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68
카니발이 온다 (3)
마천루 높이의 성자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까마귀 성자인 크로드 역시 크기라면 어림잡아 수백 미터는 넘어 보였고, 만개한 암브락사스는 서울 전역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러니 서울의 중심부에서 마천루 크기의 괴물이 나타난 것 자체는 놀라워해야 할 일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재환은 데이드럼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데이드럼.
온몸에 돋아난 안개 뭉치로 잿빛 연미복을 만들어 입고, 머리에는 구름 실타래로 엮어 만든 중절모를 썼으며, 몸통에는 팔 대신 수십 개의 촉수를 달고 있는 지휘자.
효율적인 지휘를 위해 유연하게 흐느적거린다는 점을 제외하면, 저 촉수들은 분명 드럼 스틱이나 지휘봉을 쥔 손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저 촉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서울 전역에 퍼져있는 수천, 수만, 수십만 개의 ‘악기’들이 동시에 소리를 내었으며, 데이드럼은 이 ‘악기’들의 음색을 일제히 조율하고 있었다.
‘조율… 그래, 조율이야…’
재환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들으며 박격포를 겨눴다.
‘악기를 조율하고 있어. 저게 끝나면 연주가 시작되겠지.’
지력이 높아진 덕분에 그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처음 예지력을 얻었을 때 서울이 설계도처럼 보였던 것처럼, 성자의 시점으로 보면 이 도시는 거대한 악보가 될 수 있었다.
사람도, 사물도, 건물도, 구름과 대지마저도.
모두 데이드럼이 이끄는 저 음악대의 손길에 닿으면 악기가 되었고, 데이드럼이 악기들의 조율을 끝내는 순간 악보의 기능을 겸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재환은 지금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였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박격포를 쏘기 위해 데이드럼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거리는 어림잡아 5km는 넘어 보였다.
‘멍 때리고 있을 시간 없어. 빨리 이동하자.’
그는 데이드럼과의 거리가 박격포를 맞추기에는 멀다는 것을 확인한 뒤 박격포와 다른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제대로 연주하면 나라고 멀쩡하란 법은 없어. 지혜를 높여놨다고 해서 무적인 건 아니니까.’
지혜는 정신과 두뇌를 보호하고 강화하는 능력치였고,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리고 마는 ‘불가해’들을 상대할 수 있는 보호구였다.
그리고 지혜를 한계까지 높여둔 덕분에 그는 축제가 한창인 와중에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독면을 쓰더라도 유해물질을 막아낼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있는 것처럼, 지혜로 버텨낼 수 있는 오염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암브락사스를 상대했을 당시에 지혜를 한계까지 올려뒀음에도 그녀가 보여준 환영에 괴로워했고, 지금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시달리며 건물의 옥상에서 내려왔다.
‘차라리… 차라리 나도 미쳐버렸으면 편했겠지.’
온몸에 장비를 주렁주렁 매달고 거리로 내려오자 성자가 주최하는 축제의 열기가 온몸으로 흘러들어왔다.
얌전하게는 그저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조금 과격한 사람들은 자동차와 결합해 크락션을 울리고 있었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아예 괴물이나 건물과 결합하여 인간의 목청으로는 낼 수 없는 음색으로 데이드럼의 조율을 받아 노랫소리를 흘렸다.
둥! 둥! 둥! 둥! 둥! 둥! 둥!
데이드럼의 지휘에 따라 북소리가 울리고, 북소리의 리듬에 맞춰서 관악기 소리가 울렸으며, 관악기 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사람과 괴물이 내는 소음이 정렬되었다.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carnival! carnival! carnival! carnival!”
“카니발! 축제다! 카니발! 축제를! 카니발!”
“카니발! 카아니발! 카아니이발! 카아아아니발!”
“달을찬미하라, 카니발! 달을사랑하라, 카니발!”
발음은 저마다 다르고, 음색도 저마다 달랐으며, 음의 높낮이마저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재환의 귀에 꽂혔다.
카니발. 사람도 괴물도 카니발. 모두가 하나 되어 카니발. 찬양하고 찬미하여 카니발.
축제란 본래 신에게 바치는 제의였으며, 축제와 축배야말로 천상에 이르는 길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 세상이 성자가 연주하는 봄의 제전 속에 하나 되어있었고, 이들이 외치는 음악 소리는 ‘카니발’이라는 단어 하나로 압축되어 거리에 흘러넘쳤다.
