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66
카니발이 온다 (1)
4월 27일 오후 7시 21분.
강북으로 돌아온 김수만은 부상과 피로로 가득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지친 몸으로 의자에 앉은 그는 동서울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 정도로 미친놈인 줄 알았으면 아예 안 가는 거였는데…’
그는 한숨을 내쉬며 지난 일을 후회했다.
‘욕심이 과했지. 그냥 적당히 빠져나온 다음에 폭탄으로 죽여 버리면 되는 거였는데… 너무 욕심을 부렸어. 세상일이 항상 술술 풀리란 법은 없는 건데, 너무 자만했던 거지.’
지금까지 사냥꾼을 포섭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흘러갔다. 사냥꾼도 결국은 인간인 이상 욕구와 욕심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고, 그들이 지닌 욕망을 자극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연륜으로 쌓아온 전공 기술이었다. 그는 이 협상 기술에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자부심은 단 한 명의 광인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고, 그는 몸뿐만이 아니라 자존심까지 상처를 입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지.’
그는 지난 일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적어도 우리 애들을 건드린 대가는 치르게 해줘야 되니까. 그쪽이 먼저 선을 넘었으니…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냥 병신 되는 거야.’
이미래가 약물로 사망하고, 이현우의 몸이 기괴하게 비틀렸다는 소식은 그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참혹한 현장에 마지막으로 있었던 것이 그 미친 사냥꾼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각오를 확고하게 굳혔다.
‘준비는 끝났어. 이제 찬웅이만 오면 돼. 폭탄으로 먼저 부상을 입히고… 혹시라도 살았으면 나머지는 직접 마무리하면 그만인 거야.’
그렇게 그가 각오를 다지며 의자에 앉아있을 무렵, 그는 창밖에서 기이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온다…”
“카…이…온…”
“…니…다!…카…발…!”
“…이…발….온…”
김수만은 눈살을 찌푸리며 사무실에 비치된 와인과 와인잔을 꺼내 잔을 채웠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카니발’ 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다.
‘세상이 미쳐가니 별게 다 들리는군.’
그는 와인을 마시며 창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미친놈들이 미친 소리 하는 게 한두 번이어야지. 저런 거에 일일이 신경 쓰면 제 명에 못 살지. 제 명에 못 살고말고.’
그렇게 김수만이 와인잔을 비우고 있을 때, 사무실의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는 것과 함께 강찬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좀 늦었군. 오는 길에 별일 없었나?”
강찬웅은 김수만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입을 열었다.
“오늘은 좀 시끄럽더라고요. 다들 무슨 축제라도 있는 것처럼, 카니발, 카니발 거리기나 하고 말이죠. 카니발, 카니발… 빌어먹을 카니발!”
강찬웅이 신경질적으로 카니발을 욕하자 김수만이 되물었다.
“카니발?”
“네…”
강찬웅은 숨을 고른 뒤 한결 차분해진 말투로 대답했다.
“카니발이 온다고 하더군요. 다들 뭐에 홀리기라도 한 건지… 하도 듣다 보니까 저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이라…”
김수만은 무의식적으로 ‘카니발’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는 인상을 떠올렸지만, 아무리 기억을 곱씹어 봐도 사전적 의미 이상의 기억을 떠올리지는 못했다.
‘술을 작작 먹어야겠어. 데자뷰도 자주 겪으면 병이라고 하니까. 나까지 미쳐버리면 우리 집안은 누가 먹여 살리겠어.’
그는 이 미쳐가는 세상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해왔던 일들을 곱씹으며 각오를 다졌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약한 생각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미래는 죽었고, 현우는 ‘식물인간’이 됐어. 마지막에 현장에 있던 건 ‘그 새끼’였고.”
김수만은 본론을 꺼내며 강찬웅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창밖에서는 카니발을 외치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 새끼는 완전 미친놈이야.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여자나 권력 때문에 죽인 것도 아니지. 아무 이유도, 맥락도 없이 사람을 죽인 거야. 이대로 두면 그다음은 우리 차례겠지.”
김수만은 ‘그 남자’를 경멸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두려워했다.
목적을 제대로 밝히지도 않고, 요구사항도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짓은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이미래가 독약으로 사망하고, 이현우의 몸이 기괴하게 뒤틀렸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김수만은 이 일을 ‘그 남자’의 짓으로 확신했다.
김수만의 눈에 윤재환은 테러범이나 사이코패스와 동급의 위험인물이었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막아야 돼.”
김수만은 폭발물 창고의 열쇠를 꺼내며 말했다. 머릿속에서는 카니발 소리가 점점 더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오늘 밤, 그 새끼가 사는 숙소에 폭발물을 설치할 거야. 그 새끼는 밤에 사냥하러 나가니까, 그 사이를 노리는 거지. 할 수 있겠지?”
“아…”
강찬웅은 그 말의 말이 끝나자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카니발이 오네요.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김수만은 맥락 없이 들려오는 대답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강찬웅의 눈이 흐리멍덩하다는 것을 눈치챈 뒤 말을 이었다.
“어이, 강찬웅이, 정신 차려.”
김수만은 강찬웅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카니발은 여전히 김수만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자네 지금 내 말을 듣고는 있는 거야? 아무리 충격이 커도 딴청까지 피우면 안 되지.”
“그렇죠. 카니발이 오니까요.”
“아니, 아까부터 자꾸 무슨…”
강찬웅을 말리려던 김수만은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귓가에서 영문 모를 단어들이 점점 또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건… 이건… 대체…?’
그는 입을 틀어막은 채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ㅋㅏ늬ㅂㅏㄹ? 카아니이발… 아니, 아니지. 카-니-발. 아…! 그래…!’
