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62
인간의 확장 (2)
블레인을 사냥하던 당시의 일이었다.
당시에 재환은 괴물을 사냥하는 일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고, 집착에 가까운 수준으로 괴물 사냥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는 하루에 1시간도 채 자지 않으면서 밤낮없이 괴물을 사냥했고, 잠이 몰려올 때면 자신의 몸을 더욱 혹독하게 몰아붙여 피로를 몰아냈다.
그때는 조금이라도 잡념이 쌓이는 순간 괴물 사냥에 싫증이 날 것만 같았고, 그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괴물 사냥에 대한 의지가 꺾이는 일이었다.
몸의 상처는 죽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꺾여버린 마음은 시간이 되돌아가도 되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에게 괴물 사냥에 대한 의지가 꺾인다는 것은 더 이상 사냥꾼으로 살 수 없다는 말과 동일했고, 사냥꾼으로서의 삶을 잃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발버둥 쳐 왔던 날들이 모두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괴물이 된 아버지를 죽이고, 정신을 잃은 수만 명의 사람을 죽이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물을 죽이고, 성자에게 짓밟혀 죽었던 날들.
이 모든 순간들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순간,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괴물은 그의 삶을 망쳐버린 원흉이었지만, 이제는 그의 삶을 지탱하는 양식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한계에 내몰릴 때면 더욱 괴물 사냥에 집중했고, 괴물을 사냥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괴물을 사냥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사람이 사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자 그의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는 점점 늘어났다.
이를테면 거리에서 들려오는 축제 소리가 그러했다. 괴물을 사냥하는 사냥꾼 덕분에 괴물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자 사람들은 환호했고, 이들은 삶의 터전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며 축배를 들었다.
비록 이제 거리의 일부분을 되찾았을 뿐이고, 아직 서울을 둘러싼 안개의 장벽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아직도 가끔씩 사람들이 괴물이 되고는 했지만, 그들은 이런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먹고 마시는 것을 즐겼다.
이런 식으로라도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자축하지 않으면 희망이란 것을 실감하기 힘든 시대였고, 한 줄기 희망에 의지하지 않으면 맨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이 축제의 주역인 재환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재환은 이들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한 번 편한 것을 찾기 시작하면 괴물을 사냥하는 것에 몰입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의 호의를 무시한 채 괴물 사냥에 몰두했지만, 그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시민들의 호의뿐만이 아니었다.
사냥을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넘어갈 무렵이 되면 서울 북부에서 사냥꾼이라는 이름의 하이에나들이 내려오곤 했고, 이들은 재환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며 그에게 서울의 지배층이 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재환이 이들의 제안을 무시하면, 이들은 군경의 수뇌부를 제압하고 사냥꾼들이 지배하는 도시를 세웠다.
민주주의 시민들의 도시가 사냥꾼이라는 이름의 괴물들에게 넘어갔던 날들이었다.
* * *
블레인이 천상으로 되돌아간 이후, 강북구에서 온 네 명의 사냥꾼은 재환의 숙소에 찾아 자신들과 협력할 것을 제안했다.
“사냥꾼들을 모아 협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결국 누군가는 나서서 시민들을 통제하고, 식량 관리를 해야 되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이걸 군경 손에 맡기면, 다 같이 굶어 죽는 건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어요. 그 사람들한테는 최대한 많은 시민들을 살려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있으니까요.”
강북구에서 내려온 네 사냥꾼들의 대표는 김수만이라는 중년 남자였다. 식품 유통 계열의 대기업에서 일했던 이 남자는 언젠가 찾아올 식량난에 관해 얘기하며 운을 떼었다.
“아마 이대로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슬슬 식량에 한계가 올 겁니다. 보존식은 턱없이 부족한데, 먹여 살릴 사람들 숫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으니까요. 그때가 되면 그야말로 아귀 지옥이 되겠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서로 가진 걸 빼앗는 지옥이요. 그러니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김수만 대표는 그렇게 말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마치 누군가가 들을까 봐 걱정스럽다는 목소리였다.
