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63
인간의 확장 (3)
예지력이 보여준 미래는 간단했다.
재환은 1초 안에 경찰용 리볼버를 뽑아 네 발을 발사했고, 이 총알들은 사냥꾼들의 안구를 하나씩 터트렸다.
사냥꾼의 살가죽이 제아무리 질기고, 뼈마디가 단단하다곤 해도, 안구를 강화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고, 그렇기에 눈알에 총알이 꽂힌 사냥꾼들은 고통에 겨워 비명을 질렀다.
총알이 두개골을 꿰뚫진 못하긴 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근력을 한계까지 올려둔 덕에 맨손으로도 사냥꾼의 뼈를 으스러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냥꾼을 상대하는 것이 현실이 됐을 때, 그는 예지가 보여준 대로 곧바로 눈을 노리는 대신 사냥꾼 한 명의 이마에 경찰용 리볼버를 겨눴다.
‘그냥 죽이는 건 너무 쉽지.’
민첩으로 신경이 강화된 덕분에 주변의 모든 것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블레인을 상대로 수백 번을 죽은 이후 느려진 세상 속에서 움직이는 법에 익숙해져 있었다.
‘한계까지 내몰아서, 본성을 드러낼 때 까지…’
총구가 겨눠진 사냥꾼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마약에 취한 사람 특유의 몽롱한 눈빛으로 재환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괴물처럼 보일 때까지, 몰아붙여야지.’
재환은 마약중독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암브락사스 때의 기억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저 사냥꾼을 첫 타겟으로 삼았다.
‘이미래. 나이 20세. 실용음악과 신입생.’
방아쇠가 당겨지고, 이미래가 총에 맞아 쓰러졌다. 이마가 찢어져서 피를 흘리긴 했지만, 총알이 두개골을 꿰뚫지는 못한 덕분에 죽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저 여자는 항상 저랬지.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항상 약에 취해 있었고.’
이미래는 사냥꾼이지만 단 한 번도 괴물을 사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처음 봤을 때부터 괴물을 사냥하려는 의지가 없었고, 같은 사냥꾼들 사이에서도 마약 중독자 취급당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그녀가 저항할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다른 사냥꾼들을 살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이를 악 물고 말았다.
‘아직도 미적거리고 있다니… 제정신인가?’
남은 세 명의 사냥꾼들은 권총을 뽑아들긴 했지만, 아직도 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이미래가 죽지 않은 것을 보고는 재환에게 살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진정하시죠, 선생님. 저희끼리 꼭 이렇게 피를 볼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김수만은 재환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얘기했지만, 그 말에 재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에게 여유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냥 눈을 쏠 걸 그랬어. 본보기를 제대로 보여줬어야 했는데…’
자신이 독하게 굴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각한 재환은 이미래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이마를 부여잡은 채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러면 어쩔 수 없지. 더 독하게 구는 수밖에.’
재환은 그녀의 팔을 꺾어서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발로 밟았다.
“지금부터 3분.”
그는 발버둥조차 치지 않는 이미래를 발로 짓누르며 말했다.
“3분 안에 아무도 안 덤비면 이 여자는 무조건 죽습니다. 내가 괴물만 죽여 본 건 아니거든요.”
사냥꾼들이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냥꾼끼리 협력하러 온 자리가 피 튀기는 총격전 현장으로 변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꼭 이렇게 해야겠습니까?”
김수만은 주머니에서 꺼낸 리볼버의 방아쇠를 천천히 당기며 말했다.
재환은 그 모습에 시선을 집중하며 대답했다.
“사람도 못 죽이는데, 괴물은 어떻게 죽이려고?”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김수만이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겼다. 재환은 고개를 옆으로 젖혀 리볼버의 총탄을 피한 뒤 다른 두 사냥꾼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 순간, 한계까지 높아진 민첩은 총알이 날아오는 모습을 두 눈에 새겼고, 그는 총알의 궤도를 읽어내는 것과 동시에 가장 오른쪽에 있던 사냥꾼을 향해 달려들었다.
‘강찬웅. 32세. 전직 헬스 트레이너.’
쏟아지는 총성과 함께 그는 강찬웅의 배를 발로 찼다. 그러자 근육질로 이루어진 거구의 몸이 공중에 붕 뜨더니 벽에 처박혔다.
‘예전에 권투도 배웠다더니, 헛수고였군.’
