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64
회귀자의 점성술 (1)
4월 26일 오후 3시 15분.
병원의 주변에는 괴물을 사냥하다가 부상을 입은 환자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은 피부가 찢어지거나 팔이 부러진 경상자였지만, 그들 중에는 옆구리가 갈라지거나 팔다리가 잘린 중상자들도 적지 않은 비율로 섞여 있었다.
소수의 의료진과 군경의 요청으로 모인 자원봉사자들이 중상자를 살려내기 위해 필사적이었지만, 그들의 노력은 대부분 허사로 끝나기 마련이었다.
환자가 넘쳐나니 위생 관리를 제대로 하기 힘들었고, 중상자를 수술할 수 있는 외과 전문의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며, 아무리 유능한 외과 전문의일지라도 제대로 된 전자 기기들이 모두 고장 난 상태에서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수준의 설비로는 중상자들을 응급 처치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고, 대부분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는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암담한 사실은 의약품이 다 떨어지질 날이 머지않았고, 그날이 오면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 다들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역시 사냥꾼인 게 좋긴 좋네요.”
이미래는 환자용 침대에 누워있는 이현우를 바라보며 재환에게 말했다.
“타이밍이 좋았긴 했어도, 아무나 1순위로 병실 침대 받는 건 아니거든요. 사냥꾼이니까 누릴 수 있는 특혜인 거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하얀 가루가 담긴 비닐 지퍼백을 꺼내 자신의 입에 가루를 털어 넣었다.
재환은 미심쩍어하는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그 가루는 대체 정체가 뭐예요? 설마 영양제는 아닐 테고…”
“아, 이거요?”
그녀는 몽롱한 표정으로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 사이비 괴물들은 아가페라고 부르더라고요. 제조법 알아내느라 고생하긴 했는데, 지금은 제 입맛대로 개량해서 잘 쓰고 있죠. 대마초보단 기분 좋고, 헤로인보다는 순한 맛이거든요.”
그 말을 듣던 재환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에게 가루약을 권했다.
“하나 드실래요? 담배보단 훨씬 나을 걸요? 부작용은 줄이고, 기분은 적당히 나아지는 정도로 조절했거든요. 기분 좋은 대마초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대마초라……”
마약에 의존하는 것은 그가 가장 경계하는 일 중 하나였다. 마약이 주는 쾌락과 안락에 의지하다 보면 폐인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투 자극제를 쓰는 것도 자제했고, 앞으로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마약을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재환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대마초도 충분히 불법인 것 같은데… 그렇게 당당해도 되는 거예요?”
하지만 이미래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키득거리며 말했다.
“뭐 어때요. 경찰한테 자수할 것도 아닌데. 아니면 설마 이제 와서 경찰 아저씨들 무서워하는 건 아니죠? 어차피 제정신인 사람이면 제정신일 수 없는 게 당연한 세상인데, 이제 와서 불법이든 합법이든 거리낄 게 뭐가 있겠어요.”
뻔뻔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재환은 딱히 그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윤리와 율법이 빛바랜 시대였고, 멀쩡하던 사람도 한순간에 미쳐버리는 세상이라는 것은 그 역시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세상이긴 하지.’
재환은 그녀가 마약에 빠져버린 이유를 어렵지 않게 가늠했다. 회귀자에게 이 도시는 악몽이 반복되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나라고 미치지 않은 것도 아니니까. 내가 저 여자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은 없는 거지. 굳이 오지랖 떠는 것도 귀찮은 일이고.’
결론을 내린 재환은 마약에 관한 얘기를 더 하는 대신 화제를 돌리기로 결정했다. 그는 괴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었지 법률을 수호하는 보안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잡담은 이제 그만하고, 일단 나가서 얘기하죠. 그쪽이나 나나,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으니까요.”
시간 역행과 기억 보존에 관한 얘기는 민감한 주제였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미친 사람 취급당할 얘기였고, 증명하는 것에 성공한다고 해도 막대한 책임과 부담을 져야 하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좀 더 은밀한 곳에서 얘기를 나눌 것을 권했지만, 그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태연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저는 여기서 얘기해도 상관없어요. 남들 눈치 보는 버릇은 진작에 고쳤거든요.”
“…그래도 남들 듣는 데서 할 얘긴 아닌 건 같은데, 괜찮겠어요?”
