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72
서울의 심장부 (1)
의약품을 챙겨 돌아온 재환은 자신이 괜한 배려를 했음을 깨달았다. 그가 돌아왔을 때 이미래의 상처는 말끔히 나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미래는 그가 챙겨온 의약품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담배 피러 간 줄 알았는데, 그거 구하러 갔다 온 거예요?”
“…담배 피러 갔다 온 겁니다. 이건 겸사겸사 구해온 거고.”
그는 그렇게 얼버무린 뒤 깔끔하게 나아있는 상처를 흘끗 쳐다봤다. 그러자 이미래는 태연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말했잖아요. 시간이 넘쳐나면 잡기술만 늘어난다고. 노래만 부를 수 있으면, 자질구레한 상처 정도는 치료할 수 있거든요. 세상이 이 지경이 됐어도… 음악은 여전히 위대한 법이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음악으로 상처를 치료했다는 말은 미심쩍을 수밖에 없었지만, 재환은 굳이 그녀의 말에 대해 추궁하지 않았다.
노래를 불러서 사람을 난초로 뒤틀어버리는 요술에 비하면 노래를 불러서 상처를 치료했다는 이야기 정도는 상식적인 범위에 속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여길 일도 아니긴 하지. 괴물도 나오고 회귀자도 있는 세상인데, 저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기도 하고.’
판단을 끝낸 재환은 쓸모없어진 의약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이미래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그녀를 마주 보며 말했다.
“그러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나도 수다 떨거나 말싸움하려고 여기 온 건 아니니까요.”
그는 그렇게 운을 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카니발에 대해서는 그쪽보다 몰라요. 사실 카니발만 그런 게 아니죠. 이 서울에 뭐가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모르죠. 그리고 내가 모르는 걸… 당신은 알고 있고요.”
“카니발이라…”
그 말에 이미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별거 없었어요. 때가 되면 보스 몹이 나오고, 우리는 다 같이 막으려고 했죠. 생각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은 전부 써봤고요. 예를 들면…”
그녀는 말끔해진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말을 이었다.
“괴물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폭약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서 한 번에 터트리거나, 아니면 생체실험을 해서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거나 하는 것들 말이에요.”
“…생화학무기라고요?”
“네, 생화학무기요.”
이미래는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괴물끼리 서로 죽이게 하거나, 사람이고 괴물이고 가리지 않고 전염되는 질병이나, 닿으면 피부가 녹아버리는 독가스 같은 거요. 이것저것 만들어보려고 애쓰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쓸모없는 짓이었어요.”
옛일을 떠올리던 이미래는 메마른 목소리로 결론을 말했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미친 짓을 해도, 일단 카니발이 시작되면 막을 수 없다는 결론만 나왔으니까요. 다 헛짓거리였던 거죠. 전부 다.”
재환은 이미래의 목소리에서 허탈함이 묻어나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저런 생화학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생체실험을 저질렀을지를 생각하자 표정이 굳어졌다.
‘사람이 할 짓은 못 됐겠지. 정신을 갈아 넣는 작업이었을 테고.’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체실험을 자행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서울에 널려있는 것이 사람과 괴물이었으니, 실험체를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녀의 잘못을 물고 늘어질 자격이 없었다.
그 역시 괴물을 사냥한다는 명목으로 블레인에게 조종당하던 사람들을 몰살시켰고, 이 악몽을 끝내기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짓도 저지를 각오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깨끗한 척하기엔 늦은 거지. 그리고 어차피 성자를 못 막으면 전부 다 끝장나는 건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이미래가 어떤 지옥을 걸어왔을지 생각하던 재환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헛수고는 아니죠. 지름길을 찾으려면 많이 헤매야 하는 거니까요. 시행착오는 누구나 하는 거니까, 그걸 헛수고라고 부를 순 없는 거죠.”
그 말을 듣자 이미래는 힘없이 웃었다.
