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7
괴물의 거리 (1)
‘내가 뭘 본 거지?’
또다시 집으로 되돌아온 재환은 안갯속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본 뒤 의식이 끊겼다. 그리고 그 ‘무언가’의 모습을 떠올리려 하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뇌가 생각하는 걸 거부하려는 느낌이었다.
‘거부반응? 아니면 방어기제 같은 건가?’
인간의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뇌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뇌를 보호하는 본능인 셈이다.
‘그래도 아예 개죽음은 아니어서 다행인가.’
그는 ‘불가해’를 보자마자 무력하게 죽었다. 제대로 된 저항은커녕 모습 조자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속삭임’은 달랐다. 그에게 사냥할 것을 종용하던 ‘속삭임’은 새로운 정보를 읊조렸다.
[정보 갱신] [사냥 대상: 불가해(不可解) → 경계의 거미, 미스크네] [분류: 관리자] [필요 지혜: 99]‘죽을 때마다 정보를 알려주는 건가?’
의외의 소득에 재환은 잠시 고민했다. 죽을 때마다 정보를 얻는 것은 꽤 괜찮은 소득이었다. 어차피 죽어봐야 다시 살아나는 몸이었으니, 그에게는 아는 것이 곧 힘인 셈이었다.
‘아니야. 그래도 계속 죽는 건 미친 짓이지. 이번만 예외인 걸 수도 있고.’
몸이 죽어도 기억은 유지되는 현상. 이 현상은 그의 행동에 따라 저주가 될 수도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생각이 파고들고, 뇌가 터져버리는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끔찍했던 기억을 떠오르자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이런 경험이 누적된다면, 그의 정신은 언젠가 무너져버릴지도 몰랐다.
`자살까지 하는 건 좀 그렇지. 미친놈도 아니고···.`
언젠가는 그 괴물도 죽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했다. 서울을 유린하는 저 정체불명의 괴물들에 비해 그는 너무 무력했다.
`그래도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속삭임은 이 악몽 같은 재앙을 끝낼 방법을 처음부터 제시했다.
[괴물의 피를 마셔 힘을 취하라] [악몽의 근원인 달을 사냥하라]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서울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을 때, 그는 푸른 달이 번쩍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달이 점멸하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이 괴물이 되기 시작했다. 저 하늘에 뜬 ‘푸른 달’은 서울의 악몽과 연결되어있었다.
‘달을 사냥하라는 게 뭔 말인지는 몰라도…..’
그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연 뒤 또다시 소방도끼를 챙겼다.
‘힘이 필요한 건 확실하니까.’
속삭임은 말했다. 괴물의 피를 마시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은 명확했다. 그는 힘을 키워야 했다. 더 이상 저 괴물들에게 유린당하지 않을 힘.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힘. 그리고 이 악몽을 끝장낼 수 있는 힘까지. 모든 일에는 힘이 필요했고,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속삭임이 제시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방법을 실천할 시간이었다.
띠리리리리링!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허그베어가 문을 부수고 나타난다. 재환은 허그베어의 목을 도끼로 후려쳤다. 전보다는 훨씬 깔끔한 솜씨였다.
“꾸으으어어억……”
도끼는 깊게 파고들었다. 재환은 도끼를 쥔 양손에 힘을 쥔 뒤 허그베어의 가슴을 발로 밀었다. 손발의 힘을 모두 동원하자 도끼가 한결 수월하게 뽑혔다.
“꾸워어어!”
허그베어가 달려들 자세를 취하자 재환은 옆으로 스텝을 밟았다. 허그베어의 도약력은 말 그대로 괴물 같았지만, 도약하는 힘이 너무 강한 나머지 방향 전환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재환은 옆으로 비켜 나간 허그베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상처를 입은 몸으로 무리하게 도약한 괴물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도끼로 목을 치기에 가장 좋은 상태였다. 도끼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을 때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도구였으니까.
재환은 쓰러져있는 허그베어의 목을 도끼로 내리쳤다.
콰직!
도끼가 제대로 박히는 소리와 함께 재환은 괴물의 목을 발로 밟았다. 그리고 발의 힘까지 동원해 도끼를 순식간에 뽑아낸 뒤 전력을 다해 내리쳤다.
