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60
성자 사냥 (2)
사냥은 순식간에 끝났고, 재환은 바닥에 쓰러진 괴물의 모습을 바라봤다.
허그베어.
신장이 190cm가 넘는, 거구의 곰 인형 괴물.
보는 것만으로도 슬프고,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던 괴물.
그에게 있어서 최초이자 최악의 난적이었던 괴물은 깔끔하게 토막 나 있었다.
이미 수백 번이 넘도록 겪어본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솜씨였다.
그는 괴물의 털가죽에서 흘러나오는 시뻘건 피에 손을 뻗었다.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경건하게.
두 손을 모아 죽은 괴물의 피를 받아 마시자 익숙한 속삭임이 들리면서 신기루로 이루어진 상태창이 보였다.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현상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그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지겹도록 본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얻은 능력치를 모두 지혜에 분배한 뒤 괴물의 사체에 이불을 덮었다. 처음 이 괴물을 죽였을 때는 눈물을 흘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젠 익숙해진 건가.’
그는 모든 것에 익숙해져 갔다.
괴물을 죽이고, 그 피를 마시고, 힘을 기르는 것.
그 대가로 모든 일에 무뎌졌지만,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이 짓도 언젠간 끝나겠지.’
그는 싸늘하게 식은 사체에서 시선을 거둔 뒤 집 밖을 나섰다.
‘아니, 끝내야지.’
서울은 넓고, 괴물은 많다.
수백 번이 넘는 회귀를 거듭한 끝에, 이 괴물 역시 그에게는 많고 많은 괴물들 중 하나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진정한 의미의 괴물이란 별에서 내려온 존재인 성자를 의미했고, 이제는 자신을 수백 번 넘게 죽였던 성자인 블레인을 사냥하러 갈 시간이었다.
‘350번… 아니, 360번인가?’
재환은 바깥으로 나와 괴물을 사냥하면서 자신이 블레인에게 살해당한 횟수를 가늠했다. 그리고 자신이 365번에 가깝게 죽었다는 것을 깨닫자 괴물을 사냥하던 그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많이 죽었지… 참 많이도 죽었어. 하마터면 미쳐서 죽어버릴 정도로… 참 많이도 죽었지.’
적어도 350번을 넘게 죽는 것은 그에게도 돌아버릴 것만 같은 경험이었다.
아무리 괴물을 죽일 때면 잡념이 사라진다고는 해도, 그의 뇌가 인간의 것인 이상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칼날로 심장을 찔릴 때면 죽음에 이르는 통증이 온몸을 강타했고, 일단 죽고 나면 수백 마리가 넘는 괴물을 사냥하는 것을 처음부터 반복해야 했다.
‘지긋지긋한 몰골들이야… 몇백 번씩이나 잡은 놈들이니까…’
재환은 탈바꿈을 휘둘러 땅바닥의 쓰레기를 주워 먹던 괴물의 숨통을 끊었다. 그리고 탈바꿈에 묻은 피를 왼손 검지로 닦아낸 뒤 혀로 가져가 피를 마셨다. 이는 피를 마시는 양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얻게 된 습관이었다.
‘그래도 점점 빨라지고 있어. 나도 슬슬 고여가고 있다는 거겠지.’
재환은 수락산 방향으로 걸어가며 눈에 띄는 괴물들을 사냥했다. 시간이 되돌아갈 때마다 못 보던 괴물의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괴물은 이제 그의 눈에 익숙해져 있었다.
괴물의 외형, 괴물의 습성, 괴물의 약점까지.
수백, 수천 종류가 넘는 괴물을 사냥한 결과 이제 그는 괴물을 볼 때면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사냥 방법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될 정도로 괴물 사냥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설령 처음 보는 괴물들이 나타날지라도 속삭임의 도움 없이 약점과 습성을 파악할 정도였다.
‘그래…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거야. 지금까지 죽은 건 개죽음이 아니고, 이유 없이 죽은 게 아니었던 거지. 그리고…’
일주일에 걸친 사냥을 끝내고 수락산 정상에 도착한 재환은 웅크려있는 블레인을 노려보며 각오를 다졌다.
‘…이번에 죽는 것도, 개죽음이 아닌 거고.’
