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81
불가살의 도시 (2)
죽지 못해 살아가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딸아이를 사람의 탈을 쓴 짐승들의 손에 잃었고, 법과 규율의 울타리가 짐승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에 절규했다.
어째서 법은 죄인에게 이토록 관대하고, 이토록 가벼운 벌만을 내릴까.
하루하루를 폐인처럼 살아가던 남자는 서울이 괴물에 의해 몰락하면서 거리로 나섰고, 알 수 없는 본능에 이끌려 괴물의 피를 마심으로써 사냥꾼이 되었다.
하지만 괴물을 사냥하고, 지하철에서 장비를 구하고, 괴물의 피를 마셔서 힘을 기르고 있음에도 그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순간부터 괴물을 사냥하는 일은 분풀이로 전락했고, 매일매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권태감이 몸에 쌓여갈 무렵, 그는 한 사냥꾼이 가져온 ‘위대한 피’를 마신 뒤 눈을 뜨게 되었다.
맹인들의 세상에서 홀로 눈을 뜨게 된 것처럼, 귀머거리들의 세상에서 홀로 귀가 트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순간 남자는 자신의 사냥감이 어디에 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어디로 가야 자신의 사냥감을 찾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딸을 범하고 죽인 아이들을 찾아 중구에 왔지만, 그가 찾게 된 것은 마약에 취해 기억을 잃어버린 폐인들이었다.
규율과 규칙이 무너진 중구는 돈 대신 마약이 통용되는 무법지대로 전락해있었고, 부유했던 짐승들은 마약과 망각의 이름으로 용서받았으며,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추악한 과거는 까맣게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죽지 못해 살아가던 남자는 딸아이의 시신마저 간음한 아이들을 찢어 죽였다.
제발 죽여달라고 빌 때까지 고문하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로 육체를 혹사시켰으며, 한곳에 가둬둔 뒤 서로 죽이도록 유도해 정신을 무너뜨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문도 시간이 되돌아가고 나면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시간이 되돌아갈 때마다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밤새도록 파티를 벌였고, 그들이 내뱉었던 반성과 속죄는 한순간의 꿈으로 전락하여 허망하게 사라졌다.
그렇게 죄지은 자는 쾌락을 누리고, 벌하는 자는 피로에 찌들어가는 굴레가 끝없이 반복되었을 무렵, 죽지 못해 살아가던 남자는 도시의 밑바닥에서 ‘악마’의 속삭임을 듣게 되었다.
너의 소원을 들어줄 테니 나를 위해 산 제물을 바쳐라. 그들의 피와 살로 만든 그릇에 나를 담아 이 땅을 죄인을 사냥하는 지옥으로 만들어라. 죄인들에게는 죽음마저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피와 살점으로 증명하라.
속삭임의 음색은 사악하고 음험했다.
저 속삭임을 받드는 것은 끔찍한 일을 불러올 것이 분명했으며, 끝내 자신마저 파멸시킬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남자는 ‘악마’의 명을 따라 산 제물을 바쳐서 그릇을 준비했다.
그는 자신의 딸을 범하고 죽인 짐승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어 했고, 죄인을 벌하는 지옥이 저승에 없다면 이승에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회귀자들을 모아 자경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자경단은 죽을죄를 지었음에도 삶을 이어나가는 짐승들을 사냥해 ‘악마’가 임할 그릇을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수만 명의 피와 살점으로 만든 그릇이 완성되었고, 그날 이후 남자는 중구에 강림한 ‘악마’의 도움을 받아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괴물들을 죽지 못하는 회귀자로 만들었다.
그들은 그날 이후 몸이 부서지고, 시간이 되돌아가도 자신의 죄에서 도망칠 수 없었고, 남자는 마침내 사람의 탈을 짐승들을 고문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 * *
“서울에는 세 종류의 사냥꾼이 있어요. 별과 괴물을 사냥해 서울을 원래대로 되돌리려는 유형, 현실에 좌절해서 모든 걸 포기한 유형, 그리고 마지막으로 별에게 충성해서 현재에 안주하려는 유형이 있죠.”
