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77
멋진 소세계 (3)
마천루에서 내려와 사냥을 끝냈을 때, 잘게 으깨져 고깃덩어리가 된 조율사에게서 시선을 뗀 재환은 주변을 둘러본 뒤 이 도시가 네온사인 빛을 내는 악기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카니발 때 봤던 것들과 닮았어.’
그는 피아노 건반 모습을 한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했다.
‘좀 덜 흉측하고, 덜 기괴하긴 해도, 대략적인 모습 자체는 동일한 것 같군`.
악기로 된 건물, 악기로 이루어진 사람과 괴물들, 그리고 악기가 되지 않은 사람들을 악기로 만드는 괴물 장인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역할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었고, 주변에서는 악기를 조율할 때 들리는 소리들이 웅웅거리며 울려 퍼지고 있었다.
`…차라리 무시당하고 있는 게 낫지. 지금 당장 저것들들 전부 몰살시킬 순 없는 거니까.`
사냥은 성공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옥상으로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가져왔던 총화기들은 모두 고장 났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준비한 독약과 전투 각성제를 포함한 약물 역시 으스러져서 쓸 수가 없었고, 미리 준비해뒀던 수류탄들은 청와대에 진입할 때 모두 소모하여 이제는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남은 무기는 탈바꿈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만약 탈바꿈마저 부러지거나 고장 난다면 맨몸으로 성자의 본거지 한복판에 홀로 남겨지는 셈이 되었다.
‘미친 짓이긴 했지만, 그래도 안 뛰어내리는 것보단 나았어.’
마천루 입구 근처에 놓인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재환은 피로 물든 담배를 입에 문 채 찌그러진 지포 라이터를 꺼냈다.
‘그러다가 그대로 놓쳐버렸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테니까. 그걸 살려 보낼 바에야 차라리 자살하는 게 낫지.’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은 최선에 가까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가 청와대에 침입해 이 ‘새로운 서울’까지 오게 된 이유는 데이드럼을 사냥하기 위해서였고, 제아무리 괴물을 많이 사냥하더라도 데이드럼을 사냥할 전력이 모자란다면 이번 사냥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냥꾼은 사냥을 해야지.’
그는 찌그러진 지포 라이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다 잡은 사냥감을 놓아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테니까.’
사냥하지 않는 사냥꾼은 그저 시간을 축낼 뿐인 괴물에 불과하고, 그는 사냥하지 않는 사냥꾼을 만나봤기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괴물 사냥은 그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그의 모든 것이었고, 그렇기에 그는 성자의 하수인에 불과한 괴물을 사냥하는 것에도 전력을 다해 몰입하였다.
‘지금부터 잘하면 그만이야.’
그는 지포 라이터와 담뱃갑을 버린 뒤 벤치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 눈을 감고 생각했다.
‘실패하고, 부러지고, 죽어가면서 배우는 게 내 일이었으니까. 처음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 손해 본 걸 일일이 후회할 필요는 없는 거야.’
수많은 실패를 겪으면서 그는 점점 실패에 익숙해져 갔다.
처음 허그베어를 사냥했을 때에도, 암브락사스를 사냥했을 때에도, 블레인을 상대할 때도 그는 늘 실패해왔다.
상대는 언제나 그보다 강력했고, 상황은 언제나 암담했으며, 희망의 불씨는 실낱처럼 희미했다.
‘그래도 결국은 내가 이겼어. 마지막에는 결국 내가 이겼지.’
그는 한 줌의 위안거리를 찾아 곱씹었다.
‘마지막 한 번만 이기면 되는 거야.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마지막 괴물을 사냥하면, 이 악몽도 결국은 끝나겠지.’
그렇게 휴식을 취하며 생각을 가다듬는 것을 끝낸 재환 다시 눈을 뜬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이드럼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대략 5km에서 6km 정도 걸어가야 하는 건가.’
청와대에 침투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간 이후, 그는 공간이 일그러지는 감각과 함께 데이드럼의 공방 본거지로 추측되는 이 ‘새로운 서울’에 도착했다.
하지만 데이드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을 바라보던 그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서울 속에 서울이라…’
그는 악기의 모습을 한 건물들이 사방에 이어진 도로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랄 맞은 농담이야. 서울 안에 서울이 하나 더 있다니. 무슨 마트료시카도 아니고 말이지.
지혜와 지력이 높아진 영향 덕분에 그는 자신이 오게 된 이 공간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은 서울의 모습을 기반으로 삼아 만든 공방이었고, 이렇게 생각하면 문지기가 종로구를 ‘공방의 도시’라 부른 이유가 설명되기 때문이다.
‘내 정신이나 감각이 망가진 게 아닌 이상, 그 조율사란 괴물이 이 도시를 만들었을 리는 없겠지. 만약 그 괴물한테 공간 자체를 만들어내고 조종하는 능력이 있었으면 날 생포하는 데 쓰지 않았을 이유가 없으니까.’
조율사는 분명 강력한 괴물이었다.
음악을 연주해 정신을 뒤흔드는 능력은 지혜가 부족하다면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하늘에서 별빛으로 빛나는 쐐기를 떨어뜨리는 능력 역시 예지력이 없었다면 대응하기 곤란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율사에게 공간을 새롭게 창조하고, 대도시 규모의 공간을 악기로 개조하는 능력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강력한 성자였던 블레인은 재환을 사냥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음에도 지금처럼 서울 전체를 일그러뜨리지는 못했고, 그 암브락사스마저도 서울 전역을 자신의 색채로 물들이려면 일주일가량을 소모해야 했다.