결심을 끝낸 재환은 블레인의 앞에 마주 섰다. 그리고 블레인의 칼날 껍질에 자신의 피를 먹여서 그의 잠을 방해했다.
그는 블레인의 칼날 껍질이 나른하게 움직이는 것을 두 눈에 새긴 뒤 핸드캐넌을 겨눴다.
‘어려울 거 없어. 피하고, 쏘고, 죽고. 이제 몇 번만 더 하면, 저 폐인도 결국은 익숙해지겠지.’
그는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블레인의 칼날을 피하며 몸을 젖혔고, 이와 동시에 핸드캐넌으로 칼날 껍질의 빈틈을 노려 블레인의 오른팔을 날려버렸다.
350번을 넘게 반복해왔던 움직임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되었고, 블레인의 칼날 역시 그의 예상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날아들었다.
수백 번에 걸친 데자뷰와 함께 블레인의 칼날이 그의 심장을 순식간에 꿰뚫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재환은 피를 토해내면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저 괴물이 그의 움직임에 길들여졌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저 괴물의 무의식을 마침내 조율해냈다는 확신이 떠오르자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됐어… 이제야 끝이 보여… 드디어 끝이…’
칼날이 뽑히는 것과 함께 의식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는 주마등 속에서 의식이 꺼져가는 것을 느끼며 자신에게 되뇌었다.
‘저 폐인도 드디어 익숙해진 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드디어… 드디어 익숙해진 거지…’
의식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그의 몸이 수락산의 바위에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허그베어를 사냥했다.
그는 마침내 블레인의 두 번째 공격을 피한 뒤 심장에 칼날을 꽂아 넣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고, 이제 진정한 의미의 괴물을 사냥할 순간이 다가오자 메마른 마음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356번, 혹은 365번을 죽었을 당시의 일이었다.
* * *
블레인을 사냥할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자 그는 괴물의 피를 모으는 일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매일 혼자서 수백 마리가 넘게 괴물을 사냥하는 것은 물론이고, 군대와 경찰을 설득해 괴물 사냥을 부추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평범한 시민들 앞에서 괴물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거리에 널려있는 괴물들이 일개 짐승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장하여 그들을 괴물 사냥을 길로 내몰았다.
서울을 되찾으려면 무기를 들어라. 집과 땅을 되찾으려면 거리로 나와라. 괴물에게 빼앗긴 음식과 물자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되찾아라!
간결하고 힘이 담긴 메시지가 절망하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전파되었고, 그렇게 중랑구 대피 구역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괴물 사냥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동서울 일대의 주민들 역시 군경과 시민 대표의 지휘 아래에 모여서 괴물을 사냥에 동참했다.
“괴물이다, 죽여!”
“구석으로 몰아! 거리 좁히면서 창으로 찔러!”
“앞으로 가! 앞으로 가라니까 쪼다 새끼야!”
“죽여! 저 괴물 새끼들 싹 다 죽여버려!”
재환에 의해 괴물의 개체 수가 줄어들자 군중들은 눈에 불을 켜면서 괴물 사냥에 집착했다. 괴물에게 자신의 터전을 빼앗겼다는 분노가 그들의 심장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괴물 하나당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끼와 창, 횃불 따위를 들고 달려들자 괴물은 속수무책으로 살해당했다.
괴물이라는 외형에 겁먹지 않고, 이 짐승들이 한때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만 않는다면 괴물 사냥은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손으로 서울을 되찾을 수 있다는 대의명분에 그들은 매료되어있었고, 그들은 마치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기세로 괴물 사냥에 몰두했다.
부상자도 나오고, 사망자도 나오긴 했지만, 이 집단 광기의 현장에서는 사소한 문제일 뿐이었다.
그렇게 동서울 일대가 괴물 사냥의 열기에 휩싸이고, 사냥당한 괴물의 피가 모두 재환에게 흘러들어온 지 한 달 반이 됐을 때.
280레벨이 된 그는 근력과 민첩, 지혜를 한계까지 올린 뒤 수락산의 정상으로 향했다.
기나긴 성자 사냥의 나날이 막바지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 * *
재환은 수락산 정상에서 괴물 사냥이 한창인 거리를 내려다봤다. 괴물들에게서 자신의 터전을 되찾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산 정상까지 들려왔다.
