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59
성자 사냥 (1)
3월 15일 새벽 3시 15분.
레벨을 올리고 장비를 구하는 준비를 끝낸 재환은 수락산 정상 부근에 도착했다.
그리고 박격포를 쏘기에 적당한 위치를 찾아 자리를 잡은 뒤, 수락산의 정상의 바위 위에서 웅크리고 있는 블레인을 올려다봤다.
천산갑처럼 몸을 둥글게 만 저 괴물은 지난번에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산 정상에 틀어박혀 있었다.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땅속에 묻힌 씨앗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거리와 좌표를 가늠하며 박격포를 설치했다.
‘나쁘지 않아. 훈련 때 했던 대로만 하면 되는 거니까. 가만히 있는 표적 정도는 쉽게 맞춰 줘야지.’
그에게 박격포는 다루기 까다로운 무기에 속했다. 곡사사격이라는 방식도 문제였고, 다른 무기에 비해 실전에서 다뤄본 횟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실전에서 다뤄본 횟수가 적다곤 해도, 지금처럼 표적이 멈춰있는 상황은 박격포를 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통할지 안 통할지는 모르는 거긴 해도, 일단은 쏘고 봐야지. 그런 건 일단 쏘고 난 다음에 생각해도 되는 문제니까.’
설치를 끝내고, 포탄을 장전하자 박격포의 포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수락산의 정상에 떨어졌다.
쾅!
폭음과 함께 폭연이 일어났고, 폭연이 사라지자 재환은 괴물의 상태를 확인했다.
괴물의 칼날 껍질은 여전히 건재했고, 그 모습을 바라본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산 정상을 흘려본 뒤 숨을 들이켰다.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군.’
박격포가 통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재환은 미리 준비해 둔 기름통을 챙겨서 수락산 정상으로 향했다. 저 괴물이 고온에 취약할 가능성이 낮기는 했지만, 어차피 반격을 하지 않는다면 고온을 지속해서 가하는 것도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 오른 그는 블레인의 껍질 위에 기름을 뿌린 뒤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을 피운 뒤 블레인을 노려봤다.
‘날로 먹는 방법은 이게 마지막이겠지… 그다음에는… 몸으로 때워야 할 테고…’
담배를 피우는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 방법마저 통하지 않으면 그다음부터는 수도 없이 죽어가면서 저 괴물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직감하자 그는 담배를 피우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할 수 있어. 이제 와서 죽는 걸 새삼스러워할 필요도 없으니까.’
담배를 피우는 것을 끝낸 그는 거의 다 타들어 간 담배꽁초를 블레인의 껍질 위에 던진 뒤 뒤로 물러섰다. 담배꽁초가 괴물의 몸 위에 떨어지자 뿌려진 기름에 불이 붙었다.
기름을 먹고 타오른 불꽃이 블레인의 껍질 위에서 춤을 췄지만, 블레인은 마치 봉화에 쓰이는 땔감이라도 된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흘러 불꽃이 사그라들자 재환은 전투 각성제를 정맥에 투여한 뒤 탈바꿈을 칼날의 형태로 분해했다. 그리고 전투 각성제의 약효가 몸에 돌기 시작하는 것을 만끽하며 속으로 되뇌었다.
‘정상이 바위산이라 산불이 안 나서 다행이야.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시작해도 되니까.’
불씨가 완전히 잠잠해지자 그는 블레인의 몸에 돋아날 칼날 껍질에 자신의 손등을 베어냈다. 암브락사스의 심장을 취한 그의 피가 블레인의 칼날에 스며들었고, 웅크리고 있던 블레인은 나른하게 껍질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무조건 봐야 돼.’
물결치며 갈라지기 시작한 칼날 껍질을 노려보며 그는 각오를 다졌다.
‘이러려고 민첩을 끝까지 올려놓은 거니까.’
그는 이 순간을 위해 지혜와 민첩을 최대한으로 올려놓고, 남은 능력치를 근력에 투자했다.
그 결과 한계까지 높아진 반사 신경은 소총탄의 궤적마저 포착할 정도로 예민해졌고, 이 순간 그는 집중만 할 수 있다면 소총탄 하나 정도는 어렵지 않게 튕겨낼 수 있을 정도로 반사 신경이 예리해져 있었다.
