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87
만인의 지옥 (4)
딸아이의 나신이 쓰레기장에서 토막 난 채 발견됐다는 것을 알게 된 날, 남자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천국은 있을 수 없다. 천국을 만들 정도로 선량한 신이 있었더라면 이 세상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고하고 선량한 이들이 쓰레기 신세로 전락하고, 추악하고 구역질 나는 쓰레기들이 저 높은 마천루에서 호의호식하는 일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았다.
추악한 사람일수록 향락을 누리기 쉽고, 순진한 사람일수록 밑바닥에서 썩어가는 것이 그가 바라본 이 세상의 민낯이었다.
그렇기에 서울에 괴물이 강림하고, 세상이 피와 살이 튀기는 악몽으로 물들었을 때, 남자는 죄인을 위한 지옥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악마의 속삭임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어떤 식으로 천국을 만들어야 하는지는 난해한 일이었지만, 어떤 식으로 지옥을 만들어야 하는지는 명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범죄자가 죄책감을 느낄 때까지 자신이 저지른 죄를 보여주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느껴질 정도로 고문한 뒤, 몸과 정신을 끊임없이 재생시켜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일깨우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끔찍한 지옥이었고, 그의 도움을 받아 그릇에 임한 악마는 남자가 구상한 지옥을 일굴 수 있게 후원했다.
그리고 악마의 후원 덕분에 남자는 중구를 거점으로 삼아 자신과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고, 죽는 걸로는 부족한 쓰레기들을 수집해 고문할 수 있었으며, 용서받지 못한 죄인들에게 영원토록 끝나지 않을 악몽을 선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죄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모든 복수를 끝마쳤다고 생각하게 됐을 때, 그는 서울의 중심부를 차지한 괴물이 연주하는 음악 소리를 통해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던 사냥꾼의 사명과 사냥꾼들이 용산으로 가려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달빛이 닿지 않는 심연에는 괴물을 증오하는 괴물이 잠들어 있었고, 악몽을 끝내려는 사냥꾼은 이 괴물의 부름에 본능적으로 이끌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적지 않은 숫자의 사냥꾼들이 중구를 지나 용산으로 갔다고 생각하자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저들 중 누군가가 이 악몽을 끝낸다면 더 이상 자신의 손으로 이 쓰레기들을 고문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만에 하나 시간이 되돌아가 이들의 기억이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지금까지 고문해왔던 것들이 전부 허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는 그날 이후 사냥해야 할 죄인의 목록에 사냥꾼을 추가하게 되었다.
사람을 죽인 자는 그것이 설령 고의가 아니었을지라도 벌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설령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죽이는 걸로는 부족한 죄수들을 풀어주는 것은 이 지옥을 일군 간수들의 수장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사냥꾼을 사냥하는 사냥꾼이 되었고, 그에게 사로잡힌 사냥꾼들은 정신이 무너져 두 번 다시 악몽을 끝내려는 꿈을 꿀 수 없게 되었다.
악행을 저지른 악당을 고문하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악행이 자행되는 곳.
이제 이곳은 만인의 지옥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도시가 되었고, 이곳에서 피어난 악상(惡想)은 악상(樂想)이 되어 축제에 연주될 신곡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가 살아 있는 한, 그의 뜻을 따르는 자들이 남아있는 한, 악몽은 영원히 끝날 수 없었다.
* * *
수류탄의 폭연이 걷히자 고문기계의 근처에 있던 자경단원들이 몸을 추스르는 모습이 보였다. 폭발의 중심에 휘말린 다섯 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열다섯 명은 폭발에 휘말렸음에도 몸을 재생할 여력이 남아있는 듯 보였다.
‘하나 더 터트릴 틈은 없어.’
재환은 수류탄을 하나 더 사용하는 대신 사혈이 묻은 탈바꿈을 들고 자경단원들에게 달려갔다.
‘이 정도 거리면 차라리 탈바꿈으로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나으니까. 아직은 수류탄을 더 쓸 때가 아니야.’
남은 수류탄은 총 네 개였고, 최악의 순간을 대비해 자결하려면 하나 정도는 남겨둬야 했다. 그렇기에 재환은 비틀거리는 자경단원들을 마무리하기 위해 고문기계를 향해 달려갔고, 그 순간 고문기계에서 목소리가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유죄. 피고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그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함께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의 경험 덕분에 그는 이 감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했다.
‘이건… 정신 공격… 가까워질 때 효과가 극대화되는 거였나…?’
그리고 재환이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릴 때, 고문기계에 달린 기계장치들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머릿속을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피고는 무고한 이들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인명의 소중함을 무시한 채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했다.”
기계장치의 말이 길어지자 빌딩의 외벽이 스크린으로 변했고, 빌딩의 외벽에 늘어선 스크린에서 그가 지금까지 죄책감을 느꼈던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나열되어 그의 시선을 강제로 사로잡았다.
처음 괴물이 된 아버지를 살해했던 날의 비참함.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 날의 무력감. 괴물이 되어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었던 날의 역겨움. 성자를 죽인다는 명목으로 중랑구의 무고한 시민들 몰살시켰던 날의 무정함.
그리고 괴물이 된 사람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에는 관심이 없었던 지금까지의 나날들까지.
닳을 대로 닳아버려 마모되었던 양심에 가시로 된 굴레가 씌워지자 그는 숨이 턱 막히는 감각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직시하라. 그리고 속죄하라.”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피를 토했고, 그 틈을 이용해 자경단원 중 하나가 그의 가슴에 말뚝처럼 굵은 못을 박았다.
