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65
회귀자의 점성술 (2)
“자살이라…”
재환은 이미래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대답했다.
“자살하기 전에, 그 카니발이란 게 뭔지 좀 더 자세히 얘기해줘요. 무슨 괴물이, 어떤 방식으로 나오는지 정도는 알아야 죽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재환은 지금까지 협조적이었던 이미래의 모습을 떠올리며 질문했다. 하지만 이미래는 카니발에 대해 묻는 재환의 말에 칼같이 대답했다.
“싫은데요?”
갑작스럽게 바뀐 분위기에 적응할 틈도 없이, 그녀는 날이 선 말투로 재환에게 쏘아붙였다.
“아까 말했잖아요. 나한테도 하기 싫은 얘기 정도는 있다고. 기억하기 싫은 얘기일수록 더 그렇죠. 성폭행당한 사람한테 어떻게 당했는지 말해보라는 꼴이니까요.”
노골적인 비유에 재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긋나긋한 태도를 보였던 사람이 저렇게 돌변하자 그 역시 불쾌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누가 막아야 하는 건 맞잖아요. 언제까지고 자살만 할 수도 없는 거고.”
“아니요. 그냥 자살하는 게 나아요. 나랑 우리 팀원들이 수백 번 죽거나, 죽고 싶어 하면서 얻어낸 결론이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독기어린 눈빛으로 재환을 노려봤다.
“혹시라도 카니발을 상대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쪽이 괴물이 되면, 남은 사람들만 피해 보는 거니까요.”
재환은 매서운 기세로 말을 쏘아내는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던 이미래는 자신이 흥분했다는 사실을 자각한 뒤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오늘 그쪽한테 자살하라고 권유하는 것도… 그래서 그런 거예요. 사냥꾼 괴물이 제일 끔찍한 법이고, 카니발에서 괴물이 된 사냥꾼 중에는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있거든요. 시간이 되돌아가도… 괴물로 남은 거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재환은 그녀의 심리 상태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수백 번을 죽어가며 괴물을 사냥하다 보니 정신이 이상해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끔찍한 경험이었겠지. 그러다 보면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그녀의 사정을 짐작했음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내일이나 모래에 카니발이라는 이름의 재앙이 일어나는 것이 확실하다면, 경험자의 정보가 필요한 것 자체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한편으로는 조바심이 생기는 것을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차라리 고문이라도 해 볼까? 어차피 이 이상 얘기해줄 생각이 없으면… 지금처럼 약해져 있을 때 정보를 뽑아내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이미래를 제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괴물을 사냥해 피를 마시는 일에 관심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피지컬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녀의 팔다리를 부러뜨린 뒤 죽지 않을 정도로 고문하는 것은 간단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재환은 자신이 떠올린 생각이 미친 짓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니야. 정신 차리자. 괴물 사냥하기도 바쁜데, 사람 상대하느라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그는 이미래 역시 자신의 폭력 때문에 다친 환자라는 점과 그녀의 정신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떠올리며 자신에게 되뇌었다.
‘…그러다 아예 미쳐버리거나, 폐인이 되면 나만 손해인 거야. 겨우 나처럼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함부로 대하는 건 미친 짓이지.’
그렇게 재환이 생각이 잠겨있을 때, 이미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요.”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생각하기 싫어서 얘기 안 하는 거니까, 기분 풀어요. 요즘은 너무 깊게 생각하면… 머리가 좀 맛이 가거든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붕대를 감은 머리를 가리키자 재환은 그녀에게 따지고 들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그녀가 이마에 붕대를 감은 이유는 그가 그녀의 이마에 경찰용 리볼버를 쐈기 때문이었다.
재환이 자신이 빚을 졌음을 깨달으며 침묵하자 그녀는 한결 명랑해진 말투로 말을 걸었다.
“대신에 카니발이 뭔지, 맛보기로 좀 보여줄게요. 카니발을 본 사람들이 대충 어떤 꼴이 되는지 정도는 보여줄 순 있거든요.”