그리고 칼날 껍질이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 비디오처럼 느릿하게 느껴지던 순간, 그는 칼날 껍질 사이로 튀어나온 칼날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것을 감지했다.
그는 곧바로 몸을 뒤로 젖혀 칼날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핸드캐넌의 방아쇠를 당겼다.
몸이 허공에 뜬 탓에 제대로 된 사격 자세를 잡지는 못했지만,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진 덕분에 조준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블레인의 칼날이 머리카락을 가르는 것이 느껴지면서 방아쇠가 당겨졌다.
탕!
핸드캐넌의 반동으로 팔이 뒤로 젖혀지고, 칼날 껍질의 빈틈으로 탄환이 날아갔다.
핸드캐넌의 탄환이 블레인의 어깻죽지를 터트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오자 몸에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맞혔다.’
뒤로 젖혀진 몸이 땅을 굴렀고, 그는 저 괴물에게 유효타를 꽂아 넣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자세를 잡고 달려들 준비를 했다.
어깻죽지를 터트린 것은 분명 기뻐할 만한 성과였지만, 아직 결정타를 넣지는 못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달려들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줬을 때, 그는 블레인이 다른 손으로 내지른 칼날에 심장을 꿰뚫렸다.
심장에서 피가 역류하고, 칼에 찔린 자리에서 피가 흘렀다. 흑묘 반지가 깨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출혈이 멈추긴 했지만, 블레인이 칼날을 비틀어서 뽑아내자 구멍 난 심장에서 피가 쏟아졌다.
그는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어가면서 블레인이 다시 몸을 웅크리는 것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중증의 무기력증을 앓고 있는 폐인처럼 느껴지자 은근한 악의가 그의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그래… 다 귀찮다 이거지?’
그는 본능적으로 블레인이 휘둘렀던 칼날의 궤적에서 무관심함을 느꼈다. 마치 잡초를 베어내는 농부의 낫질처럼, 저 칼날에는 무기질적이고 무심한 기운이 담겨있었다.
그 사실이 무의식의 밑바닥에 있던 투쟁심을 자극했고, 시간이 되돌아가면서 다시 눈을 뜬 재환은 이를 악문 채 블레인을 사냥하기 위한 루틴에 전념했다.
‘그러면 어디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고.’
흐름을 타기 시작한 몸이 순풍을 맞이한 범선처럼 거리를 활보했다. 꺼져가는 불씨가 바람을 타고 화려하게 타오르는 것처럼, 그는 한 줌의 열정에 몸을 맡긴 채 수차례 블레인에게 도전했다.
하지만 별에서 내려온 괴물에게 겨눴던 핸드캐넌의 탄환은 칼날 껍질의 방어 때문에 심장을 맞추지 못했으며, 그가 달려들어서 꽂아 넣으려던 칼날은 괴물의 심장까지 닿지 못했다.
죽음이 무가치하게 느껴졌던 순간이었고, 열정이 마모되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한 나날이었다.
* * *
12번의 도전이 실패하고, 12번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 그는 여전히 핸드캐넌을 쏘는 것 이상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권총이나 K1으로 후속타를 넣어보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는 성자의 살가죽을 뚫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설령 핸드캐넌으로 유효타를 꽂아 넣어도 심장을 공격할 후속타를 넣지 못한다면 그다음에 이어지는 블레인의 반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첫 공격의 궤적을 읽어서 피하는 것은 할 수 있어도, 이후에 이어지는 두 번째 공격을 피하려 할 때면 이미 자세가 무너져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리 발버둥 쳐도 두 번째 공격을 피할 수 없자 그는 내구 최대한으로 올린 뒤 철근으로 공격을 막아보려는 시도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철근째로 몸이 두 동강 나는 것뿐이었다.
내구력을 한계까지 높여서 소총탄을 버텨낼 수 있는 몸이 되어도 철근까지 베어버리는 칼날을 막아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썩어도 괴물은 괴물이다 이거지. 젠장할…’
그리고 이후에 21번째 죽었을 때, 그는 민첩에 투자하는 비중을 낮추고 근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최적화를 진행했다.