강찬웅을 발로 차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가 쏜 총알이 그의 볼을 스쳤다.
하지만 이 역시 예상했던 흐름이었고, 그는 곧바로 몸을 굴려서 다른 총알들을 피해낸 뒤 또 다른 사냥꾼에게 달려들었다.
‘이현우. 23세. 탈영병.’
재환은 이현우가 쥔 권총을 왼손으로 쳐낸 뒤 오른손으로 목을 쥐어 그를 들어 올렸다. 이현우는 버둥거렸지만, 근력의 차이가 현저한 덕분에 힘 싸움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현우를 들어 올린 재환은 그를 방패 삼아 김수만이 쏜 총알을 막아냈다.
‘특등사수였다더니, 권총 쏘는 솜씨는 영 별로야. 많이 안 쏴본 거겠지.’
재환은 김수만이 있는 방향을 가늠한 뒤 이현우의 몸을 들어서 내던졌다.
김수만은 날아오는 이현우를 옆으로 밀쳐낸 뒤 권총을 겨눴지만, 그가 본 것은 순식간에 다가온 재환이 자신의 팔을 꺾어버리는 모습이었다.
‘김수만… 나이도 많고, 머리도 좀 쓰는 것 같긴 한데…’
재환은 김수만의 팔을 꺾어서 그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그리고 그의 팔을 부러뜨리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전부야. 사냥꾼으로서는 쓸모없는 능력밖에 없는 거지.’
김수만을 제압한 재환은 주변을 둘러봤다.
헬스트레이너로서 몸을 단련해왔을 강찬웅은 명치를 맞은 충격으로 배를 부여잡고 있었고, 이현우는 가슴과 어깨에 총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래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순식간에 네 사냥꾼들이 전투불능이 된 것을 확인한 재환은 속으로 되뇌었다.
‘지금부터가 진짜야. 고작 나 따위한테도 멘탈이 나갈 정도면, 성자를 만났을 땐 그냥 도망쳐버릴 테니까.’
그는 마음을 독하게 먹기 위해 자신에게 속삭였다. 세뇌에 가까운 합리화였다.
‘도망치든, 날뛰든, 발버둥 칠 수 있어야지. 괴물을 상대하는 사냥꾼은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거야.’
방 안의 풍경은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사방에 사냥꾼들의 피가 흘렀고, 부상을 입은 사냥꾼들은 고통에 겨워 헐떡거리고 있었다.
약에 취한 상태인 이미래는 그나마 사정이 나아 보였지만, 다른 사냥꾼들은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은 기세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왜… 대체 왜…”
이현우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기세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세요? 그냥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는 건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요……”
그 말을 듣던 재환은 숨을 들이쉬었다. 처음 괴물을 죽였을 당시의 자신이 어떤 꼴이었는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역시 저 청년처럼 울먹거리고 있었고, 입장이 바뀌었다면 재환 역시 저런 말을 했을 것만 같았다.
“왜 이러는 거긴.”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마음을 더더욱 독하게 먹었다. 재난이란 선악을 가리지 않는 법이었고, 울고 빈다고 해서 물러가지 않는 법이었다.
“처음부터 말했던 거 같은데. 여기에 괴물이 있다고. 사냥꾼 하나 정도는 벌레 밟듯이 죽여버릴 수 있는 괴물이 있다고.”
재환은 김수만의 팔을 놓은 뒤 이현우에게 다가갔다. 등을 벽에 기댄 체 앉아있던 이현우는 팔을 휘적거려 물러서려 했고, 재환은 그의 손을 발로 밟으며 말했다.
“괴물한테 이유가 뭐가 중요하겠어. 괴물은 괴물이니까 괴물인 거지. 그러니까 죽어 마땅한 거고.”
이현우는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한계 이상의 통증을 느끼자 쇼크 증상을 일으킨 것이다.
재환은 이현우가 의식을 잃은 것을 확인한 뒤 시선을 옮겨서 김수만과 강찬웅을 훑어봤다.
두 사냥꾼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고, 재환은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여기에 괴물이 나타났고, 선택지가 두 개 있다고 칩시다. 하나는 어떻게든 괴물이랑 싸워 보는 거고. 나머지 하나는 이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치는 거죠.”
재환은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기회를 주기 위해 일부러 빈틈을 내준 것이었지만, 그들은 달려들지 않았다.
