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73
서울의 심장부 (2)
용산구로 떠났다는 회귀자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이미래는 이름과 인상착의 정도를 제외하면 그 회귀자에 대해 깊게 얘기하지 않았고, 과거에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역시 자세하게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래와 얘기를 나눈 재환은 굳이 캐묻지 않아도 그 회귀자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인체 실험에 미쳐있었다라…’
시간이 되돌아가는 이 도시에서 회귀자에게 도덕과 윤리를 강요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차피 시간이 되돌아가면 모든 범죄는 없었던 일이 되고, 같은 회귀자가 아닌 이상 이를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귀자 역시 사람인 이상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는 법이었고, 인체 실험을 필요 이상으로 자행하는 것은 그 선을 넘는 행동에 속했다.
‘브레이크가 없는 인간이라는 뜻이겠지. 그러니까 굳이 괴물보다도 끔찍한 사람이라는 걸 강조한 걸 테고.’
그는 회귀자야말로 가장 끔찍한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암브락사스처럼 정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 이상 그 무엇도 회귀자를 영원히 구속할 순 없었고, 고삐가 풀린 회귀자는 마음먹기에 따라 그 어떤 미친 짓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 수 있었다.
‘저 여자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아도, 조심할 필요는 있겠어. 적어도 수십 년은 넘게 같이 지내왔을 텐데, 좋게 끝난 사이는 아닌 것 같으니까.’
그렇게 이미래의 동료였던 회귀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무렵, 자신의 차 앞에 도착한 이미래가 그에게 말했다.
“중랑구로 갈 거죠? 데려다줄 테니까 타세요. 호랑이굴로 같이 가 주진 못해도, 이 정도는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요.”
재환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조수석에 앉았다.
‘사냥을 그만둔 사냥꾼이라…’
그는 약에 취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이미래를 흘끗 바라봤다.
‘저건 저거대로 지옥 같겠지. 100년을 넘게 괴물을 상대했다는 말이 사실이면, 정신줄을 놔버려도 이상한 게 아니니까.’
약 기운이 남아있음에도 이미래의 운전 솜씨는 썩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녀는 도로에 깔린 장애물과 괴물을 능숙하게 피해가며 거리를 누볐다.
“서울 중심부에는 뭐가 있을 것 같아요?”
이미래는 몽롱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말했다.
“옛날에 많이 얘기했었거든요. 도대체 안에 뭐가 있길래 사람들이 바깥으로 안 나오는 건지 말이에요. 서울 중심부에는 대통령도 있고, 서울 시장이랑 국회의원들도 있을 텐데, 다들 가만히만 있잖아요. 안 그래요?”
창밖을 바라보던 재환은 그 말을 듣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돌이켜 보면 회귀가 시작된 이후, 서울 중심부에서 누군가가 나왔다는 소식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모르는 일이지만…”
그는 그렇게 운을 뗀 뒤 말을 이었다.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못 나오는 거겠죠. 우리가 서울 바깥으로 못 나가는 것처럼, 그 사람들도 못 나오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 말도 맞는 말이죠. 그럴 가능성이 제일 크기도 하고요.”
그녀는 그렇게 대답한 뒤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예요. 사실은 못 나오는 게 아니라 안 나오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안 나오는 거라고요?”
“네. 옛날에 서울이 낙원으로 변했던 것처럼, 서울 중심부에 낙원이 있을 수도 있는 거죠. 한 번 들어가면 못 나오는 이유도, 사실은 안 나오는 걸지도 모르는 거고요.”
가설에 불과한 말이었지만, 재환은 그 말을 곧바로 부정하진 못했다. 이미 암브락사스 때 전례가 있는 일이었고, 성자의 힘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서울 중심부가 살만한 동네면 나한테도 알려줘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키득거렸다.
“슬슬 읽을 책도 떨어지고, 놀 거리도 떨어져 가던 참이었거든요. 거기가 좀 살기 괜찮은 동네다 싶으면, 아예 이사나 해 보려고요.”
그 말에 재환은 어처구니없어했다. 그녀가 어째서 자신을 서울의 중심부로 보내려 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슨 맛집 탐방처럼 말하네요. 설마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어요?”