“위로해줄 필요 없어요.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니까요. 애초에 실험은 그 사람 담당이었고, 나는 노래 배우기도 바빴거든요.”
그녀는 태연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우리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어요. 서울 북부랑 동부에 있는 자원으로는 카니발을 막을 수 없고, 그나마 가능성을 찾으려면 ‘안개 돔’이 씌워진 서울 중심부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거였죠. 거기에 가면 우리가 못 찾은 자원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카니발이 시작되기 전에 보스 몹을 미리 죽여 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사뭇 음산한 목소리로 재환에게 속삭였다.
“거기 간 사람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는 점만 제외하면, 꽤 괜찮은 선택지죠. 안 그래요?”
그 말에 재환은 표정을 굳혔다. 그녀가 말하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에는 회귀자 또한 포함되어있었고, 이는 시간이 되돌아갔음에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중심부. 안개 돔이라…’
그 역시 언젠가 서울의 중심부에 가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샬롬의 망령들은 그가 용산에 오도록 유혹하고 있었고, 한사랑 역시 용산으로 간다는 말을 남긴 채 동서울을 떠났으며, 사냥꾼 성자의 기운은 용산의 밑바닥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에게 들려오는 속삭임의 정체가 무엇인지, 사냥꾼 성자의 목적은 무엇인지, 그리고 ‘달을 사냥하라’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결국 용산으로 가야만 했다.
‘문제는 안개 돔 속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지. 일단 들어가면 영영 못 나올 가능성도 있는 거고.’
서울 중심부에 씌워진 안개의 돔은 안개라기보다는 연막에 가까울 정도로 짙고 어두웠다.
이는 서울 외곽에 드리워진 ‘안개 장벽’과 동일한 수준이었고, 그는 서울 중심부에 씌워진 ‘안개 돔’을 볼 때면 처음 서울 바깥으로 나가려 했을 때의 일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운 좋게 즉사했지만, 이번엔 곱게 죽지 못할 수도 있는 거니까.’
재환은 서울 중심부로 들어가는 일의 위험성을 가늠하며 이미래에게 질문했다.
“그러면 한강 이남은 어때요?”
“한강이요?”
“네. 한강이요. 서울 서부로 가는 건 안개 돔에 막혀서 못 간다고 쳐도, 한강 이남으로 내려가는 건 가능한 거 아니에요?”
“세상에…”
이미래는 그렇게 말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재환에게 되물었다.
“아직도 한강에 안 가봤어요? 정말로?”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미래는 어처구니없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괴물 사냥에 미쳐있는 줄은 알았는데, 상상 이상이었네요, 정말.”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 키를 챙겼다.
“그러면 기왕 이렇게 된 거, 한강부터 갔다 오죠. 왜 한강 이남으로 못 내려갔는지, 가보면 알게 될 테니까요.”
“…굳이 그래야 돼요?
“직접 보고 오는 게 더 실감 날 테니까요. 말로 설명해봐야 별로 실감 나는 얘기도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녀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내가 말로 설명해줘 봐야 직접 확인하러 가 볼 거잖아요? 이러는 쪽이 서로 시간 아끼고 좋죠, 안 그래요?”
재환은 그 말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을 전부 믿을 정도로 순진하진 않았고, 서울의 상황이 언제든지 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재환은 그녀를 따라 숙소를 나왔고, 그녀의 차를 타고 한강에 도착했다.
* * *
한강이 서울의 심장이라는 것은 재환 역시 익히 알고 있었다.
한강이 없으면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었고, 한강이 없었다면 서울이 지금과 같은 대도시로 성장했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한강이 서울의 시민들을 먹여 살린 젖줄이고, 서울이라는 도시를 낳은 어머니라는 사실은 서울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었다.
그렇기에 서울의 시민들은 한강을 친근하게 여겼고, 한강은 운동 코스나 데이트 코스로서 시민들의 마음속에 친숙하게 자리 잡았었다.
