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88
만인의 지옥 (5)
기나긴 고문의 나날이 계속되었을 때, 자경단의 단장은 어느 날 간수들의 숫자가 처음에 비해 줄어들었음을 알아차렸다.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적은 숫자에 불과했지만, 처음에 비하면 그 숫자는 분명히 줄어들어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간수들이 사라지는 사례는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이 이변을 조사하기 위해 자경단의 단장은 사라진 간수들의 행방을 추적했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외딴 건물에서 간수 하나가 목을 매단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목을 매단 간수의 모습을 보며 자경단의 단장은 의아해했다.
영원한 복수를 맹세한 이상 저들은 영원히 죽을 수 없었고, 이는 영생을 보장하는 ‘그릇’이 부서지지 않는 한 시간이 되돌아가더라도 변하지 않을 맹약이었다.
그렇기에 죽지 못하는 자가 자신의 목을 매는 행동은 그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고, 결국 자경단의 단장은 간수의 목을 매고 있던 매듭을 풀어준 뒤 그에게 어째서 자신의 목을 스스로 맨 것인지 질문했다.
그러자 스스로 자신의 목을 매달았던 간수는 그에게 대답했다.
“지쳤습니다. 이제는 지쳤습니다. 누군가를 고문하는 것도, 그걸 지켜보는 것도… 이제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젠… 이제는… 이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나마 목을 매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으니… 저를 이대로 내버려둬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자경단의 단장은 자신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음을 깨달았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언젠가 지치기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죽지 않는 몸을 얻었다고 해도 간수들의 본질은 사람의 마음을 지닌 인간이었고, 이들의 본질이 인간인 이상 매일매일 고문을 반복적으로 행하다 보면 결국에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고문이란 행동이 고문을 당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고문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마저 꺾어버리는 악행이었고, 그 결과 자경단의 간수들은 죄수를 가두기 위해 만든 지옥에 자신들까지 같이 갇히게 되는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자신이 만든 지옥이 죄수들뿐만이 아니라 간수들마저 가둬버린, 만인의 지옥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자경단장은 쉬기 위해 목을 매단 동료를 보며 고뇌했다.
오랜 세월 동안 고생한 동료에 대한 동정심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이대로 정신이 무너진 간수들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면 언젠가 자신이 만든 지옥이 붕괴되고 말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피와 살로 쌓아올린 이 지옥은 그가 죽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였고, 이 지옥이 없어진다면 용서받지 못한 자들을 고문해왔던 날들이 허사가 될지도 몰랐다.
이 사실을 깨달은 자경단장은 자신이 만든 지옥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릇에 담긴 악마에게 도움을 청했고, 비명과 비탄을 사랑했던 악마는 그에게 기꺼이 지혜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지혜를 내려받은 자경단장은 고문을 계속할 의지가 있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을 선별하여 분리했다.
분리를 끝낸 자경단장은 고문을 계속할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 고문을 행하는 것에 대한 대의명분과 고문을 행하는 것에 대한 쾌감을 선물했다.
약간의 약물과 정신교육을 통한 이 작업이 끝나자 자경단의 간수들은 이전보다 더 건강하고 건실하게 죄수들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들은 자신의 일에 사명감과 만족감을 얻게 되었다.
자경단장은 고문을 행할 의지를 잃어버린 이들 역시 외면하지 않았다. 아무리 의지와 이지를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이들 역시 한때는 영원히 죄수들을 처벌하기로 약속한 동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경단장은 쉬길 원하는 자경단원들의 뇌와 심장을 뽑아내었고, 커다란 용광로를 준비해 이들의 뇌와 심장을 강철과 함께 녹여내었다.
이렇게 한다면 녹아내린 자경단원들이 안식을 얻은 상태로 죄수들을 고문하는 것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릇에 임한 악마가 조언했기 때문이었다.
자경단원들을 녹여낸 강철을 만들어낸 자경단장은 이 강철로 거대한 기계 심장들을 만들어냈고, 완성된 기계 심장은 자경단장의 도움을 받아 주변에 있는 고물과 고철을 끌어모아 자신의 몸체를 만들어내었다.
이 지옥을 영원히 지켜내기 위해. 그 누구도 이 악몽에서 도망칠 수 없도록.
걸어 다니며 삐걱거리는 것만으로도 죄인의 숨통을 조여 오는 고문 기계가 그렇게 완성되었고, 고문 기계는 자경단장의 의지를 이어서 죄인들의 정신을 고문해 자경단의 영역을 수호했다.
그 어떤 죄인도 이 고문기계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고, 자경단원들은 용감한 사냥꾼들마저 순식간에 스스로 목을 매게 만든 이 위대한 기계장치를 ‘고문관’이라 부르며 경외하고 공경하였다.
그렇게 몇 명의 자경단원은 안식을 얻었고, 자경단의 맹약은 깨지지 않았으며, 지옥은 더욱 굳건하게 유지되었다.