그리고 온몸에 장비를 둘러맨 재환은 축제에 몰두한 사람과 괴물 사이를 헤쳐나가며 자기 자신에게 되뇌었다.
‘이미래처럼 약에 취해서 사는 것도 사실은 나쁘지 않았을 거야. 그러면 적어도 쾌락은 누릴 수 있을 테니까. 다 포기하고 축제나 즐기면, 이렇게 머리 아플 일도 없었겠지.’
누군가는 말한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다고. 사랑받고 사랑을 누리며 사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태어난 이유이며, 행복을 쟁취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의의인 법이라고.
하지만 재환은 이를 악문 채 행복에 이르는 길을 부정했다.
‘그럴 거였으면 진작에 했겠지. 그 여자 품에 안겨서, 영원토록…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았으면 되는 거였으니까.’
세상이 데이드럼의 악상으로 뒤흔들리는 모습은 암브락사스가 일궈냈던 정원을 떠올리게 했다.
그 당시에 만물은 암브락사스의 사랑을 받아 행복을 누렸으며, 지금 이 풍경도 조금 요란스러울 뿐 본질은 동일했다.
그렇기에 그는 유혹에 빠지려는 충동을 손쉽게 억누를 수 있었다.
‘이미 늦은 거야…’
그는 이제는 마모되어버린 낙원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사다리는 걷어찼으니까. 남은 건 지옥밖에 없는 거지. 새삼스러워할 것도 없는 거야.’
그가 사냥꾼이 된 이유는 천국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며, 행복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 악몽을 끝내는 것만이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집념이었고, 이 집념만이 그가 죽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그렇기에 그는 암브락사스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으며, 그때의 기억은 으스러진 마음을 이어붙이는 접착제가 되어 지금도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돼. 아예 코앞까지 가까이 갈 필요도 없이, 유효 사거리까지만 가면 되는 거니까.’
사람과 괴물들은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축제에 몰두하여 데이드럼의 조율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박자와 리듬과 음색이 하나하나 정리되어가는 것을 들으며, 그는 적당한 높이의 건물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건물의 내부에 사람과 괴물이 들러붙어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등에 메 뒀던 짐들을 내려놓은 뒤 탈바꿈을 들어 올렸다.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카아-니…바-알…”
그는 사람과 괴물들의 소음이 점점 사그라지는 것을 느끼며 탈바꿈으로 사람과 괴물을 썰어냈다.
‘시간이 얼마 없어.’
그는 지력으로 얻은 육감으로 위기를 감지해냈고, 그러자 길을 만들어내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조율이 끝나가고 있는 거야. 저 빌어먹을 카니발이… 연주되려는 거라고…’
순식간에 옥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뚫어낸 그는 거의 뛰어내리는 것에 가까운 속도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바닥에 내려놨던 박격포와 박격포 포탄을 포함한 짐들을 챙겨서 옥상을 향해 달려갔다.
‘아직이야. 아직 안 늦었어.’
옥상의 문을 발로 차 열어젖힌 그는 등에 메고 있던 짐을 내려놓은 뒤 박격포를 설치했다.
‘침착하게. 제대로 쏘기만 하면 돼.’
악기들이 조율되는 소리가 점점 조용해지자 불안감이 피어오르며 손놀림이 빨라졌다. 그리고 박격포 설치를 끝낸 그는 데이드럼의 머리를 박격포로 겨냥한 뒤 포탄을 집어 들었다.
‘일단은 머리를 노리자. 어차피 한 방에 죽이진 못할 테니, 시간이라도 끌어야 돼.’
박격포 한 발로 저 거대한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 게 가능했더라면 이미래와 동료들이 진작에 카니발을 막아내는 것에 성공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데이드럼이 검은색 중절모를 쓰고 있는 ‘머리’ 부분을 향해 박격포를 겨눴고, 그의 손을 떠난 포탄은 허공을 질주해 데이드럼의 ‘머리’에 적중했다.
펑!
폭음 소리와 함께 폭연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데이드럼의 중절모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과 함께 사방에서 들려오던 음악과 음성이 조용해졌다.
‘아니야…’
그는 재빨리 다음 탄두를 집어 들었다.
