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80
불가살의 도시 (1)
다시 눈을 뜨자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종로구의 거리가 재환을 반겼다.
총화기와 폭발물이 가득한 차량, 기이한 가면과 탈을 쓴 채 거리를 걷는 시민들, 멀쩡해진 몸 상태까지.
모든 것들이 처음 서울의 중심부에 왔을 때와 똑같았지만, 재환은 사무칠 정도의 현실감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꿈이 아니야. 환상도 아니고.’
그는 데이드럼에 의해 몸이 녹아내렸을 당시의 감각에 몸서리쳤다.
‘도망칠 수 없어. 여기서 무슨 수를 쓰든 도망칠 수 없는 거야. 여기에 들어온 순간부터… 아니, 처음 눈에 띄었을 때부터… 표적이 된 건 내 쪽이었던 거야…’
데이드럼의 속삭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정신에 흠집을 내었다.
괴물을 사냥해 피를 마시고, 성자를 사냥해 심장을 취하고, 몸과 마음을 단련해 사냥을 이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초월자들의 입장에서는 유흥거리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정신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사냥을 계속 하는 게 의미가 있는 걸까?’
무기로 가득 찬 차 안에서 그는 소리 없이 절규했다.
‘아무리 날뛰고, 강해지고, 노력해도, 결국은 성자들의 노리개가 되는 게 내 운명이라면…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처음 사냥을 시작했을 때부터 이 세상은 절망적이었다.
달은 어느 날 갑자기 시퍼렇게 변해버렸고, 안개는 사람들을 서울에 가둬버렸으며,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일제히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괴물이 되고, 어머니가 괴물이 된 아버지에게 살해당했으며, 자신은 영원히 반복되는 악몽의 굴레에 갇혀버렸을 때, 그에게 유일한 동아줄이 되었던 것이 바로 사냥꾼의 길이었다.
괴물을 사냥해 피를 마시고, 사냥꾼을 사냥해 무기를 모으고, 성자를 사냥해 지력을 높이는 일은 이 어두컴컴한 세상에 불을 지피는 불씨였고, 그는 이 희미한 불꽃에 의지해 삶을 이어나갈 의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유일한 불씨가 사그라들기 시작했을 때, 그는 머리를 감싸 쥔 채 무력감에 시달렸다.
‘의미가 없지… 의미가 없고말고…’
그는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으로 되뇌었다.
‘아무리 사냥을 해 봐야 마지막에 끝장나면… 그동안 사냥해왔던 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던 시설에는 겁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어차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목숨을 도박판 위에 던져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삶은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기에 덧없기 마련이었고, 이 미쳐버린 서울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져 죽느니만 못한 신세로 전락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그는 데이드럼이 마음만 먹었더라면 인간 악기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었고, 다음번에는 그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래… 그 여자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그는 마음이 꺾인 사냥꾼과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 여자가 지금 내 꼴을 봤으면 분명 비웃었을 거야. 내가 봐도 내 꼴이 이렇게 한심스러운데, 그 여자가 봤을 땐 어땠겠어.’
부서질지언정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그에게는 불과 하루에서 이틀 전의 일이었다.
수백 번의 회귀를 거쳐서 수백만의 괴물을 사냥하면서 다져왔던 각오가 한순간에 뒤흔들린 것은 그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는 망망대해에서 조난당한 선원의 심정으로 차 안에서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사냥을 하는 것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자원해서 악기가 되는 것도… 전부 다 그 괴물들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꼴이 될 수도 있어. 내가 뭘 하든지 전부 다 부질없는 짓이 될 수도 있지…’
재환은 핸들을 꽉 쥔 채 네온사인으로 물든 거리를 바라봤다.
‘아, 암브락사스…’
그는 세상을 낙원으로 개간하려 했던 성자를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당신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어. 내가 가려는 길은… 늘 가시밭길이었지…’
사랑의 성자는 그에게 예언했다.
낙원을 거부한 그는 앞으로 가시밭길을 걷게 될 것이고, 피 흘리고 부서지고 울부짖으며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암브락사스의 예언을 되새기던 재환은 차라리 죽여 달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꾹 억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 무의미했던 건 아니야.’
그는 예지력을 지닌 성자가 데이드럼뿐이 아님을 되새기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여자가 서울을 영원한 낙원으로 만드는 대신 내게 심장을 준 건 분명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걸 테니까. 어째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유가 있는 건 분명해.’
성자들의 의중은 여전히 불가해했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고, 그들의 주인인 ‘달’의 의중은 여전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이유들이 사냥을 그만둬야 하는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되새기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래… 아직이야… 아직 그만두기에는 이르지…’
그는 실소를 흘리며 창문을 내렸다. 뿌연 담배 연기가 네온사인 빛깔로 물드는 게 눈에 들어왔다.
‘성자를 사냥하고, 지력을 올리는 게 괴물의 노리개가 되는 일이 되는 거라고 해도… 그만두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어…’
이미래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수백 번이 넘는 회귀를 거치면서 수십 년에 가까운 시간을 서울에서 보낸 회귀자였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 달에 가까운 간격으로 회귀를 해왔던 날들은 적지 않은 세월이 되어 그의 기억 속에 쌓여갔고, 그 긴 세월 동안 정신을 가다듬어왔던 날들은 무너질 뻔한 마음을 지탱하는 반석이 되었다.
‘네온사인이 참 밝아. 기분 나쁠 정도로 눈부셔.’
그는 밤하늘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을 암브락사스를 떠올리며 담배 연기를 내쉬었다.