“들어도 상관없어요. 알아봐야 소용없는 얘기고, 안다고 해서 당장 뭐가 바뀌는 얘기인 건 아니거든요. 죽었다 깨어나도 바뀌지 않을 얘기기도 하고요.”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씁쓸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졌고, 그 표정을 읽어낸 재환은 더 캐묻는 대신 병실에 비치된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 일단 앉아서 얘기하죠. 짧게 끝낼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계속 서서 얘기하는 것도 좀 그러니까요.”
재환의 권유에 이미래는 자리에 앉았고, 재환은 근처에 있는 의자 하나를 가져와 앉은 뒤 본론을 꺼냈다.
“자, 그러면… 그쪽은 얼마나, 그리고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어요? 언제부터 시간이 돌아가는 걸 알게 됐는지, 어떻게 알게 됐는지, 아는 대로 말 해줘요. 나 같은 사람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이미래는 재환의 말을 들으며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 재환의 말이 끝나자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이내 노래하는 목소리로 리듬감을 담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간이 되돌아가면… 기억이 떠올라요. 꿈결처럼, 몽롱하게.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이 악몽이 되풀이되는 거예요. 삼백 번, 사백 번, 오백 번… 어느 순간부터는 세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계속 반복되는 거죠. 내용만 조금씩 바뀌면서요.”
뿌연 안개처럼 음울한 목소리가 병실을 물들였고, 재환은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이게 특권인 줄 알았죠. 회귀자라니. 뭔가 주인공 같잖아요. 지금이야 같잖다는 걸 알아도, 그때는 뭐가 되든 될 줄 알았어요. 시간은 어차피 많고, 기회는 무한하니까요. 그때는 저 말고도 사냥꾼이 아홉 명이나 더 있었고, 그중에는 저처럼 회귀자인 사람도 한 명 있었거든요.”
재환은 ‘회귀자’라는 단어가 나오자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 회귀자란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보니까 아까 봤던 사람들 중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녀는 이미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사람은 용산구로 갔다가 실종됐어요.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용산구로 갔다는 얘기만 들리고, 어떻게 갔는지는 아무도 모르고요.”
용산구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재환은 한사랑에 대해 떠올렸다. 한사랑 역시 용산구로 간다는 얘기만 남겼을 뿐, 언제 어떻게 떠났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단체로 기억을 조작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냥꾼은 용산구로 갔다는 사실만을 남긴 채 실종되었다.
재환은 그 사실을 석연치 않아 하며 말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봤을 땐 어땠는지, 용산구에는 왜 가려고 한 건지는 혹시 기억나요?”
“그건…”
그녀는 뜸을 들인 뒤 대답했다.
“그건 기억이 잘 안 나요. 너무 옛날 일이기도 하고, 나도 기억하기 싫은 건 잘 기억 안 하거든요. 예를 들면…”
그녀는 눈을 감은 뒤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서울이 꽃밭으로 변하고, 나도 나무가 되는 경험 같은 거요. 식물인간이든, 인간식물이든 될 게 못 되더라고요.”
그 순간, 재환은 자신이 괴물로 만들었던 사람 중에 이미래가 포함되어있었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그녀에게 캐묻는 것을 그만뒀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었다고는 해도,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이미래는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을 눈치챘는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나라고 전부 다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이미 회귀한 횟수가 수백 번이 넘는데, 그걸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을 순 없는 거잖아요? 내가 무슨 컴퓨터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거죠.”
재환은 그녀의 말을 석연치 않아 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변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그녀의 말을 모두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지금 당장은 저 말을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거지. 만약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도, 그냥 기억이 잘못됐다고 말하면서 빠져나가면 그만인 거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재환은 의심에 사로잡히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되뇌었다.
‘일단은 이 여자 목적이 뭔지부터 알아보자. 사기꾼인지 아닌지는 그다음에 생각해도 되겠지.’
정리를 끝낸 재환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지금까지는 그냥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 와서 아는 척 한 거예요? 보니까 내가 회귀자라는 건 진작부터 눈치챘었던 것 같은데.”
“처음에는 그냥 미친 사람인 줄 알았으니까요.”