“…누군가는 나서서 시민들을 사냥꾼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시민들의 숫자는 줄고, 사냥꾼의 숫자는 늘어날 테니까요. 어차피 다들 굶어 죽어야 한다면, 시도라도 해 보는 게 시민들을 위해서도 더 나을 테고요.”
의자에 앉아 김수만 대표의 말을 듣던 재환은 눈을 감은 뒤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전 생에 이 제안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알고 있었다.
‘한 명도 없었지. 수천 명한테 먹였어도, 아무도 사냥꾼이 되지 못했고…’
그는 눈을 뜨면서 김수만 대표를 노려봤다.
‘저 남자는 이미 그럴 걸 알고 있는 눈치였지.’
사냥꾼이 다스리는 도시에서 괴물의 피를 마시게 하는 것은 일종의 처형 수단이었다.
사소한 일일지라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무조건 괴물의 피를 마셔야 했고, 그중에는 단지 사냥꾼들의 눈에 밉보였다는 이유로 괴물의 피를 마신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설령 아무런 죄가 없더라도 특출난 능력을 지녔거나, 군경의 고위 인사들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괴물의 피를 강제로 마셔야 했다.
그리고 그들 중 그 누구도 사냥꾼이 되지 못했고, 설령 사냥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무사할 리는 없었다.
애초에 저들의 목적은 사냥꾼들이 다스리는 도시를 만드는 것 자체에 있었고, 도시를 다스릴 권리를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러지 같은 새끼들이지… 웬만한 괴물들이 죽인 사람 숫자보다 저 새끼들 때문에 죽은 사람 숫자가 더 많았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리고 더 역겨운 건…’
지난 생에 묵인했던 일이 떠오르자 재환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가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하자 다른 사냥꾼들은 불편해하는 눈치였지만, 재환은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이 와중에도 내가 저울질이나 하고 있다는 점이겠지. 결국은 나도 저 새끼들이랑 다를 건 없는 거야.’
그는 지금까지 저들의 행동을 묵인했었다. 지금까지는 어차피 블레인을 죽이지 못하면 죽는 것을 반복할 생각이었으니 저들이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달랐다. 이제 블레인은 죽었고, 다른 성자를 사냥하러 떠나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그냥 다 죽여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기분 나쁜 새끼들인 것 자체는 팩트니까. 지금까지는 조용히 있다가 사냥꾼들 여론이 좋아지니까 빌붙으려는 것도 기분 나쁜 일이고.’
블레인의 심장을 먹은 뒤 저들이 찾아왔을 때, 재환은 예지력을 사용해 저들의 실력을 가늠했다. 그리고 저들이 자신에게 순식간에 살해당하는 미래를 보고 난 이후, 재환은 저들이 샬롬의 사냥꾼들에 비하면 삼류나 다름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저들은 괴물 사냥을 자주 해보지도 않았고, 괴물 사냥에 적극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환의 눈에 저들은 사냥꾼이 아니라 흡혈귀나 다름없었고, 그의 귀에 저들의 목소리는 모기들이 앵앵거리는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대신 문제는…’
재환은 한숨을 쉬는 대신 담배를 입에 물며 생각에 잠겼다.
‘…저 새끼들 편을 드는 게, 결국은 괴물의 피를 더 많이 모을 수 있다는 거지.’
사람을 괴물로 만든 뒤 괴물이 된 사람의 피를 수확하는 것은 결과만 놓고 보면 괴물의 피를 안정적이면서도 많이 모을 수 있는 선택지였다.
레벨 업을 할수록 괴물의 피를 마셔야하는 양이 늘어나고, 이 악몽을 끝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결심한 이상, 굶어죽을 예정인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서 레벨을 올리는 것은 언젠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었다.
‘결국 문제는 결국 하나지.’
재환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냥꾼들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내쉬었다.
‘선을 넘을 거냐, 말 거냐. 그게 문제인 거지.’