가면을 쓴 여자의 이름은 임현아였다. 자신을 강북 출신의 사냥꾼이자 북악산의 ‘천문관’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중구의 내력과 죄인들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중구를 장악한 건 마지막 유형이에요. 별에서 내려온 괴물… 보스몬스터랑 계약한 인간들이죠. 옛날에는 나름 사람다운 구석이 있었다곤 하는데… 지금은 그냥 마구잡이로 사람을 목매다는 기계랑 다를 게 없어요.”
재환은 눈살을 찌푸려 임현아의 모습을 바라봤다. 하얀색 가운을 입고 눈알을 닮은 보석이 여러 개 박혀있는 가면을 쓴 그녀는 긴 머리카락과 목소리를 제외하면 성별을 구분하기 힘든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한동안 묵묵히 그녀의 얘기를 듣던 재환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 사람들은 그 자경단이라는 조직이 처형한 죄수들이고, 이 사람들을 풀어주면 자경단이 쫓아온다, 이거죠?”
“맞아요. 그리고 용산으로 가려는 사냥꾼도 사냥해서 목을 매달죠. 거기에 구체적으로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보스 몬스터들한테 해로운 게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괴물한테 충성하는 인간들한테는 별로 반가운 소식이 아니죠.”
재환은 임현아의 가면을 노려보며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 ‘조력자’의 말이 어디까지가 사실일지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긴 하지. 왜 지난번에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건지도 신경 쓰이고, 저 가면 안쪽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는 거니까. 천문관이라는 직업도 수상한 건 마찬가지고.’
임현아는 천문관이 별을 관찰하는 직업이고, 이제야 그를 찾아온 이유를 별을 관찰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재환은 그녀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았다.
인체실험을 해왔을 정도로 도덕성이 마모된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것에 주저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종로구에서 가면을 쓴 ‘시민’들은 모두 괴물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그녀가 가면을 벗지 않으려는 이유도 의심할 여지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기분 나쁜 건 저 여자가 북악산 출신이라는 거지. 괴물을 사냥하러 간 사냥꾼이 괴물이 됐다는 얘기는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니까.’
그는 북악산이 청와대의 바로 뒤편에 위치한 산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그녀의 가면을 노려봤다.
‘일단은 무슨 목적으로 날 찾아온 건지 물어보자. 그냥 친절하게 경고만 해주려고 왔을 리는 없으니까.’
판단을 끝낸 재환은 임현아에게 어째서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물어봤고, 그 말에 임현아는 흔쾌히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
“내 목적도 그쪽이랑 똑같아요. 괴물을 아예 박멸해서 서울을 되찾는 거죠.”
임현아의 말에 재환은 못 미더워하는 표정을 지었고, 임현아는 그런 반응을 예상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정 못 믿겠으면 증거를 보여줄게요. 내가 보스 몬스터를 죽이려고 뭘 만들었는지 보면, 좀 믿음직스러워질 테니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목 매달린 사람의 앞으로 다가가 식칼을 꺼냈다.
“이건 그냥 식칼이에요. 마트에서 아무거나 집어온 공산품이죠. 이걸로 이 죄수를 찌르면…”
임현아는 목 매달려있던 죄수의 목을 식칼로 그었고, 그러자 잠시 시뻘건 피가 땅으로 뚝뚝 떨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가 금세 아물었다.
“…괴물의 능력 때문에 상처가 금방 재생되죠. 재생력이야말로 괴물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서 제일 까다로운 능력이니까요. 그 능력이 죄수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는 거죠. 뭐, 덕분에 몰래 실험체로 쓰기에는 딱 좋았지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주머니에서 헝겊을 꺼내 식칼에 묻은 피를 닦았다.
“지금부터 재생력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보여줄게요. 아직 시제품이긴 해도, 꽤 쓸만한 걸 만들어뒀거든요.”
