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78
성자의 전당 (1)
예술의 전당은 한때 국내 문화예술 시설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서초구에 자리 잡은 이 거대한 시설은 공연뿐만이 아니라 전시와 연구 등을 포괄하여 담당한 종합예술 시설이었고,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합창단,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예술 단체가 상주하던 문화예술의 심장부였다.
그렇기에 예술의 전당은 서울이 멀쩡하던 시절에는 문화예술을 즐기러 온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공간이었지만, 예술의 전당의 입구에 도착한 재환은 정장을 입은 채 줄을 서 있는 괴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담장을 넘어가기에는 너무 높아 보이고… 새치기하기에는 줄이 너무 빼곡한데···.’
그는 탈바꿈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고민했다.
‘차라리 그냥 다 죽여 버릴까? 어차피 저 괴물들 중에 성자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까. 죽여 버리는 것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니지.’
괴물들은 싸움꾼이라기보다는 예술가에 가까운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그 괴물 중에는 카니발에서 노래를 부르던 성악가와 닮아있는 괴물도 있었고, 얇고 가느다란 수백 개의 촉수로 현악기를 정비하는 중인 괴물도 있었으며, 거대한 캔버스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린 뒤 무언가를 끄적거리다가 지우는 것을 반복하는 괴물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정장을 입고 있었으며, 각자 다른 생김새로 자신만의 예술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괴물을 응시하던 재환은 괴물을 사냥하려는 충동에 시달리며 이를 악물었다.
‘참을 만큼 참긴 했어. 이 정도로 참았으면 오래 참은 거긴 하지.’
공방 거리에 있던 인간 공장을 본 이후, 그는 데이드럼을 사냥하는 것을 뒤로 미룬 뒤 이 도시에 있는 괴물들을 모조리 사냥하고 싶은 충동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인간이 가축으로 전락한 모습은 본능적으로 혐오감과 위기감을 불러일으켰고, 인간을 악기로 만드는 재료로 사용한 뒤 폐기하는 모습은 마모된 감정에 불씨를 지폈다.
‘데이드럼을 사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이 잡것들을 죽여 버리는 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예지력을 얻게 된 이후, 평범한 괴물은 더 이상 그를 죽일 수 없었다.
그에게는 수백만 마리의 괴물을 사냥하면서 얻은 실전 경험이 있었고, 여기에 예지력의 동선 파악 능력과 미래 설계 능력이 더해지자 대부분의 괴물은 그의 옷깃마저도 건드리지 못할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수백여 명의 괴물 예술가들 정도는 모두 죽일 수 있었고, 예지력이 보여준 미래도 그가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지.`
그는 이를 악문 채 괴물들을 노려봤다.
`이놈들을 아무리 죽여 봐야 데이드럼이 있으면 소용없으니까. 데이드럼이 살아있으면 사람이든 괴물이든 계속 나올 테고, 나는 결국 체력이 떨어져서 생포 당하겠지.`
그가 아무리 숙련된 사냥꾼이고, 예지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괴물들이 인해전술을 쓰기 시작하면 서울 전체를 가득 채운 괴물들을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괴물들은 블레인에게 조종당한 사람들처럼 허약하지 않았고, 이 괴물들이 포위망을 좁혀오기 시작하면 제대로 쉬는 것이 불가능해지니 결국 체력이 고갈될 것이 분명했다.
`근원을 사냥해야지. 서울을 이 꼴로 만든 원흉을 사냥해야지.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 포기할 수 있어야 되는 거야.`
마모되어 한 줌밖에 남지 않은 인간성은 그에게 사람들의 복수를 하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인간성은 그 역시 사람인 이상 무고한 사람의 복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외쳤고, 악기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아기들과 악기가 되지 못해 죽어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면 인간성이 내지르는 비명은 합당한 것이었다.
