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85
만인의 지옥 (2)
“고작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자경단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이후, 준비를 마치고 떠나려는 재환에게 임현아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자경단의 숫자는 어림잡아 수백 명에서 수천 명 규모에요. 그것도 하나하나가 괴물 수준의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는 데다가, 죽지도 않으면서 재생력까지 가지고 있는 괴물들이죠. 아무리 사혈이 재생력을 잘 억누른다고는 해도, 겨우 그 정도 장비만 가지고 출발하는 건 좀 무모한 것 같은데요.”
임현아에게 받은 장비는 총 세 가지였다. 충무로 일대와 자경단의 배치가 그려진 ‘지도’, 재생력을 억누르는 썩은 피 ‘사혈’, 그리고 상황이 수틀릴 경우 지원 요청을 할 수 있는 ‘신호탄’이 재환이 임현아에게 받은 장비의 전부였다.
“잔소리하려고 마중 나온 거면 다시 돌아가요. 조금 전에도 얘기했던 것처럼, 난 아직 그쪽 얘기를 전부 믿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재환은 승용차에 시동을 걸며 말했다.
“그 자경단이라는 조직이 당신 말대로 아무나 목매다는 미치광이들인지, 아니면 좀 과격한 치안 조직인지도 확인한 것도 아닌데, 다짜고짜 생화학 무기부터 쓸 수도 없으니까요. 자경단이 내 일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그것부터 확인하는 게 순서에 맞는 일인 거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승용차의 시동을 걸고 떠날 준비를 끝낸 재환은 임현아의 가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난 그쪽이 만든 것들 함부로 쓸 생각 없어요. 언제 나까지 휩쓸릴지 모르는 물건을 쓰는 것도 미친 짓이니까요.”
재환은 임현아가 저런 말을 하는 속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렇지도 알게 사람과 괴물로 실험을 자행하는 괴인이 이제 와서 자신을 걱정할 리는 없으니, 그녀가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실전에서 다양한 데이터를 뽑으려는 속셈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환은 특수 제작한 방독면까지 제공하려고 했던 제안을 무시했고, 탈바꿈에 바를 사혈 한 병을 제외하면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물건만을 그녀에게서 받아왔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키득거렸다.
“생포 당하기 전에 자살만 할 수 있으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시체도 안 남을 정도로 산산조각날 수만 있으면, 제아무리 자경단이라고 해도 재생시킬 순 없거든요. 무슨 말인지는 그쪽도 알고 있죠? 재생이라고 해서 만능은 아닌 거예요.”
재환은 그 말에 괴물이 된 마태오 신부와 청와대에서 자신을 마중 나왔던 데이드럼의 조율사 문성진을 떠올렸다. 둘 모두 재생되는 것보다 빠르게 몸을 난도질하자 재생력이 바닥났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괴물이든, 권속이든, 성자든. 하늘이면 몰라도 땅에서는 영원할 수 없다는 거겠지. 나한테는 그나마 다행인 얘기지만…’
그는 ‘관리자’라고 분류됐던 성자들을 떠올리며 수심에 잠겼다.
‘…아예 날아다니는 괴물들한테도 통하는 얘기일지는 모르는 거지. 사람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성자라고 해서 다 같은 성자인 건 아니니까.’
임현아의 얘기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있던 재환은 가볍게 숨을 들이쉰 뒤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더 할 말이 없으면 이제 슬슬 출발할게요.”
그는 운전석 근처에 지도를 고정하며 말했다.
“계속 머리만 굴리고 있는 건 성미에 안 맞거든요. 세상이 이 꼴이 되고 난 다음에는… 생각을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서요. 생각이 늘면 잡념도 느는 거죠.”
그 말에 임현아는 씁쓸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느낌인지 알고 있어요. 나도 예전에는 가끔씩 그랬거든요. 수렁으로 가라앉는 기분, 그거 꽤나 더러운 일이죠.”
간만에 웃음기가 사라진 목소리로 말하던 임현아는 재환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무운을 빌게요.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충무로에서 목매달리는 건 그나마 나은 형별이거든요.”