그는 사냥꾼이 되기 전에는 비교적 선하게 살아온 편이었다. 누군가를 괴롭힌 적도 없었고, 남을 도와주는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범죄를 저지른 적 역시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평범하게 살 수 없었고, 이 미쳐버린 세상에서 윤리와 도덕은 허울 좋은 울타리에 불과했다.
도덕과 윤리로는 괴물을 죽일 수 없고, 이 악몽을 끝낼 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냥꾼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망설였던 것이 사치스러운 고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이러는 것도 참 웃긴 일이야. 어차피 사람들을 다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세상인데, 사람 목숨 가지고 고민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지.’
시간이 되돌아가는 이 도시에서는 아무도 영원히 죽어있을 수 없었다. 설령 죽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잠깐의 잠에 불과할 뿐, 달이 비명을 지르면 모두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어떤 죄를 지어도 용서받을 수 있었고, 그 누구도 그의 잘못을 추궁할 수 없었다.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을 기억하는 사냥꾼이나 성자가 그를 쫓아오는 것이 아닌 이상, 그는 언제나 면죄부를 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셈이었다.
‘그래… 중요한 건 성자를 죽이는 데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지. 나머지는 전부 나중에 생각해도 될 문제인 거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재환은 거의 다 타버린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볐다. 그는 담배를 피우는 동안 묵묵하게 기다리고 있던 사냥꾼들에게 말했다.
“제안해주신 건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일단은 동업자로 인정받은 거니까요.”
“그 말은…”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재환은 김수만 대표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다른 분들이랑 확인하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거든요.”
김수만은 재환의 표정을 살피며 얼굴을 굳혔다. 연륜을 통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 안의 분위기가 얼어붙었을 때, 재환은 자신의 허리춤에서 경찰용 리볼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여기에 괴물이 하나 있다고 칩시다. 보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것 같고, 사냥꾼 하나 정도는 벌레 밟듯이 죽여 버릴 수 있는 괴물이요. 무슨 수를 써도 이길 것 같지 않은, 그런 괴물이 여러분들을 죽이려고 벼르고 있는 거죠.”
재환은 사냥꾼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괴물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실 건지 말해주세요. 대표로 한 분만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재환의 말이 끝나자 사냥꾼들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들이 시험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아무리 괴물을 많이 죽이는 것으로 유명하다곤 해도, 자신들과 똑같은 사냥꾼에게 아랫사람 취급받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한 명쯤은 불만을 얘기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김수환이 일행을 대표해서 나선 덕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괴물이 있다면… 다 같이 힘을 모아서 막아야겠죠. 그럴 때를 대비해서 우리끼리 더 뭉쳐야 하는 거고요.”
“그 말은 지금까지 그런 괴물을 만나본 적 없다는 뜻이죠?”
“예… 그렇습니다만?”
성자, 혹은 성자에 준하는 괴물을 상대한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재환은 결정을 끝냈다.
저들과 협력할지 말지 결정하려면, 성자에 준하는 괴물을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아두는 것이 먼저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예지력을 사용한 뒤, 김수만 대표의 귀를 향해 권총을 겨눴다.
“여기에 괴물이 하나 있다고 칩시다.”
그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 김수만 대표의 귓불을 정확히 뜯어냈다. 숙련된 사격 솜씨와 한계까지 높아진 민첩의 합작품이었다.
귓불이 뜯어지는 통증에 김수만은 신음 소리를 흘렸다.
“사냥꾼 하나 정도는 벌레 밟듯이 죽일 수 있는 괴물이요.”
재환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려는 사냥꾼의 귓불을 향해 리볼버를 발사했다. 총알은 또다시 귓불을 뜯어냈다.
“그런 괴물이 여러분들을 죽이려고 벼르고 있으니…”
그는 몸이 굳어버린 사냥꾼들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실 건지 대답해 주세요. 기왕이면 목숨을 걸고.”
사람은 위기 속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재환은 이들이 부디 진가를 드러내길 바라며 다음 사냥꾼의 미간을 향해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