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71
깊은 밤을 지나서 (2)
서울이 이제는 인간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는 점은 그 역시 익히 알고 있었다.
푸른 달이 뜨고 거리에 안개가 깔린 이후, 이 도시는 별에서 내려온 초현실적인 존재의 연습장이 되었고, 인간은 그저 관객이나 소품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했다.
그렇기에 성자의 변덕에 따라 이 땅은 모두가 환호하는 낙원이 될 수도 있었고,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지옥이 될 수도 있었다.
“노예라…”
재환은 이미래의 말을 곱씹으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카니발을 강제로 끝내면, 그다음에는 지금보다 더 끔찍한 지옥이 나올 수도 있겠죠.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성자들을 사냥한다고 해서 서울의 악몽을 끝낼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암브락사스가 이 땅을 떠나자 블레인이 미쳐 날뛰었으며, 블레인을 사냥하고 나자 그다음에는 데이드럼이 이끄는 카니발이 도시를 멸망시켰다.
그러니 설령 데이드럼과 카니발을 막아낸다고 해서 도시의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점은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었고, 설령 나아진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는 점은 그 누구도 보증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푸른 달이 뜨고, 사람들이 괴물로 변해버린 이상, 이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무엇이든 변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두 회귀자는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이 사실이 한동안 변하지 않으리라는 점 역시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게 정답은 아니죠.”
하지만 그가 내놓은 대답은 이미래의 것과는 달랐다.
“그쪽도 알고 있잖아요. 회귀하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괴물들 숫자가 늘어나고, 미치거나 폐인이 된 사람들 숫자도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시간이 되돌아갈수록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멀쩡한 사람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었지만, 괴물이 되는 사람들의 숫자는 갈수록 늘어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블레인을 사냥하는 것에 몰두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던 사실이었지만, 그 역시 서울의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것은 은연중에 눈치채고 있었다.
“이대로 회귀가 계속되면, 언젠간 우리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어요. 그리고…”
재환은 이미래의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대로 그냥 말라죽기엔 억울하지 않아요? 우리가 이 고생을 하는 게 전부 괴물 탓인데, 이대로 찌그러져 있다가 죽는 게 억울하지도 않냐고요.”
수백 번이 넘는 회귀는 그에게도 가시밭길을 걷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맨발로 가시밭길을 걷는 고행에 아무리 익숙해질지라도 만신창이가 된 발바닥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수백 번이 넘는 회귀를 거치면서 그의 정신은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장 난 이미래의 모습은 해질 대로 해어져 버린 그의 상처를 들쑤셨고, 그는 해묵은 울분을 토해내어 이미래에게 쏟아 부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이미래는 냉소를 담아 헛웃음을 흘렸다.
“억울하면 어쩔 건데요? 괴물한테 울고불고 사정이라도 하면 좀 나아질 것 같아요?”
그녀는 냉소를 지으면서도 눈살을 찌푸렸다.
“차라리 아예 고소를 한다고 하지 그래요? 변호사도 부르고, 판사도 구해서, 그 괴물들한테 피해보상도 좀 받아내고, 그러면 참 좋겠네요. 사필귀정에 해피엔딩. 끝내주네요.”
“농담으로 한 말 아니에요.”
재환은 그녀의 비아냥을 담담하게 받아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세상을 이 꼴로 만든 놈을 찾아낼 거고,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멀쩡하게 잘 살던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고, 사람이 사람끼리 죽이게 만든 놈. 그놈이 진짜 괴물이니까요.”
이미래는 그 말을 듣자 표정을 굳혔고, 재환은 그녀가 자신에게 질문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카니발이 끝나고, 더 끔찍한 괴물이 나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죠?”
그는 차갑게 식은 이미래의 눈동자를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 괴물이 죽일 수 있는 괴물이든, 죽일 수 없는 괴물이든, 몇 번을 죽어서라도 죽여버릴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
해묵은 울분에 그의 목소리는 거의 타들어 가고 있었고, 그녀는 그의 열기를 기분 나빠했다.
