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84
만인의 지옥 (1)
연구소에서 작업을 끝낸 임현아는 재환을 천문대의 상층부에 있는 휴게실로 안내했다. 피와 먼지 냄새로 가득한 지하실이 대화를 계속 나누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기는 역시 윗 공기가 좋아요.”
임현아는 그렇게 말하며 천문대의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서늘한 밤공기가 바람을 타고 천문대로 흘러들어왔고, 창문을 열어젖힌 그녀는 재환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무리 환기를 하고 공기 정화기를 설치해도 지하에 가까워질수록 공기가 음침해지거든요. 볕이 안 드는 곳에서는 뭐든 음흉해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가 봐요.”
그녀가 권한 자리를 바라보던 재환은 주변에 별다른 함정이 설치되지 않은 것을 살펴본 뒤 자리에 앉았다.
“이제 슬슬 일 얘기나 하죠.”
그는 그렇게 말한 뒤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기괴하고 음침한 지하 연구소에 비하면 상층부의 휴게실은 여느 휴게실과 다를 바 없이 평이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 자경단이란 놈들의 규모, 목적, 용산으로 가는 루트의 확보… 뭐, 그런 얘기 말이에요. 우리가 수다나 떨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기도 하고요.”
임현아는 담배에 불을 붙이는 재환의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소리를 흘렸다.
“귀한 분이 오셨는데, 사설이 길었네요.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그렇게 운을 뗀 임현아는 품속에서 살점과 가죽으로 만든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고, 그녀가 두루마리의 표면에 핏방울을 떨어뜨리자 백지상태였던 두루마리에 서울 중심부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자경단의 본거지는 충무로에 있어요. 충무로를 중심으로 중구 일대를 장악하고, 용산으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죠. 괴물이든, 범죄자든, 일반인이든, 사냥꾼이든. 자경단을 넘어서지 않으면 용산으로 갈 수는 없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목에 선을 긋는 시늉을 하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자경단은 죄수를 풀어주려는 사람들도 죄인이라고 여기거든요. 용산에 가는 게 죄수를 풀어주는 거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용산에 가는 게 현재 상황을 유지하려는 자경단의 목표에 방해되는 건 확실해요.”
설명을 이어나가던 그녀는 두루마리의 구석에 피 한 방울을 더 떨어뜨려 목 매달린 사람의 그림을 일곱 개 그려 넣었다.
“역사를 살펴보면, 자경단이 생긴 이후 총 일곱 명의 사냥꾼이 용산으로 가려고 했고, 그 사냥꾼들은 모두 죄인 취급을 당해 목이 매달렸다고 했거든요. 그중에는 꽤 쓸만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거나, 별들 깨서도 눈여겨볼 정도로 강인한 사냥꾼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혼자서는 결국 역부족이었고, 지금은 다들 목 매달린 산송장 신세가 된 거죠.”
“역사라…”
그녀가 까마귀 성자로 추정되는 괴물과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재환은 의심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질문했다.
“그 역사란 건 어떻게 알아낸 거예요? 설마 사람한테 들은 건 아닐 테고…”
그 말에 임현아는 가변 너머로 웃음소리를 흘리며 대답했다.
“그쪽도 뻔히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굳이 내 입으로 대답해야 돼요?”
“확실하게 하려고 이러는 겁니다.”
재환은 담배 연기를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절차니까요. 더군다나 세상이 이 꼴인데… 남이 말하는 걸 곧이곧대로 믿는 건 더 멍청한 짓이죠.”
“흠… 그래요. 뭐, 그리 대단한 비밀도 아니니까요. 이참에 서비스 좀 해드릴게요.”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연 임현아는 창가로 걸어가 별이 깜빡거리는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고, 괴물이라고 해서 다 같은 괴물이 아닌 것처럼, 별들이라고 해서 다 같은 별인 건 아니에요. 하늘에 떠 있는 별이든, 땅에 내려온 별이든, 저마다 성질과 성향이 다른 건 마찬가지거든요.”
