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69
카니발이 온다 (4)
악상의 성자가 연주하는 몽상은 황홀했다.
무수히 많은 괴물과 인간의 노랫소리로 쌓아올린 화음은 천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처럼 정교했고, 괴물과 권속이 두들기는 드럼 소리는 지상에서 맥동하는 수맥처럼 웅장했다.
비록 데이드럼의 연주를 인간의 감각과 견식으로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재환은 데이드럼이 제법 훌륭한 음악가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연주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박격포의 포탄을 남김없이 사용해버렸고, 더 이상 발사할 포탄이 없어지고 난 다음에야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축제에 몰입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깨달은 뒤 나직하게 조소했다.
‘사냥꾼이 광대 노릇이라니, 이것도 웃긴 노릇이야. 지금 이대로는 아무리 발버둥 쳐 봐야 저놈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꼴이란 거겠지.’
그는 입속에 머금고 있던 알약을 손에 뱉어낸 뒤 옥상의 난간에 걸터앉았다. 서울의 축제는 데이드럼의 연주에 맞춰서 절정으로 무르익고 있었다.
사람도, 괴물도, 권속도, 건물과 사물도.
모두가 하나 되어 데이드럼의 연주에 따라 춤을 추며 노래했고, 그들의 몸짓과 노랫소리는 예술에 무지한 사람의 시점으로 봐도 미려하게 느껴질 정도로 감미로웠다.
이 순간 서울의 모든 생명은 별의 지휘 아래에 하나 되었고, 하나의 생명은 하나의 별빛이 되어 찬란하게 발광했다.
음악과 안무로 뿜어내는 생명의 향연을 바라보던 재환은 이미래에게 받은 알약을 주머니에 넣은 뒤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래도 지혜를 높여둬서 다행이야.’
그는 상처 하나 없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데이드럼을 바라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안 그랬으면 나도 진작에 저기에 끼어들어서 날뛰고 있었을 테니까.’
연주는 계속됐고, 축제는 절정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거리 곳곳에 들러붙은 사람과 괴물들은 스스로 빛을 내며 발광했고, 목소리에는 열정과 열기를 담아 하늘까지 닿을 기세로 소리를 높였다.
마치 괴물이 되었던 마태오 신부가 보여줬던 풍경처럼, 서울의 모든 것들이 하나 되어 카니발을 노래하는 모습은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는 담배 연기를 내쉬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번 생은 실패했어. 무슨 수를 써도 저 빌어먹을 연주를 막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는 바닥에 놓인 탈바꿈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행동을 떠올리자 실소가 저절로 나왔다.
‘박격포로도 안 죽는 괴물을 톱질로 죽이는 건 더 미친 짓이지. 톱질이 통한다고 해도 한참 걸릴 테고.’
결국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 괴물을 지금 당장 저지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자 그는 웃는 것을 그만둔 뒤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래도 실마리 정도는 알아내서 다행이야. 아예 수확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거니까.’
그는 포탄을 쏘며 데이드럼의 축제를 감상하는 동안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데이드럼이 그가 포탄을 쏘도록 내버려 둔 것은 터무니없는 수준의 재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고, 저 괴물에게는 사람과 사물, 그리고 지형지물을 변형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괴물을 상대로는 장기전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낸 것은 큰 수확이었다.
저 괴물의 연주를 오래 듣고 있자 그의 눈이 충혈되었고, 코에서는 코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대로 저 괴물의 연주를 듣는다면 자신의 몸이 버티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큰 수확이었다.
‘이제는 시간이 얼마 없어… 이제는 버티는 것도 한계니까. 그 대신…’
그는 이미래가 준 독약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죽기에는 좀 아쉽다는 게 문제지. 이 연주가 끝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 축제는 무엇을 위해 열린 건지는 아직 미스터리니까.’
이대로 곧바로 죽을 수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직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남아있었다.
그에게는 예지력이 있었고, 예지력을 사용한다면 미래의 풍경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데이드럼의 연주 덕분에 예지력이 한층 더 날카로워진 것을 느끼며 담배 연기를 내쉬었다.
‘알 수 있으면 좋긴 하겠지. 아는 게 많을수록 저 녀석들을 상대할 때 도움이 될 테니까. 그 대신…’
그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
‘…알아내고 난 다음이 문제지. 인간이 알면 안 되는 걸 알았다가는 돌이킬 수 없으니까. 예전에 암브락사스의 화관을 썼을 때처럼… 아예 망가져 버릴지도 모르지.’
지혜가 높을 때 성자의 지식을 떠올리는 것은 감당할 수 있었다. 지혜로 강화된 두뇌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성자의 지식을 가다듬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혜가 낮을 때 성자의 지식을 떠올리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치명적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물에서 건져져 뭍에 내던져진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다가, 영원히 식물인간 신세로 지내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일은 지금도 끔찍한 기억이 되어 뇌리에 각인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예지력을 사용하기 전에 잠시 망설였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겠지… 웬만한 방법은 이미 그 여자가 다 써봤을 테니까.’
그는 이미래와 그녀의 동료들이 이미 카니발을 막아보려고 발버둥 쳤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결정을 끝냈다.
‘그래, 그냥은 안 되지. 선을 넘어야 저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으니까.’
그는 눈을 떠서 데이드럼을 올려다봤다. 데이드럼은 까마득한 높이에서 서울을 연주하고 있었다.