“몇백, 몇천, 몇만 번을 죽어서라도.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이 도시에 살아있는 모든 걸 죽여서라도 반드시 그 괴물을 죽여버릴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방안에 정적이 흘렀다. 이미래는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 재환의 얼굴을 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고, 경멸을 가득 담아 그에게 비아냥거렸다.
“그래서 뭐가 바뀌었는데요?”
그녀는 그가 ‘보스 몬스터’라 불리는 괴물을 두 마리 사냥했음을 되짚으며 말했다.
“그 괴물 두 마리 잡았더니, 지금은 좀 나아진 것 같아요?”
이미래는 열려있는 창문 너머의 풍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눈이 달려있으면 똑바로 봐 봐요. 그 괴물들을 죽여서 뭐가 달라졌는지. 뭐가 더 나아진 건지 잘 봐 봐요.”
성자를 사냥했음에도 서울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거리에는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었고, 괴물과 폐인의 숫자는 점점 늘어갔다.
“괴물을 죽이면 뭐해요. 그래 봐야 새로운 괴물이 계속 나올 텐데. 아무리, 몇 번을 죽여도, 계속 나오는데, 그깟 사냥꾼 놀이가 무슨 소용인데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언성을 점점 높여가며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나라고 괴물을 안 죽여 봤겠냐고요. 그 빌어먹을 보스 몬스터, 우리도 한 번 죽여 봤어요. 다들 미치고 발광하면서, 죽여 봤다고요. 근데 그래 봐야 소용없어요. 어차피 카니발이 오면 다 끝장이었으니까!”
거칠게 말을 쏟아붓던 이미래는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어나갔다.
“다 똑같아요… 회귀자라는 것들은 다 똑같아…”
그녀는 탁한 눈동자로 혼잣말에 가까운 말을 중얼거렸다.
“다 똑같이… 미친 망상이나 하면서… 왜…”
재환은 그녀가 기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대로라면 기타가 부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게 말했죠. 더 나아질 거라고. 이번에는 잘 될 거라고. 그런 식으로 부추긴 다음에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몰죠.”
재환은 기타를 부러뜨릴 기세로 움켜쥔 것을 보며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그녀는 그가 말할 틈도 없이 말을 쏟아내었다.
“1,200개월.”
그녀는 재환의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대략 3개월짜리 회귀를 400번 넘게 했어요. 햇수로 따지면 100년이 넘었죠.”
지치고 메마른 목소리로 회귀자가 말했다.
“100년을 넘게 죽고, 미치고, 자살하고, 괴물이 됐단 말이에요. 더 개 같은 건 뭔 줄 알아요?”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며 울먹거렸다.
“다들 그렇게 나이를 먹을수록, 사냥에 집착할수록, 이 빌어먹을 악몽이 안 끝난다는 것만 확실해졌다는 거예요. 다! 전부다! 아무것도!”
콰직!
그녀가 움켜쥐고 있던 목제 기타가 결국 부러졌고, 그 파편은 그녀의 손에 박혔다. 하지만 그녀는 약 기운에 취해 비명조차 지르지 않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두 가지… 회귀자가 죽는 방법은 두 가지에요.”
그녀는 자신의 손에 박힌 파편을 하나씩 뽑으며 말했다.
“낙차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거나, 천천히 익사하거나. 둘 중 하나인 거죠.”
한참 동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재환은 그녀의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봤다. 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회귀자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가 되지 말란 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몇 명이었어요?”
그는 피 묻은 손으로 기타의 파편을 뽑는 이미래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 가지 방법이라는 건, 그렇게 죽은 회귀자가 한 명은 아니었다는 뜻이잖아요. 용산으로 갔다는 그 회귀자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그녀는 그렇게 되물은 뒤 키득거렸다.