`이미 늦었지. 그런 식으로 살 거였으면 진작에 그랬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사냥을 시작한 이후 사람을 구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한때는 그 역시 별다른 대가 없이 다른 사람을 도왔지만, 이제 그가 사람을 구하는 경우는 오직 사냥에 도움이 되는 경우뿐이었다.
`미친 짓이긴 하지만, 일단 줄을 서 보자.`
그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인간성의 비명을 무시한 채 괴물들이 줄을 선 곳으로 다가갔다.
`지금까지 다른 괴물들은 나한테 관심 없어 보였고, 데이드럼은 날 생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일이 잘만 풀리면 싸우지 않고도 데이드럼 앞에 갈 수도 있겠지.`
그렇게 괴물들 사이에 섞여서 예술의 전당에 들어가는 줄을 서려고 할 때, 그는 매표소 너머에서 정장을 입은 여자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사냥꾼 윤재환님 맞으시죠? 안내를 맡은 큐레이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여자는 싹싹한 어조로 친절하게 그를 맞이했지만, 재환은 그 여자를 의심스러워하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안내라…`
이 괴물의 소굴에서는 그 무엇도 멀쩡할 수 없었고, 저 여자 역시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괴물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안내라면 무슨 안내를 말하는 거지?”
그는 적개심을 그대로 드러내며 말했다.
“내가 뭘 믿고 당신한테 `안내`를 받아야 하는 건진 알아야 할 것 같은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녀는 마치 재환이 할 말을 예상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했다.
“저는 재환님이 예술의 전당에서 헤매지 않도록 안내하기 위해 태어났고, 재환님이 죽으라고 하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도록 교육받은 전문가거든요. 혹시라도 제가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안내자가 올 거예요. 몇 번이고 리필되겠죠.”
“그래… 그렇다 이거지?”
그 말에 재환은 그녀의 말을 증명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면 어디 한 번 죽어 봐.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은 져야지.”
예지력은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재환의 말에 그녀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검지로 눌렀고, 그러자 그녀의 머리가 터져버린 뒤 새로운 안내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죽으면 그건 그거대로 상관없지.`
그는 메마른 시선으로 큐레이터를 바라봤다.
`그건 그만큼 괴물한테 세뇌되어있다는 뜻이니까. 이제 와서 괴물한테 세뇌된 인간 목숨까지 신경 쓰는 것도 웃긴 일이고.`
반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한편으로는 자신이 예지한 미래가 틀렸기를 은근히 바라는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관자놀이를 눌렀고, 그러자 그녀의 머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그대로 터져버렸다.
재환은 착잡한 심정으로 죽어버린 큐레이터를 바라봤고, 곧이어 조금 전에 죽어버린 큐레이터와 비슷한 생김새를 한 큐레이터가 나타나자 한숨을 내쉬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사냥꾼 윤재환님 맞으시죠? 안내를 맡은 큐레이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재환은 조금 전에 죽은 큐레이터와 똑같은 말을 내뱉은 큐레이터를 바라봤다.
‘가지가지 하는군.’
그는 큐레이터가 사람의 모습을 한 기계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를 악물었다.
‘처음부터 이럴 목적으로 키운 사람들이겠지. 아니면 원래 있던 사람을 이런 식으로 세뇌했거나.’
공장에서 사람을 찍어내고, 키워낸 사람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세상에서 대체품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데이드럼이 관리하는 이 서울에서는 사람으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아무도 개의치 않았고, 사람들 역시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행복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참자. 조금만 더 참으면 돼.’
그는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데이드럼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곱씹었다.
‘어차피 시간은 내 편이 아니야. 어중간하게 시간 끌면서 기력을 소모하느니 데이드럼을 찾아가는 게 나아.’
결정을 끝낸 그는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아 괴물들이 늘어선 줄을 넘어서 매표소를 통과했다.
이제 데이드럼을 만나러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낀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 * *
음악당 내부의 공간감은 일그러져있었다.