“상부상조죠. 그쪽도 어차피 서울 중심부로 가려고 한 건 마찬가지잖아요?”
뻔뻔스러운 대답에 재환은 할 말을 잃었다. 이 약에 찌든 쾌락주의자가 자신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는 사실이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한숨을 내쉰 뒤에야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래요, 알려줄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차를 향해 달려드는 괴물에게 리볼버를 겨눴다.
“갔다 오고 나서도 내 멘탈이 멀쩡하면요.”
이미래는 달려들던 괴물의 정수리가 총성과 함께 꿰뚫리는 것을 보며 웃었고, 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중랑구에 도착했다.
“잘 다녀와요, 행운을 빌게요.”
빈말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재환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안개 낀 거리를 걸어갔다. 이제 남은 일은 장비를 챙겨서 서울 중심에 씌워진 안개 돔으로 향하는 일뿐이었다.
* * *
3월 14일 오후 8시 35분.
군부대에서 지원받은 중형 승용차에 박격포와 대전차 로켓을 실은 재환은 차를 몰아 용산으로 향했다.
한강을 따라 성동구에서 용산구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괴물이 나타났기 때문에 차량이 이동하는 속도 자체는 느렸지만, 성자나 권속 수준의 괴물이 나타나진 않았기에 위험하지는 않은 여정이었다.
‘이제 거의 다 온 건가.’
옥수역을 지나 한남동으로 향하던 재환은 저편에서 보이는 짙은 안개를 보며 차량의 속도를 늦췄다. 안개 너머에서 언제 무엇이 튀어나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고, 돌발 상황에 대응하려면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는 쪽이 나았다.
‘사람도 안 보이고, 괴물도 안 보이고… 이건 너무 조용한데?’
그는 한남동으로 진입해 안갯속으로 들어서면서 긴장의 끈을 부여잡았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었지만, 괴물마저 보이지 않는 것은 수상쩍은 일이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게 이런 거지.’
그는 어느 순간부터 안개 때문에 한강마저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방심하면 길 잃는 건 순식간이겠어.’
경계심을 끌어올린 재환은 승용차의 속도를 사람이 걷는 수준으로 낮춘 뒤 주변을 살폈다. 자욱한 안개 너머에서는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고,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거리에는 차가 움직이는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안갯속을 횡단하던 그는 안개 너머에서 거대한 문 모양의 건축물이 별빛처럼 빛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문이라… 용산에 저런 건물이 있었나?’
그는 안갯속에서 빛나는 건축물을 바라보며 핸들의 방향을 틀었다.
비록 저 건축물의 모습이 심해에서 먹잇감을 유인하는 초롱 아귀처럼 수상쩍기는 했지만, 무시하고 지나가기에는 존재감이 너무나 거대했기 때문이다.
‘저건… 동대문?’
그는 동대문구의 주민이었기에 동대문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여긴 용산구일텐데… 왜 갑자기 동대문이 나온 거지?’
동대문은 종로구에 있는 건축물이었고, 그는 따로 방향을 트는 일 없이 용산구를 향해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종로구에 있어야 할 동대문에 도착한 것은 귀신에 홀려 길을 잃는 괴담만큼이나 기이한 일이었다.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겠지. 동대문의 위치가 바뀌었거나, 아니면 내가 어느 순간부터 최면 같은 거에 걸렸거나. 둘 중 하나인 거겠지. 그것도 아니면…’
그는 최악의 가능성을 떠올리며 동대문을 향해 나아갔다.
‘아예 공간 자체가 일그러져있고, 어디로 가든 종로구로 이어지게 되어있을 가능성도 있겠지.’
암브락사스 때의 일을 생각하면 성자에게는 공간을 일그러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모든 성자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는 것인지, 능력의 범위와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에게 지금과 같은 일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직접 가보면 알게 되겠지. 애초에 저게 진짜 동대문인지, 괴물들이 만들어낸 모조품인지는 모르는 거니까.’
