 세계에서 굶주림과 목마름은 사소한 문제일 뿐이었다.
‘이대로 계속 죽다 보면 나중엔 생각할 필요도 없어지겠지.’
굶고, 죽고, 굶고, 죽고, 굶고, 죽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어가는 것은 순환이 수차례 반복되었고, 그는 그때마다 허그베어의 포옹에 몸을 맡겨서 삶을 포기했다.
하지만 굶고 살해당하는 이 고행의 길 끝에 남는 것은 고통밖에 없었고, 고통은 그의 두뇌를 자극하여 삶에 대한 욕구를 충동질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더 편하고 안락한 삶을 갈망하도록 설계되었고, 그 역시 한때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청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죽음을 갈망하던 그의 행동은 오히려 삶에 대한 욕망으로 치환되었고, 의자에 앉아 죽어가던 그는 죽으려 할수록 살고 싶어지는 아이러니를 자조하며 메마른 목소리로 헛웃음을 내었다.
‘그래… 이러니까 그 여자가 나를 동정했던 거지.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는 거야.’
암브락사스는 그가 가는 길이 가시밭길이 될 거라 예고했다. 그녀는 그가 죽는 환영을 수차례 보여줬고, 그는 암브락사스가 보여준 미래를 넘어서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설령 마지막에 부서지는 한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발버둥 치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이토록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깨닫자 그는 돌아버릴 것만 같은 기분으로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메마른 웃음소리를 듣고 온 허그베어의 포옹에 몸을 맡기며 옛일을 떠올렸다.
‘끝나지 않아. 끝나지 않지.’
그는 처음 허그베어를 죽이기도 다짐했을 때의 일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는 자살하는 것으로는 이 악몽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이 이 악몽을 끝내기 위해 괴물을 사냥하기로 결심했었다.
서울의 시간이 또다시 되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뜬 재환은 만전의 상태로 돌아온 육신을 내려다봤다. 여전히 몸은 삐걱거렸고, 제대로 움직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있어. 죽는 것도 해 봤는데, 재활훈련을 못 할 리가 없잖아.’
그는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한동안 몸을 사용하지 않았던 탓에 몸이 목각인형처럼 어색했다.
하지만 몸 자체에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었던 덕분에 손가락은 서서히 본래의 감각을 되찾았다.
그리고 손가락의 감각을 되찾은 그는 천천히 팔다리를 움직여 재활을 시작했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처럼, 악기를 조율하는 연주자처럼.
삼일 밤낮에 걸친 재활 끝에 서서히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많이 죽겠지. 수천 번. 수만 번 수십만 번… 그보다 더 죽을 수도 있겠지. 아예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거고.’
몸의 감각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재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처음 괴물을 죽였을 때처럼, 천천히 문고리를 돌려서 소방도끼를 가지러 갔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끝내는 건 아니야. 이런 꼴을 당하려고 발버둥 친 건 아니지. 그럴 거였으면 차라리 그 여자를 따라서 정원사 노릇이나 했을 테니까.’
소방도끼를 집어 든 그는 처음 소방도끼를 쥐었을 때를 떠올리며 자신에게 되뇌었다.
‘나중에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게 될 수도 있겠지. 죽느니만 못한 꼴을 겪을지도 모르는 거고.’
그는 숨을 들이켠 뒤 베란다의 유리창을 부쉈다. 그리고 깨진 유리창을 넘어 집 안에서 울려 퍼진 소음을 듣고 찾아온 허그베어를 향해 다가갔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더 움직일 수 있으니까.’
생각을 끝내자 지치고 메마른 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몸이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혈관의 피가 타오르는 감각과 함께, 그는 수백, 수천, 수만의 괴물을 살해한 솜씨를 발휘해 허그베어를 살해했다.
사냥은 순식간에 끝났고, 그는 괴물의 피를 마셔서 목을 축였다. 이제는 괴물을 살해하는 것도, 괴물에게 살해당하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적어도 이 순간, 그는 죽음에서 자유로워졌다. 살아있다는 실감이 사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