식칼을 닦아낸 임현아는 주머니에서 시꺼먼 액체가 담긴 주사기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주사기에 담긴 시꺼먼 액체를 식칼의 칼끝에 한 방울 뿌린 뒤 상처가 다 나은 죄수의 목에 찔렀다.
“크흑…. 꺼어억…!”
식칼에 찔린 죄수는 조금 전과는 다르게 고통 어린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죄수의 목은 이전처럼 시뻘건 피를 흘리는 대신 시꺼먼 피를 흘렸고, 상처가 재생되는 대신 피부 조직이 시꺼멓게 괴사하기 시작했다.
“저는 이걸 사혈이라고 불러요. 썩은 피를 추출해서 투여하면, 재생력을 막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죠.”
재환은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사람을 실험체로 쓰는 모습을 보면서 기시감을 느꼈다.
이미래 역시 카니발이 일어나기 직전에 자신의 동료였던 사냥꾼을 인간 악기로 만들어 본보기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누가 같은 팀 아니랄까봐… 하는 짓도 똑같군.’
그는 사람을 실험체로 쓰는 것에 분노하지는 않았다. 데이드럼의 공방에서 사람을 악기로 만들었던 광경에 비하면 자극이 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임현아에 대한 경계심은 한층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사람의 목숨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 괴인인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이상 경계를 늦추는 일은 어리석은 태도였다.
“괴물을 박멸한다고 했죠?”
재환은 그렇게 운을 뗀 뒤 그녀에게 질문했다.
“이 사혈이란 게 성자… 그러니까 보스 몬스터한테는 얼마나 효과가 있는 거예요? 보통 괴물들한테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보스 몬스터한테 효과가 없으면 쓸모없는 것 같은 데.”
“당연히 있죠. 보스 몬스터를 잡으려고 만든 물건이 보스 몬스터한테 쓸모가 없으면 그게 더 웃긴 일이죠. 문제는…”
임현아는 그렇게 말하며 키득거렸다.
“이걸 보스 몬스터한테 꽂아 넣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게 문제인 거죠. 쥐새끼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러 가는 꼴인데, 어떤 쥐새끼가 미쳤다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러 가겠어요? 안 그래요?”
재환은 그 말에 임현아가 어째서 자신을 이제야 찾아왔는지 눈치챘다. 그녀는 자신이 데이드럼을 만나고도 무사할지 가늠하고 있었고, 자신이 멀쩡히 돌아온 것을 확인한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미친 쥐새끼가, 여기 있다 이거죠?”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요.”
임현아는 그렇게 말한 뒤 재환이 타고 온 차의 조수석으로 걸어갔다.
“일단은 내 작업실로 같이 가요. 용산으로 가는 길을 뚫는 김에, 저 빌어먹을 자경단 놈들을 싹 쓸어버릴 생각이었거든요.”
재환은 임현아가 조수석에 놓인 무기를 뒷좌석으로 치워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숨기는 게 더 있겠지. 굳이 자기가 직접 데이드럼을 죽이러 가지 않는 이유도 수상쩍고, 오늘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것저것 지원해 주려는 이유도 수상하니까.’
그는 길거리에서 무조건적으로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두 부류밖에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장사꾼이거나, 사이비거나.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는 거고.’
그녀의 작업실로 가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재환은 하는 수 없이 운전석에 앉아 북악산으로 향했다.
자경단이 얼마나 강하고, 용산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이상 장비와 지식이 더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용할 수 있는 부분만 이용하면 돼. 어차피 저 여자도 날 이용하려고 부른 걸 테니까. 그리고 여차하면…’
그는 한 손으로는 언제든지 총을 뽑을 수 있게 준비하면서 되뇌었다.
‘…내쪽에서 먼저 뒤통수를 치는 것도 고려해야겠지. 배신당할 바에는 먼저 배신해버리는 게 나으니까.’
그렇게 그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며 네온사인으로 물든 종로구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 얼마나 역겨운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