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74
서울의 심장부 (3)
종로구의 야경은 서울이 멀쩡했을 당시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거리의 간판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늘어서 있었고, 거리에는 저마다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는 시민들로 가득했으며, 곳곳에는 시끌벅적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광경은 분명 서울의 번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차를 몰고 종로구에 들어선 재환은 주변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미쳐버리겠군.’
종로구의 야경은 서울이 멀쩡하지 않음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건물을 밝히는 네온사인들은 전기로 밝혀진 불빛이 아니라 성자가 발하는 별빛처럼 느껴졌고, 발걸음을 옮기는 시민들은 동대문에서 본 문지기처럼 탈이나 가면을 쓰고 있었으며, 곳곳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인간의 미학을 넘어선 음색으로 사람을 홀리고 있었다.
‘둘 중 하나겠지. 내가 미쳤거나. 아니면 이 도시가 미쳤거나.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는 거고.’
이 도시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불가해 했다.
성자 하나가 여러 건물을 소유한 것인지, 아니면 성자 여럿이 건물 하나를 같이 사용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가면을 쓴 저 ‘시민’들이 정말 사람인지도 알 수 없었으며, 이 도시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난해한 부분이었다.
‘그냥 전부 다 죽이고 볼까?’
그는 조수석에 놔둔 탈바꿈을 쥔 뒤 주변을 둘러봤다.
‘어차피 전부 괴물들 같은데, 죽이다 보면 권속이든 성자든 알아서 튀어나오겠지. 안 나오면 그건 그거대로 상관없는 거고.’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적개심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그려내기 시작했다. 미래 속에서 그는 양 떼를 만난 늑대처럼 도망치는 ‘시민’들을 사냥했고, 수백에 이르는 ‘시민’들은 별다른 저항이나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그에게 살해당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괴물이거나, 신체의 일부분만 괴물이거나, 아니면 아예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생긴 ‘시민’들이 산산이 토막 나 거리에 널브러졌다.
목이 잘리고, 머리에 구멍이 나고, 가슴팍에 곡괭이가 찍힌 시신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고,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예지력에 몰입하던 그는 가면을 쓴 ‘시민’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 역시 섞여 있음을 깨달은 뒤 숨을 들이켰다.
‘아니야.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나중에 하자.’
저들 중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에게 남아있던 한 줌의 양심을 자극했다.
‘카니발이 지금 당장 일어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내가 지금 당장 공격받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깽판 치는 건 정보를 모으고 난 다음에 해도 돼.’
이 도시는 아직까지는 그를 적대하지 않고 있었다.
시민들은 저마다 갈 길을 가고 있을 뿐이었고, 곳곳에 설치된 악기들은 그에게 무해했으며, 성자들 역시 건물 바깥으로 나와 활동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그가 괴물을 사냥하지만 않는다면 이 도시 역시 그를 건드리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은연중에 피어오를 정도였고, 결국 그는 가면을 뒤집어쓴 시민들을 모두 사냥하려는 생각을 억누른 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되새겼다.
‘일단은 데이드럼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자.’
그는 정신을 집중해 지력을 끌어모아 데이드럼의 흔적이 느껴지는 방향을 가늠해 차를 몰았다.
‘용산에 가기 전에 데이드럼을 사냥할 수 있으면 그게 최선이니까. 용산 밑바닥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만큼 지력은 최대한 올려 둬야지.’
지력이 52까지 상승한 이후, 그는 지력을 높이는 일이 눈먼 자들의 세상에서 눈을 뜨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었다.
지력을 얻은 덕분에 그는 성자가 아니면 보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엿볼 수 있게 되었고, 성자를 추적할 수 있게 되었으며,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예지력을 얻을 수 있었다.
지력은 그에게 앞길을 비추는 등불이나 다름없었고, 머나먼 별들을 보여주는 망원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지력을 계속 높일 수 있어서 다행이야. 지력을 계속 쌓아올리다 보면, 언젠간 성자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는 차를 몰아 별빛처럼 빛나는 네온사인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건물들의 유리창 너머가 뿌연 안개로 가득 차있는 것을 훑어보며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 건물이나 골라서 쳐들어가고 싶긴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성자를 사냥하는 일이 단 한 번도 쉽게 끝난 적이 없음을 돌이켜보며 성자를 사냥하려는 충동을 억눌렀다.
‘아무리 그래도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거랑 호랑이 입에 들어가는 건 구분해야지. 저 안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거고, 괜히 바둑에서 호랑이 입에 들어가는 걸 호구라고 부르는 게 아니니까.’
그는 수백 번이 넘는 회귀를 거쳐 수백만 마리의 괴물을 사냥해왔지만, 그럼에도 성자는 아직도 함부로 여길 수 있는 괴물이 아니었다.
성자를 사냥하는 일이 수틀린다면 그 역시 마태오 신부나 동대문의 문지기처럼 괴물이 되어버릴지도 몰랐고, 최악의 경우에는 성자의 노리개 신세가 되어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게 되는 처지가 될지도 몰랐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차량을 운전하며 패배했을 때 맞이할 최악의 결말을 가늠하던 그는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거리를 마주 봤다.
‘애초에 모르고 시작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이제 와서 주저앉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
끊임없이 시간이 되돌아가는 이 도시에서 사냥꾼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괴물을 사냥하려는 의지였다.
제아무리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괴물을 사냥하려는 의지가 꺾여버린다면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마련이었다.
‘이미래 같은 여자 말고 좀 괜찮은 회귀자가 더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탈과 가면을 쓴 사람들을 훑어보며 차를 끌고 나아갔다.
