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75
멋진 소세계 (1)
반쯤 괴물이 된 경비 병력의 시체를 넘어 청와대 본관의 앞에 도착한 재환은 뒤틀려버린 청와대의 모습을 올려다봤다.
‘청와대라… 이젠 파란색도 아니게 됐군.’
청와대의 지붕은 더 이상 푸른색이 아니었다. 지붕을 이루는 기와의 색깔은 굳어버린 피처럼 검붉었고, 기와를 잇는 마디 사이사이에는 가느다란 네온사인이 별빛처럼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 안에 대통령이 있을 리는 없겠지. 만약 있다고 해도 제대로 된 모습일 리가 없을 테고.’
그는 수십여 명의 경비 병력을 사냥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바로 겉모습이 사람일지라도 그 속까지 사람이라는 법은 없다는 점이었다.
어떤 경호원은 몸통이 잘리자 그 속에서 지렁이처럼 가느다란 촉수 다발이 꿈틀거리면서 나왔고, 어떤 경호원은 목이 베이자 목이 베인 자리에서 굵은 촉수 가닥 하나가 자라나 목을 대신하기까지 했으며, 먼저 공격을 받거나 상처를 입지 않았어도 신체를 변형시켜 괴물의 형상으로 달려드는 경호원까지 있을 정도였다.
‘아마 시민들도 마찬가지겠지. 여기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테고. 그리고 어쩌면…’
그는 괴물이 된 경찰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사냥꾼이 역시 괴물이 될 수 있음을 상기했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괴물이 될 수도 있겠지. 괴물병이라는 게 공기로 감염된다는 소문도 있었으니까. 만약 여기가 괴물병의 발원지인 거면, 나라고 멀쩡하란 법은 없는 거지.’
괴물병에 대해 밝혀진 것은 거의 없었다. 시민들은 사람이 괴물이 되는 현상을 ‘괴물병’이라는 속칭으로 부르고는 있지만, 이 현상이 정말 질병에 의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애초에 질병이 맞기는 한 것인지도 증명되지 않았다.
다만 성자에게는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능력이 있으며, 조건만 갖춰진다면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이 분명할 뿐이었다.
‘어쨌든 조심하는 게 좋겠어. 저 안에 들어가는 건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가는 거랑 다를 게 없어 보이니까. 잠깐 방심하거나 조금만 실수하면 호구 되는 건 순식간이겠지.’
예지력을 사용해도 청와대 본관 안으로 들어가고 난 다음의 일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뿌연 안개로 가려진 것처럼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고, 불길한 예감만이 희미하게 느껴질 뿐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들어가는 순간 덫에 걸리는 걸지도 모르긴 하지. 바깥에 깔아둔 경비 병력은 사냥꾼을 자극하려는 미끼일지도 모르는 거고. 그래도…’
그는 어렴풋이 느껴지는 불길함을 즈려밟으며 본관의 문을 향해 나아갔다.
‘…만약 그렇다고는 해도, 실마리를 잡으려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미친 짓을 하지 않으면, 성자를 사냥하는 건 영영 불가능한 거지.’
그는 자신이 성자를 사냥하기 위해 저지른 미친 짓들을 상기하며 본관의 문에 손을 올렸다.
괴물을 죽이고, 괴물에게 살해당하고, 괴물을 통해 자살하고, 괴물에게 조종당하는 시민들을 학살하고, 아예 괴물이 되어버렸던 순간과 괴물이 된 기억으로 미쳐버렸던 날들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괴물을 죽이려면 괴물이 돼야 하는 거야. 새삼스러워할 일도 아닌 거지.’
그렇게 청와대 본관의 문을 열자 새어 나온 달빛이 청와대 본관의 어두컴컴한 로비를 비췄다.
로비 내부는 뿌연 안개로 가득 차 있었고, 안개 너머로 인형을 닮은 형상의 실루엣들 수십여 개가 곳곳에 늘어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마네킹인가?’
인형의 실루엣은 각양각색이었다.
상반신만 남은 것도 있었고, 몸통만이 남아 토르소처럼 진열된 것도 있었으며, 팔이나 다리가 여러 개 달려있거나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것도 있었다.
입구에서 멈춰선 재환은 한 손으로는 랜턴을, 핸드캐넌을 쥔 채 수십여 개의 실루엣을 경계했다.