그는 자신이 들은 목소리가 무엇인지 확신했다.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그렇게 김수만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카니발’을 되뇔 때, 강찬웅이 생기가 담긴 목소리로 달빛을 바라봤다.
“카니발이 오네요.”
그는 멍한 시선으로 창가로 다가가며 말했다.
“카니발, 퍼레이드, 축제. 카, 니, 발.”
“카니발?”
“네. 카니발.”
김수만은 멍한 시선으로 달빛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역시 생기가 담긴 목소리로 열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그렇지 카니발이 오지.”
그는 이제 창밖에서 군중들이 외치는 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저들이 카니발을 외치는 이유는 카니발을 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이 온다고요! 카니발!”
“카니발이 온다! 카니발! 카니발이 온다!”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김수만은 강찬웅과 함께 거리로 나가며 말했다.
“아… 카니발!”
거리의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축포’를 터트리고 ‘축가’를 부르며 카니발을 기념하고 있었다.
“카니발이 온다. 카니발이 온다!”
두 사냥꾼은 군중 속에 합류하여 카니발을 찬미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카니발을 외쳐야 한다는 강박만이 남아있었다.
* * *
4월 27일 오후 8시 21분.
거리의 곳곳에서 카니발을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재환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주 미쳐 돌아가는구만….’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거리의 모습을 바라봤다. 거리의 곳곳에서는 미쳐버린 사람들이 카니발을 연호하고, 횃불을 들어 행진하면서, 넝마로 만든 깃발을 휘저어 카니발이 올 것임을 연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 사이에는 허공에 총과 박격포 등을 발사하여 축포를 터트리는 군인들도 섞여 있었고, 재환은 그 모습을 보며 담배 연기를 내쉬었다.
‘이게 다 그 카니발이란 거 때문이겠지. 이제 좀 있으면 카니발이 시작되니까, 다들 미쳐버리게 된 걸 테고.’
그는 이 소리가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는 전조 현상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들짐승들이 울부짖는 것처럼,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 역시 카니발의 전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마는 것이다.
재환은 거점으로 삼은 건물의 옥상에서 거리를 내려다봤다.
‘자살하는 걸 빼면, 선택지는 두 가지지.’
그는 거리 곳곳에서 흥분한 군인들이 박격포와 대전차 로켓으로 불꽃놀이를 벌이는 모습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이대로 카니발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용산으로 가서 다른 사냥꾼이나 무기를 찾아보거나. 지금이라도 빨리 결정하는 게 맞겠지.’
그는 두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했다.
카니발이 이미래가 말했던 대로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의 재앙이라면 용산으로 도망치는 것이 나을 것이고, 대응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이대로 카니발을 지켜보는 것이 나은 선택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가 부족하고, 시간을 촉박한 상황임에도 그는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중하게 결정하려던 그의 생각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카니발’ 소리에 방해받고 말았다.
“카-니발이 온다!”
“카니발! 카-니발이 온다!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카니발카니발!”
사방에서 들려오는 카니발 소리를 들으며 그는 담배 연기를 내쉬었다.
‘아, 저 빌어먹을 카니발 소리……’
그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떨어뜨린 뒤 신경질적으로 밟아 불을 꺼트렸다.
‘그래, 용산으로 갈 땐 가더라도, 카니발을 한 번 보긴 봐야지. 그 여자가 거짓말한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생각보다 무능한 걸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옥상에 널브러진 군인들의 시체를 훑어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기껏 고생해서 준비했었는데, 안 보고 가는 것도 섭섭한 일이니까. 내 준비를 망친 분풀이는 하고 가야지.’
그는 하루 동안 최선을 다해 카니발에 대비했다. 군대와 경찰을 설득해 시민들을 무장시키고,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방어선을 구축하여 괴물들을 막아내려 했다.
이미래가 자살하고, 이현우의 몸이 기괴하게 비틀렸던 일 때문에 용의자로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긴 했지만, 그는 지금까지 괴물을 사냥해온 업적을 인정받아 간신히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발품을 팔고, 사람들을 설득했던 일들은 카니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허사로 돌아갔다. 해가 지고 달이 뜨기 시작하자 시민과 군인들이 카니발을 연호하면서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재환은 자신이 설득한 사람들이 미쳐버렸던 순간을 착잡한 심정으로 떠올렸다.
그들이 자신에게 카니발을 준비하자고 하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아무 말 없이 거리로 나가려고만 했다면 그들을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끈질기게 카니발을 준비하러 가자고 권유했고, 그 결과 옥상에는 시신들 즐비하게 되었다.
둥! 둥! 둥! 둥! 둥! 둥! 둥!
재환은 서울의 중심부에서 북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바라봤다. 그러자 뿌연 안개에서 괴물들로 이루어진 행렬이 나오기 시작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이제 시작인 건가…’
기이한 관악기 소리와 북소리가 거리를 메우기 시작하자 그는 박격포를 장전했다.
‘그래, 축제가 있으면 축포도 있어야지.’
그는 괴물의 행렬을 향해 박격포를 발사했다. 그리고 괴물로 이루어진 행렬 중 일부가 박격포에 맞아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며 각오를 다졌다.
‘이제 와서 겁낼 게 뭐가 있겠어. 죽으면 죽는 거고, 미치면 미치는 거지.’
그는 또다시 박격포를 발사했고, 폭음과 괴성이 거리에 연달아 울려 퍼졌다.
그리고 다시 박격포를 장전하려 했을 때, 그는 박격포 탄환을 아껴뒀어야 했음을 직감했다.
뿌연 안개 너머에서 빌라 하나 정도 크기의 괴물이 나타났고, 그 괴물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끔찍한 사실은, 저 괴물이 성자가 아니라 성자의 하수인인 권속에 불과했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