‘대통령 집무실이 이 새로운 서울로 통하는 입구였고, 여기는 내가 오기 전부터 완성되어있었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말이 되겠지. 회귀의 영향을 받는지 안 받는 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악기가 된 사람들이 악기가 되지 않은 사람들을 악기로 가다듬으며 악기로 된 건물들을 오가는 모습을 노려보며 결론을 내렸다.
‘…서울 안에서는 성자들이 힘을 쓰려면 제한이나 조건이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그 조건이 여기서는 좀 완화되는 걸 테고.’
결론을 내린 그는 혀를 차며 데이드럼이 있을 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이 도시가 성자의 뱃속이나 다름없고, 자신이 성자의 뱃속에 들어와 있다는 꼴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실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도망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아. 괴물의 배 속에 있다는 건 속을 헤집어 놓을 수 있다는 거니까. 다른 벌레보다 기생충이 몸에 더 해로운 법이지.’
괴물들 사이를 지나 거리를 걸어갈수록 도시의 기괴함이 스멀스멀 풍겨오는 것이 느껴졌다.
악기의 모습을 한 건물들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고, 우주비행사들이나 쓸 법한 헬멧을 뒤집어쓴 괴물들은 건물에서 나온 사람들을 악기로 변형시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얼굴로 작업복을 입은 괴물 장인들이 촉수와 공구들로 자신의 몸을 뒤트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온몸이 악기로 변형되고 있음에도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얼굴을 유지했고, 그중에서는 실패작 취급을 받아 아예 흐물흐물한 고깃덩어리로 녹아내려 하수도로 떠내려간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곳에 있는 악기들은 모두 피와 살점, 그리고 뼈와 정신을 갈아 넣어 만든 것이었고, 그렇기에 이곳은 대도시 규모의 대량 학살이 네온사인의 별빛 아래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지옥이었다.
‘나도 이미 괴물이나 다름없는 거겠지.’
무표정한 얼굴로 악기와 악기 장인들 사이를 지나가던 그는 괴물을 몰살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억누르며 악기 공방의 거리를 걸어갔다.
‘이런 걸 보고도 괴물들 사이에 섞여 들어갈 수 있으니까. 멀쩡한 사람이었으면 이런 식으로 반응하진 않았을 거야.’
이곳의 풍경은 그에게는 늘상 보아왔던 지옥의 연장선이었다.
이미 사는 것이 지옥이나 다름없던 그에게 새로운 형태의 지옥이 나타나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고, 미쳐 날뛰거나 흥분해야 할 일 역시 아니었다.
‘그래도 찝찝한 게 하나 있다면…’
그는 닳고 닳아 마모되어버린 인간성을 끄집어내어 스스로 악기가 되려는 군중들에 대해 생각했다.
‘…저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에서 나왔냐는 거겠지. 이런 대도시 규모의 공방이 데이드럼 혼자서만 가지고 있을 거란 보장은 없고, 만약 데이드럼 혼자서만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도 인구밀도가 너무 높아.’
아무리 서울의 인구가 많고, 그가 이 ‘새로운 서울’을 전부 돌아본 것은 아니라곤 하지만, 거리에서 보이는 괴물과 사람의 숫자는 번화가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빼곡했다.
여기에 더해 악기의 모습을 한 건물들에서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그 사람들이 악기가 되고, 실패작들은 폐기되는 순환이 쉴 틈 없이 계속된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미스터리는 한층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설마… 아니, 아니길 바라야지.’
이 도시의 미스터리에 대해 생각하던 그는 불현듯이 떠오른 가능성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아무리 사람 목숨이 벌레만도 못하다곤 해도…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야.’
비록 그의 인간성이 마모될 대로 마모되었다고는 해도, 그에게는 아직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선이 남아있었다.
무고한 사람에게 아무 이유 없이 피해를 주는 것을 피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할 때는 평화적인 수단을 먼저 고려하려고 하는 것 역시 한때는 선량했던 본성이 작용한 결과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까지도 이성을 유지하면서 조금이나마 사람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한 줌의 인간성이 남아있었기에 그는 어느 건물의 쇼윈도 너머에 비춰진 풍경을 보고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그래. 혹시나 하긴 했지.’
쇼윈도 너머에 펼쳐진 장면을 보자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니까.’
쇼윈도 너머에서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내려온 아기들이 요람에 담긴 채 어른이 되고 있었다.
무슨 약물을 투여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시간의 흐름을 빨리 감기라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요람 안에서 아기들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서 어른이 되고 있었다.
‘공방만 있는 게 아니라 공장도 있는 거였어. 사람을 가축으로 삼는… 인간 공장도… 있는 거였군.’
아기들이 성장하는 정도는 각양각색이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로 성장하는 아기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노인까지 성장하는 아기들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동시에 성장이 끝났고, 그렇기에 모두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을 아기들 중 누군가는 청소년이 되고 누군가는 노인이 되었다.
그리고 성장을 끝낸 남녀노소의 ‘아기’들은 괴물들의 손에 이끌려 건물 바깥으로 나왔고, 그들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해맑게 악기가 되었으며,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새로운 아기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쇼윈도 너머의 풍경을 채웠다.
‘데이드럼을 사냥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어.’
그는 쇼윈도 너머를 한동안 응시한 뒤 다시 데이드럼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저걸 그대로 두면 언젠가 내가 있던 서울도 이 꼴이 될 테니까.’
사냥꾼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사람이 가축으로 전락한 모습은 본능적으로 혐오감과 위기감을 일으켰다.
저 별에서 내려온 초월자들이 이 공방 도시에서 풀려나와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면 최소한의 존엄조차 꿈도 꿀 수 없는 지옥이 시작될 게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인간이기 이전에 사냥꾼으로서 앞으로 나아갔고, 한참을 더 걸은 뒤에 데이드럼이 거하는 예술의 전당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