“그래 주면 고맙긴 한데… 괜찮겠어요? 힘들어하는 것 같던데.”
“괜찮아요. 그 대신 약속 하나만 해요.”
이미래가 흐릿하게 미소 지으며 말하자 재환은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약속인데요?”
“이 병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 몸에 손대지 않기로요.”
“아니, 내가 왜…”
재환이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짓자 이미래가 곧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손찌검 말하는 거예요. 때리거나, 팔을 꺾거나, 사지를 찢는 거, 이미 익숙하잖아요? 내 몸에 손대지 말라는 건 그런 뜻이었어요.”
그녀는 이마에 감은 붕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머리에 총 쏘고, 내 머리 발로 밟은 거, 아직도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녀가 지난 일을 꺼내자 재환은 할 말을 잃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고는 해도, 폭력을 썼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재환은 다른 말을 덧붙이는 대신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미안해요. 미래 씨랑 동료 분들 함부로 대한 거, 사과할게요. 정말 미안합니다.”
재환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을 때, 그는 자신의 귓가에 키득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의 눈에 이미래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농담이에요. 어차피 금방 죽을 건데 신경 써서 뭐하겠어요. 평소에 약은 잘 챙겨 먹고 다녀서 별로 아프지도 않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웃는 것을 그만두며 얘기했다.
“자… 그러면 농담은 여기까지만 하고, 잠깐 목 좀 풀고 시작할게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목을 풀기 시작했다. 돌고래나 낼 법한 고음을 내는가 하면, 맹수나 낼 법한 저주파를 흉내 내는 것이 꽤나 기괴하게 보였다.
그리고 목을 푸는 것을 끝낸 이미래는 이현우의 귓가에 노랫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소절이 들렸을 때, 재환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음색이 아름다웠기 때문은 아니었다.
저 노랫소리의 음역대가 사람이 아니라 성자가 사용하는 음역대였기 때문이었다.
감미롭다 못해 녹아버릴 것만 같은 목소리로 이미래가 속삭였다.
[일어나. 일어나야지. 장기자랑할 시간이야.]지력이 높아진 덕분일까. 그는 본능적으로 저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것임을 직감했다.
‘지금이라도 막아야 하나? 마음 같아서는 막는 게 맞긴 한 것 같은데……’
재환은 잠시 이미래가 성자나 권속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는 사냥꾼 특유의 역겨움만 느껴질 뿐, 괴물이나 성자에게서 느껴지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그녀와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이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일단은… 일단은 가만히 있어 보자. 지혜도 올릴 만큼 올렸고, 못 볼 꼴은 이미 충분히 봐뒀으니까.’
그렇게 이미래가 노래를 부르도록 놔뒀을 때, 어느 순간부터 이현우의 팔다리가 연체동물처럼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흐느적거리던 팔다리는 스스로 오그라들더니 몸통을 향해 말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끄흑. 커헉. 끄으윽.”
팔다리가 몸통으로 완전히 말려들어 가자 이현우는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팔다리에 이어서 머리까지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하자 보다 못한 재환이 이미래를 말렸다.
“그만해요. 뭘 보여주고 싶은 건지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해요.”
하지만 돌아온 것은 감미로운 노랫소리뿐이었다.
[쉿. 조용히. 장기자랑이 한창이잖아요.]그녀는 마치 예상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노래를 이어나갔다. 눈이 충혈되어있고, 코에서는 코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노래를 계속했다.
[한번 시작했으면, 반드시 끝을 봐야 돼요. 반드시. 완성을 해야 되는 거죠.]이미래의 노래가 계속되자 이현우는 이제 몸통만이 남았다.
그리고 몸통만 남아 부풀어 오른 이현우의 배에서 난초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돋아났고, 재환은 이 난초를 닮은 ‘무언가’가 사라졌던 이현우 팔다리와 머리였음을 눈치챘다.
‘미쳤군…’
그는 사람의 뼈와 살로 이루어진 난초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제정신이 아니야. 이 여자도, 이걸 말리지 않은 나도, 제정신이 아닌 거지.’