‘진작에 이럴 걸 그랬어. 보기에도 좋고, 시간도 아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덕분에…’
그는 탈바꿈을 칼날의 형태로 분해시킨 뒤 산 아래에서 시선을 거뒀다.
‘…이제 준비도 끝났지.’
생각을 끝낸 그는 자신의 정맥에 전투 각성제를 투여한 뒤 블레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약 기운이 몸에 돌기 시작하자 블레인의 칼날에 자신의 피를 먹였다.
칼날에 피가 배어들기 시작하면서 블레인의 칼날 껍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는 갈라진 껍질 사이로 핸드캐넌을 겨눴다.
‘끝이다.’
칼날이 목으로 날아오는 것과 동시에 그는 몸을 뒤로 젖혔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핸드캐넌이 불을 뿜으며 블레인의 어깨를 꿰뚫었다.
뒤로 물러선 그가 자세를 잡는 것과 동시에 블레인의 또 다른 칼날이 심장을 노리고 날아왔다.
수백 번 동안 반복된, 기계적인 공격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칼날이 날아오기 전, 그는 칼날의 궤도를 미리 읽어낸 뒤 몸을 옆으로 굴려 칼날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일직선으로 날아간 칼날이 갈비뼈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두 번째 칼날을 피해낸 재환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칼날 껍질의 빈틈으로 탈바꿈을 내질렀다.
‘보여. 심장이 보여.’
예리해진 지력이 별의 심장을 감지하는 것과 함께, 탈바꿈의 칼날이 블레인의 심장으로 날아갔다.
수백 번을 죽고, 백만 마리가 넘는 괴물을 사냥해가며 얻어낸 단 한 번의 기회.
단 한 번의 일격이 블레인의 심장에 꽂혔을 때, 그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드디어!’
칼날을 비틀어 심장을 잘라내자 블레인의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그는 이 칼날의 성자가 굳어버린 모습을 보며 환호했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칼날 껍질이 무너지면서 산산이 조각나는 것이 보였다. 그는 탈바꿈을 휘둘러 갑옷을 잃은 성자의 몸을 난도질했다.
한계까지 높아진 근력을 아낌없이 사용하자 블레인의 몸이 순식간에 잘게 토막 났고, 몸이 토막 난 자리에 남은 것은 수은 빛깔로 은은하게 빛나는 별의 심장뿐이었다.
몸에서 심장이 분리되고, 몸이 잘게 조각나자 블레인의 몸을 구성했던 칼날과 살점들이 가루가 되기 시작했다.
암브락사스 때 그러했던 것처럼, 저 도검의 성자는 잘게 으스러진 먼지가 되어 하늘로 승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땅에 떨어진 별의 심장을 집어 들었다.
칼날에 꿰뚫린 심장의 고동은 꺼져가는 불씨처럼 고요했다.
그는 두 손에서 별의 심장이 은은하게 맥동하는 것을 느끼며 감회에 젖었다.
얼마나.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성자의 심장을 만지는 것과 함께, 그는 자신의 심장이 환희에 겨워 요동치는 감각을 선명하게 만끽했다.
마침내 복수를 끝내자 수백 번을 넘게 난도질당한 그의 심장이 환호하고 있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피에는 피, 심장에는 심장으로. 받은 것을 그대로 되갚아주자 그는 마치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짐승처럼 별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는, 이 순간의 환희를 만끽했다. 메마른 마음에 흩뿌려진, 심장의 촉감이 이토록 달콤하다니.
이 순간을 위해 수백 번을 죽어왔다는 것을 떠올리자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별의 심장이 터져버릴 정도로 손에 힘이 들어간 순간, 그는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다.
‘그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여기까지 와서 심장을 터트리면, 그건 완전 코미디니까.’
칼날에 훼손당한 심장은 지금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심장을 이대로 가만히 두면 지금까지 노력해왔던 것이 헛수고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참아낸 뒤 별의 심장을 씹어먹었다.
그리고 피와 살점의 신비가 담긴 심장이 몸속에 스며드는 것과 함께, 그의 귓가에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별의 심장이 그릇에 스며듭니다] [지력이 영구적으로 19 상승합니다] [지력이 강화되어 약간의 예지력을 획득합니다] [가까운 미래의 일을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