턱!
도끼가 땅까지 닿는 소리와 함께, 허그베어의 목이 절단되었다. 재환은 허그베어가 사후경직으로 꿈틀거리는 것을 보자마자 도끼질을 계속했다. 사지를 토막 내는 정도가 아니면 안심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콰직! 콰직! 콰직!
수차례 도끼질이 이어진 뒤, 재환은 토막 난 사체를 내려다봤다.
‘괴물이야… 아무리 봐도 괴물이지.’
그는 숨을 들이킨 뒤 괴물의 사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괴물의 피를 손으로 담은 뒤 입을 향해 가져갔다. 물씬 풍겨오는 피비린내에 재환은 인상을 찡그렸다.
‘어차피 해야 하는 거, 빨리 끝내자.’
결심을 끝낸 그는 괴물의 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끈적거리고 비릿한 식감에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는 간신히 괴물의 피를 한 모금 마시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괴물의 피를 전부 마신 순간, 현기증과 함께 머릿속이 핑 도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으윽…!”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 어린 신음을 흘렸다.
‘괜히 마신 건가?’
그는 괴물의 피를 마신 것을 잠시 후회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괴물의 피를 마시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무슨 성분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물질이었고, 무슨 부작용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액체였다. 심지어 괴물의 피를 마셨다가 괴물이 된 사람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니 모르는 것은 함부로 먹으면 안 되는 법이었다.
하지만 재환은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을 간신히 억누르며 정신을 부여잡았다.
‘언젠가 마시긴 했을 테니까.’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악몽 같은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괴물의 피가 아니라 사람의 피마저 마실 각오마저 되어있었다.
‘괴물이 될 거 같으면 자살하자.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각오를 하며 베란다를 향해 걸어가던 순간, 그의 귓가에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괴물의 피를 마신 자는 괴물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인간의 형상을 잃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이들은 사냥꾼이 되어 괴물의 힘을 사냥한다] [우리는 사냥꾼이다]이번 속삭임의 목소리는 유독 이질적이었다. 마치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동시에 재생하는 것만 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이 이질적인 속삭임이 끝나자 현기증이 사라지면서 몸의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방금 그건 뭐였지? 집단 지성?’
그는 지금까지 이 속삭임의 정체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알려고 해봐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 속삭임이 스스로를 ‘사냥꾼’이라고 지칭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아봐야겠어.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까.’
서울은 인구 천만의 대도시였다. 그렇다면 그와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는 사람이 더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특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그렇게 유독 이질적이었던 속삭임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이번에는 또 다른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익숙하게 들어왔던, 사무적인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릇에 피가 가득 찼습니다] [피를 사용해 그릇을 강화하십시오] [문자를 읽어 강화 대상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피? 그릇?’
재환이 의아해하는 것과 동시에 눈앞에 신기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기루는 안개로 이루어진 화이트보드의 형상을 취했다. 그리고 그 화이트보드에는 난생처음 보는 문자가 적혀있었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문자와도 다르게 생겼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문자를 닮아있는 글자였다.
재환은 신기루로 이루어진 글자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 문자를 혹시라도 해석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문자에 시선을 집중한 순간, 그는 신기루로 이루어진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불가해한 일이었다.
[현재 레벨: 4] [강화 가능 능력치(+3)] [능력치 현황] [근력: 10] [민첩: 10] [체력: 10] [내구: 10] [재생: 10] [지혜: 10]눈앞에 떠오른 신기루를 읽어낸 재환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글자들의 내용이 게임 속 상태창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상태창? 무슨 게임 캐릭터도 아니고···.’
어렸을 적에는 게임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 업을 하는 것에는 원초적인 재미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현실이 되자 기쁨 따위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이 상황에 이글거리는 증오를 느꼈다.
‘그래, 이게 정말 게임이면, 만든 새끼도 있단 거겠지.’
눈앞에 나타난 신기루를 보며 다짐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을 이딴 꼴로 만든 녀석을 죽여 버릴 것이다. 무슨 사정이 있었든, 무슨 의도로 그랬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녀석 때문에 자신의 부모가 죽어야 했다는 사실 뿐이었다.