별빛을 닮은 조명으로 꾸며진 동대문 앞에 도착한 그는 굳게 닫힌 동대문과 동대문의 주변에 늘어선 성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차를 이끌고 조금 더 가까이 가자 동대문의 입구에 설치된 부스가 보였고, 그곳에서 정장을 입은 채 사자탈을 쓴 남자가 나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재환은 허리에 차고 있던 핸드캐넌에 손을 올린 채 사자탈을 쓴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노려봤고, 사자탈을 쓴 남자는 5m 정도 거리에서 멈춰선 뒤 허리를 숙여서 재환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냥꾼께서 찾아오는 것은 오래간만이군요. 입장권을 끊으시겠습니까?”
재환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남자를 노려봤다. 그에게는 사냥꾼 특유의 악취가 풍겨오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고, 저 안쪽에는 뭐가 있는 거지?”
“저는 문지기고, 저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종로구가 나옵니다. 용산구로 가시려면 경유해야하는 곳이죠.”
수상쩍은 말이었다. 용산으로 가려면 종로구를 경유해야 한다는 말은 쉽게 믿기 어려운 말이었고,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성자가 설계한 함정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재환은 자신의 목적지가 용산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저 남자가 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핸드캐넌을 꺼냈다.
“대답해봐.”
그는 문지기의 머리에 핸드캐넌을 겨냥했다.
“내가 용산으로 가려고 한 건 어떻게 안 거지? 그리고…”
그는 문지기에게서 본능적으로 적개심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그쪽도 사냥꾼인 것 같은데, 여기서 왜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건지. 잘 설명해야 될 거야.”
“사냥꾼이라… 그랬던 적도 있었죠. 지금은 아니지만 말이죠.”
문지기는 그렇게 말하며 사자탈을 벗었다.
그러자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가느다란 촉수들이 넘실거리고 있었고, 목 안쪽에 있는 발성 기관에서는 입을 대신하여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곳에 온 사냥꾼의 말로는 두 가지입니다. 용산에 있는 사냥꾼의 무덤에 묻히거나, 아니면 높으신 분들을 섬기며 영생을 누리거나. 전 후자를 택했을 뿐이죠.”
재환은 문지기의 몰골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왜 속삭임이 안 들린 거지? 저 정도면 적어도 권속이라는 건데…’
혹시나 싶은 마음에 상태창을 불러내려 했지만, 이것 역시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모종의 힘에 의해 속삭임이 들리지 않고, 상태창 역시 작동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그는 핸드캐넌의 가늠쇠 너머로 시선을 집중했다.
하지만 문지기는 자신에게 겨눠진 총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다시 사자탈을 뒤집어썼다.
“무엇을 찾으러 오셨든, 무엇을 바라고 오셨든,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한 가지입니다.”
문지기는 그렇게 말하며 종이로 만든 팔찌를 건넸다.
“동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입니다.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약속하시면, 기꺼이 드리죠.”
“…내가 받자마자 총을 쏘면 어떻게 되지?”
“총알 하나를 낭비하는 셈이 되겠죠. 문을 지키고 있는 한, 저는 죽을 수 없는 몸이니까요.”
재환은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예지력을 사용해 본 미래에서 저 남자가 핸드캐넌을 맞았음에도 곧바로 몸을 재생했기 때문이다.
결국 문지기를 협박하는 일이 무의미함을 깨달은 재환은 핸드캐넌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꺼림칙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 가야 하는 거니까.’
결정을 끝낸 그는 문지기에게서 입장권을 받았고, 입장권을 건넨 문지기는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충고 하나를 하자면, 네온사인이 켜진 건물에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그곳은 높으신 분들께서 거하시는 별장이자, 별빛을 가다듬는 공방이니까요.”
재환은 떨떠름한 얼굴로 입장권을 팔목에 채웠고, 문지기는 그가 입장권을 착용한 것을 확인한 뒤 말을 이었다.
“자, 그러면 이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문지기의 말이 끝나자 동대문이 열렸고, 문 안쪽에서는 가로등의 등불과 네온사인의 불빛이 그를 반겼다.
문지기는 동대문의 저편을 바라보던 사냥꾼에게 말했다.
“천문과 공방의 도시, 종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