그녀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사람들이랑 말도 잘 안 섞고, 괴물 죽이는 거에만 미쳐있는데, 그런 사람이랑 굳이 말 섞을 필요를 못 느낀 거죠.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 어디 가서 죽어있었으니, 널리고 널린 정신병자인 줄 알았어요. 그쪽이 수락산에 있던 ‘보스 몹’을 잡기 전까진, 그런 줄 알았죠.”
“보스 몹이라…”
“네. 우리는 그렇게 불렀어요. 괜히 무거운 이름 쓰는 것보단, 보스 몬스터라고 부르는 게 좀 쉬워 보였거든요. 왠지 죽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성자나 별의 존재, 외계 마왕 같은 이름은 너무 거추장스럽기도 하고요.”
“우리라면, 강북 쪽 사냥꾼들 말하는 거죠?”
재환은 이미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뒤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면 강북에는 원래 사냥꾼이 10명 있었다고 했는데, 다른 여섯 명은 다들 어떻게 된 거예요? 그 회귀자라는 사람도 포함해서요.
“세 명은 카니발 때문에 영영 괴물이 되어버렸고, 두 명은 서울 중심부로 갔다가 실종됐고, 한 명은 식물인간이 됐어요. 식물인간이 된 한 명 빼고는, 전부 카니발 때문에 그런 거고요.”
“카니발이요?”
재환이 의아한 목소리로 되묻자 이미래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카니발이요. 오늘 그쪽한테 말을 건 것도, 카니발에 대해 얘기해주려고 온 거에요. 사냥꾼이 괴물이 되는 게 제일 끔찍한 일이니까요.”
“…그 카니발이라는 게, 도대체 뭔데 그런 거예요? 그냥 축제인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재환이 불길해 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경쾌하게 대답했다.
“6월에서 7월 사이에, 서울 중심부에서 보스 몬스터 하나랑 부하 괴물들이 다 같이 우르르 뛰쳐나오는, 일종의 퍼레이드 같은 거예요. 우리 입장에서는 다 같이 자살해야 되는 날이지만요.”
재환은 다 같이 자살해야 한다는 말에 위화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냥 죽여 버리는 건… 안 되나 보죠?”
“이미 많이 해 봤죠. 그런데 무슨 수를 써도 안 되더라고요. 나는 이제 그냥 포기했어요.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괴물 되는 거, 별로 보기 좋은 일은 아니더라고요.”
경쾌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우울하게 들렸다. 재환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와 그녀의 회귀자 동료가 어떤 심정이었을지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죽고 싶을 만큼 고생했겠지. 그러다가 마음이 꺾인 거고.’
딱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어설프게 동정할 수는 없었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괴물을 사냥해야 한다는 원칙 자체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그녀를 위로하는 대신 카니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묻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그 카니발이란 건 이번에도 6월이나 7월쯤에 시작되는 거죠? 그러면…”
“아니요, 이제는 아니에요. 별자리가 바뀌었거든요.”
이미래는 재환의 말을 끊으며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그쪽이 수락산에 있던 보스 몹을 죽인 날, 별자리들의 위치가 바뀌었어요. 그리고 별자리들의 위치로 미래를 읽어내면… 카니발이 언제쯤 시작될지 꽤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고요.”
그 말에 재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난 별자리 점 같은 거 안 믿는데, 다른 증거는 없어요?”
그 말에 이미래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시간이 넘쳐나다 보면, 잡기술에 익숙해져요. 노래나, 요리나, 약 만드는 기술 같은 거요. 그중에서도 제일 잘하는 건… 역시 점성술이죠. 하늘에 뜬 별의 위치랑 밝기로 땅에 내려온 보스 몹들의 의도를 읽어내는 거예요. 지금까지 틀린 적은 없으니, 믿어봐서 손해 볼 건 없을 거예요.”
재환은 여전히 미심쩍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예지력으로 미래를 가늠할 수 있었으니, 저 여자 역시 미래를 예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틀리면 그때 가서 따져도 되겠지.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 얘기니까.’
결론을 내린 재환은 그녀의 말을 추궁하는 대신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정확히 언제쯤 카니발이 시작되는 건데요?”
그 말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오늘이 4월 26일이니까…”
그녀는 나른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내일이나 모래 안에 시작되겠네요. 그 전에 자살하는 걸 추천할게요. 미치거나 괴물이 되는 것보단 죽는 게 낫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