그리고 몸이 죽음에 이를 정도로 망가지자 흑묘 반지가 깨지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악몽은 계속되어야 한다.”
통증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재환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여 자경단원을 뿌리쳤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 덕분에 간신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그는 가슴에 박힌 대못을 뽑아낸 뒤 자신을 둘러싸려는 자경단원들에게 탈바꿈을 겨눴다.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 했더니… 이건 한 방 먹었군.’
자경단원들은 재환이 아직 움직이는 것을 기이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지금까지 사람이자 기계인 이 ‘고문관’의 심판을 견뎌낸 사냥꾼은 없었고, 가슴에 못이 박히고도 저항할 의지를 보이는 사람을 보는 것은 그들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괴물이 아니야. 괴물에게는 인성이 없어.”
“사냥꾼이다. 사냥꾼인데. 사냥꾼이 어떻게.”
“괴물이다.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다.”
재환은 자경단원들이 머뭇거리는 잠깐의 틈을 이용해 몸과 정신을 추스르며 생각했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괴물들 틈에서 괴물 노릇을 할 수 있는 거겠지. 없던 양심까지 만들어내서 괴롭힐 수 있어야… 괴물들한테 괴물 취급당할 수 있는 거니까.’
오랜 사냥의 나날을 거치면서 그의 양심은 닳을 대로 닳아버린 지 오래였고, 한계까지 높여둔 지혜 덕분에 웬만큼 끔찍한 것을 봐도 정신이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저 고문기계가 보여준 환영에는 그 역시 정신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재환은 저 고문기계에 사람의 정신을 무너뜨리려는 집념이 담겨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자경단이 머뭇거린 것은 몇 초에 불과했지만, 그 사이에 몸을 추스르는 것을 끝낸 재환은 곧바로 주변에 있는 자경단원들을 향해 탈바꿈을 휘둘렀다.
‘지금부턴 몇 초도 낭비하면 안 돼. 방금 몇 초를 번 건 그냥 운이 좋아서 그랬던 거니까.’
자경단원들이 머뭇거렸던 것은 운이 따랐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재환이 오기 전에 저들의 정신 공격을 견딘 사냥꾼이 하나라도 더 있었더라면 저들은 이에 대한 대비책과 훈련을 준비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기회가 왔으면 잡아야지.’
그는 사슬 갑옷을 두른 자경단원 하나의 머리를 탈바꿈의 곡괭이 부분으로 내리쳤다.
‘겨우 잡은 기회를 놓치면 그건 운이 아니라 실력의 문제니까.’
일방적으로 심판을 내리던 상황이 일방적인 학살극으로 변질되자 자경단원들은 다시 경보를 울렸고, 고문기계는 또다시 죄의식을 자극하는 음성을 내보냈다.
“직시하라. 속죄하라. 직시하라. 속죄하라…”
고문기계의 음성과 함께 건물의 외벽이 또다시 스크린으로 변했고, 그가 죄책감을 느꼈던 순간들이 일렁거렸지만, 재환은 정신을 집중해 눈앞에 보이는 자경단원들을 하나씩 줄여나갔다.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그는 자경단을 사냥하는 것과 동시에 처음 괴물을 사냥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허그베어를 사냥하는 것을 끝낸 그는 괴물을 사람으로 되돌리는 방법이 나타난다면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괴물을 사람으로 바뀔 방법이 있었으면… 그랬으면 참 좋았겠지. 내가 이 고생을 할 이유도 없고, 괴물을 죽여야 할 이유도 없어지는 거니까.’
자경단원들의 신체 능력은 사냥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저들은 만에 하나라도 죄수들이 난동을 부릴 경우를 대비해 힘을 기르고 훈련을 받은 정예였고, 사람의 살가죽 따위는 맨손으로 찢어발길 정도의 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더라도 예지력을 사용해 실시간으로 활로를 찾아내는 사냥꾼의 움직임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많은 괴물을 사냥하고, 총알을 피하고, 블레인의 일격마저 피해낸 경험은 이 순간 빛을 발했고, 결국 남아있던 열다섯 명의 자경단원이 다섯 명까지 줄어드는 데에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는 대못을 들고 저항하는 나머지 자경단원들을 사혈이 발린 탈바꿈으로 살해하며 생각했다.
‘언젠가 지옥에 떨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멀쩡해지면, 나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미친놈 취급을 당할 테니까.’
그는 서울에 괴물이 창궐하는 악몽을 끝내고 세상을 평범했던 시절로 되돌리려 하고 있었지만, 이와 동시에 자신이 평범해진 세상에 녹아들지 못하리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괴물을 사냥하는 일을 숨 쉬듯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반복해왔고, 괴물을 사냥하지 않는 날에는 괴물을 사냥할 궁리를 할 정도로 괴물 사냥에 물들어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만둘 수는 없지.’
재환은 모든 자경단원을 해치운 뒤 고문기계를 올려다봤다. 홀로 남은 이 10m 크기의 기계장치는 내장되어있던 고문기계들을 모두 꺼내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고문기계를 올려다보던 재환은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인 뒤 입에 물었다. 예지력으로 살펴보자 저 기계장치를 해체하기 전에 담배 한 모금 정도는 피울 여유는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그만 두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까.’
담배를 한 모금 피운 재환은 담배꽁초를 버린 뒤 탈바꿈을 쥐었다. 체급 차이가 확연했음에도 사냥당하는 것은 고문관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