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83
괴물을 먹는 괴인 (2)
처음 보스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의 일이에요.
우리는 모든 힘과 지혜를 끌어모아서 날개가 달린 촉수 괴물을 사냥했고, 그 괴물의 피를 마셔서 새로운 감각을 얻게 됐죠.
서울의 중심부에서 풍겨오는 피비린내, 한강 이남에서 들려오는 심장의 고동 소리, 서울 외곽에서 거미들이 실을 엮는 사각거림까지.
별에서 내려온 괴물의 피를 마시게 되니,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자극들이 느껴지고, 오감의 영역이 넓어져 육감의 영역까지 넘보려 할 때, 우리는 날개가 수백 장 달린 까마귀께서 무수히 많은 눈동자로 세상을 굽어보고 계신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 위대하신 분의 속삭임이 희미하게 들려온 순간,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죠.
괴물이라고 해서 다 같은 괴물이 아니고, 그중에는 다른 괴물을 수족으로 삼아 부리는 괴물도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보스 몬스터인줄 알고 사냥했던 괴물은 날개 달린 까마귀의 깃털 중 하나에 불과했고, 그 위대한 분께서는 하늘에서 모든 것을 굽어보며 우리의 자질을 시험하셨던 거예요.
그리고 세상을 굽어보는 까마귀의 옥체를 보게 된 순간,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모두 헛수고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무리 괴물의 피를 마셔서 힘을 기르고, 지하철에서 무기를 얻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우리의 힘만으로는 저 위대하신 분의 털끝을 건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카니발을 막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는 거였죠.
저 높으신 분들의 시선으로 보면 서울은 수족관이나 다름없었고, 우리는 그냥 수족관 속에서 먹이를 받아먹는 물고기 신세였던 거예요.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것과 함께 저는 괴물 사냥을 그만뒀어요.
사냥 따위는 먹이를 받아먹고 사는 짐승들이나 하는 짓이고,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이니까요.
우리에게 지혜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길은 오직 지식을 쌓는 일뿐이고, 더 많은 것들을 알아내고 밝혀내어 빛을 발하는 것이야말로 사냥꾼이 존재하는 이유인 거죠.
그렇게 저는 괴물의 피를 사냥하는 대신 괴물의 지혜를 사냥했고, 무수히 많은 실험체를 모으고 지식인들을 초청해서 연구소를 세웠어요.
그리고 오랜 연구는 결국 위대한 까마귀께 주시를 받는 걸로 보답 받았죠.
그분께서는 제가 마음껏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셨고, 덕분에 저는 이제 그분의 종자로서 천상에서 내려와 지상에서 썩어가는 쓰레기 별들을 치워버릴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됐어요.
오랜 기다림 끝에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을 발휘할 기회가 오게 된 거에요.
그리고 이제는 마침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줄 사냥꾼께서 오게 됐으니, 저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는 거죠.
* * *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사냥꾼이라…’
재환은 임현아의 장광설을 들으며 핸드캐넌의 방아쇠에 신경을 집중했다.
‘대놓고 모르모트 취급이라니. 뻔뻔하기 짝이 없군. 날 실험용 쥐로 삼아서 성자를 사냥하겠다는 거니까. 내가 미쳐버리거나 부서져도 상관없다는 거겠지.’
임현아에게 꿍꿍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미쳐버린 서울에서 100년을 넘게 사냥꾼으로서 살아온 회귀자가 제정신일 가능성은 없는 거나 다름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성자에게 정신조종을 당하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지. 마태오 신부가 그랬던 것처럼, 이 여자도 그 까마귀에게 기억이나 생각을 조종당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이 미쳐버린 도시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때 정상이었던 사람들은 괴물이 되거나 정신질환에 걸리기 마련이었고, 정상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행동들은 마치 처음부터 정상이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재환은 임현아의 말과 행동이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세상인 것을 고려해도 지나치게 일그러져있음을 실감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 여자가 결국은 괴물의 하수인이라는 뜻이니까. 괴물에게 인정받으려고 연구를 한다니… 맛이 가버린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이미래의 말에 의하면 임현아는 본래 괴물 사냥에 필사적이었던 사냥꾼이었다. 비록 그 방식이 인간의 윤리를 벗어났다고는 해도, 그 목적만큼은 인간의 세상을 되찾는 것과 연결되어있었다.
하지만 직접 만나 본 임현아는 이미 그 목적마저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녀는 이제 괴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 아니라 괴물을 섬기는 연구자였고, 연구의 목적은 사람의 세상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괴물의 인정을 받는 걸로 변질되어있었다.
‘차라리 연기를 하고 있는 거면 좀 낫겠지만…’
재환은 가늠쇠 너머로 임현아의 가면을 겨냥하며 시선을 집중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긴 하지. 일부러 거짓말까지 하면서 경계심을 높일 이유는 없으니까. 그냥 둘러대도 되는 걸 이렇게 떠벌리는 걸 보면… 아예 사리분별을 하는 기준이 망가져 버렸다고 봐야겠지….’
임현아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였지만, 재환은 핸드캐넌의 방아쇠를 섣불리 당길 수 없었다. 그녀를 공격한다는 것은 이 거대한 연구소를 전부 적으로 돌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다 쓸어버릴 수 있다고 해도 그다음이 문제지. 회귀를 했는데 이 연구소가 그대로 복구되면 같은 짓을 또 반복해야 되는 거니까. 잘못하면 영원히 이 미치광이들과 어울리느라 시간 낭비를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는 수족관 속에서 둥둥 떠 있는 수백 개의 뇌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다가 자칫 잘못하면 나도 저 통 속의 뇌가 될 수도 있겠지.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생체 컴퓨터가 되는 신세가 되면… 그때는 정말 끝장이나 다름없을 거야.’
