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61
인간의 확장 (1)
별의 심장을 씹어먹고, 지력이 50을 넘어선 순간, 재환은 자신이 바라보던 세상의 모습이 3차원에서 2차원의 형태로 일그러지기 시작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입체적으로 보이던 도시의 모습이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평면적으로 보였고, 그러자 이 세상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설계도처럼 느껴졌다.
땅바닥에 늘어선 아스팔트 도로도, 하늘을 향해 뻗어있던 고층 건물들도 수락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자 모두 설계도를 구성하는 기호처럼 보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평면으로 보이는 이 세계에서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오직 하늘에 떠 있는 별과 달빛뿐이었다.
세계를 인식하는 형태가 일그러지기 시작하자 재환은 무의식적으로 두 눈을 감은 뒤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이 고비를 잘못 넘긴다면 그대로 미치광이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눈을 감고 있는 것도 방법이겠지. 아무것도 안 보고, 보게 되더라도 모른척하는 거야. 그러면 적어도 미쳐버리진 않을 테니까.’
블레인의 심장을 먹어서 지력이 50을 넘어선 이후, 인간의 감각으로는 인지할 수 없었던 감각들이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별들의 흔적을 어렴풋이 짐작하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별들의 시점으로 땅을 내려다보는 방식과 닮아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인간의 것과 달라지기 시작하자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다.
마치 온몸에 눈알이 돋아나는 것만 같았고, 벌레나 사용할 법한 더듬이가 피부 위로 우수수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몸의 감각이 눈알이 수백 개 달린 괴물이나 더듬이나 페로몬으로 세상을 지각하는 개미처럼 일그러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자 그는 숨을 들이쉬며 각오를 다졌다.
‘할 수 있어. 이미 미쳐있는데, 더 미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여기서 눈을 감아버리면, 그 괴물들이랑 눈높이를 맞추는 건 영영 불가능해질 거야.’
괴물을 상대하는 인간은 괴물에 가까워지고, 인간을 상대하는 괴물은 인간에 가까워진다.
이는 수백 번을 죽어가며 성자를 상대한 뒤 얻어낸 진리였고, 이 진리에 따르면 그는 점점 더 괴물에 가까워져야 했다.
성자란 괴물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지식과 지혜를 지닌 선지자였고, 천상에서 내려와 지상의 물리법칙을 마음대로 일그러뜨리는 초월자였다.
그런 괴물을 상대하려면 그 역시 그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괴물이 되는 수밖에 없었고, 결국 재환은 눈을 뜬 뒤 3차원의 세계가 2차원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래… 어차피 지구도 우주 멀리에서 보면 점이 되는 건데, 기껏해야 동네가 종이처럼 보이는 게 뭐가 대수겠어.’
세상이 2차원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을 받아들이자 그는 산 아래에 펼쳐진 설계도를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횃불을 들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어디로 이동할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나뭇잎의 경로가 먹으로 그려낸 동양화처럼 눈앞에서 그려졌다.
그리고 이런 감각에 익숙해지자, 그는 이 세상이 한 편의 풍경화가 되고, 하나의 체스판으로 변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그는 현기증과 황홀경을 동시에 느끼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예지력을 얻었다는 게… 이런 거였나…’
땅을 내려다보던 그는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구름의 움직임과 별들이 꿈틀거리는 미세한 고동 소리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늘의 움직임마저 가늠할 수 있게 된 순간, 서울은 거대한 체스판이 되어 그의 뇌리에 새겨졌다. 그는 자신의 눈에 들어온 기물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가늠하면서 두 눈을 감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 세상을 보면 다르게 보이는 거랑 마찬가지니까. 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게 보일 수도 있는 거지. 무서워할 일이 아닌 거야.’
지력이 높아진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고,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망원경을 든 천문학자들이 하늘에서 별들의 움직임을 읽어내는 것처럼, 현미경을 든 생물학자들이 접시에서 미생물을 찾아내는 것처럼, 인공위성의 기상 사진으로 날씨를 예측하는 기상학자처럼.
예지력을 얻게 된 그의 감각은 이 세상의 이면을 드러내어 그를 신세계로 인도했다.
이 순간 그는 처음 나는 법을 배운 새처럼, 처음 뭍에 발을 디딘 개구리처럼, 처음 사냥에 성공한 육식 동물처럼, 탐욕스러운 기세로 세상의 움직임을 두 눈에 담았다.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이런 풍경을 눈에 담지 못할 것만 같은 예감이 그의 심장을 움켜쥔 뒤 충동질했기 때문이다.
‘더. 더 봐 둬야 돼. 언제 신기루처럼 사라질지 모르니까 더 봐야 돼. 후회하기 전에… 더 눈에 담아 둬야…’
그리고 한참 동안 변해버린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던 그는 현기증이 심해지는 것과 함께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자각했다.
맨눈으로 태양을 바라보면 눈이 멀어버리는 것처럼, 인간의 감각으로 느낄 수 없던 것을 인식하게 되자 그의 몸이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재환은 피로가 쏟아지는 것을 이기지 못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수락산 정상의 바위 바닥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하늘 위를 올려보자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에서 별들이 깜빡거리는 모습이 꿈결처럼 몽롱하게 보였다.
‘일단은… 일단은 한숨 자고 나서 생각하자…’
그는 의식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자고 일어나면 오늘 일이 꿈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 테니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그는 산 정상에서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꿈에서 깨어난 것만 같은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의 눈에 담긴 세상은 3차원이었던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 * *
동전 하나가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았다.
숫자 면과 그림 면을 번갈아가며 드러내던 동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의 손에 쥐어졌고, 동전을 손에 쥔 남자는 두 눈을 감은 채 속으로 되뇌었다.