그리고 마침내 이미래의 노래와 이현우의 ‘장기자랑’이 끝났을 때, 이현우는 뼈와 살로 이루어진 난초가 되어 침대 위에 장식되었다.
그리고 재환은 사람으로 만들어낸 난초 화분을 보며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뭐 한 건지 설명해 봐요.”
그는 허리춤에 차 뒀던 경찰용 리볼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설명에 따라선, 약속했던 거 못 지킬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노래를 끝낸 이미래는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코피를 닦아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작품을 완성한 예술가나 지을 법한 만족스러움이 묻어나와 있었다.
“괴물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흉내 낸 거예요. 반쯤 강제로 배운 것도 있고, 일부러 배운 것도 있죠. 이미 말했다시피, 시간이 넘쳐나면 이런 잡기술만 늘어나거든요.”
“그거 말고도 해야 할 말이 있잖아요.”
재환은 자신의 불쾌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왜 굳이 이런 방식으로 카니발을 보여 준 건지, 그 얘기부터 했어야죠. 이 사람도 그쪽 동료였는데, 이렇게 괴물로 만들어도 되는 겁니까?”
“말로 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더 와 닿으니까요. 그리고… 현우 오빠는 괴물이 된 게 아니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난초가 된 이현우의 ‘잎사귀’를 쓰다듬었다.
“사람을 생김새로 판단하는 건 나쁜 버릇이죠. 생긴 건 이래도, 사람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리고 이미래는 재환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노래하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알고 있잖아요? 이 정도는 어차피 시간이 되돌아가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 기억도, 상처도 없이, 깔끔하게 원상복구 될 거예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말이죠.”
이미래는 그렇게 말하며 재환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그의 표정을 읽어낸 뒤 은은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눈빛 좋네요. 그래요, 카니발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은 다들 그런 눈빛이었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예언 하나만 할게요.”
사근사근하던 목소리는 이내 잘 벼려낸 칼날이 되어 재환의 귓가에 꽂혔다.
“카니발을 보게 되면, 내가 부린 마술 정도는 귀여워 보일 거예요. 그리고 분명 후회하겠죠. 아, 그때 죽었어야 하는데, 하고 말이에요.”
이미래의 말이 끝나자 병실에 정적이 흘렀다. 재환은 난초가 된 이현우를 흘끗 바라본 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진 알겠어요. 그 카니발이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겠고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미래를 밀어냈다.
“그래도 지금 자살하진 않을 겁니다. 나는 무슨 수를 써도 괴물을 죽이러 갈 거고, 그게 이 지옥 같은 악몽을 끝낼 방법이니까요.”
한걸음 뒤로 물러선 이미래는 무표정한 얼굴로 재환을 바라봤다. 그녀는 잠시 그의 얼굴을 응시하더니 품에서 알약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래요. 이 이상 말려봐야 소용없겠네요. 그렇게 카니발이 정 보고 싶다면, 이거 챙겨가요.”
그녀는 그의 손에 알약을 쥐여주며 말했다.
“씹으면 1초 안에 죽는 독약이에요. 살아서 못 볼 꼴 볼 바에는, 적당한 타이밍에 죽는 게 최고거든요.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겠죠?”
재환은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예지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알약을 먹은 자신이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모습을 바라본 뒤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쓸 일이 없는 게 최선이지만… 그래도 챙겨줘서 고마워요.”
그 말에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죽을 타이밍 잘 잡는 거, 명심해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알약을 하나 더 꺼내며 말했다.
“그러면 카니발이 끝나면 나중에 다시 봐요. 나는 먼저 퇴근할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알약을 깨물었고, 재환은 쓰러진 이미래와 난초가 된 이현우를 훑어본 뒤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저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겠지. 그러니까 더 개 같은 거고.’
그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내일모레에 일어날 카니발에 대비하려면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과 죽음이 농담거리만도 못해진 세상에서 장례식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