통 속의 뇌라는 모티프는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이 1981년에 제시한 이래로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어 온 사고실험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은 사실 허상에 불과하고, 그 실체는 통 속에 담긴 뇌가 외부에서 주어진 전기 자극을 받는 것에 불과하다는 이 사고실험은 기술의 한계로 인해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지금까지 불가능했다.
하지만 성자라는 불가해한 괴물이 존재하는 한 이 사고실험은 언제든지 현실이 될 수 있었고, 그 실험체가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감각은 피부를 타고 서늘하게 뇌리를 자극했다.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 부수고 싶지만…’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낸 재환은 핸드캐넌을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야. 이 연구소 자체는 성자에 비하면 별 게 아니지만, 이 연구소를 영원히 없애버린다고 해서 내가 뭘 얻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임현아가 만들어낸 연구소는 비범한 규모를 자랑했지만, 그 본질이 ‘연구소’인 이상 성자를 상대하는 것보다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그 증거로 재환은 품 안에 넣어둔 총기와 폭발물을 활용해 시설의 3분의 1을 5분 안에 무력화시키고 빠져나오는 미래를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었고, 나머지 시설을 무너뜨리는 것 역시 청와대의 경호 부대를 뚫는 것보다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아직 이 연구소의 모든 것을 알아낸 것은 아니고, 생화학 병기와 실험체들이란 변수가 있기는 했지만, 이 모든 것을 고려하더라도 이 연구소는 데이드럼의 공방에 비하면 그리 위험한 공간은 아니었다.
‘윤리 문제는 잠깐 접어두자.’
그는 언제든 핸드캐넌을 다시 뽑을 수 있게 준비하면서 임현아를 노려봤다.
‘괴물들을 없애버리는 것도 순서가 있는 거니까. 다 때려 부수는 건 데이드럼을 사냥하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임현아에 대한 혐오감과 공격성을 억누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역시 본질이 인간인 이상 같은 인간을 실험용 쥐로 쓰는 것에는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마음껏 성자를 사냥할 수 있는 힘만 있었더라면 이미 괴물로 전락한 사냥꾼과 협력하는 일 따위는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 여자에게는 괴물의 재생을 억누를 수 있는 기술이 있었고, 그 기술이 성자에게도 통할 가능성이 있는 이상, 이 여자와 잠시 손을 잡는 것은 성자를 사냥하는 실마리를 붙잡는 것과 같았다.
“그쪽이랑 협력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그는 머리 위로 들어 올렸던 두 손을 내린 임현아에게 말했다.
“그 사혈이란 물건이 고양이 목에 달 방울이고, 내가 그 방울을 달러 가는 실험쥐라는 건 알겠어요. 문제는… 왜 하필 나를 실험용 쥐로 고른 거냐 이거죠.”
그는 격리실 뒤편에 널려있는 실험체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실험체라면 저쪽에 있는 괴물이나 사람으로 충분하잖아요. 굳이 내가 올 걸 기다릴 필요가 뭐였는지, 설명은 해야 되지 않아요?”
그러자 임현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말에 대답했다.
“이성이 있는 자들은 자기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존재를 해칠 수 없어요. 싸우기도 전에 결과가 뻔히 보이거든요.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어도 쥐새끼들이 털을 곤두세우고 도망치는 것처럼요. 예외가 있는 건…”
그녀는 재환의 머리를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머리가 맛이 가서 겁을 잃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머리가 이상한 괴인밖에 없는 거죠. 당신처럼요.”
재환은 자신을 괴물 취급하는 괴인의 말을 쉽게 부정할 수 없었다.
성자를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정신 나간 짓인지 알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미 광기나 다름없는 집착임을 그 역시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상대를 괴물로 보고 있을 때, 상대 역시 자신을 괴물로 여기고 있었음을 깨닫자 그는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사냥개에 실험쥐 취급이라…’
자신이 웃고 있음을 깨달은 재환은 웃음기를 지우며 생각했다.
‘지금은 장단에 맞춰서 놀아줘야지. 아직은 얻어낼 게 있으니까. 아직까지는 말이야…’
비록 그 방향성은 일그러져있었지만, 임현아의 연구 성과는 무시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데이드럼을 무시하고 용산으로 떠나든지, 용산으로 떠나는 대신 데이드럼을 상대하러 가든지, 그녀의 연구 성과를 이용하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고, 그녀의 연구 성과를 제대로 이용하려면 이 연구소를 적대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시기상조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용할 만큼 이용하면 전부 다 부숴버려야지. 이것들이 괴물인 이상, 사냥꾼이 괴물을 무시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는 대답을 끝낸 임현아가 생체 컴퓨터의 기판을 조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애초에 저 여자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니까. 내가 쓸모없어지는 순간, 저 여자가 나를 실험체로 쓰지 말란 법은 없는 거지.’
재환은 그녀가 저 뇌의 주인들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얼버무렸다는 것을 되새기며 그녀를 노려봤다.
그녀가 말을 빙빙 돌린 속셈이 너무 노골적이었기에 그는 쉽게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