바깥에서 보았을 때는 네온사인으로 물든 여느 건물과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내부로 들어서자 천장에 거대한 밤하늘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천장과 복도의 곳곳에는 네온사인 구슬이 반짝거리면서 조명을 대신하고 있었다.
재환이 천장에 펼쳐진 드넓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큐레이터가 말했다.
“주인님께서는 이 건물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아예 이 건물에 밤하늘과 별들을 수놓으셨죠.”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벽에 걸려있던 네온사인 구슬 하나를 재환에게 보여주었다.
“이 구슬들은 지금까지 사라진 서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별들이에요. 별 하나에 서울 하나. 꽤 낭만적이죠?”
재환은 굳은 얼굴로 서울이라 불린 구슬을 바라봤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카니발에 일그러진 마천루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왜 이런 것들을 만드는 거지?”
그는 데이드럼에 의해 일그러진 서울의 모습을 떠올리며 큐레이터에게 물었다.
“무슨 목적으로 축제 같은 걸 벌이고, 사람을 악기로 만들고, 이런 식으로 건물을 장식하는 건지… 그런 것들은 안 알려주나?”
“안 알려드린다기보단 못 알려드리는 거죠. 높으신 분들의 뜻은 저희도 잘 모르거든요.”
그녀는 머쓱하게 웃으며 밤하늘로 물든 복도를 따라 그를 인도했다.
“저희처럼 태생이 좋지 못한 아이들은 높으신 분들의 말을 듣는 것조차 할 수 없거든요. 천문학을 배워서 간접적으로 읽어내는 게 아닌 이상, 높으신 분들과 직접 소통하는 건 힘든 일이죠.”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지만, 재환은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애초에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고, 설령 듣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실일 거란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직접 물어보면 되겠지.’
그는 성자들 역시 감정과 이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되새기며 큐레이터를 따라 걸어갔다.
‘그놈들도 욕심이 있고 욕망이 있는 건 다른 괴물이랑 마찬가지니까. 목적이 뭐고, 뭘 욕심내고 있는지 알아내면 사냥하는 게 훨씬 수월할 테지.’
성자를 사냥하려면 성자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아무리 지상에서는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제한되어있다고는 해도 그들의 본질은 천상에서 영생을 누리는 초월자였고, 심장을 파괴하여 지상에서 추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면 저항하는 것마저 무의미할 정도로 체급의 차이는 절망적이었다.
‘결국 이번 생에는 정보를 알아내는 거에 집중할 수밖에 없겠지.’
그는 냉정하게 자신의 상태를 직시하며 큐레이터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리 예지력이 있고, 신체 능력이 좀 좋다곤 해도, 여기는 그 괴물의 홈그라운드니까. 이번에 바로 죽이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 거야.’
예지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결과가 뻔히 보일 정도로 체급의 차이는 명백했다.
공방의 바깥에서 상대하더라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괴물을 공방의 내부에서 상대하는 것은 다른 변수가 있는 게 아닌 이상 파멸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야지.’
그렇게 한동안 미로처럼 굽이굽이 굽어진 복도를 걸어갔을 때, 큐레이터는 콘서트홀로 보이는 문 앞에서 멈춰선 뒤 입을 열었다.
“이 문을 여시면 주인님을 만나 뵐 수 있을 거예요. 서울을 음악의 도시로 만드신, 저희의 위인이시죠.”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시길!”
그녀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눌렀고, 전임자가 그랬던 것처럼 머리가 터져서 죽었다.
재환은 역할을 다한 큐레이터의 시신을 잠시 내려다본 뒤 문을 향해 다가갔다.
‘죽일 수 있으면 죽여보자.’
그는 문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생각했다.
‘전부 다 잊은 채 웃으면서 죽는 건, 나한테 어울리는 죽음은 아니니까.’
그리고 문을 열어젖혀 콘서트홀에 들어섰을 때, 그는 마침내 이 일그러진 서울의 주인인 데이드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