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82
괴물을 먹는 괴인 (1)
“종로구의 천문대는 하늘만 보는 게 아니라 땅도 같이 봐요. 네온사인이 어떤 식으로 깜빡거리고, 어떤 빛깔로 빛을 내는지에 따라 보스 몬스터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짐작할 수 있거든요. 천문관이라는 직업은 이렇게 알아낸 정보를 연구하고, 공유하고, 전파하는 역할인 거예요. 천문학자들이랑 다른 점은… 연구대상인 ‘별’들이 살아있는 존재라는 점 정도죠.”
천문대는 북악산의 정상 부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임현아의 설명을 들으며 천문대의 입구에 도착한 재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문 앞을 바라봤다.
‘뭔가 있어. 이 천문대의 밑바닥에… 뭔가 기분 나쁜 게 있는 게 분명해.’
예지력을 사용했을 때 보이는 것은 지하실에 내려가려는 것을 만류하는 임현아와 실랑이를 벌이는 자신의 모습뿐이었다.
단편적인 장면에 불과했지만. 재환은 본능적으로 지하실에 끔찍한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지력으로 본 미래에서 본 지하실에는 어두컴컴한 어둠이 깔려 있었고, 천문대의 밑바닥에 보이는 어둠이 음습한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깔려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냥 무시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대한테 수상쩍은 것들을 받을 수는 없지.’
예지력으로 본 미래에서 임현아는 결국 지하실에 혼자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이한 형상의 장비와 물약들을 가지고 나와 재환에게 건넸다.
그중에는 날카로운 송곳을 닮은 무기도 있었고, 생화학 폭탄이라고 주장하는 물건도 있었으며, 각성 효과가 있는 알약이라는 물건도 있었지만, 재환은 이런 장비와 소모품들을 순순히 받아 사용하는 것에 꺼림칙함을 느꼈다.
‘이미래 그 여자한테 자살용 알약을 받았을 때랑은 다르지. 먹고 죽으면 그만인 알약은 제대로 죽을 수만 있으면 제 역할을 다한 셈이지만… 저 여자한테 받게 될 장비들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으니까.’
예지력이 보여주는 미래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재환은 임현아에게 아직 장비를 받지 않은 시점에서는 장비들의 효과와 출처를 알아내진 못했고, 그녀가 준 장비들이 어떤 목적으로 제작되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도 알아낼 수 없었다.
‘저 여자는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하겠지만…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그는 품속에 넣어둔 핸드캐넌을 꺼내는 것까지 고려하면서 결심했다.
‘여차하면 협박을 해서라도 알아내야지. 협력을 하려면 믿을만한 상대인지 확인하는 게 먼저니까. 언제 무슨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아무 의심도 없이 넙죽 받아먹는 것도 미친 짓이지.’
그렇게 천문대 밑바닥을 들여다보기로 결심했을 때, 임현아는 천문대의 문을 연 뒤 재환이 예상했던 대로의 말을 건넸다.
“먼저 3층에 가서 기다려주실래요? 잠깐 연구실에 내려가서 작업해야 할 게 남아있어서요. 한 30분 정도면 끝나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천문대의 로비층은 비교적 평범한 편에 속했다. 연구원들은 가면을 쓰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하얀 가운을 입은 여느 과학자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고, 천문대 곳곳에 배치된 지도와 그림들 역시 ‘천문대’라는 이름과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면 쓴 연구원들을 훑어보던 재환은 임현아의 말에 위화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연구실이라… 거기서 뭘 연구하고 있는지, 나한테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는 겉치레를 생략한 뒤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나는 아직 그쪽을 완전히 믿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쪽이 사실 괴물들 편일지도 모르고, 내가 안 보는 사이에 언제 내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는 거니까요.”
세상이 멀쩡하던 시절이었다면 무례하게 여겨질 정도로 노골적인 말이었지만,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그런 사실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괴물의 손에 멸망해버린 세상에서 예의는 장식품에 불과했고, 닳고 닳은 회귀자에게는 총알 하나보다도 값싼 겉치레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임현아는 재환의 요구에 시원스럽게 웃음소리를 흘리며 대답했다.
“들어가고 나면 비위가 좀 많이 상할 텐데, 그래도 굳이 보고 싶어요? 정말로?”
그 말에 재환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비위라면 이미 충분히 망가졌어요. 괴물의 피를 수백만 마리 분량이나 마시다 보면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나고, 미각까지 맛이 가버리거든요.”
“때로는 모르는 게 나은 것도 있는 법이에요. 그래도 정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재환은 그 말에 피로 얼룩진 탈바꿈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못 볼 꼴이라면 충분히 봤으니, 내 걱정은 그만두고 대답이나 해 봐요. 내가 봤을 땐 그쪽도 시간 낭비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으니까.”
임현아가 이미래처럼 자포자기한 부류는 아니라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시설을 지은 뒤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그녀가 무기력하게 살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설령 방향성이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는 일그러져있을 수는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녀가 시간을 낭비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 자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죠. 이 이상 경고해봐야 시간을 낭비니까요.”
그녀는 지하로 가는 통로로 걸어가며 말했다.
“난 분명히 경고했어요. 그쪽 비위가 얼마나 망가지든, 내 알 바는 아니니까요.”
임현아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를 듣던 재환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되었음에도 찝찝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린 건 다행이야. 대신 문제는…’
그는 지하실로 이어진 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밑바닥에 과연 뭐가 있냐는 거지.’