하지만 이미래의 말에 이끌려 한강에 도착했을 때, 재환은 한강이 더 이상 사람에게 친화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멀쩡할 거란 생각은 안 하긴 했는데…”
한강의 모습을 훑어본 재환은 한숨을 내쉬며 이미래에게 말했다.
“이 상태면 한강 이남으로 가긴 글렀네요. 그쪽 말대로요.”
한강의 모습은 처참했다.
물줄기 곳곳에는 동물의 혈관을 닮은 촉수들이 넘실거리고 있었고, 한강을 연결하던 대교들은 부서져 있었으며,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가던 잡동사니와 괴물의 사체들은 크고 작은 촉수들에 닿자마자 잘게 분해되어 한강에 녹아들었다.
한강은 이제 물줄기의 모습을 한 괴물이었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한강 이남으로 넘어가 보려던 몇몇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넋을 잃거나 기겁을 했다.
그리고 재환을 한강으로 데려온 이미래는 넘실거리는 촉수들과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가페를 말아 피웠다.
“배를 만들거나, 다리를 만들거나, 인간 투석기까지 만들어보긴 했는데…”
그녀는 아가페를 한 모금 마신 뒤 핏물이 흐르는 강가를 바라봤다.
“전부 다 소용없더라고요. 강 자체가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저 촉수들이 모조리 낚아채 버렸거든요. 그나마 정신에는 해가 없어서 다행이었죠.”
재환은 그녀를 따라 괴물이 되어버린 한강을 바라봤다. 그리고 혈관 모양의 촉수들이 넘실거리는 저 강을 넘어가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긍하며 말했다.
“확실히… 그쪽 말대로 카니발을 막으려면 이제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겠네요. 남은 건 언제 서울 중심부로 갈지 정하는 것 정도겠죠.”
그 말에 이미래는 피식 웃으며 충고했다.
“가능하면 빨리 가는 걸 추천할게요. 당신이 준비할 때, 괴물도 준비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꾸물거리고 있다간 괴물이 차려놓은 밥상 위에 올라가는 꼴이 될지도 모르죠.”
재환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괴물 역시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암브락사스와 블레인을 상대하면서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시간이 흐를수록 괴물을 사냥해 레벨을 올리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카니발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레벨을 올리는 것은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모자란 레벨은 가서 채우면 되겠지. 서울 중심부에도 괴물은 있을 테니까. 만약 괴물이 아예 없으면… 그건 그거대로 안전하다는 뜻이니까 나쁠 건 없을 테고.’
판단을 끝낸 그는 이미래를 바라보며 말했다.
“충고 고마워요. 어차피 가야 하는 거면, 조만간 출발하는 게 맞겠죠.”
“그러면 언제쯤 출발할 생각이에요?”
“오늘 밤에 가려고요. 준비가 끝나는 대로 바로 가야죠.”
재환의 말을 듣던 이미래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재환은 그녀의 태도에 의아해했고, 그녀는 씁쓸해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닮았네요. 그 사람도 그런 식으로 말하고, 그렇게 가버렸거든요.”
“그 사람이라는 건…”
“네, 맞아요.”
그녀는 한강에게서 등을 돌려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며 말했다.
“서울 중심부로 갔다는 회귀자요. 그 사람도 그런 표정이었어요. 재수 없고, 기분 나쁜 얼굴이었죠…”
그녀의 뒤를 따라가던 재환은 그녀의 말에서 적의가 느껴지는 것을 눈치챈 뒤 질문했다.
“사이가 안 좋았나 보네요.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걸 보면.”
“아니요, 좋았어요. 꽤 괜찮은 사이였죠. 거의 친언니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녀는 불쾌함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말을 덧붙였다.
“혹시 용산에서 그 사람을 만나면 상종할 생각도 하지 마세요. 완전히 정신 나간 년이니까요. 나보다도, 당신보다도, 괴물보다도 더 끔찍한 게 그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