안갯속의 인형 실루엣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쾌함과 불길함을 동시에 자아냈기 때문이다.
‘느낌이 안 좋아. 움직이진 않는 것 같긴 한데, 그냥 장식품인 것 같진 않단 말이지.’
인형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있는 인간이나 죽어있는 인간을 연상시키는 은유였고, 인간의 심연 속에 잠들어있는 어두운 부분을 자극하는 촉매였다.
그렇기에 인형은 고대부터 마녀와 주술사가 애용되어왔고, 인형이 품은 모티프는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어 지금까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괴물인 것 같진 않은데… 일단은 조심하는 게 좋겠어. 함정일 수도 있는 거고, 내가 모르는 종류의 괴물일 수도 있는 거니까.’
인형 실루엣을 경계하던 재환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 모양의 인형 실루엣을 향해 다가가 시선을 집중했다.
‘이건…’
인형의 모습을 살펴보던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살가죽. 그리고 핏물이랑 살점으로 만든 건가?’
팔 없이 상반신만 남은 인형의 모습은 이목구비가 뒤틀린 인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목젖은 비대하게 부풀어 올라와 있었고, 입은 광대뼈까지 닿을 정도로 찢어져 있었으며, 귀는 불에 익은 오징어처럼 휘어져 돌돌 말려있었다.
그는 머리에 핏물로 ‘No.37’이라고 그려진 것을 보면서 핸드캐넌을 품에 넣었다.
‘사람으로 만든 인형인지, 인형으로 만든 사람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지.’
그는 등에 메고 있던 탈바꿈을 향해 손을 뻗으며 각오를 굳혔다.
‘사람으로 만든 인형이든, 인형으로 만든 사람이든, 없애버려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괴물이 이딴 걸 만들었으면 당연히 없애야 하는 거고…’
함정일 수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인형의 내부에 특수한 장치나 폭약이 설치되어있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고, 이 인형을 부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었다.
‘사람이 이딴 걸 만들었으면 괘씸해서라도 부숴버려야 하는 거니까.
이 인형을 만든 것이 인간의 껍질을 쓴 괴물이든 괴물로 전락한 인간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괴물을 사냥하는 사냥꾼으로서 망설임 없이 탈바꿈을 쥐었고, 인형을 부수기 위해 탈바꿈을 휘둘렀다.
그리고 탈바꿈이 인형의 목을 후려쳤을 때, 목이 찢어져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기이한 음색의 노래가 잘려진 목에서 흘러나왔다.
“——————————”
천상에서 내려와 땅을 적시는 빗물처럼, 로비를 적셔낸 음색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한 소절의 음악을 들은 순간, 이 전주곡을 설계하고 작곡해낸 장본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카니발, 데이드럼.’
그가 작곡가의 정체를 직감하는 것과 동시에 불이 꺼져있던 로비에 네온사인 빛깔로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기괴하게 뒤틀린 형상의 인형들이 로비 곳곳에 장식되어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으며, 뒤틀린 형상의 인형들이 저마다의 음색으로 합주를 하는 것이 들려왔다.
[축제가! 축제가 열려! 하염없는 축제가 열려!] [다 카포, 다 카포! 도돌이표에 도돌이표를!] [달을 찬미하라. 춤추고 노래해 달을 사랑하라!] [축제를! 끝나지 않을 카니발을 준비하자!] [피네- 카니발! 피네- 카니발!]인간으로 만든 관악기가 선율을 만들고, 뼈와 살가죽으로 만든 드럼이 자신의 몸을 쳐서 리듬을 만들었으며, 수십 개의 성대가 화음을 쌓아 로비를 음악으로 물들였다.
한순간에 울려 퍼진 카니발의 음색에 재환은 신경질적으로 탈바꿈을 휘둘렀다.
‘노랫소리. 빌어먹을 노랫소리!’
그는 숨 쉬는 것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인간 악기를 부수는 것에 몰입했지만, 인간 악기들은 부서지는 순간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떨어지는 핏방울로 연주되는 재즈 밴드처럼, 피땀을 갈아 넣은 오케스트라처럼, 생명을 찢어내어 빚어내는 울음소리가 심금을 꿰뚫었다.