그는 어두워진 얼굴로 어구컴컴한 지하실로 발걸음을 옮겼고, 임현아가 연구실 입구의 조명을 켜자 그녀가 경고한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미쳐버린 회귀자가 만들어낸 연구실은 데이드럼의 공방보다 지독한 지옥이었다.
* * *
‘이미래 말이 맞았군.’
재환은 지하에 위치한 연구소의 모습을 훑어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가면을 벗길 필요도 없었어. 저 가면 속에 사람 얼굴이 있든, 괴물 얼굴이 있든, 저 여자의 본질은 이미 괴물보다도 괴물다울 테니까.’
지하 연구소는 지하철이 지나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으로 거대했다.
연구원의 숫자만 해도 어림잡아 수백 명은 넘어 보일 정도로 규모가 방대했으며, 그들이 각자 관리하는 연구 시설의 크기는 하나의 건물이나 다름없을 정도의 규모를 자랑했다.
‘이 정도면 산 하나를 통째로 연구소로 만든 수준이겠어.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상식에서 벗어난 기술을 쓴 건 분명하겠지.’
스쳐 지나가는 수준으로 본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 연구소에서 진행되는 연구가 얼마나 미쳐있는 수준인지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사람의 몸에 괴물의 신체를 이식하는 실험을 하거나, 벌레 형태의 괴물들을 개량해 소형화하여 벌레 때로 양산하는 실험실도 있었으며, 여러 마리의 괴물을 섞어서 하나의 괴물로 만드는 실험실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최악이었던 실험은 반쯤 괴물이 된 사람에게 괴물을 낳게 하는 실험이었다.
그 실험실의 입구에는 ‘사냥꾼 양산 프로젝트’라는 이름만이 싸늘하게 적혀있을 뿐이었다.
‘선도 넘고, 선악도 넘고…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픈 수준이야…’
괴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 괴물과 닮아간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임현아의 연구실은 그 정도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사냥꾼에 비해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사람보다 괴물을 주요 자원으로 사용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녀의 연구실은 데이드럼의 공방과 다를 게 없었고, 그녀 역시 한때는 사람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데이드럼에 비해 혐오감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한사랑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지옥은 괴물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거라고.’
재환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군. 괴물이 만드는 지옥은 직접 사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천국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는 데이드럼의 공방에서 악기가 되던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음을 떠올리며 착잡한 심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에 반해 여기는 당사자들도 지옥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엄밀히 따지면 지옥을 만드는 건 인간들 쪽이 더 심한 걸지도 모르지.’
연구소에는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가면을 쓴 연구원들은 모두 비명 소리에 개의치 않았다.
양심과 인간성이 닳아 없어졌다는 점에서 이들은 모두 괴물이나 다름없었고,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만 고려하면 그 역시 이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아직이야. 아직 이 괴물들이 성자의 하수인이라는 증거는 없으니까. 설령 있다고 해도…’
그는 이를 악 문체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이용할 수 있는 만큼은 이용하고 척을 져도 늦지 않아. 역겨워도 참을 수 있는 만큼은 참아보자.’
그는 사방에 괴물이 널려있다는 생각을 억누르며 앞으로 나아갔고, 앞서가던 임현아는 뒤를 돌아봐 재환의 표정을 흘끗 살펴본 뒤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직접 구경하는 소감이 어때요? 직접 보니까 이제 좀 만족해요?”
재환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이 시설을 살펴보며 떠오른 의문점을 제시했다.
“…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괴물들은 다 어디서 구한 겁니까?”
“제휴업체가 있다는 정도만 알아두세요. 자세한 건 비밀유지 서약 때문에 말하지 못하게 돼 있거든요. 무슨 연구를 하든지 파트너랑 후원자가 필요한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돌아온 대답은 불만족스러웠지만, 이 이상 추궁하더라도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올 것 같지 않았기에 그는 묵묵히 임현아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임현아가 어느 격리실의 문을 열어젖힌 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재환은 자신의 눈앞에 들어온 거대한 크기의 수족관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수족관 속에는 물고기 대신 사람의 뇌가 수백 개가 넘도록 둥둥 떠 있었고, 수백 개의 뇌는 서로 혈관으로 연결되어 거대한 기계장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생체 컴퓨터에요. 사람들의 머리를 한곳에 모아서 만든 거죠. 백지장도 한곳으로 모으면 낫다는 말도 있잖아요? 이 컴퓨터야 말로 이 연구실의 핵심이죠.”
자랑스러워하는 임현아의 말에 재환은 그녀를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제는 설령 가면의 안쪽에 사람의 얼굴이 있더라도 사람이라고 여길 이유가 없어 보였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는 수백 개의 뇌가 서로 연결되어있는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것들도 전부 회귀자인 건… 아니, 아니지…”
그는 결국 핸드캐넌을 꺼내 임현아에게 겨눴다.
“그 전에 이 시설 전체가 회귀의 영향을 안 받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기술을 썼길래 이런 게 되는 건지…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그러자 임현아는 키득거리며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때로는 모르는 게 더 나은 것도 있는 법이라고.”
그 말에 재환은 한 가지 사실을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악마’와 계약한 것은 자경단뿐만이 아니었고, 그녀가 말한 ‘제휴업체’란 다른 종류의 ‘악마’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