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8
괴물의 거리 (2)
동대문구와 중랑구의 경계.
‘불가해’가 날뛰고 간 거리에는 이제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은 오직 괴물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욕구를 분출하는 광경뿐이었다.
“끄우에에에엑!”
재환은 얼굴이 개구리를 닮은 괴물이 담벼락에 위액 같은 액체를 토해내는 모습을 바라봤다. 위액에 닿은 담벼락이 순식간에 녹아내렸고, 녹아내린 담벼락은 괴물의 주둥이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식사를 끝낸 괴물은 다시 위액을 토해냈다. 토하고, 마시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이 괴물의 행동 패턴이었다.
[사냥 대상: 게워내는 개구리, 프로피] [위액을 토해내는 괴물. 위산에 닿으면 살갗이 녹는다.]‘저 정도면 만만하겠군,’
괴물의 행동 패턴을 관찰하던 재환은 녀석을 사냥감으로 점찍었다. 덩치는 사람보다 조금 작았고, 위액을 토하는 속도도 그리 빨라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사냥했던 괴물들에 비하면 손쉬운 사냥감이었다.
‘실수 없이. 힘 조절 잘하자.’
재환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상대가 약해 보인다고 해서 기습을 포기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아무리 만만해 보여도 괴물은 괴물. 까딱 잘못했다간 그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3번이나 객사한 뒤에야 얻은 교훈이었다.
‘너무 약하지도 않고, 너무 쌔지도 않게.’
괴물의 등 뒤를 점한 재환은 도끼를 치켜들었다. 숨을 내쉬는 것과 동시에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세찬 소리와 함께 도끼가 바람을 가른 순간, 도끼에 닿은 괴물의 머리통이 충격에 의해 터져나갔다.
펑!
마치 풍선이 터지는 것만 같은 소리와 함께 괴물이 털썩 쓰러졌다. 재환은 쓰러진 괴물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뒤 손으로 피를 담았다. 괴물의 피를 마시는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는 이미 수차례 괴물을 사냥하고, 괴물의 피를 마셨기 때문이다.
‘이걸로 35마리째.’
3번의 시행착오를 경험한 끝에, 그는 하룻밤 사이에 35마리의 괴물을 사냥했음에도 살아남았다. 이번 생에도 위험했던 순간이 있었고, 죽기 전까지 내몰렸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위기를 넘겨낸 결과, 그는 웬만한 괴물 한 마리 정도는 쉽게 사냥할 만큼 강해질 수 있었다.
[그릇에 피가 가득 찼습니다] [피를 사용해 그릇을 강화하십시오] [문자를 읽어 강화 대상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레벨: 37] [강화 가능 능력치(+1)] [근력: 30] [민첩: 20] [체력: 10] [내구: 15] [재생: 10] [지혜: 10]속삭임과 함께 신기루가 나타났다. 신기루를 살펴보던 재환은 ‘내구’에 능력치를 1 분배했다. 튼튼하지 않은 몸으로는 기껏 높여놓은 ‘근력’과 ‘민첩’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너무 강한 힘을 몸이 버티지 못해 팔이나 다리가 탈골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하나 잃은 뒤에야 얻은 지식이었다.
‘오늘 밤은 안 다치고 끝나서 다행이야. 내일 밤쯤에는 50레벨까지는 쉽게 올릴 수 있겠어.’
레벨이 오르는 흐름 자체는 순조로웠다. 35마리를 잡고 레벨을 37까지 올렸으니 괴물 하나를 잡을 때마다 레벨이 1씩 오르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이 트는 모습을 바라보던 재환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갈수록 레벨 오르는 속도가 느려. 그것도 심하게.’
처음 3~4마리를 잡을 때는 레벨이 2~3씩 올랐다. 하지만 이후에는 괴물 하나를 잡을 때마다 레벨이 1~2씩 오르더니, 나중에는 운이 없을 경우 괴물 두 마리를 잡아야 레벨이 1 오르기도 할 정도까지 느려졌다. 어떤 괴물을 잡아야 레벨이 많이 오르는지도 알 수 없는 만큼, 성장이 더뎌지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였다.
