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76
멋진 소세계 (2)
마천루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야경은 별빛으로 물든 밤하늘을 닮아있었다.
평소였다면 짙게 드리워져 있을 안개는 보이지 않았고, 서울 외곽을 막던 안개의 벽은 악기로 쌓아올린 벽으로 대체되어있었으며, 어두컴컴했던 도시의 곳곳에는 네온사인 불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한순간에 서울의 풍경이 달라지자 재환은 어지럼증을 느끼며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집중하자. 환경이 바뀐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니지.’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다듬으며 눈앞에 있는 괴물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괴물이 있고, 무기가 있어. 그것만 바뀌지 않았으면 되는 거야.’
그렇게 재환이 현기증을 느끼며 정신을 가다듬고 있을 때, 데이드럼의 조율사는 촉수로 변한 손가락을 꼿꼿이 세워 지휘봉으로 만들었다.
조율사는 무대 위에 오른 지휘자처럼 자세를 잡았고, 곧이어 물 흐르듯 부드럽게 지휘봉과 손을 움직이자 도시 곳곳에 있는 건물과 악기들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피아노의 건반이 현을 두드리는 소리, 현악기의 활이 현을 쓰다듬는 소리, 성악가들이 화음을 쌓아올리는 소리, 북과 드럼이 박자를 깔아 넣는 소리까지.
귓가에서 조율사가 연주하는 음악 소리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하자 재환은 눈앞이 별빛으로 물드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건… 작은 별…? 작은 별 변주곡?’
익숙한 멜로디에 정신이 혼미해지려던 순간, 머릿속에 조율사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멜로디죠? 원제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라고 부릅니다.]별들은 눈꺼풀 안쪽에서 춤을 추었고, 조율사는 천국에서 내려온 사자처럼 그를 천상의 멜로디로 인도했다.
[한 소녀가 어머니께 진심을 고백한다는 내용의 프랑스 민요를 클레식으로 변주해낸, 모차르트의 걸작이죠. 다들 사냥꾼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음표로 이루어진 은하수가 뇌수로 흘러들어오는 감각과 함께, 조율사는 선언했다.
[위대한 음악가가 만들어낸 음악은 별들의 노랫소리와 꽤나 닮아있는 법이거든요. 한 번 들어버리게 된 이상,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요.]재환은 그의 말이 진실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조율사가 연주하는 음악은 혈관을 따라 뇌와 심장을 뒤흔들었고,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래를 부르고 싶은 충동에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노래라니. 노래를. 노래를 부르면…! 노래를 부르면 난…!’
그는 남아있는 의지를 끌어모아 경찰용 리볼버를 꺼내 자신의 고막에 겨눴다. 고막을 터트리면 노래를 듣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그는 음악이 피부를 따라 심장을 어루만지는 것을 느끼며 악성(樂聖)이라 불린 음악가의 일화를 떠올렸다.
‘아니. 귀를 막는 걸론 부족해. 귀가 없어도 음악은 계속 들릴 테니까.’
음악의 본질이 고동인 이상, 위대한 음악은 피부를 넘어 심장을 두들기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음악은 청력을 잃은 사람마저도 춤추게 할 수 있었고, 베토벤은 귀머거리가 되었음에도 음악의 성자로서 추앙받았을 수 있었다.
‘노래가 마음에 안 들면…’
출구를 찾아낸 그는 총구의 방향을 조율사를 향해 돌렸다.
‘…노래를 꺼트려야지.’
관객에게는 누구나 음악을 평가할 권리가 있었고, 그렇기에 제아무리 뛰어난 음악일지라도 누군가는 혹평을 내릴 수 있는 법이었다.
탕!
단 한 사람의 관객이 쏘아 올린 총성에 의해 천상의 멜로디가 끊겼고, 조율사는 부러져버린 자신의 지휘봉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럴 리가…”
긍지 높은 야상곡 장인인 조율사 문성진은 관객의 야유로 인해 무대에서 강판당한 지휘자의 심정으로 말했다.
“연주는… 연주는 완벽했을 텐데… 어째서…”
음악가에 조율사가 된 이후, 그는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데이드럼의 카니발에 쓰일 악기들을 완벽히 조율해냈다.