하늘에 떠 있는 별을 가리키던 그녀는 지상에서 빛나는 네온사인 건물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지금 서울의 중심부를 차지한 건 음악가지만, 모든 별들이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그중에는 자경단을 보호하는 별처럼 처벌과 고문을 좋아하는 별도 있고, 예전에 우울증을 유발하는 비를 내린 별처럼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하는 괴물도 있죠. 높으신 분 하나가 서울을 자신의 색깔로 물들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런 흐름에 휘말리더라도 별들은 다시 떠올라서 자신의 빛깔을 발하는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휴게실 곳곳에 그려진 별자리 그림들을 가리켰다. 그녀는 별들이 이동하는 궤도, 깜박거리는 주기와 세기 등이 그려진 그림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어조로 소개했다.
“결국 천문대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그 별빛을 읽어내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거예요. 그중에는 사람에게 호의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고, 위대한 지식을 내려받는 경우도 있죠. 어느 쪽이든 우리에게 피와 살이 되고, 일용한 양식이 되는 건 마찬가지예요. 보람찬 일이죠.”
임현아의 말을 곱씹던 재환은 이미래가 카니발이 일어날 시기를 예측했던 일을 떠올렸다.
‘저게 전부 다 헛소리일 수도 있지만… 별빛을 읽어내는 기술이 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겠지. 천문학 자체는 옛날에도 있던 거고, 저 말이 사실이면 문지기가 여길 천문의 도시라고 소개했던 것도 이해가 가니까. 그리고 만약 저걸 배울 수 있다면… 위험하긴 해도 쓸모 있는 구석이 있을 수도 있겠지.’
별빛을 읽어낸다는 기술에 대해 생각하던 재환은 담배 연기를 내쉰 뒤 그녀에게 말했다.
“그 천문학이란 거, 배우려면 얼마나 걸려요? 그쪽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면, 내가 직접 배워보는 편이 빠를 것 같아서요.”
“빠르면 10년 정도 걸려요. 대충 박사과정 밟는다는 느낌으로, 매일매일 이론이랑 실습에 몰두했을 때의 얘기지만요. 혹시 배워볼 생각 있어요?”
임현아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얘기했고, 재환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당신 말이 사실이라고 치면, 여기서 적어도 10년은 썩어야 한다는 뜻이잖아요. 괴물 사냥하기에도 바쁜데, 이딴 동네에서 느긋하게 별자리나 공부하는 것도 미친 짓이죠.”
그러자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러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게요. 자경단이 뭐하는 조직인지는 대충 알았으니, 이제는 어떻게 없앨지 결정하는 것만 남았거든요.”
임현아는 그렇게 말한 뒤 두루마리의 귀퉁이를 손톱으로 긁었고, 그러자 두루마리는 기이한 신음을 흘리며 표면에 그려진 그림의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준비한 계획, 플랜 A는 이거에요.”
그녀는 갑옷을 입은 자경단과 괴물들이 싸우는 모습을 두루마리를 통해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 쪽의 실험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자경단을 교란시키고, 그 틈에 당신이 자경단의 본거지로 잠입해서 ‘그릇’을 부숴버리거나 탈취하는 거죠. 자경단의 가장 큰 힘인 불사성의 근원이 바로 이 ‘그릇’에서 흘러나오는 거거든요.”
그녀는 수은 빛깔로 반짝거리는 심장을 두루마리에 그리며 말했다.
“그릇은 심장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예요. 사람의 몸에 있을지, 괴물의 몸에 있을지는 알 수 없어도, 누가 가지고 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그 그릇에는 별에서 내려온 괴물이 담겨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지금까지 보스 몬스터라고 낮춰 불렀던… 높으신 분이 말이죠.”
재환은 ‘그릇’이라 불린 물건이 심장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는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릇이라… 그러고 보면 속삭임도 레벨이 오를 때마다 그렇게 말했지. 그릇에 피가 가득 찼다고. 그릇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이야…’
그는 속삭임의 기원과 출처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에 아쉬워하며 의문을 억눌렀다.