‘…기대해봐야 어림도 없겠지. 멀쩡한 사람도 맛이 가버리는 동네니까. 그리고 사실 엄밀히 따지면…’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실체를 알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떠올리며 되뇌었다.
‘나도 정상은 아니긴 하지. 내가 그 여자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여자도 날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서울에 안개가 내려앉은 이후, 모든 기준은 흐릿해진 지 오래였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무의미해졌고, 괴물이 되지 않은 사람도 사람의 껍질을 뒤집어쓴 괴물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속삭임 없이 괴물이랑 사람을 구분해야 되지.’
그는 속삭임이 들리지 않고 상태창 역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차를 운전했다.
‘영영 들리지 않는 건지, 아니면 일시적인 건지는 몰라도, 한동안 속삭임 없이 살아야 하는 건 사실이니까.’
그렇게 차를 몰고 동대문에서 안국역 부근까지 이동했을 때, 그는 조수석에 붙여뒀던 지도를 흘끗 살펴보며 목적지를 가늠했다.
‘이 방향이면 청와대랑 경복궁 방향인데…’
그는 자신의 직감이 틀렸기를 바라며 북촌로를 따라 차를 몰았다.
‘아니길 바래야지. 아무리 그래도 청와대에 쳐들어가는 건 부담스럽고, 대통령이 괴물이 됐으면 죽이기 찝찝하니까.’
그렇게 북촌로를 타고 청와대로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갈 무렵, 그는 안개 너머에서 도로를 막아선 검문소와 네 명의 경찰을 확인한 뒤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검문소라… 따로 우회하는 길은 안 보이는군.’
그가 차를 세운 뒤 검문소를 노려보고 있자 방독면을 쓴 경찰 두 명이 2인 1조를 이뤄서 다가왔다.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검문이라…”
그는 방독면의 고글 너머로 가느다란 촉수들이 갯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말세긴 말세네. 괴물들한테 검문을 다 받고.’
저 ‘경찰’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는 인내심을 발휘해 총을 뽑아들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아직이야. 그냥 보내줄 수도 있는 거니까. 아직은 말이지…’
그는 이곳이 괴물들의 소굴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경찰에게 건넸다. 그러자 신분증을 받은 경찰은 차량 내부를 훑어본 뒤 재환에게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사냥꾼 출입 금지구역입니다. 출입 허가증을 받은 게 아니면 지금 즉시 돌아가 주십시오.”
방독면을 뒤집어쓴 경찰의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재환은 그의 손이 허리춤의 권총집에 올려져 있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안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는 예지력을 사용해 앞으로 취할 행동을 계산하면서 경찰에게 말을 걸었다.
“감옥에라도 가는 건가? 그건 좀 별로인 것 같은데……”
“감옥에 가지 않습니다. 공방으로 갈 뿐이지요.”
“공방?”
“네. 종로에서는 그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습니다. 공방에 가서 장인이 되거나, 자원이 되니까요.”
방독면을 그렇게 말하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냥꾼은 높으신 분들이 좋아하는 자원입니다. 혹시 자원하실 거라면, 안내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어떠신지요?”
재환은 예지력으로 앞으로 취할 행동을 계산하는 것을 끝낸 뒤 경찰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좀 더 일찍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유감이에요. 나한테도 공권력에 고분고분했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경찰이랑 군인한테 협조하고, 그런 시절이요.”
재환은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경찰용 리볼버를 꺼냈다. 두 발의 총성과 함께 두 경찰의 미간에 총알구멍이 생겨났다.
“그때는 내가 순진했지.”
혼잣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남은 두 경찰의 미간에도 총알구멍이 생겼다. 깔끔하게 속사를 끝낸 그는 리볼버에 총알을 채워 넣은 뒤 다시 차를 몰았다.
‘재생능력만 없으면 쉽지. 항상 그놈의 재생력이 문제였으니까.’
차를 몰고 검문소를 넘어가자 드럼 소리로 이뤄진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그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K1을 쥔 채 경찰과 군인들이 자리 잡은 위치에 총을 발사했다.
예지력으로 미리 봐 둔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하자 열 명 남짓한 경비 병력이 한순간에 쓰러졌다.
‘차로 갈 수 있는 건 여기까지.’
그는 탈바꿈과 배낭을 챙겨 차에서 내린 뒤 곧바로 근처에 있는 수풀로 몸을 옮겼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차량이 경비 병력이 쏜 대전차 로켓에 맞아 폭발을 일으켰다.
조금만 타이밍이 어긋났어도 목숨을 잃었을 외줄 타기였지만, 그는 미리 계산해둔 루트를 향해 예지력을 사용하면서 달려갔다.
‘그래, 이거지.’
그는 차량 속의 폭발물이 터지면서 주의가 끌린 틈을 이용해 포위망을 우회했다.
사냥꾼 특유의 기동력을 활용해 담벼락과 건물이 많은 지형을 이용하자 경비 병력의 시선을 피하는 것은 그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사냥꾼이면 사냥을 해야지. 내가 관광이나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니까.’
그는 네온사인이 없는 건물 하나를 골라 옥상으로 올라간 뒤 청와대 방향을 바라봤다.
네온사인 빛깔로 은은하게 물든 청와대의 모습은 저 건물이 대통령의 관저가 아니라 성자의 공방으로 전락했음을 한눈에 보여줬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그는 탄창을 갈아 끼우며 청와대를 노려봤다.
‘차라리 잘 됐어. 이럴 때가 아니었으면 평생 청와대에는 와 보지도 않았을 테니까.’
정신을 집중해 예지력을 사용한 그는 건물의 옥상에서 내려와 설계해둔 루트를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수차례 총성과 단말마가 울려 퍼지는 것과 함께, 그는 청와대의 담장을 넘는 것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