그의 손을 거치면 아무리 날렵한 사냥꾼일지라도 그에게 조율을 받은 순간 땅바닥을 기어 다녔고, 제아무리 명석한 회귀자일지라도 백치가 되어 악기가 되길 간청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사냥꾼은 달랐다.
그는 심장을 두들기는 리듬 소리를 들었음에도 땅바닥을 기지 않았고, 악기가 되게 해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다.
비틀거리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더라도, 무기를 지팡이 삼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지탱해내는 모습은 괴물이 된 그에게도 불가해한 광경이었다.
조율사가 머뭇거리고 있자 재환은 몸 상태를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 조율사에게 말을 걸었다.
“이런 노랫소리로는 모자라.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어림도 없고말고.”
재환은 이 노랫소리보다 감미로웠던 목소리를 내던 여인을 떠올렸다. 지고한 천상의 미학을 미리 경험했던 기억은 정신을 유지하는 닻이 되어 음악의 풍랑에서 그를 구원했다.
자신의 정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기억이 지금은 자신을 지탱하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그는 실소를 흘렸다.
“사랑도 애정도 없는 노래로 감동이라니. 그런 건 가짜야. 껍데기나 다름없는 거지.”
잠시 정적이 이어졌고, 데이드럼의 조율사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저도 아직은 멀었나 봅니다. 아무리 완벽한 곡이어도, 연주하는 사람이 볼품없다면 감동을 줄 수 없는 법이지요.”
조율사는 그렇게 말하며 지휘봉을 재생시켰다. 그의 견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악기를 조율하는 장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주자로 남고 싶었지만, 이러면 어쩔 수 없겠네요.”
그가 지휘봉을 들어 올리자 또다시 음악 소리가 들려왔고, 재환은 그 순간 하늘의 별빛이 발광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가 시작되려는 직감에 그는 경찰용 리볼버의 남은 탄환을 전부 발사했고, 조율사는 온몸에 총알구멍이 난 채로 지휘봉을 움직였다.
“제가 주인께 내려받은 본분은 악기를 만들고 가다듬는 일이니까요.”
재환은 조율사의 몸에 난 상처가 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탈바꿈을 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가 달려들려는 순간, 하늘에서 별빛으로 빛나는 쐐기가 유성처럼 옥상에 내리꽂혔다.
재환은 자신의 앞길을 막은 거대한 쐐기를 보며 어처구니없어했다.
‘이건 또 무슨…’
그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며 뒤로 거리를 벌렸다. 함부로 다가갔다간 저 사람 크기만 한 쐐기에 꿰뚫릴 거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가 앞으로 가려던 위치에 또다시 쐐기가 내리꽂혔다.
“죽지는 않습니다. 몸에 상처가 남지도 않고요. 다만…”
조율사는 재환을 향해 네온사인 빛깔로 빛나는 쐐기들을 연속해서 떨어뜨렸다.
“…찔리면 졸음이 좀 올 뿐이죠. 자장가를 들으면 잠이 오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재환은 저 쐐기에 찔려 잠들었을 때 일어날 일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나면 인간 악기 신세가 되거나 괴물의 하수인 신세가 되는 미래가 딱히 예지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에 선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죽일 생각은 없다 이거지…?’
음악인이 악기를 망가뜨리지 않는 것처럼, 저 괴물 역시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그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그는 실소를 흘리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면 후회하게 해 줘야지. 감히 사람을 사물 취급했으면,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지.’
저 괴물은 성자가 아니었고, 예지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따로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예지력이 있다면 굳이 방식을 바꿔가면서 재환을 사로잡으려 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예지력이 없다면, 예지력이 있는 쪽이 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필연적인 흐름이었다.
‘뻔히 보여.’
예지력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을 추스른 재환은 자신의 옆으로 떨어지는 쐐기를 피하며 앞으로 달려갔다.
‘음악도 이제는 익숙하고.’
지혜로 강화된 두뇌는 조율사가 연주하는 곡에 적응하고 있었다.