‘망가질 땐 망가지더라도, 내가 내뱉은 말들은 지키고 가자. 아직 끝장이라고 단정하기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으니까.’
비록 지난 생에는 데이드럼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 채 살해당했지만, 그의 죽음은 무의미한 일이 아니었다.
데이드럼과의 격차를 실감한 덕분에 그는 지금 지니고 있는 능력과 장비로는 데이드럼을 상대할 수 없음을 확신했고, 덕분에 블레인을 사냥했을 때처럼 몇 번이고 살해당하는 시행착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른 성자의 공방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겠지. 공방 자체가 성자의 영역인 이상, 그 안에서 성자를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일 거야.’
그는 청와대의 집무실로 들어가자 데이드럼의 공방 도시가 나왔음을 떠올리며 다른 성자의 공방으로 들어가는 선택지를 제외했다.
데이드럼때는 운이 좋아서 별다른 후유증 없이 되돌아올 수 있었지만, 다른 성자의 공방에 들어갔다가 블레인처럼 실성한 성자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 있는 괴물들을 죽이고 다니는 것도 별로 쓸모는 없겠지. 여기서 시간을 때우고 있어 봐야 카니발이 시작되면 그대로 휘말릴 테니까. 데이드럼이 이번에도 순순히 죽여줄지 시험해보려는 게 아닌 이상… 널리고 널린 괴물들을 사냥하는 것도 미련한 짓이지.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인 건가…’
그는 마지막으로 남은 선택지를 떠올리며 자신의 손등에 새겨진 샬롬의 초대장을 바라봤다.
‘용산. 사냥꾼의 무덤. 사냥꾼의 종착역… 거기에 가면 뭔가 얻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용산으로 가는 것 역시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용산으로 떠난 사냥꾼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지금까지 들려오지 않았고, 샬롬의 망령들이 말했던 ‘종착역’이라는 명칭 역시 불길함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여기서 가만히 있어 봐야 괴물이 될 게 뻔하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 보는 수밖에 없겠지.’
용산은 언젠가 가야만 하는 장소였다. 그곳에는 사냥꾼 성자가 자리 잡고 있었고, 사냥꾼 성자는 지금까지 들려오던 ‘속삭임’의 출처를 알아낼 실마리를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묻혀서 영영 나오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는 중구를 넘어 용산으로 가기 위해 자동차의 악셀을 밟았다.
‘…어차피 언젠가 부서져서 땅에 묻힐 운명이면, 사냥꾼들이 묻히는 곳에 묻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러면 다른 사냥꾼들의 밑거름이 될지도 모르니까.’
비록 정신은 부서지고 으스러져서 너덜거리게 된 지 오래였지만, 그럼에도 그의 본질은 사냥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죽어서도 사냥을 이어나가려 했던 샬롬의 사냥꾼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고, 언젠가 완전히 죽게 되는 일이 있다면 망령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는 네온사인으로 물든 종로구를 지나 중구에 들어섰지만, 차를 몰고 나아가던 그는 안개가 자욱해지는 것과 함께 네온사인의 불빛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여긴… 동대입구역 부근인 것 같은데…’
그는 위화감을 느끼며 차를 모는 속도를 늦췄다. 안개 때문에 시야가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리에 가득하던 가면 쓴 시민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과 함께 불길한 예감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느낌이 안 좋아. 뭐가 나오긴 나올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서늘한 감각이 피부를 타고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느껴졌다. 예지력이 이 거리에 끔찍한 것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신호였다.
재환은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권총을 쥔 체 주변을 경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지력이 자신에게 경고한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그는 거리에 목 매달린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살아있군. 전부 다 살아있는 사람들이야’
교수형을 당한 사람들이 대로를 따라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었고, 그들은 목이 매달려 있음에도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건물의 창문에도, 거리에 늘어선 가로등에도, 가로수의 굵은 가지에도.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수백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올가미에 대롱대롱 매달려 교수형을 당하고 있었고, 이 모습은 지금까지 불가한 것들을 보아온 회귀자인 재환에게도 기이한 풍경이었다.
‘계속 움직이고 있는 걸 보면… 성자가 개입한 건가?’
교수형에 당한 사람은 수 초 이내에 의식을 잃는다. 밧줄이 혈관을 막아 뇌로 통하는 혈류를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밧줄에 목이 매달린 사람들이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이는 성자나 성자에 준하는 존재가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었다.
‘일단은 사람들한테 말을 걸어서 정보를 모아보자.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간 나도 쥐도 새도 모르게 저런 꼴을 당할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렇게 차를 멈춘 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려고 할 때, 재환은 자신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거는 것을 느꼈다.
“멈춰! 멈춰요! 그거 풀어주면 안 돼요!”
재환은 뒤를 돌아 목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자 가면을 쓴 여자가 자신이 차를 몰고 왔던 방향에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냥꾼이군.’
그는 그녀가 달려오는 속도와 사냥꾼 특유의 악취를 통해 상대가 사냥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조심하는 게 좋겠어. 보아하니 날 쫓아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으니까.’
사냥꾼을 경계하는 것은 언제나 옳았다.
회귀자가 아닌 사냥꾼일지라도 사냥꾼의 신체능력은 괴물이나 다름없었고, 회귀자인 사냥꾼이라면 미쳐있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와 대화를 나눈 재환은 머지않아 자신의 원칙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녀는 한때 이미래의 동료였던 회귀자였고, 이미래의 경고가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