‘그래도 잡을 수 있는 만큼은 잡아둬야지.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이런 노가다 밖에 없으니까.’
서울은 넓고, 괴물은 많다. 그의 눈에 비친 서울은 괴물이 자라나는 밭이나 다름없었다. 괴물의 숫자가 잡초만큼이나 많은 이상, 사냥감이 떨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일단은 잠이나 자러 가자. 낮에는 피도 못 얻으니까.’
달이 저물고 동이 트기 시작한 이상, 낮에 괴물을 사냥하는 것은 그에게 무의미한 일이었다. 괴물의 피는 햇볕에 닿는 순간 증발하기 때문이다. 괴물을 죽이기에는 편할지 몰라도 소득을 얻긴 힘든 것이다.
‘언제까지 이 짓거릴 해야 할지도 모르는 건데, 길게 봐야지.’
그는 잠을 잘 곳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컨디션을 유지하려면 제대로 된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몸이 휴식을 취하지 못하면 정신 역시 영향을 받기 마련이고, 정신이 무너지면 그의 고생은 헛수고가 되고 만다. 분노도, 증오도, 울분도 남김없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쯤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주인은 없겠지?’
괴물들을 피해 이동하던 재환은 허름해 보이는 빌라 단지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군데군데 깨져있긴 했지만, 건물의 뼈대 자체는 멀쩡했다. 다른 건물들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 것에 비하면 썩 괜찮아 보이는 편이었다.
‘한 집 정도는 침대가 있겠지. 옷까지 있으면 더 좋고.’
밤새 사냥을 한 탓에 그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옷과 몸에 묻어있던 괴물의 피가 햇볕에 증발했어도, 괴물의 타액과 땅에서 나온 먼지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하룻밤 사이에 거지나 다름없는 몰골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집에서 챙겨온 옷들이 며칠 안에 헝겊만도 못한 신세가 될 게 분명했다.
‘조만간 옷가게나 헌 옷 수거함이라도 털어야지. 옷이 남아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는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 적당히 멀쩡해 보이는 집 앞에 멈춰 섰다. 주인만 없다면 쉬어가기에 좋아 보이는 빌라였다. 그는 3층까지 올라간 뒤 문을 두들겼다.
똑똑!
노크해 봤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집의 위치를 기억한 뒤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건물 벽의 난간을 타고 올라가 도끼를 들어 올렸다.
‘일단 재물 손괴.’
그는 자세를 잡은 뒤 도끼로 창문을 부쉈다.
쨍그랑!
유리창을 깨트린 재환은 창틀에 남아있는 파편을 도끼날로 제거했다. 소방관 지망생 시절에 배워둔 안전 수칙이었다. 어느 정도 파편이 제거되자 재환은 창틀을 뛰어넘었다. 베란다 바닥에 깔린 유리에서 퍼석거리는 소리가 났다. 불청객을 달가워하지 않은 소리였다.
‘이건 주거 침입이고.’
그는 집 안에 사람이나 괴물이 남아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집은 텅 비어있었다. 그는 더러워진 옷을 벗은 뒤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본 그는 피식 웃었다.
‘사유지 점거까지. 완전 날강도네, 날강도야.’
다행히 이 집은 아직 수도 공급이 끊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온수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는 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위생 관리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건강관리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이 재앙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모르는 이상 장기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갈수록 의식주 확보가 힘들어지겠지. 솔직히 내일 당장 수도가 끊겨도 이상할 게 없는 거고.’
샤워를 끝낸 그는 여벌 옷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주인을 잃은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 피로를 풀던 그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앞으로의 생활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적막 속에서 그는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동안은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지킬 힘이 절실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괴물에게서 살아남고, 괴물을 죽이는 것에만 몰두했다. 피비린내에 질식할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간신히 여유를 얻어낸 지금, 그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서울에는 아직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고, 치안을 유지하려는 경찰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떤 식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은 필연적인 흐름이었다.
‘잘살고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야 더 좋은 무기를 구할 수도 있고, 좀 사람답게 살 수 있으니까.’