잡음에 가까운 소음은 차단하고, 중독성이 강한 미음은 흘려 넘기면서, 그의 두뇌는 온전히 사냥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의식을 최적화했다.
떨어지는 쐐기를 피하고, 쐐기를 박아 만들어진 방책을 넘어서, 조율사의 앞까지 뛰어오른 재환은 탈바꿈을 내리쳤다.
그러자 고깃덩어리가 썰리는 소리와 함께 조율사의 머리 부분의 촉수들이 절반으로 갈라졌고, 그 충격으로 조율사의 몸이 굳어버렸다.
‘쐐기 피하는 것도 익숙해졌으니까.`
조율사도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사냥꾼이 자신을 공격할 것을 대비해 사냥꾼을 향해 쐐기가 떨어지도록 준비해뒀기 때문이다.
‘뻔해. 이제는 너무 뻔해졌어.’
재환은 곧바로 탈바꿈을 빼낸 뒤 자신을 향해 떨어진 쐐기를 피했다. 그리고 탈바꿈이 빠지자 조율사는 갈라진 촉수들을 재생시키기 시작했다.
‘재생… 할 테면 하라지.’
그는 괴물이 된 마태오 신부를 어떻게 죽였는지를 떠올리며 다시 달려들었다.
‘죽을 때까지 죽이면 돼. 이 땅은 천국이 아니고, 지금까지 부활은 있었어도 불사는 없었으니까.’
판단이 끝난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탈바꿈을 휘둘러 살점을 가르고, 하늘에서 쐐기가 떨어지면 피하고, 다시 살점을 토막 내는 것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그리고 살점이 재생되는 속도보다 살점을 찢어발기는 속도가 현저히 빨라졌을 때, 조율사는 고통 어린 괴성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거의 다 왔어. 마무리만 하면 돼.’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려는 순간, 예지력은 앞으로 나아갔다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쐐기 더미들에 몸이 꿰뚫리는 미래를 보여줬고, 재환은 앞으로 달려가려는 것을 멈칫거렸다.
‘젠장…’
쐐기 더미가 떨어지려는 지점을 우회하여 달려갔지만, 그가 본 것은 마천루의 옥상에서 떨어지기 직전인 조율사의 모습이었다.
‘걸어서 내려가면 늦어. 그 사이에 재생을 끝낼 테니까.’
마천루의 높이는 적어도 150m는 넘어 보였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찾아 내려간다면 조율사가 재생을 끝낼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찰나의 순간에 판단이 끝났다.
‘흑묘 반지가 아깝긴 해도, 도구는 어차피 쓰라고 있는 거니까.’
예지력이 보여준 미래는 긍정적이었다. 단 한 번 즉사를 막아주는 흑묘 반지 덕에 으스러진 몸은 원형을 회복했고, 몸이 으스러진 충격과 통증을 추스르는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쿵!
조율사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재환은 탈바꿈을 던져 떨어진 조율사에게 꽂아 넣었다.
그리고 탈바꿈이 조율사의 재생을 방해하는 틈에 마천루의 난간에서 뛰어올랐고, 서울의 야경을 향해 떨어졌다.
거센 풍압과 맹렬한 속도감이 그를 반겼고, 그는 순식간에 추락하여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부딪혔다.
그리고 몸이 산산이 조각난 충격을 회복하여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탈바꿈이 꽂힌 채로 도망치는 조율사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거의 다 됐어…’
그는 고장난 총과 총알들을 버린 뒤 조율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 죽이기만 하면 그만이야.’
그는 조율사의 등을 꿰뚫은 탈바꿈을 뽑아들었고, 곧바로 탈바꿈을 휘둘러 조율사를 난도질했다.
그리고 그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탈바꿈을 휘두르는 것을 그만뒀을 때, 그 자리에는 조율사였던 고깃덩어리만이 산산이 조각난 채 꿈틀거리며 남아있을 뿐이었다.
‘끝났군.’
재환은 으깨진 고깃덩어리를 내려다보며 숨을 들이쉬었다.
백 년을 넘게 사람의 살점과 정신을 갈아 넣어 악기를 조율해왔던 조율사의 마지막 조율은 결국 자신의 몸이 갈리는 것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