‘이 정도로 끝일 리가 없어. 이렇게 순순히 죽어줄 리가 없잖아…’
예지력을 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고요는 데이드럼이 포탄을 맞은 것과는 무관했다. 그보다는 공연의 막이 오를 때의 정적과 비슷했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잠시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이번엔 가슴팍을 노리자.’
그는 괴물의 심장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위치를 가늠하며 박격포를 겨냥했다.
‘운이 좋으면 심장까지 닿겠지.’
그리고 박격포의 포탄을 놓아 박격포를 발사하려 했을 때, 그는 데이드럼의 촉수 중 하나가 까딱거려 ‘손짓’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폭음이 울리는 순간, 그는 그 ‘손짓’의 의미가 무엇인지 직감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박격포의 폭음이 울리는 것과 함께 사방에서 음악 소리와 축포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박격포를 맞은 데이드럼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폭음마저 연주의 일부로 삼아 서울에 있는 사람과 사물들로 카니발을 주최했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는 것과 함께 데이드럼은 순식간에 몸을 회복했고, 떨어졌던 중절모는 어느새 그의 머리 위에 씌워져 있었다.
그리고 마치 애초에 박격포에 맞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는 재환이 쏜 박격포를 축포 삼아 카니발을 개막했다.
“하…하하…!”
재환은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그가 박격포를 쐈던 것도 모두 저 괴물의 연주를 구성하기 위한 악기가 되었음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직감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성자의 연주에 자극을 받아 무의식적으로 발동된 예지력이 그가 박격포를 쏘는 미래들을 연달아 보여줬다.
언제, 어느 타이밍에 박격포를 쏴도, 그 폭음과 폭연은 모두 축제를 구성하는 연출의 일부분이 될 뿐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그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한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래… 사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거였는데 말이야…’
그는 자신이 얻은 지력과 예지력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새기며 웃음기를 지웠다.
‘나도 가지고 있는 걸, 저 괴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을 리가 없지. 내가 볼 수 있는 걸 저 괴물들이 못 볼 리가 없지.’
데이드럼의 연주는 그가 박격포를 쏘든, 쏘지 않든 계속되었다.
숙련된 드럼 연주자가 두 팔로 여러 개의 북과 심벌을 두들기는 것처럼, 숙련된 피아니스트가 열 손가락으로 수십 개의 건반을 능숙하게 연주하는 것처럼, 허공에서 춤추는 수십 개의 촉수는 서울 전역에 퍼진 수십만, 수백만 개의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천상의 멜로디를 연주했다.
‘연주를 끝내게 두지 말라고?’
그는 데이드럼의 손짓에 따라 서울이 연주되는 모습을 보며 이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요구인지 실감했다.
‘저걸 무슨 수로? 뭘 어떻게 끝내란 거지?’
그는 감히 예지력을 사용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성자의 연주에 압도되었다. 힘도, 체급도, 지력마저도 뛰어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애초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무작정 달려들 수 있었지만, 저 괴물이 얼마나 까마득한 존재인지 자세히 알게 되자 의욕이 깎여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아직 남아있었지….’
그는 이미래가 줬던 알약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알약은 비닐 지퍼백에 담겨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 아직 정신이 나간 건 아니니까. 저 연주가 끝나기 저에 죽으면… 정신은 챙겨서 갈 수 있겠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결론이었다.
한낱 인간의 몸으로 태풍이나 해일을 막아낼 순 없는 것처럼, 서울의 사람과 사물을 악기로 만들어 악보를 연주하는 초현실적인 존재를 상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그는 또다시 헛웃음을 흘리며 옷자락을 뜯어냈다.
‘그래. 미쳐야지. 미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지.’
데이드럼에게는 예지력이 있었다. 그가 박격포를 발사할 타이밍을 예측해서 연주의 일부로 삼은 것으로 보아 이는 확실했다.
하지만 그것이 데이드럼을 사냥하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실성한 성자인 블레인은 제쳐두더라도, 온전한 성자였던 암브락사스에게 예지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미치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테니까. 처음부터 나는… 미쳐있던 거야.’
재환은 뜯어낸 옷자락으로 알약이 담긴 지퍼백을 감싼 뒤 입에 넣었다. 언제든지 죽을 수 있도록, 죽기 직전까진 날뛸 수 있도록.
그리고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얻어내어 저 괴물의 심장에 닿을 수 있도록.
알약을 입에 문 재환은 데이드럼의 리듬에 맞춰서 박격포를 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