‘한계를 넘어서, 저 괴물에게 닿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괴물을 잡으려면… 괴물의 습성을 알아야 되는 거니까. 부서지고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제 와서 그만둘 순 없지. 그리고…’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결정을 끝낼 수 있었다.
‘…애초에 곱게 죽으려고 이 고생을 한 건 아니니까. 죽을 땐 죽어도, 부서질 땐 부서져도, 최선을 다했으면 그만인 거야.’
결정을 끝낸 재환은 이미래가 준 약을 다시 입에 넣은 뒤 다시 두 눈을 감았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예지력이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워진 것이 느껴졌다.
‘그래…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예지력을 사용하자 눈꺼풀 안쪽이 서서히 밝아졌다. 눈꺼풀 안쪽에는 무수히 많은 빛들이 우주에서 빛나는 별처럼 찬란하게 빛났고, 재환은 본능적으로 이 빛 중 하나를 찾아내어 가까이 바라봤다.
그는 이 불빛을 향해 시선을 모았고, 머지않아 이 불빛의 정체가 축제가 한창인 서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 *
모든 사람과 사물이 빛을 내며 연주를 하는 모습은 멀리서 바라보자 타오르는 별처럼 아름다웠다.
그는 이 찬란한 불빛에 눈이 멀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축제의 향연을 지켜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이 모습이 축제가 절정을 맞이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절정을 넘어서자 축제의 기운이 사그라들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씩. 그리고 또 하나씩.
가장 연약한 살점 악기부터 시작해서 가장 단단했던 콘크리트 악기들까지.
데이드럼의 연주를 따라가지 못한 악기들이 데이드럼에게서 가까운 순서부터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고, 이들은 불빛을 잃은 뒤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악기를 혹사시키는 걸 보면, 욕심이 과했던 거겠지.’
그는 데이드럼이 욕심 많은 연주자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데이드럼이 연주하는 곡조가 갈수록 거칠어지고, 격정적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데이드럼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서울의 모든 것을 한계까지 쥐어짜 냈고, 그 결과 한계를 맞이한 악기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본래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화려하게 빛을 뿜어내며 발광하던 악기들은 하나둘씩 빛을 잃어갔고, 목이 쉬어버린 악기들은 물처럼 녹아 데이드럼에게 흘러갔다.
모든 사람과 사물이 데이드럼의 지휘에 의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거나 산산이 부서졌고, 서울에 머물던 성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췄으며, 오직 데이드럼만이 고장 난 악기들 사이에서 홀로 고고하게 지휘를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불빛이 꺼지고 데이드럼만이 홀로 남았을 때, 데이드럼은 잠시 지휘를 멈췄다.
더 이상 지휘할 악기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데이드럼은 안타까워하지 않았고,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이는 이미 예정된 결과였으며, 그는 훌륭한 지휘자이기 이전에 훌륭한 연주자였다.
게다가 그의 몸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뛰어난 악기였으니, 악기들이 사라진 것은 새 악장을 시작할 계기에 불과했다.
데이드럼은 자신이 쥐고 있던 지휘봉을 악기의 형태로 변형시켰다. 드럼 스틱, 바이올린 현, 피리와 트럼펫까지.
각양각색의 악기로 지휘봉을 변형시킨 데이드럼은 자신의 몸에서 악기를 꺼내 독주이면서 합주인 연주를 시작했다.
모든 게 부서지고, 고장 나고, 망가진 축제의 한복판에서, 데이드럼은 홀로 고고하게 오케스트라가 되어 연주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그 음악을 듣던 재환은 이 음악 소리가 심장의 울음소리를 닮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심장 소리라…’
심장 소리를 닮은 음악 소리가 서울 전역에 울려 퍼졌고, 가장 생명에 가까운 고동 소리가 되어 점점 크게 퍼져나갔다.
마치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데이드럼은 자신의 몸을 두들기고 비틀며 한없이 궁극에 가까운 연주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연주가 마침내 종막을 향해 나아갈 때, 데이드럼을 비추던 달빛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달 자체가 가까워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두컴컴한 서울의 밤에서 데이드럼은 홀로 달빛을 내려받았다.
한참 동안 달빛을 내려받던 데이드럼은 서서히 연주를 마무리 지었고, 데이드럼이 연주를 끝내자 달빛이 점멸하여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달과 성자가 교감하는 모습을 엿보던 재환은 이들이 나누는 대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읽어낼 수 있었다.
앙코르.
데이드럼은 더 완벽한 연주를 원했고, 달 역시 더 나은 연주가 들려오길 원했다.
그리고 데이드럼의 청원이 받아들여진 순간, 재환은 자신의 시야가 달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 그랬던 거야…’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감각과 함께 자신의 예지력이 어째서 증폭되었는지를 깨달았다.
‘일부러 보여준 거였어… 무슨 이유인진 몰라도… 내가 엿보는 걸 묵인한 거야…’
미래의 풍경이 산산이 부서지는 감각과 함께 그는 눈을 떴다.
* * *
눈을 떠서 현실로 되돌아온 재환은 데이드럼의 연주 때문에 자신의 몸이 녹아들고 있음을 깨달은 뒤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그는 서둘러 알약을 깨물었고, 몸이 죽어가는 감각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그나마 약효가 빠르게 돌았다는 점이 그에게는 위안거리였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데이드럼의 독주와 닮아있음을 깨달은 뒤 피를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