“보고 싶어요? 어떻게 됐는지? 회귀자면서 사냥꾼이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그게 그렇게 궁금해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아니, 안 봐도 알겠어요.”
그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사실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괴물이 됐다는 세 사람. 그 사람들도 회귀자였던 거겠죠. 아니면 나중에 회귀자가 된 다음 괴물이 됐거나.”
회귀자란 시간이 되돌아가도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그러니 괴물로 변하는 음악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그 회귀자는 영원히 괴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짐작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미래는 힘없이 웃으며 지난 일을 중얼거렸다.
“카니발. 카니발. 카니발. 그 빌어먹을 카니발 때문에… 그 빌어먹을 노랫소리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악기로 변했어요. 자기가 원해서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미쳐버려서 그렇게 된 건진 몰라도, 카니발의 음악 소리를 흉내 내는 괴물이 된 거죠……”
그녀는 지친 목소리로 지난 일을 고백했다.
“나랑 그 사람이 부추겨서… 그 사람들이 괴물이 된 거예요.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우리는 결국 해낼 거라고. 그렇게 다 같이 절벽으로 달려갔고, 다 같이 추락했죠.”
그녀는 메마른 목소리를 끌어내어 그에게 말했다.
“말해봐요. 아직도 발버둥 치는 게 맞는 일인지, 아니면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게 나은 일인지. 어디 한 번 대답해 봐요.”
원념과 우울함이 담긴 목소리가 방 안을 적셨다. 그 말에서 묻어나오는 애환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재환은 그녀를 마주 보며 자신의 뜻을 전했다.
“그 말도 맞아요. 그 괴물들에 비하면, 우리는 개미나 다름없으니까요. 개미굴에 약 하나만 쏟아 부으면 모두 죽어버리는 것처럼, 우리 신세도 사실 별로 다를 게 없죠.”
그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성자를 사냥하는 것이 얼마나 아득한 일인지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그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수백 번을 넘게 죽어왔던 회귀자였고, 그렇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뜻을 밝혔다.
“이대로 메말라 죽을 바에는, 계속 발버둥 치는 쪽이 더 삶에 가깝다는 거예요. 아직 더 나아질 수 있는 희망이 있으면, 아직 더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여둬야 하니까요.”
“희망이라…”
그녀는 힘없이 웃으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희망이란 게 제일 잔인한 거예요. 사람을 기대하게 하고, 밑바닥으로 떨어뜨리거든요… 기대가 있으니까 상처도 있는 거죠…”
그녀는 부서진 기타 조각을 모아 창밖으로 던지며 말했다.
“그쪽이 정말 그렇게 잘났으면, 나랑 약속 하나만 해요.”
그녀는 부서진 기타마저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그를 쏘아봤다.
“무슨 수를 쓰든, 무슨 지랄을 해도 상관없으니까,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미쳐버리거나, 죽여달라고 비는 하는 일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발악해보겠다고 약속해요. 그러면 그쪽 도와주는 거, 한번 생각해 볼게요.”
재환은 그녀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잠시 숨을 들이켰다.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아는 이상, 가볍게 대답할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약속할게요.”
그는 굳은 얼굴로 그녀에게 맹세했다.
“무슨 일이 있든, 무슨 수를 쓰든,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미치거나 괴물이 되는 한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하… 어쩌면…”
그 말에 그녀는 불만스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말하는 것도 다들 똑같은지. 다들… 왜 그렇게 못 죽어서 안달인지… 정말 미스터리에요… 정말이지…”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내뱉었다.
“왜 다들 미치는 건지… 정말… 미칠 것 같아요…”
말을 끝낸 그녀는 멍하니 있었고, 재환은 그녀가 잠시 진정할 수 있도록 바깥으로 나왔다.
‘나가서 약이라도 구해와야지. 저 여자 성격에 마약 말고 다른 약을 구해뒀을 것 같진 않으니까.’
몸의 상처 정도는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며, 그는 안개 낀 거리를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