인간이 서로 뭉치려고 하는 이유는 그러는 쪽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서로에게 없는 것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현저하게 높아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서울 시민이었던 그는 문명의 혜택이 거의 다 사라진 곳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실감하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으면 협력할 수도 있겠지.’
서울은 인구가 천만이 넘는 대도시였으니 그와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는 사람이 없으라는 법은 없었다. 확률은 낮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닌 셈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경찰을 찾아보자. 너무 늦으면 아예 못 찾을 수도 있으니까.’
결론을 내린 그는 눈을 감은 뒤 잠을 청했다. 피로가 쌓인 덕분인지 잠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푹 잘 수 있는 기분은 아니었어도, 푹 자둬야만 내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네 시간가량 잠들어있던 순간, 그의 귀에 뜻밖의 소리가 스며들었다.
탕!
그는 큰 소리가 갑작스럽게 들려오자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막 깨어난 탓에 비몽사몽 했지만, 그는 정신을 가다듬은 뒤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탕! 탕! 탕!
소리에 귀 기울이던 그는 이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총성. 경찰의 권총에서 나오는 총성이었다.
* * *
파트너가 괴물이 되면 주저 없이 쏴 버려라.
괴물병이 서울에 퍼진 직후, 김 순경은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에 순종했다. 괴물을 죽이지 않고 풀어두는 것은 시민들의 안전을 무너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판단이었고,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괴물이 된 선배에게 총을 발사했을 때, 김순경은 상부의 지시가 구닥다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씨발! 씨발! 씨발!’
김 순경은 정신없이 거리를 달렸다.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현장직 경찰에게 제일 중요한 운동이 바로 달리기였으니까. 하지만 골목길을 누비며 질주하던 김 순경은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괴물 무리에게 질색했다.
‘언제 괴물이 이렇게 늘어난 거야!’
총을 쏜 것까지는 좋았다. 선배와도 이미 합의된 내용이었고, 가장 손쉽게 괴물을 제압할 방법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총을 쏜 다음에 일어난 일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총성을 듣고 괴물이 몰려온 것이다. 순식간에 나타난 3마리의 괴물을 보자마자 김 순경은 도망쳤다. 괴물들이 권총을 재장전할 시간 따위를 기다려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속한 판단이었고, 최선에 가까운 판단이었다.
하지만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고 해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증거로 김 순경은 자신의 앞길을 막은 괴물을 보자마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괴물이 한 마리 더 나온 것이다.
탕! 탕! 탕!
막다른 길에 내몰린 김 순경은 남은 4발의 탄환 중 3발을 발사해 눈앞의 괴물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의 등 뒤에는 아직 세 마리의 괴물이 더 있었다.
‘저도 따라갑니다, 선배님.’
이제 총알은 한 발 남았다. 그는 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눴다. 각오는 이미 되어있었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온다면, 마지막 총알은 자신의 존엄을 위해 쓸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김 순경은 떨리는 손으로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끝냈다. 하지만 눈을 감고 방아쇠에 힘을 주려는 순간, 그는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방아쇠를 쥔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씨발…’
김 순경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경찰이기 이전에 공무원이었고, 공무원이기 이전에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거리낌 없이 자살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죽는 것을 망설였고, 그 몇 초의 망설임이 그의 목숨을 연장시켰다.
콰직!
머뭇거리던 김 순경의 귀에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단한 껍질이 무언가에 의해 부서지는 소리였다. 김 순경은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도끼를 든 남자가 괴물의 머리 위에 올라탄 모습이 보였다.
콰직! 콰직! 콰직!
남자는 거침없이 도끼를 내리쳐 괴물의 머리를 뭉개버렸다. 그리고 괴물이 쓰러지는 것과 함께 뒤로 뛰어올라 김 순경의 근처에 착지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맹수에 가까운 속도와 몸놀림이었다.
“도와드릴게요. 잠깐 기다려주세요.”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것은 꽤나 괜찮은 투자다. 특히나 상대가 경찰처럼 신분이 확실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신세를 졌을 때 은혜를 갚기 마련이니까.
그는 괴물 쪽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한 번에 두 마리의 괴물과 싸우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몸이 강해진 덕분에 두려움은 없었다. 해 볼 만한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