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70
깊은 밤을 지나서 (1)
재환은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의식하지 않기 위해 소방도끼를 집으러 나아갔다.
‘죽진 않았어. 죽지만 않으면 돼.’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허그베어를 사냥하는 것에 의식을 집중했다.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데이드럼의 연주가 떠오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몸이 망가지거나 정신이 무너져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을 죽이고, 피를 마시고, 지혜를 올려서…’
소방도끼를 집어 든 재환은 괴물을 사냥하는 일에 몰입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온몸의 감각이 예리해지는 느낌과 함께 잡념이 사라졌고, 덕분에 그는 내상을 입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허그베어를 사냥해낼 수 있었다.
‘그래, 이거야.’
두 손을 모아 괴물의 피를 담아 마시자 의식이 한층 더 선명해졌다. 비릿하면서도 짭조름한 피의 맛이 그의 몸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똑같이.’
그는 소방도끼를 집어 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사방에 널려있는 괴물의 모습을 보자 기분이 한층 더 고양되었다.
‘할 수 있는 일을 반복하면 되는 거야.’
각오를 끝낸 그는 괴물을 향해 다가가 소방도끼를 휘둘렀다. 몸이 바람을 가르는 감각은 경쾌했고, 튀어 오르는 핏방울이 상쾌했다.
괴물을 죽일 때면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오늘도 그의 목숨을 지탱했다.
* * *
지혜를 한계까지 높인 재환은 사냥을 마무리한 뒤 잠시 휴식을 취했다. 빈 건물 내부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던 그는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에 의식을 집중하여 데이드럼의 연주를 떠올렸다.
‘카니발, 데이드럼, 심장 연주, 심장 소리……’
심장의 리듬에 맞춰서 키워드들을 연상해낸 그는 데이드럼의 연주를 기억해냈음에도 자신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간접적으로 경험한 거라 괜찮은 걸지도 모르지. 예지력으로 보고 느낀 건, 그냥 가능성 중 하나인 거니까. 직접 듣는 거랑은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
그는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물을 마시며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떠올렸다.
‘예전에 비슷한 걸 한번 경험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위험하다 싶은 생각은 무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는 거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마지막 가능성을 떠올리며 물병의 뚜껑을 닫아 배낭에 넣었다.
‘…그냥 운이 좋아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 데이드럼이 적당히 무해한 연주를 한 걸 수도 있고.’
데이드럼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데이드럼에 대해 알아낸 것은 완벽한 악상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서는 서울의 모든 것을 재료로 사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도 아예 소득이 없던 건 아니지.’
재환은 끔찍했던 축제의 기억을 환기하기 위해 카니발을 경험하여 얻어낸 정보들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무작정 달려드는 건 소용없을 거야. 아무리 공격해도 피해를 입히기는커녕 방해도 할 수 없었으니까.’
재환은 창밖의 하늘을 바라봐 밤하늘에 늘어선 별자리를 바라봤다. 그는 이미래와 동료들이 어째서 카니발을 막는 것에 실패했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무슨 수를 써도 카니발을 막는 건 불가능하겠지. 적어도 박격포나 폭약으로 막지 못하는 건 확실하니까.’
다음 카니발에도 데이드럼이 나오는 것인지, 카니발이 시작되는 시기와 내용이 지난번과 동일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데이드럼에게 아득한 수준의 재생력이 있는 이상 피해를 입히지 못하는 것은 분명했고, 이를 파훼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온전한 성자가 나타났을 때 무력하게 농락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보를 더 모으는 수밖에 없겠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거니까. 다른 성자를 사냥하러 가거나, 다른 지역을 탐사해보거나, 아니면…’
그는 또 다른 회귀자인 이미래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회귀자를 더 찾아보거나.’
회귀자는 미쳐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이 미쳐 돌아가는 이상, 기억이 유지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래… 미쳐있는 게 정상인 거지. 미치지 않는 게 비정상이고.’
그는 ‘정상적인 회귀자’인 이미래를 만나러 가기 위해 서울 북부로 향했다.
그녀를 아군으로 삼거나, 그녀에게서 정보를 얻어낼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럼에도 그녀 덕분에 몸과 정신이 무너지기 전에 목숨을 끊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회귀자가 더 많았을지도 모르지.’
그는 거리 곳곳에 쓰러져있는 식물인간들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다들 미쳐버렸거나 괴물이 된 것 같지만 말이야. 제때 자살하는 걸 고마워해야 하는 세상이니, 그랬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니까.’
그는 자신이 떠올린 가설을 접어둔 채 강북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도로에 깔린 안개가 유독 뿌옇게 보이는 날이었다.
* * *
3월 13일 오후 9시 15분.
괴물을 사냥하며 강북에 도착한 재환은 이미래의 거처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괴물의 피를 정제해 각양각색의 의약품과 마약을 만드는 일을 꽤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었고, 쉬는 날이면 강북의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다니는 기인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그녀가 사는 오피스텔에 도착한 재환은 문 앞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오자 헛웃음을 흘렸다.
‘한가하기도 하지. 놀고, 죽고, 놀고, 죽고…… 참 행복한 인생이야.’
자신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에게 약간의 거북함을 느낀 채, 그는 노크하여 이미래를 불렀다.