“3분 드릴 테니까 결정해 봐요. 결과는 알아서 책임지시고.”
재환은 두 사냥꾼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떨어진 리볼버를 줍는 모습을 보았다.
만약 저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면, 그는 저들에게 죽어줄 생각이었다.
저들에게 목숨을 걸고 괴물을 상대할 의지가 있다면, 협력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레벨은 다시 올리면 되는 거고… 어차피 이렇게 됐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빠르겠지.’
그는 이번 생에는 내구에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저들이 제대로 총을 맞출 수만 있다면 그대로 죽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에 그다지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한 달 반이 넘게 레벨을 올렸던 날들이 아깝기는 해도, 믿을 수 있는 동료를 구할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라고 볼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제발 방아쇠 좀 당겨 봐…’
재환은 착 가라앉은 눈으로 두 사냥꾼을 바라봤다. 저 둘은 눈앞에 앉아있는 남자가 총알 세례를 피했던 솜씨에 겁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눈빛을 읽어내며 담배를 태웠다. 그는 저들이 부디 제대로 된 사냥꾼이기를 바랐다.
‘사냥꾼이면 괴물을 죽일 수 있어야지. 아무리 개 같은 상황이어도 괴물을 죽여 버릴 독기가 있어야지. 사냥꾼이 괴물을 못 죽이면, 괴물보다 나은 게 뭐가 있겠어.’
적막 속에서 대치가 이어졌고, 재환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예지력을 사용해 저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했다.
‘젠장할…’
예지 속에서 저들은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가만히 있는 표적에게 총알 하나 쏘지 않고 도망쳐버린 것이다. 재환은 부디 자신이 바라본 미래가 틀렸기를 바라며 눈을 떴다.
그리고 10초 뒤, 두 사냥꾼은 서로를 흘겨보며 신호를 주고받은 뒤 방문을 열고 도망쳤다.
담배를 문 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한숨을 내쉬어 담배연기를 뱉어냈다.
‘결국 이렇게 된 건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일단 후퇴치고 나서 복수를 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봤을 때 옳은 판단이었고, 그 판단 자체는 틀렸다고 볼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이는 그가 원했던 정답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었다.
그가 사냥꾼들을 곧바로 죽이지 않았던 이유는 저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극한의 상황에 내몰렸을 때 발악할 수 있는 의지가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래… 당연한 거지. 이게 맞는 거야. 처음부터 혼자였고… 앞으로도 혼자겠지.’
그는 다른 사냥꾼의 도움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블레인을 죽일 기회를 놓친 적이 있었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저들이 이전 생에 아무리 잔혹한 일을 저질렀더라도, 성자를 상대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눈감아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혼자서 성자를 상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막막한 일이었다.
‘이제 와서 실망하지 말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혼자서 잘하면 되는 거야. 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그가 자신에게 되뇌이고 있을 때, 그의 귓가에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기억하고 있어요. 열 명의 사냥꾼이, 강북에 있었었던 날들.”
눈을 뜨고 살펴보자 이미래가 처음 듣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뮤지컬 배우라도 된 것처럼 리듬감을 담아 자신의 말을 노래했다.
“첫 번째 사냥꾼은 어느 날 자살했어요. 매일같이 목을 내어 마침내 이성을 잃었죠. 난 기억해요. 아직도 악몽처럼 기억하죠.”
재환은 그녀를 노려봤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랫말에 재환은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사냥꾼은 어느 날 괴물이 됐어요, 온몸에서 꽃과 나무가 되어 동료에게 살해당했죠. 가련한 꽃이여, 안녕히. 낙원에서는 부디 평안하기를.”
사람을 꽃과 나무로 만드는 것은 암브락사스의 권능이었고, 암브락사스는 천상으로 돌아간 지 오래였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깨닫자 재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노래를 이어나가던 여자는 재환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보며 머릿결을 정리했다.
“계속할까요? 아니면 저 오빠 병원 보내고 얘기할까요?”
그녀가 은은하게 미소 짓는 것을 본 순간, 재환은 본능적으로 한 가지 사실을 더 눈치챌 수 있었다. 그가 사냥꾼을 시험하고 있을 때, 사냥꾼 역시 그를 시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시험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재환은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다.
“당신도 정상은 아니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이현우를 등에 업은 뒤 병원으로 향했다. 자신의 방 안에 산송장을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