블레인은 그를 상대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있었고, 급소를 위주로 공격하고 있었으니, 공격할 지점을 예상해 피하는 전술을 쓰려면 근력을 올려서 몸의 가속력을 올리는 쪽이 더 도움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력을 더 높여서 더 빨리 움직이면 돼. 한 번을 피했으니 두 번 못 피하는 것도 못할 건 없지.’
하지만 능력치를 최적화했음에도 성과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있었음에도 성자는 여전히 강력했고, 그는 여전히 무력했다.
그리고 결국 실패한 횟수가 42번을 넘어갔을 때, 그는 최적화를 하는 대신 레벨을 올리는 시간을 점점 늘려갔다.
적어도 능력치가 부족해서 실패했다는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레벨을 올리는 것에 전념하자 그는 250레벨이 되었다. 처음 3일을 제외하면 레벨을 오르는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고, 레벨을 올리는 것은 그에게도 고행에 가까웠다.
하지만 민첩과 지혜를 한계까지 올리고, 근력을 81까지 올렸음에도 블레인의 칼날을 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는 이후 수차례 더 죽는 것을 반복했다.
44번의 죽음을 겪은 이후, 그는 정신이 마모되어가는 것을 느끼며 자신에게 되뇌었다.
‘아직이야. 레벨을 더 올리면 돼. 아직은 더 올릴 수 있어. 아직은 더 할 수 있다고.’
레벨이 오르는 속도는 더더욱 더뎌졌다. 두 달 동안 레벨을 올리는 것에 전념해야 겨우 270레벨이 되었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괴물을 사냥하는 사이에 동서울에는 식량난이 찾아왔고, 강북구에서 내려온 사냥꾼 네 명이 설지훈과 함께 군경을 굴복시키고 사냥꾼들의 도시를 세웠다.
그들은 재환에게 자신들과 함께 서울의 왕이 되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그들의 제안을 무시했다. 그들이 성자를 피해 다니고 있는 겁쟁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역겨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괴물을 사냥하는 것에 관심이 없고, 괴물다운 괴물을 사냥할 의지도 없는 것들이 사냥꾼을 자처하는 모습이 그에게는 괴물보다도 더한 흉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두 달에 걸친 사냥을 끝낸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수락산으로 향했다. 그는 산 정상에 도착해 숨을 들이켠 뒤 블레인을 노려봤다.
그는 도전했고, 또다시 패배했다.
하지만 또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표정은 이전보다는 조금 더 밝아져 있었다.
‘그래도 아예 답이 없는 건 아니야. 이제 슬슬 어떻게 해야 될지 감이 오니까.’
45번째 죽었을 때, 그는 마침내 은연중에 떠올렸던 생각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
저 괴물에 대해 파악하려 하면 할수록, 저 괴물 역시 그의 몸놀림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가 블레인이 휘두르는 검의 궤적을 예측할 때, 블레인 역시 그가 피할 위치를 향해 미리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가 괴물에 대해 알아갈 때, 저 괴물 역시 그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45번을 죽으며 확신에 가깝게 변해있었다.
암브락사스 때 그랬던 것처럼, 그가 괴물을 인지하고 있을 때면 괴물 역시 그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성자에게 수없이 죽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얼핏 보면 무의미해 보이는 죽음이 사실은 성자에게 영향일 끼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 저건 불가해가 아니야. 이해할 수 있으면, 이용할 수도 있는 거지.’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을 기억하는 존재를 상대하는 법을 알게 되자 그의 입가에 날카로운 웃음이 떠올랐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싸움은 그의 승리로 끝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을 죽더라도.
단 한 번만 사냥감의 심장을 취할 수만 최후의 승리는 그의 몫이었다.
‘딱 두 번. 딱 두 번만 피하면 돼. 그다음에는 무조건 잡을 수 있으니까.’
생각을 끝낸 그는 폐인으로 전락한 괴물을 요리할 방법을 구상했고, 죽는 것을 반복하면서 실성한 성자를 훈육했다.
그리고 수백 번을 넘게 죽었을 때, 그는 마침내 블레인의 두 번째 공격을 피한 뒤 심장에 칼날을 꽂아 넣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356번, 혹은 365번쯤 죽었을 당시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