똑, 똑, 똑
노크를 하자마자 이미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에서 아가페의 달짝지근한 향기가 자욱하게 풍겨왔다. 재환은 마약 굴이나 다름없는 이미래의 방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미래는 그런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능숙한 솜씨로 기타를 연주했다.
“좀 늦었네요? 바로 올 줄 알았는데… 괴물이라도 잡아먹으면서 왔나 봐요?”
그녀의 손끝에서 춤추는 기타 현을 바라보던 재환은 집 안으로 들어간 뒤 창문을 열어젖혔다.
“괴물을 죽이는 건 당연하죠. 괴물 사냥꾼이 괴물을 안 죽이면 뭐가 남겠어요.”
“괴물을 안 죽이면 남는 게 많죠. 행복이라는 게 멀리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녀는 경쾌한 리듬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미소 지었다.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고,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고, 심심할 땐 노래하고 춤추고… 소소하긴 해도 확실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이죠.”
감미로운 음색으로 기타를 연주하던 그녀는 잠시 기타 연주를 멈춘 뒤 그에게 아가페를 건넸다.
“서비스로 하나 줄게요. 먹고 나면 기분 나쁜 기억은 좀 가라앉을 거예요. 악몽에는 건망증이 특효약이죠.”
재환은 고개를 저어서 그녀의 권유를 거부했다.
“지난번에 줬던 약은 고마웠어요. 덕분에 꽤 괜찮은 타이밍에 죽을 수 있었으니까요.”
재환은 표정이 굳은 이미래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아직 포기한 건 아니에요. 오늘 여기 온 것도 그래서 온 거고요.”
이미래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 것이 보였지만, 그는 이미래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무리한 부탁이란 건 알지만, 카니발에 대해 아는 게 있으면 더 얘기해 줘요. 실패한 얘기든, 성공한 얘기든, 들어두면 전부 도움이 될 테니까요.”
이미래는 재환의 눈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자 옛날에 으스러졌던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게 말했죠. 그렇게 죽었고요.”
그녀는 날이 선 말투로 재환에게 쏘아붙였다.
“이번에는 잘 될 거야, 이번에는 잘 되겠지.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 점점 나아지고 있어. 다들 그렇게 말하다가 망가졌죠.”
이미래는 그렇게 말한 뒤 실소를 머금으며 그를 조롱했다.
“당신도 직접 봤으니까 알잖아요. 사냥꾼이 백 명이 모이든, 천 명이 모이든, 아예 서울 전체를 폭발시켜도, 그 괴물들은 못 죽이는 거, 직접 보고도 모르겠어요?”
재환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이 얼마나 발버둥 쳐 왔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해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처음부터 이렇게 망가져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자 씁쓸한 심정이 떠올랐다.
‘나도 저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지. 나는 혼자여서 그나마 속 편한 걸 수도 있었으니까.’
서울이 악몽으로 물든 이후,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없이 지내왔다.
또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 어떤 심정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지인을 직접 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팀으로 활동해왔던 강북의 사냥꾼들이 어떤 말로를 맞이했는지, 어떤 식으로 망가져 갔는지는 상상만으로도 잔혹한 일이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여기서 동정해버리면 그냥 신파극밖에 안 되니까.’
그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이미래를 마주 보며 말했다.
“예전에 서울은 일주일이면 멸망했죠. 기억나요?”
그는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미래에게 말을 건넸다.
“그때는 정말 끝인 줄 알았죠. 저걸 무슨 수로 죽이고, 무슨 수로 막을지 막막했고요.”
이미래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지금은 달라요. 이제는 적어도 일주일 만에 멸망하진 않으니까요. 내가 지금까지 발버둥 쳐왔던 게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던 거죠.”
“그러면 역시… 당신이었네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혹시나 하긴 했어요. 소거법으로 하나씩 지우고 나면 남는 건 당신밖에 없었으니까요. 설마 했는데… 진짜였네요…”
그녀는 착잡해 보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난 그 꽃 괴물을 좋아했어요. 지금 생각해 봐도, 그 괴물은 카니발에 비하면 꽤 다정한 편이었거든요. 방식이 뒤틀려서 그렇지, 애정 하나는 확실하게 느껴졌으니까요.”
재환은 그녀가 암브락사스를 좋아했다고 고백했음에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아가페를 거부감 없이 사용했을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한편으로는, 그 괴물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했어요. 낙원에서 사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기타를 잡은 뒤 연주를 시작했다. 애환과 애정이 동시에 담겨있는 곡조들 듣던 재환은 그녀가 자신과 닮아있음을 깨달았다.
“사실 얘기해줄 순 있어요. 우리가 어떻게 실패했는지, 어떤 식으로 망가졌는지, 뭐 그런 것들이요. 어렴풋하게 기억나긴 해도, 대략적으로는 말해줄 수 있거든요. 별로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지만요.”
“그러면…”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요.”
재환이 의아해하자 그녀는 말을 이었다.
“카니발이 끝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건지 얘기해줘요. 그 꽃 괴물이 하늘로 돌아간 다음에 괴물이 늘어난 것처럼, 카니발이 끝나면 더 끔찍한 괴물이 나올 수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그녀는 기타를 연주하는 것을 멈춘 뒤 말했다.
“…인간을 작정하고 고문하는 괴물이나, 아니면 아예 노예처럼 부리는 괴물이 나오면 어떻게 할 건지 말이에요. 죽지도, 도망치지도 못하게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