그리고 4분 33초 가량의 연주가 끝났을 때, 그는 인간 악기들이 부서지면서 흘린 피를 뒤집어쓴 채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뒤흔드는 몽상, 데이드럼이라……’
음악 소리에 정신이 뒤흔들리던 감각을 진정시킨 그는 숨을 몰아쉬며 되뇌었다.
‘피를 봐야 알 수 있는 네이밍센스라니.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참 친절하기도 하단 말이지.’
안개 낀 로비에 인간 악기들이 으스러져 있는 모습은 꿈처럼 덧없었지만, 악기를 부수는 과정에서 들려왔던 연주에는 정신을 뒤흔드는 울림이 담겨있었다.
만약 지혜가 부족했더라면 정신이 무너지거나 괴물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서늘한 감각이 피부를 타고 뇌까지 피어올랐다.
‘그래도 거의 다 왔어. 데이드럼의 기운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으니까.’
연주로 자극을 받아 한껏 예리해진 지력은 그의 발걸음을 대통령 본관 2층에 위치한 대통령 집무실로 이끌었다.
‘아직이야. 멘탈이 좀 깨지긴 했어도, 아직까지는 괜찮아.’
대통령 집무실의 문 앞에 도착한 그는 자신의 정맥에 전투자극제를 투여하며 숨을 들이켰다.
‘아무리 못 볼 꼴을 보고, 망가져 버려도, 마지막까지 괴물을 죽이러 가야지.’
이 관저의 주인이 데이드럼이고, 그가 사람을 악기로 빚어내는 괴물인 이상, 그는 괴물을 사냥하는 사냥꾼으로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비록 원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나아가기로 다짐한 이상 괴물 사냥은 그에게 일종의 사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결정했고, 맹세했으니까.’
전투 자극제의 약효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지자 그는 대통령 집무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지휘자가 입을 법한 연미복을 입고, 우주비행사 헬멧을 뒤집어쓴 남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연주는 잘 들었습니다. 꽤 재능이 있으시더군요. 수많은 시간을 거쳐서 아무리 많은 악기를 만들어 봐도, 역시 사냥꾼만 한 악기는 없나 봅니다.”
남자는 허리를 숙인 뒤 팔을 안으로 굽혀서 인사했고, 재환은 핸드캐넌을 꺼낸 뒤 눈앞의 남자에게 겨누는 걸로 대답했다.
“너희 우두머리는 어디 있지?”
한껏 예리해진 지력이 눈앞에 있는 남자는 성자가 아니라고 속삭이고 있었고, 이와 동시에 저 남자가 사냥꾼 특유의 악취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재촉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인님께서도 당신을 만나 뵙고 싶어 하시니까요. 그러니 그 전에, 잠시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려도 괜찮을까요?”
재환은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데이드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저 남자가 대신 있고, 데이드럼을 추적하는 것에 차질이 생긴 이상 실마리가 될 단서는 조금이라도 더 모아둬야 했기 때문이다.
“어디 한번 해 봐.”
그는 핸드캐넌의 방아쇠가 완전히 당겨지기 직전까지 힘을 주며 말했다.
“허튼짓 하면 바로 쏴버릴 테니까.”
그러자 연미복의 남자는 다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중국 고사에는 포사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그는 오랜 세월 목소리를 가다듬은 성악가와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비단 찢어지는 소리를 좋아지던, 경국지색의 여인이었죠. 그녀에게 미쳐있었던 주나라의 왕은 국고를 쏟아 부어 비단을 찢었고, 주나라는 결국 포사로 인해 멸망해버렸습니다. 어리석고 어처구니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이야기지요.”
이야기를 끝낸 그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사설이 길었네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런 얘기입니다.”
연미복의 남자가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재환은 시야가 일그러지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했다.
“우리 주인께서는 당신이 찢어질 때 나오는 소리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제게 당신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기러 왔다는 얘기죠.”
주변의 풍경이 마천루의 옥상으로 변하는 것과 동시에 재환은 방아쇠를 당겼다.
권총의 모습을 한 대포가 불을 뿜자 우주비행사 헬멧은 산산조각 났지만, 남자의 목소리를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정식으로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구멍 난 헬멧에서는 실타래와 같은 촉수 가닥이 재생하는 모습이 보였다.
“야상곡 공방의 3악장 조율사 문성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