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79
성자의 전당 (2)
데이드럼의 콘서트홀에 들어서자 수천 마리의 괴물 예술가들이 객석을 가득 메운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혼신을 다해 갈고 닦아왔을 기예를 발휘하고 있었고, 그들이 뒤집어쓴 우주비행사 헬멧은 천장에서 빛나는 별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악기 소리와 예술가들의 행위 예술은 콘서트홀의 중심부에 위치한 무대에서 자리 잡은 단 하나의 괴물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데이드럼.
온몸에 돋아난 안개 뭉치로 잿빛 연미복을 만들어 입고, 머리에는 구름 실타래로 엮어 만든 중절모를 썼으며, 몸통에는 팔 대신 수십 개의 촉수를 달고 있는 지휘자.
이 까마득한 악상의 성자는 수십 가닥의 촉수를 현란하게 움직여 예술가들에게서 악상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가 촉수를 흐느적거릴 때면 괴물 예술가들의 머리 위에서 별빛으로 반짝거리는 안개가 피어올랐고, 반짝거리는 안개는 서로 어울리고 섞여서 데이드럼에게 흘러들어 갔다.
이곳은 음악과 축제의 성자가 달을 찬미하는 공연을 준비하는 작업실이었고, 셀 수 없을 정도의 생명과 정신을 갈아 넣어 완성한 악기들의 종착역이었다.
‘드디어 다시 만났군.’
재환은 이를 악문 채 콘서트홀의 주인을 노려보았다.
‘저 정도 크기면 죽이지 못할 건 없어. 아무리 재생력이 강해도 계속 토막 내다 보면 죽을 테니까.’
데이드럼의 모습은 카니발 때 보았던 것처럼 거대하진 않았다. 크기는 키가 큰 성인 남성 정도에 불과했고, 촉수 역시 사람의 팔만한 두 개의 촉수가 수십 갈래로 가느다랗게 갈라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재환은 데이드럼을 노려다 보면서 느껴지는 미세한 위기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문제는…’
그는 그 위화감이 공간감이 일그러진 탓에 발생했다는 것을 되새기며 탈바꿈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저기까지 가는 게 과연 가능할지, 그게 제일 큰 문제겠지.’
눈으로 보이는 거리감은 어림잡아 수백 미터 정도로 보였다.
객석을 메운 괴물 예술가들의 방해만 없다면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고, 설령 방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데이드럼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방해를 뚫어내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공간의 주인이 데이드럼이고, 데이드럼의 변덕에 따라 얼마든지 공간이 일그러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거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예지력도 별 쓸모가 없겠지.’
그는 눈을 감고 예지력을 사용해 미래를 가늠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는 어두운 밤에 안개 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뿌옇고 흐리멍덩한 풍경만이 보일 뿐이었다.
‘변수가 너무 많으니까. 여기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니, 미래를 엿보는 것 자체가 쓸모가 없는 거야.’
예지력은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 중 하나를 읽어내는 능력이었고, 그가 지금까지 예지력으로 해왔던 일들은 그 가능성을 참고하여 최선에 가까운 움직임을 구현했던 것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예지력으로 서울 중심부에서 일어날 일을 읽어낼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처럼 미래가 시시각각으로 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예지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총도 하나 없고, 폭탄도 없는데, 예지력까지 먹통이라…’
그는 이미래에게 받았던 자결용 알약마저 부서졌음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번엔 진짜 끝장일지도 모르지. 그 여자한테 홀려서 괴물이 됐던 것처럼, 평생 음악 소리만 내는 악기가 될지도 모르는 거고.’
데이드럼은 사람으로 악기를 만들었고, 사냥꾼은 데이드럼의 악기 중에서도 상등품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데이드럼은 조율사를 보내서 재환을 ‘조율’하려 했고, 큐레이터를 통해 자신이 있는 곳으로 보낸 것 역시 ‘조율’의 일환일 가능성을 부정할 순 없었다.
‘지금이라도 자살하는 게 맞겠지. 뒷일을 생각하면 그게 맞는 거고. 이대로 데이드럼한테 가는 건 미친 짓이니까.’
그는 괴물 예술가들을 지나 무대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애초에 성자를 사냥하는 게 미친 짓이고, 성자에게 다가가려면 미친 짓을 해야 되는 거니까. 미쳐있지 않으면 정신 나가버리는 건 금방이지.’
성자를 상대하는 일은 정신의 한계를 시험받는 일이었다.
성자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그들의 심연을 파고들어야 하는 기행이었고, 그들을 상대하며 죽어가는 것은 자신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고행이었다.
‘세 번. 지금까지 세 번 사냥했지.’
괴물이 된 사냥꾼인 크로드의 후예, 사랑의 성자 암브락사스, 자상의 성자 블레인까지.
하나같이 끔찍한 괴물들이었고, 정신이 뒤흔들리는 경험을 선사한 괴물들이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어.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 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무대를 향해 나아갈수록 그는 심해로 잠수하는 것만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뭍에 사는 짐승은 물에서 숨을 쉴 수 없고, 물에 사는 짐승은 뭍에서 숨을 쉴 수 없는 것처럼, 지상에서 사는 미물은 천상에서 사는 괴물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살 수 없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그가 사냥꾼이었고, 괴물의 피를 마셔서 몸을 강화한 괴인이라는 점뿐이었다.