‘어렵게 생각하진 말자. 괴물의 피를 마셔서 괴물에 준하는 존재가 된다는 게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니까. 성자를 상대할 지혜를 얻으려면 괴물의 피를 마시는 건 사실상 필수나 다름없어.’
성자를 사냥하려면 그들을 마주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했고, 그가 알고 있는 한 지혜를 높일 방법은 괴물의 피를 마시는 것밖에 없었다.
다른 능력치는 장비와 기술로 어느 정도는 대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혜가 부족하다면 그들을 사냥하기는커녕 마주 보는 것마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 계획의 개요에요. 우리가 교란하고, 당신이 그릇을 상대하는 거. 사실상 이게 전부인 내용이죠.”
첫 번째 계획에 대해 설명을 끝낸 임현아는 그렇게 말한 뒤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따로 질문이나 불만이 없으면 이대로 진행할 생각이에요. 이쪽이 제일 성공률이 높고, 저나 당신 모두에게 편리한 길이거든요. 어떻게 생각해요? 이대로 갈까요?”
“첫 번째 계획이라…”
임현아의 계획 설명에 재환은 담배 연기를 내쉬며 말했다.
“굳이 첫 번째라는 말을 한 건, 두 번째나 세 번째도 있다는 거죠? 그쪽 얘기도 한 번 들어보죠. 당신이랑 당신 실험체를 그냥 믿고 들어가는 건 너무 순진한 얘기 같거든요. 자칫하다가 당신 실험체들한테 공격당하거나 당신이 개발한 생화학 무기에 휘말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그가 혼자서 임현아의 연구소를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는 이유는 그 안에 있는 실험체들이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생화학 병기. 벌레 군집. 개조된 인간과 개조된 괴물들. 그리고 생체 컴퓨터 까지.
그녀가 개발 중인 실험체들은 하나하나가 평범한 괴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예지력으로 본 미래에서 보안체계를 무너뜨려 그 실험체들이 날뛰게 하는 것만으로도 연구소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적을 상대할 때 예리한 칼이 자신에게 겨눠졌을 때 얼마나 껄끄러울지 알고 있는 이상, 재환은 그녀가 말한 ‘첫 번째 계획’이라는 것에 함부로 동의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임현아는 처음부터 예상했듯이 키득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그럴 줄 알고 하나 더 준비해 뒀어요. 두 번째로 준비한 계획, 플랜 B는 당신 혼자서 충무로에 가고, 우리는 그걸 보조만 하는 거예요. 대부분의 행동을 당신이 주도하고, 우리 쪽은 원하는 장비나 지원이 있으면 가능한 만큼 도와주는 거죠. 당신 성격에는 이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때요?”
두 번째 계획에 대해 듣던 재환은 그녀의 계획에 담긴 속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저 계획의 내용대로라면 임현아의 연구소 측은 투자를 최소화하면서 자경단을 제거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둘 중 하나라는 거지. 뒤통수 맞을 위험을 감수하거나, 적당한 선에서 이용당하거나. 어느 쪽이든 꺼림칙한 건 마찬가지군.’
임현아와 협력해 그녀의 지식과 연구 성과를 이용하기로 결정한 이상, 꺼림칙한 부분은 항상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든 괴물이든 가리지 않고 실험체로 삼는 광인에게 윤리나 의리를 기대하는 게 미친 짓이지. 오히려 이제 와서 그런 게 남아있다는 말을 자기 입으로 하면, 그게 더 역겨운 일일 테고.’
결국 임현아가 어떤 인간인지 되새기는 것을 끝낸 재환은 결정을 끝낸 뒤 입을 열었다.
“두 번째 계획으로 가죠. 내가 먼저 충무로에 가고, 당신이 그걸 보조하는 쪽으로요.”
“이유는요?”
“자경단이 어떤 집단이고, 당신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요.”
재환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꺼트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그 자경단이라는 조직을 모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남아있는 이상, 일단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먼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