임혀아가 말을 끝내자 재환은 창문을 올린 뒤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종로구의 거리에서 차를 몰며 생각했다.
‘일단은 자경단이 용산으로 가는 길을 막는지부터 확인하자. 자경단이랑 적대하는 건 저 여자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 거니까.’
차를 몰며 생각을 정리한 그는 종로구를 지나 중구에 도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현아의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구는 죄지은 자들을 고문하기 위해 이 땅에 세워진 지옥이었고, 자경단은 이 지옥을 영원토록 유지하길 원하는 간수들이었다.
* * *
재환이 처음 자경단원을 만나게 된 것은 교수형을 당한 산송장들을 지나 용산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섰을 때였다.
한참 동안 차를 몰고 나아가던 그는 가시덩굴을 닮은 철창이 열대우림처럼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며 차를 세웠고, 이와 동시에 근처에 있던 건물의 옥상에서 하얀 조명 몇 개가 자신을 비추는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사냥꾼을 용산으로 보내지 않으려는 건 사실인가 보군. 그게 아니고서야 용산으로 가는 길목을 저런 식으로 막아놨을 리가 없으니까.’
저 철창이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과거에 샬롬의 사냥꾼에게 패배해 몸을 빼앗겼을 때는 저런 구조물의 방해 없이 용산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 당장 공격하진 않을 모양이지만···.’
재환은 예지력을 사용해 금속으로 만들어진 투구를 쓴 자경단원들이 자신을 포위할 예정임을 확인하며 생각했다.
‘…분위기를 보면 언제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겠어. 아무리 서울이 이 지경이 됐어도 요즘 같은 시대에 갑옷을 입고 자경단 노릇을 하는 인간들이 제정신일 리는 없으니까.’
재환은 언제 싸움이 일어나도 대응할 수 있도록 사혈을 탈바꿈에 발랐고, 그가 준비를 끝낸 뒤 차에서 내리자 총과 올가미, 투망으로 무장한 자경단원들이 재환을 둘러싸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피 냄새… 역겨운 피 냄새…”
“시체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 걸 보니 많이도 죽인 모양이야.”
“이 정도로 지독한 냄새는 오랜만인데… 그냥 우리끼리 즉결 처분하는 게…”
“아니야. 그래도 재판을 해서 무게는 재 봐야지. 아무리 쓰레기같은 죄인이어도 얼마나 쓰레기인지는 확인해야 되는 거니까. 우리가 정한 법을 우리가 안 지키면 누가 지키겠어.”
자경단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던 재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의 전력을 가늠했다.
‘돌파하려면 돌파할 수는 있어. 저 인간들의 스펙 자체는 강북에서 상대한 사냥꾼들 수준 정도 되는 것 같으니까. 엄폐물도 있고 하니 저것들 정도는 별 손실 없이 처리할 수 있겠지.’
눈앞에 보이는 자경단원의 숫자는 일곱 명에 불과했고, 무장이나 신체능력 역시 재환의 예지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위협적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주변의 건물에서 작살을 발사하는 총을 겨누고 있는 저격수들이 거슬리긴 했지만, 이들은 팔이나 다리를 겨눌 뿐 급소를 노리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놈들은 날 죽일 생각으로 모인 게 아니야. 전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지금 여기 있는 놈들은 날 생포하려고 모인 것 같으니까.
자경단원이 다가오는 잠깐 사이에 재환은 저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예지력을 사용해 미리 볼 수 있었다.
저들은 공격을 할 때 살상이 아닌 생포를 목적으로 행동했고, 저들이 들고 있는 총은 모두 마취 탄이 담긴 공기총이었다.
‘재생력을 믿고 저러는 거겠지. 웬만해서는 안 죽으니까 머리만 가린 다음에 저런 배짱을 부리는 걸 테고.’