“달을 사냥하라···. 악몽의 원흉인 달을 사냥하라···.”
그는 속삭임이 했던 말을 중얼거렸다. 달을 사냥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속삭임이 했던 이 말을 읊조리며 달을 노려봤다. 저 푸른 달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그렇다면 저것 역시 결국 없어져야 마땅한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무슨 수가 있겠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달을 사냥할 방법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알 수 없다면 알아내면 그만인 것이다. 좌절하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는 몇 번이고 되살아날 자신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일단은 지금 해야 하는 거에 집중하자. 기껏 능력치를 얻었는데, 어떻게 쓸지 방향은 잡아야지.’
그는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 신기루처럼 떠오른 글자들을 바라봤다.
근력, 민첩, 체력, 내구, 재생, 지혜.
총 6가지의 능력치 중 가장 먼저 그의 시선을 끈 것은 ‘지혜’였다.
‘이걸 99까지 올려야 그 괴물을 잡을 수 있다는 거지?’
[사냥 대상: 경계의 거미, 안개의 관리자 미스크네] [필요 지혜: 99]속삭임이 말했던 ‘지혜’가 바로 이 능력치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지혜’에 능력치를 분배하진 않았다.
‘게임에서는 지혜 같은 게 제일 쓸모없었으니까.’
그는 한때 RPG 게임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상태창’이 제시한 6가지 능력치 중 지혜를 제외한 나머지 5가지 능력치는 올려두면 생존과 전투에 쓸모가 있는 능력치였다. 하지만 지혜는 달랐다. 게임 속에서 지혜는 마법사나 성직자 같은 직업이 아니면 쓸모가 없는 능력치였다. 앞으로 어떤 괴물을 상대해야 할지 모르는 만큼, 애매한 능력치에 투자하는 건 꺼려졌다.
‘피를 더 마셔볼까? 그러면 능력치 고민은 덜해도 될 것 같은데.’
그는 혹시나 싶은 생각을 하며 괴물의 피를 조금 더 마셨다. 하지만 능력치가 올랐던 것은 처음 한 번뿐이었다. 같은 괴물의 피를 더 마셔봐야 소용이 없는 모양이었다.
‘지혜는 나중에 올리자. 지금 당장 도움될 것 같진 않으니까.’
그는 그렇게 판단을 내린 뒤 나머지 다섯 개의 능력치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 중에서 체력, 내구, 재생을 우선순위에서 제외했다.
‘생존력을 올려주는 능력치도 당장은 필요 없지. 일단은 목숨이 무한하니까.’
소거법을 적용하자 선택지가 둘로 좁혀졌다. 재환은 나머지 두 능력치 중 어떤 것을 먼저 올리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시간은 그를 느긋하게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제 곧 괴물이 나타날 시간이었다.
“———-!”
그는 귀가 찢기는 통증을 느끼며 귀를 막았다.
“더럽게 시끄럽네.”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익숙한 속삭임이 들리면서 괴물 ‘불가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냥 대상: 불가해(不可解)] [분류: 추종자]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괴물 중 하나.] [사냥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불가해’가 건물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던 재환은 짐을 챙긴 뒤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저걸 잡으려면, 능력치 하나만 올려봐야 소용없겠지.’
사실 오래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 어느 게임이든 사실 가장 강한 건 모든 능력치를 최대로 높인 잡캐였으니까. 그는 근력에 2, 민첩에 1의 능력치를 분배한 뒤 바깥으로 나왔다. 등에 진 짐이 가벼워지고, 몸놀림이 더 빨리진 것이 느껴졌다.
‘효과 한번 끝내주네.’
총 3의 능력치를 분배했을 뿐인데도 효과가 체감되었다. 그렇다면 모든 능력치를 한계까지 올리면 어떻게 될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면 아예 괴물이겠네.’
속삭임은 말했다. 괴물의 피를 마신 자는 괴물에 가까워진다고. 그렇다면 이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는 사람의 거죽을 뒤집어쓴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죽을 땐 죽어도 사람으로 죽자. 그래야 후회는 안 할 테니까.’
그는 책임감을 느끼며 밤거리를 나섰다. 유난히 고독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