‘아직 몸이 움직일 때 발버둥 쳐야지.’
그는 몸을 몰아붙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채찍질했다.
‘언제까지고 도망치다 보면 언젠간 사냥을 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 조금이라도 몸이 움직일 때, 한 마리라도 더 성자를 죽이려고 발버둥 쳐야지. 그게… 그게 바로…’
포기해야 할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했고, 괴물을 사냥하는 것이 구원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었으며, 성자를 상대하는 것은 언제나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죽지 못하는 이유는 이 길만이 이 세상을 악몽으로 바꿔버린 원흉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이 세상의 본질에 다가갈 실마리를 잡아낼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자살을 못하는 유일한 이유니까.’
뭍으로 뛰어오르려는 물고기처럼, 심해로 잠수하려는 들짐승처럼, 데이드럼의 무대를 향해 다가갔을 때, 그는 어느 순간 데이드럼의 촉수가 멈춰 선 것을 확인했다.
데이드럼은 촉수 하나를 꼿꼿이 세워 자신의 입가로 가져갔고, 재환은 그 제스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세 깨달았다.
모두 정숙할 것.
그리고 성자의 명령이 내려진 것과 동시에 주변의 괴물 예술사들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고, 재환은 한순간에 이 콘서트홀에 데이드럼과 자신만이 남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데이드럼은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촉수를 흐느적거렸고, 그러자 객석에서 감미로운 클레식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으시지요. 모처럼 공연장까지 오셨으니, 피를 보는 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요.]재환은 데이드럼의 음성이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객석에서 우주비행사 헬멧이 생겨난 것을 확인했고, 저 헬멧을 쓰면 숨을 쉬는 것이 편해질 거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 앉는 대신 데이드럼을 향해 다가갔다.
“용건만 말해.”
그는 데이드럼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쪽도 무슨 속셈이 있으니까 날 이용하려는 거지. 안 그래?”
데이드럼이 따로 속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내버려두고 있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저 까마득한 괴물이 마음만 먹었다면 그는 무수히 많은 괴물들의 방해를 받았을 것이고, 데이드럼이 큐레이터를 보내지 않았다면 예술의 전당 내부의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말았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대화 상대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아쉽게 되었군요.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건, 언제나 고독한 일이니까요.]데이드럼의 어조는 정중했지만, 재환은 살얼음판에 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이 청와대를 본거지로 삼고, 그 안에 서울을 본뜬 공방 도시를 만들어낸 거물이란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혜부터 올려둬서 다행이야. 지혜가 낮았으면, 말을 섞는 것도 못했겠지. 그 전에 악기가 됐을지도 모르는 거고.’
성자의 본질은 불가해하다. 그들의 본질이 인간의 인지력으로는 이해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괴물인 이상, 언제 본색을 드러낼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높은 곳에 오른다는 건 고독한 일입니다.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말동무는 부족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저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통하는 진리이지요.]데이드럼에게 시선을 집중하던 재환은 그제야 데이드럼이 연주하는 곡의 이름을 눈치챘다. 콘서트홀에 울려 퍼진 음악은 드뷔시의 ‘달빛’이었다.
[저는 노래를 원합니다. 저 드높은 천상까지 닿을 단 하나의 노래를 원하지요. 그걸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바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지요.]데이드럼을 향해 다가가던 재환은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공간 감각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10미터밖에 남지 않은 거리가 10킬로미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고, 10킬로미터처럼 느껴지던 거리는 10메가미터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벌어져 버린 거리 감각에 머릿속이 흐릿해질 무렵, 데이드럼의 목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알려고 할 필요 없습니다. 이해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만일 뿐입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지요.]자신이 떠올려왔던 신념이 성자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자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사냥을 해왔던 일들이 모두 저 괴물의 손을 거쳐서 악기가 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피어났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가 지닌 예지력의 기원이 성자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가능성이기도 했다.
재환은 당장에라도 데이드럼의 심장을 부숴버리거나, 아니면 자신의 심장을 터트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앞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달려가면 달려갈수록 데이드럼과의 거리감은 점점 더 멀게 느껴질 뿐이었다.
자신의 신세가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와 다를 게 없어진 것만 같아 무력감이 느껴질 무렵, 데이드럼은 곡조를 바꿔서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부디 다음번에는 더 나은 자극을, 더 나은 악상을 가져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비명이 담긴 음악이야말로, 전율을 일으키고 심금을 울리는 악상이 되는 법이니까요.]데이드럼의 말이 끝나자 재환은 자신의 몸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카니발의 음악을 오래 들어서 몸이 버티지 못했을 때 일어났던 현상과 동일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재환은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날 보고 있었어.’
재환은 데이드럼의 카니발을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리며 녹아내렸다.
‘일부러 그때랑 똑같은 방식으로 날 죽인 거야.’
그리고 그가 마침내 완전히 녹아내려 액체가 됐을 때, 악상의 성자는 다시 괴물 예술가들을 불러내어 악상을 뽑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