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86
만인의 지옥 (3)
‘부족해. 이 정도론 부족해.’
재환은 물결처럼 몰려오는 죄수들을 썰어버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괴물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지. 하다못해 사냥꾼이라면 모를까… 이 정도에 생포 당하면 그게 더 웃긴 일이겠지.’
죄수들을 처리한 숫자가 수백을 넘어섰을 때,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사냥하는 일이 괴물을 사냥하는 일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크기도, 형태도, 습성마저도 가지각색인 괴물에 비해 사람의 생김새는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었고, 체급과 체력 역시 괴물에 비하면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탈바꿈을 한 번 휘두를 때면 죄수들의 뼈와 살은 두부처럼 손쉽게 으깨졌고, 덕분에 그는 사방에서 죄수들이 몰려오고 있음에도 전황을 살필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이래서야 죄수들은 고기 방패군.’
그는 탈바꿈으로 죄수들의 몸을 썰어버리며 결론을 내렸다.
‘생각해 보면 간단하지. 죄수들한테 훈련을 시켰을 리도 없고, 무기를 쥐여줄 이유도 없으니까. 그래도 굳이 죄수들을 풀어준 건… 퇴로를 막고 체력을 소모시키려고 그런 거겠지.’
죄수들의 숫자는 인파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수류탄과 대전차 로켓을 사용해 숫자를 줄였음에도 아직도 그 숫자는 천 명은 넘어 보였고, 이들은 죽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재환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마치 죽은 사이에는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다른 죄수가 죽을 때마다 더욱 열렬히 달려드는 죄수들에게 재환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목매달려 있을 바에는 죽는 게 낫다 이거지.’
임현아의 연구에 따르면 자경단에게 교수형을 당한 죄수들은 악몽을 꾸게 된다고 한다. 그 악몽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끔찍할 거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용산으로 가려면 자경단을 없애야 한다고 했지만… 내가 자경단을 해체시키고 나면 이 죄수들은 어떻게 될까.’
그는 쉴 틈 없이 탈바꿈을 휘둘러 죄수들을 토막 냈고, 토막 난 죄수들은 사혈로 인해 몸이 썩어들어가자 소금에 닿은 지렁이처럼 몸을 꿈틀거렸다.
그는 토막 난 죄수를 흘끗 바라본 뒤 곧바로 다른 죄수들을 향해 탈바꿈을 휘둘렀다.
‘해방될까. 아니면 괴물이 될까. 그것도 아니면… 식물인간으로 남을까.’
목을 베고, 머리에 구멍을 내고, 허리를 가르고, 팔과 다리를 자르고.
피와 살점을 가르는 노동을 반복하던 그는 어느 시점부터 죄수들의 말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잡념이 많아지면 예지력으로 계획한 움직임과 다르게 움직일 수도 있었고, 이는 곧 자신의 처지가 저들과 다를 바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집중하자. 아직도 수백 명은 남았어.’
그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를 반주 삼아 죄수의 인파를 상대했다.
‘자경단원이 언제 더 나올지도 모르는 거고, 놈들이 말한 고문관이란 것도 신경 써야지. 이 인파에 사냥꾼 수준의 상대가 섞여 나오면 그건 좀 피곤한 일이니까. 아직 무슨 수를 더 숨겨뒀는지도 모르는 건데, 방심하기에는 이르지.’
끝없이 몰려드는 죄수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에게도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아무리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죄수들을 토막 낸다고 해도 그 횟수가 수천 번을 넘어가면 체력이 소모될 수밖에 없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해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꺼림칙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자경단의 전력이 임현아가 경고한 것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점도 그에게는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고문관이 오는 건 10분이라고 했지… 그러면 이제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자경단원들이 말한 ‘고문관’에 대해 신경을 쓰며 죄수들을 상대하던 그때, 재환은 어느 순간부터 사이렌 소리가 끊어진 것을 느꼈다.
사이렌 소리가 꺼지는 것과 함께 죄수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고, 그들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의 옷가지로 매듭을 맨 뒤 스스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죄수들이 자신의 손으로 목을 조르는 모습을 살피던 재환은 인파의 저편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다.
‘올게 왔군. 저게 그 고문관인가.’
그는 사슬갑옷을 입은 자경단원 스무 명이 10m 크기의 기계장치와 함께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래, 이제야 좀 알겠군. 지금까지 죄수들을 풀어놓은 건… 저걸 보내려고 시간을 끈 거였어. 일단 발목이라도 제대로 붙잡아두면 저걸로 마무리할 수 있을 테니까.’
기계장치는 열두 개의 기계 다리를 지닌 10m 크기의 가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강철로 이루어진 이 기계 가마는 인두, 전기 충격기, 쇠스랑 따위의 수십 개의 고문도구를 주렁주렁 매단 채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고, 가마에 매달린 고문도구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벌레처럼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기괴한 상상을 머릿속에 불어넣었다.
‘트라우마… 고문에 대한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건가 보군.’
고문도구가 기이한 소음을 내뿜을 때마다 머릿속에는 고문당하는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고, 덕분에 재환은 죄수들이 무릎 꿇은 이유를 금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죄수들은 저 고문도구들이 등장하자마자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오금을 저리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죄수들을 굴복시킨 거겠지. 지혜가 높아도 이 정도인데… 지혜가 모자라면 아예 죽을 맛이겠지.’
