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67
카니발이 온다 (2)
재환은 지금까지 권속들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그가 만난 권속들은 다른 괴물들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했고, 크기는 사람보다 조금 더 큰 정도에 불과했으며, 힘이나 능력 역시 다른 괴물보다 눈에 띌 정도로 뛰어나다고 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권속이 평범한 괴물들과 다른 점은 성자의 뜻을 따르는 하수인이라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으며, 성자에 비하면 조금 번거로운 수준에 불과한 장애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울의 중심부에서 괴물들의 행렬이 여덟 갈래로 뻗어 나오고, 그 행렬의 중심에서 권속이 괴물들을 이끄는 모습을 보자 그는 자신의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도구가 만드는 방법에 따라 기능이 달라지고, 사람이 키우는 방식에 따라 능력이 달라지는 것처럼, 권속 역시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형태가 달라질 수 있었다.
그 증거로 서울의 중심부에서 나타난 권속들은 움직이는 건물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거대했고, 보는 것만으로도 지혜를 시험받을 정도로 흉측했다.
성자가 진정한 의미의 괴물이라면, 권속은 이들이 직접 빚어낸 수족이었다.
[사냥 대상: 뒤흔드는 몽상, 데이드럼의 조율사] [분류: 권속] [성자의 축제를 준비하는 무대 제작자.] [사람과 사물을 축제를 위한 소품으로 사용한다] [필요 지혜: 29]속삭임의 목소리를 듣던 재환은 박격포를 쏘기 전에 ‘데이드럼의 조율사’라고 불린 권속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저들을 무작정 공격하기 전에 약점과 특징을 파악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자가 아니라 권속이라…’
그는 성자만큼이나 이질적으로 생긴 권속들의 모습을 훑어보며 결론을 내렸다.
‘그래… 성자만 지혜가 필요한 게 아니긴 하지.’
권속의 모습은 구름처럼 흐리멍덩했다. 몸의 주변에 돋아난 털 뭉치는 안개처럼 불투명했고, 몸의 곳곳에 돋아난 크고 작은 신체 부위들은 제대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불가해 했다.
다만 온몸에 돌기처럼 돋아난 크고 작은 드럼만이 이 괴물에게도 형체란 것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단서였다.
‘조율사라… 지혜가 있어서 다행이야. 저걸 그냥 봤으면 나도 미쳐버렸겠지.’
권속의 생김새를 훑어보던 재환은 속삭임이 말했던 내용을 토대로 권속의 행동을 관찰했다.
속삭임이 ‘무대 제작자’라고 말했던 이 괴물은 몸에서 뻗어낸 크고 작은 촉수들로 자신의 몸에 돋아난 드럼을 두들겨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둥! 둥! 둥! 둥! 둥! 둥! 둥!
그리고 북소리가 리듬을 이뤄 서울의 거리를 뒤흔들자 머리에 북이 달린 괴물들이 북소리의 리듬에 맞춰서 주변에 있는 건물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아, 그래… 뭘 조율하는진 대충 알겠어…’
그는 괴물들이 들러붙은 건물들이 살점으로 이루어진 악기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카니발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한 거야. 지금은 무대를 만드는 중인 거고, 본무대는 주인공이 나오고 난 다음에 시작되겠지.’
시민들은 괴물들이 거리에 늘어선 건물에 차례대로 들러붙는 모습을 보며 환호했다. 그들은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 축제가 시작되려 하자 목청이 터져나갈 정도로 카니발을 경외했다.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축제다! 카니발! 모두 다 카니발! 축제를!”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악기를 준비하자! 폭죽을 터트리자!”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별께서 오신다! 귀빈께서 이곳에 임한다!”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노래를 부르자! 더 크게 외치자! 카니발이다!”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시민들의 열정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권속의 몸속으로 뛰어드는 이들도 있었고, 북소리에 취해 몸이 괴물로 변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아예 문자 그대로 자신의 몸을 태워서 축제를 장식하는 양초가 된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이현우가 난초로 변해버렸던 것처럼, 자신의 몸을 비틀어 스스로 악기나 무대 장식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둥! 둥! 둥! 둥! 둥! 둥! 둥!
사방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괴물들이 거리를 장식하며, 시민들이 미쳐 날뛰는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축제의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아주 미쳐 돌아가는구만…’
카니발이 시작되려 하자 이 도시의 모든 것들이 미쳐버리고 있었다. 상식은 무너지고, 세상은 제멋대로 형태를 바꿨다.
마치 지금까지 일궈놓은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도 사물도 모두 축제를 위한 소품으로 남김없이 변해갔다.
그리고 서울의 한복판에 강림한 이 봄의 제전을 바라보던 재환은 이성의 끈을 놓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냈다.
‘카니발… 축제… 제사… 제전… 설계도…’
지력이 높아진 덕분인지 인지할 수 없었던 지식들이 소용돌이가 되어 머릿속을 휘저었고, 이성의 끈을 부여잡던 재환은 머리가 터져버리기 전에 지혜를 발휘해 이를 무시해야만 했다.
‘정신 차리자. 세상이 미쳐 돌아가도…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거야.’
정보의 홍수에서 살아남으려면 의식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것들도 있는 법이었다.
소시지를 먹을 때 소시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필요가 없고, 악수를 나눌 때 손에 묻은 세균의 숫자를 셀 필요가 없는 것처럼, 사람과 사물이 형태를 잃는 이 축제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하기에도 바빴다.
‘그래, 일단은 포탄부터 다 쓰고 나서 생각하자.’