‘숫자 면이었지.’
동전의 어떤 면이 보일지 예측을 끝낸 남자는 눈을 뜬 뒤 손을 펴서 결과를 확인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예지했던 것과는 달리 동전의 그림 면이었다.
‘이걸로 확실해졌군.’
결과를 확인한 재환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예지력에 대한 분석을 끝냈다.
‘미래는 바뀔 수 있는 거야. 어떻게 될지는 내가 하기 나름인 거고.’
정신을 차려 수락산에서 내려온 이후, 재환은 몸을 추스른 뒤 자신이 얻게 된 예지력이란 능력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실험했다.
‘지금은 일기예보만도 못한 수준이긴 하지. 길게 봐야 5분 앞까지밖에 못 보는 것까지 생각하면 별거 아닌 수준이기도 하고.’
수차례 동전 던지기를 해 본 결과, 그는 이 예지력이라는 힘이 가까운 미래의 가능성 중 하나를 예측하고 설계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동전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면, 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면 동전을 던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두 손을 폈을 때 동전의 어떤 면이 나오게 되는 지까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예지해낸 미래가 항상 그대로 일어날 거란 보장은 없었다.
이를테면 동전을 던지는 미래를 예지했더라도, 예지를 끝낸 뒤 동전을 던지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그 예지는 틀린 예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예 쓸모없는 건 아니야. 선택지 하나를 미리 보고 결정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는 또다시 두 눈을 감고 예지를 시작했고, 동전을 쥔 뒤 동전을 던지는 자신의 모습과 동전의 어떤 모습이 나왔는지를 미리 볼 수 있었다.
두 눈을 떠서 예지를 끝낸 그는 미래의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손을 움직였는지를 떠올렸다.
손가락의 감각, 동전을 튕길 때 주는 힘, 그리고 어떤 타이밍에 어떤 자세로 동전을 잡을지까지.
몸이 움직였던 감각을 생생하게 기억해낸 그는 정확하게 몸을 사용하여 동전을 튕겼다.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동전을 낚아챈 그는 자신이 예지했던 대로 동전의 모습이 나타난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이건 내가 어떤 식으로 쓸지 결정할 수 있으니까.’
예지력을 얻게 된 이후, 그의 시야는 이전보다 한 차원 더 넓어져 있었다.
이제는 나뭇잎이 떨어지는 궤도가 선명하게 보였고, 참새가 날갯짓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타이밍에 날아갈지 미리 예상이 되었다.
처음 예지력을 얻었을 때 보았던 2차원의 풍경은 또다시 느낄 수 없었지만, 지금 느껴지는 3차원의 풍경만으로도 그는 선지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누릴 수 있었다.
감각의 확장이 곧 인간의 확장이라면, 그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인지할 수 있는 세계를 더 넓게 개척해낸 셈이었다.
‘그래도… 아직 기뻐하기엔 이르지. 지력이 50인데도 이 정도면, 성자들은 훨씬 더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거니까.’
재환은 하늘을 올려다봄으로써 자신의 자만심을 꺼트렸다.
저편에서는 날개가 수백 장 달린 까마귀인 크로드가 그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고, 그보다도 위에 있는 푸른 달은 여전히 아득한 높이에서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달을 향해 이어진 실타래의 숫자가 세 가닥으로 늘어난 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지력이 너무 높아지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
예지력을 시험하는 것을 끝낸 재환은 시민들에게 괴물을 사냥해온 답례로 받은 맥주 상자를 뜯으며 결론을 내렸다.
`이런 거 이상의 감각을 맨정신으로 느끼면 아예 미쳐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
이 세계에서 아는 것은 곧 힘이었지만,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인 것들도 있었다.
인간의 두뇌로 이해하기 힘든 것을 맨정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두뇌를 혹사시키는 일이었고, 또한 앞으로 이 이상 예지력을 얻게 된다면 지혜가 낮을 때 악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최악의 경우에는 성자의 지식을 받아들였다가 백 번을 넘게 죽었던 경험을 반복하게 되거나, 그 이상의 지옥을 경험하게 될 위험도 있었다.
결국 인간의 몸으로 괴물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알아도 선택지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
재환은 맥주 상자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낸 뒤 캔 뚜껑을 뜯었다.
`…그래도 이걸 계속 올려 두다 보면, 언젠가 성자들이랑 눈높이가 같아질 가능성도 있겠지.`
그가 지금 지닌 예지력은 체스판에서 한 수 앞 정도를 미리 가늠하는 정도의 능력이었다.
먼 미래는 볼 수 없고, 예측을 하더라도 실제로는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서울이라는 체스판을 뒤엎기에는 미약한 능력이었다.
또한 연속으로 사용할 경우 현기증과 피로감을 느끼는 것까지 고려하면 장기 전투에는 부적합한 능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예지력이란 힘이 일종의 초능력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앞으로 지력이 더 높아지게 된다면 이 능력이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모르는 이상, 어둠과 무지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예지력은 횃불처럼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할 일 자체는 바뀐 게 없는 거지. 성자를 잡고, 심장을 먹고, 괴물의 피를 마시고… 언젠가 저 빌어먹을 까마귀랑 달을 상대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반복되는 거야…’
재환은 캔맥주를 달을 향해 들어 올렸다. 저 시퍼런 달이 이 악몽의 원흉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을 고려하더라도 저 달빛에는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아름다움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사냥이랑 사랑이라…’
그는 맥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둘 다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겠지.’
이 세상에 영원한 것 따윈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미지근한 캔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서울 북부에서 내려온 네 명의 사냥꾼이 재환의 숙소에 찾아왔고, 재환은 그들에게 캔맥주와 총알 세례 중 어떤 것을 대접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