그는 저 기계장치가 성자나 권속이 아님을 한순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기계장치에서는 성자가 지닌 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고, 위대한 피가 흐르지도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환은 저 기계장치가 사람이 지닌 본능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물건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저 수십 종류의 고문 도구들을 보고 있으면 고문을 당한 적이 없는 사람마저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만 같은 상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자를 본떠서 만든 거거나… 성자의 지혜를 빌려서 만든 거겠지. 저런 기계가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면… 그건 그거대로 끔찍한 일일 테고.’
고문에 대한 집념과 죄인에 대한 악의가 물씬 풍겨오는 기계장치를 바라보며 그는 예지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예지력으로 본 미래에서 자신이 저 기계장치를 피해 그릇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화관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한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고문기계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굳이 저걸 상대할 필요는 없긴 하지. 그 그릇이란 물건이 자경단을 구성하는 원동력인 이상, 그릇을 부수고 나면 저 고문기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테니까. 효율적으로 생각하면 저걸 무시하고 그냥 그릇이나 찾으러 가는 게 맞아.’
그는 예지력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고문기계와 싸우는 자신의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저 기계장치를 상대한다는 것은 저 기계를 둘러 싼 스무 명의 자경단원들을 동시에 상대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고, 저들에게 사로잡힌다면 그 역시 주변에서 오금을 저리고 있는 죄수들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도망치는 건 할 수 있어. 철갑을 둘렀다는 건 기동성이 뒤처진다는 거니까. 정신만 멀쩡하면 저렇게 느릿느릿한 거에 따라잡힐 리도 없고.’
그는 저 고문기계를 보는 순간 자경단이 사이렌을 끈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고문기계가 고문장치들을 작동시키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갉아 먹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정신을 가진 자들이라면 저 고문기계가 등장하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을 것이고, 그렇기에 자경단원들은 얼어붙은 죄수들을 생포하기만 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그래서야 그냥 무섭게 생긴 깡통일 테니까. 그래도 만약 그게 전부라면…’
그는 품속에 아껴둔 수류탄들을 만지작거렸다. 죄수들을 처리할 때 박격포와 대전차 로켓 탄두를 담아뒀던 차량을 폭파시켰기에 남은 화력은 수류탄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실에 크게 개의치 않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수류탄이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죽어서 다시 시작할 타이밍을 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번 부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릇이 있는 본거지로 쳐들어가기 전에 저놈들 숫자는 최대한 줄여놓는 게 좋을 테니까.’
그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한다면 지금 저 고문기계를 처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저들의 전력이 얼마나 더 남아있을지 모르는 이상 미리 각개격파를 해 두면 나중에 부담이 줄어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각오를 다시며 앞으로 나아갈 때, 그는 고문기계에서 수십 명의 사람 목소리가 동시에 겹쳐서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속죄하라. 속죄하라. 속죄하라. 속죄하라.”
“죄 많은 자는 지금 즉시 속죄하라.”
“죄와 벌은 하나다. 죄가 있기에 벌이 있고, 벌이 있기에 죄가 있다.”
“눈에는 눈, 피에는 피. 남의 가슴에 못을 박은 자는 자신의 가슴에도 못을 박아라.”
남자, 여자, 노인, 아이.
하나이자 여럿인 목소리가 기계장치에서 울려 퍼지자 재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옥은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거라더니… 아예 기계는 아니었나…’
그는 그제야 저 기계장치에서 사람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기괴함이 느껴지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하긴.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보다 만능인 게 없긴 하지. 피랑 살점만 있으면 뭐든 만들어내는 세상이니까 말이야…’
데이드럼은 사람으로 악기를 만들었고, 이미래는 사람으로 난초를 만들었으며, 임현아는 아예 사람의 피와 살로 연구소를 세웠다.
그렇기에 재환은 자경단이 사람을 부품으로 삼아 걸어 다니는 고문기계를 만들어냈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다.
‘저걸 부숴버려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그는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이유가 어찌 됐든 사람으로 만든 기계장치가 걸어 다니는 꼴은 보고 있기 역겹기 짝이 없으니까 말이야. 무슨 에밀레종도 아니고 말이지…’
그는 자경단이 저 기계장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다.
저 기계장치가 만들어질 당시에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희생해 스스로 목숨을 바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저 고문기계가 반드시 필요한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저 목소리가 살아있는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목소리임을 확신했다.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한껏 날카로워진 감각이 저 기계장치 안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기척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강제로 만들었든. 자원해서 만들었든. 그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
그는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고문기계와 자경단원을 향해 던졌다.
‘중요한 건 저딴 걸 멀쩡하게 굴리는 자경단 놈들이 미쳐있다는 거니까. 제정신인 놈들이 저런 걸 만들었을 리도 없는 거고 말이야.’
수류탄의 폭음과 함께 그는 고문기계와 자경단원들을 향해 달려갔다. 상대가 자신보다 거대하고, 숫자도 훨씬 많았지만, 그런 것들은 이제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다.
자신보다 거대하고, 숫자도 많은 적을 상대하는 것은 그에게는 이제 익숙하다 못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이제 그는 미친 짓을 저지르지 않으면 그게 더 미친 짓처럼 여겨질 지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