그는 축제의 흐름에 몸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며 숨을 들이켰다.
‘축제가 한창인데 구경만 하고 있으면 섭섭하지.’
혼자서는 이 축제를 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거대한 괴물의 물결에 비하면 그는 조약돌에 불과했고, 조약돌 하나로 홍수를 막아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괴물을 상대해왔던 경험은 그가 이성을 가다듬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처음 괴물을 죽였을 때도, 괴물이 된 사냥꾼을 상대했을 때도, 암브락사스와 블레인에게 살해당했을 때도, 그는 항상 미물이나 다름없는 약자였다.
천상에서 내려온 괴물들이 이 도시에 강림한 이상, 이 사실은 영원토록 바뀌지 않을 진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서울 전역에 괴물이 흘러넘치고, 모든 게 미쳐 돌아가는 와중에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되새길 수 있었다.
‘죽을 땐 죽어도 축포는 쏘고 죽어야지. 지금까지 항상 그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인 거야.’
세상이 내일 멸망해도 누군가는 사과나무를 심는 것처럼, 재환은 권속을 향해 박격포를 겨눈 뒤 준비해 둔 박격포 탄환을 장전했다.
‘통할 거야. 통해야지.’
발사된 박격포가 허공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며 그는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
‘이걸 맞으면 성자도 비명을 질렀으니까. 상대가 아무리 괴물이어도, 살이 찢어지고 피가 흐르면 죽일 수 있어.’
폭약은 언제나 옳았다.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이라는 점은 언제나 변하지 않았다.
언젠가 새로운 무기를 발견하거나, 한계 이상으로 근력을 올릴 수 있게 되는 게 아닌 이상, 폭발물을 쓰는 것은 언제나 그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박격포가 권속에게 명중하고, 권속의 상반신이 터져서 피와 살이 쏟아져 나오자 나직하게 환호했다.
‘좋아, 통했어.’
거대한 괴물을 상대로 근접전을 벌이는 것은 그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리 빨리 움직일 수 있고, 인간을 초월한 근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상대가 코끼리보다도 거대하다면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니 박격포 한 발로 거대한 권속을 쓰러뜨렸다는 점은 더할 나위 없는 호재였고, 이 악몽 같은 축제를 끝낼 수 있는 실마리였다.
‘일단 계속 쏘고 보자. 큰 놈들부터 박격포로 정리하고 나면, 작은 놈들 잡는 건 시간문제니까.’
그렇게 떠오르는 의욕과 함께 박격포를 재장전하려던 그때, 그는 가슴 한편에 의혹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지… 아직 기뻐하기엔 이르지.’
그는 박격포를 재장전하려는 것을 잠시 멈춘 뒤 생각에 잠겼다.
‘설마 그 여자가 이런 수를 안 써봤을 리가 없으니까. 머리가 뇌수 대신 마약으로 절여진 게 아니면… 이런 방법을 안 써봤을 리가 없지.’
폭발물을 사용해 괴물을 처리한다는 발상은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었다. 군필자라면 가장 먼저 떠올릴 방법이었고, 군필자가 아니더라도 의무 교육을 받은 정도의 지식이 있다면 어린아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설령 군사 부분에 완벽하게 무지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회귀자로서 무수히 많은 회귀를 거듭한다면 한 번쯤은 시도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 여자가 아예 저능아거나, 거짓말을 한 거였으면 좋겠지만…’
그는 이를 악문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겠지.’
이미래와 다른 사냥꾼들에게 어떤 능력이 있었는지, 그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박격포를 쏘고, 폭약을 설치하는 정도의 일도 안 해봤을 리는 없다는 결론이 나오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쏠 수 있을 만큼은 쏘고 보자.’
그는 박격포로 다른 ‘데이드럼의 조율사’를 조준하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아직 포탄은 남아있으니까. 어차피 아껴봐야 짐 덩이만 되는 거, 쏠 수 있을 만큼은 쏴 둬야지.’
그렇게 각오를 다잡으며 박격포를 장전하려 할 때, 그는 북소리에 묻혀있던 관악기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는 것을 들으며 귀를 의심했다.
‘이건…’
그는 관악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관악기 소리는 서울의 중심부를 둘러싼 짙은 안개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건 또 누가 연주하는 거지?’
서울의 중심부는 그에게도 미지의 영역이었다. 다른 곳보다도 안개가 훨씬 짙었던 탓에 육안으로는 제대로 보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곳이고, 지력이 높아진 이후에는 성자들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탓에 본능적으로 꺼림칙함을 느꼈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이하면서도 기괴한 음색의 관악기 소리가 화음을 이뤄서 들려오고 있을 때, 그는 시선을 돌리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며 박격포의 방향을 돌렸다.
‘온다…’
그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박격포를 겨냥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면서 정신이 날카로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카니발… 카니발이 온다…’
서울 중심의 안개를 뚫고 온몸이 관악기로 이루어진 조율사들이 등장했을 때, 그는 서울 중심의 안개가 흐릿해지면서 마천루 높이의 ‘무언가’가 수십 개의 촉수를 들어 올려 지휘를 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냥 대상: 뒤흔드는 몽상, 데이드럼] [분류: 추종자] [악상(樂想)의 성자. 노래와 축제로 달을 찬미한다.] [연주를 끝내게 두지 말 것] [필요 지혜: 49]그리고 데이드럼이라 불린 성자에 의해 서울이 연주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제 누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알 수 있었다.
음악이 있고, 판이 깔렸으니, 이제 서울을 악보로 삼은 카니발의 막이 오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