여러 정황을 살펴봤을 때 눈앞에 있는 자경단원들을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계산이 나왔고, 계산을 끝낸 재환은 무기를 겨누는 대신 경고를 먼저 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언제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피를 보기 전에 경고부터 하는 것이 양심의 가책을 덜기에 좋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이랑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재환은 탈바꿈의 머리 부분을 땅에 닿게 하여 공격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나는 용산으로 갈 수만 있으면 되니까요. 당신들이 여기서 무슨 짓을 하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니까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 없는 거리였지만, 재환은 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저들이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하긴커녕 포위망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고문관님은 언제쯤 오실까.”
“10분이면 오시겠지. 늘 그 정도 걸렸으니까.”
“이번 사냥꾼은 그래도 좀 얌전히 있는군.”
“그래 봐야 잠깐이야. 저러다가 깽판 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저 친구는 어떤 판결을 받을까.”
“아마 영구 화형이나 고문 기계 행이겠지. 사냥꾼들은 흉악범이고, 항상 최고형을 받았으니까.”
대화가 이루어지는 대신 포위망이 서서히 좁혀져 오자 재환은 한숨을 내쉰 뒤 K1을 꺼내 장전했다.
‘장님들 세상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게 이런 기분이겠지.’
그는 총을 장전하는 것과 함께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고, 그 자리에는 옥상에서 발사된 작살들이 꽂혀있었다. 예지력으로 봤던 장면이 데자뷰가 되어 떠오르는 것과 함께, 그는 날아오는 그물과 올가미를 피해 K1을 발사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노름에 놀아줘야 한다니. 이것도 참 못할 짓이야.’
투망을 아무리 촘촘하게 던져도, 작살과 올가미로 퇴로를 차단할지라도, 일곱 명은 그의 앞길을 막기엔 너무 부족한 숫자였다.
그가 한 탄창을 비우는 것과 동시에 일곱 명의 자경 단원들의 가슴과 어깨에 총상이 생겨났고, 그를 비추던 조명들이 깨져서 빛을 잃었다.
‘확실히 재생이 거슬리긴 해.’
불이 꺼지자마자 재환은 상처를 회복 중이던 자경단원 하나의 머리를 탈바꿈으로 잘라났다.
그러자 임현아의 연구 성과가 헛되지 않았는지 사혈에 닿은 부분은 순식간에 썩어들어갔고, 머리가 잘린 자경단원의 몸뚱어리는 꿈틀거리며 경련할 뿐이었다.
‘그래 봐야 딱 거슬리는 정도지만.’
자경단원 한 명이 무력화되자 이변을 눈치챈 다른 자경단원이 경보를 울렸다. 그러자 도시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목매달려 있던 죄수들이 괴성을 지르며 자신을 매단 밧줄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가석방 같은 건가… 이건 좀 골치 아프겠어.’
재환은 목 매달려있던 죄수들이 자신을 향해 좀비처럼 달려드는 것을 훑어 본 뒤 다른 자경단원들 마무리하러 움직였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물량으로 몰아붙이면 체력은 착실하게 떨어질 테니까.’
그는 자신을 포위하던 일곱 명의 자경단원을 전부 마무리한 그는 숨을 몰아쉰 뒤 자신의 팔뚝에 전투 자극제를 투여했다.
‘그래도 못할 건 없지. 몇백이든. 몇천이든. 저런 오합지졸들한테 사로잡히면 그게 더 웃긴 일일 테니까.’
전투 자극제를 투여한 그는 곧바로 승용차에 실어뒀던 대전차 로켓과 수류탄 상자를 꺼냈다.
사혈처럼 기이한 기술은 담겨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재생하는 산송장들을 한 번에 으깨 버리기에는 폭발물보다 든든한 물건이 없었다.
`폭탄은 될 수 있으면 아껴쓰자.`
그는 몰려오는 죄수들에게 대전차 로켓을 발사하며 생각했다.
`설마 고작 이 정도 때문에 임현아가 경고했을 리는 없으니까. 진짜 조심해야 하는 건 아마 따로 있는 거겠지.`
조명이 꺼진 도시에 불꽃이 피어올랐고, 이와 동시에 폭음이 사이렌 소리를 묻어버렸다. 자경단에게 보내는 선전 포고로는 나쁘지 않은 음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