* * *
재환은 자신보다 거대한 적을 상대해야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크기가 거대하다는 것은 체급이 차이 난다는 것을 의미했고, 체급에서 밀린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여러 가지 불합리함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내 공격은 별 효과가 없는데, 저쪽은 하나하나가 치명타지.’
아무리 상대가 정신 공격에 특화된 기계장치라고 하더라도, 10m라는 크기의 거구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건물을 상대하는 것만 같은 위압감을 자아내었다.
고문관의 몸체는 금속으로 되어있기에 평범한 공격으로는 흠집을 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에 반해 재환의 몸은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기에 고문관이 휘두르는 고문 도구들에 잘못 스치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치명상을 입어야 했다.
‘폭발물이라도 충분했으면 좀 나았겠지만, 탈바꿈 하나로 저걸 부숴버리는 건 피곤한 일이고.’
몸집이 거대하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공격을 얕게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식칼로 코끼리를 찔러봐야 생채기밖에 낼 수 없는 것처럼, 탈바꿈이 아무리 괜찮은 무기라고 하더라도 한 번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면적은 저 거구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부수지 못할 건 없지.’
재환은 고문관이 휘두르는 고문기계들을 피해 고문관의 다리로 접근했다.
‘덩치가 크다는 건 그만큼 때릴 곳이 많다는 거니까. 특히나 이렇게 조잡하게 조립됐다면···.’
그는 다리 중 하나의 관절부위를 탈바꿈의 곡괭이 부분으로 내리쳤다. 그러자 다리를 연결하던 관절부가 찌그러졌고, 다리 하나가 삐걱거리는 것을 확인한 재환은 곧바로 거리를 벌린 뒤 다른 다리의 관절부를 공격했다.
‘…다리로 무게 중심을 잡는 게 고작일 테니까.’
그가 다리를 먼저 노린 이유는 간단했다.
움직이는 표적을 상대하는 것보다 멈춰있는 표적을 상대하는 쪽이 더 손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못하면 그다음은 간단하지.’
그는 고문관의 몸을 지탱하던 열두 개의 다리를 전부 무력화시켰고, 다리가 망가진 고문관은 그대로 땅에 주저앉아 고문도구들을 휘두를 뿐이었다.
‘지금부터 저 기계를 분해하는 건 시간문제니까. 남은 건 그냥 인내심 싸움인 거지.’
사냥꾼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심이었다.
인내심이야말로 태초부터 인간이 사냥을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고, 인내심이 있었기에 태초의 사냥꾼들은 수 시간에서 수십 시간 동안 사냥감을 추적해 숨통을 끊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재환은 움직이지 못하게 된 고문관에게서 거리를 벌려 숨을 고른 뒤, 고문관이 휘두르는 고문 도구들을 하나씩 부서트렸다.
가느다란 송곳, 대못이 박힌 몽둥이, 가시가 돋힌 형틀, 몸을 옭아매는 올가미, 전기를 방출하는 쇳덩이, 불에 달궈진 인두, 최루탄을 뿌리는 분사 기구, 물고문에 쓰이는 수조……
고문 도구를 부수면 부술수록 온갖 종류의 고문도구들이 고문관의 몸에서 튀어나왔고, 몸을 구성하던 고문도구들이 부서지자 고문관은 건조한 목소리를 흘렸다.
“속죄하라. 속죄하라. 속죄하라. 속죄하라.”
“악몽은. 악몽은 계속되어야 한다.”
“지옥은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죄인을 가둬두어야만 한다.”
고문관의 목소리는 건조했지만, 재환은 저 목소리가 절규처럼 들리는 것이 기분 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문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면 저 고문기계에 담긴 집념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래. 당신들도 사정이 있었겠지. 세상은 넓고, 쓰레기는 많으니까.’
서울에 괴물이 창궐한 이후, 사람이 사는 곳은 대부분 무법지대로 변모했다.
세상이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어지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들은 자살하거나 괴물이 될 바에는 쌓아뒀던 욕망을 마구잡이로 분출했다.
그나마 경찰과 군대가 치안을 유지하는 구역마저도 살인이나 성폭행 같은 강력 범죄가 적지 않게 일어날 정도였으니, 경찰이나 군대가 없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누구나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누군가는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거지. 쓰레기는 누구한테나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법이니까.’
서울의 시민들에게 대문과 창문이 튼튼하게 잠겼는지 확인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괴물과 마주쳐서 살해당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사로잡혀 몹쓸 꼴을 당하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한때는 경찰과 협력했기에 현실이 이렇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고, 그가 밤에 활동하는 것을 선호했던 것은 범죄자들 역시 괴물을 두려워해 밤에는 잘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흉악범과 엮이는 것은 그에게도 역겨운 일이었고, 그렇기에 그는 세상이 미쳐버린 와중에도 범죄자들을 관리하려 한 경찰과 군인들을 존중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악몽을 꿀 수도 없는 거야. 그거야말로 진짜 미친 짓이지.’
고문관의 내부에 있던 고문도구들을 모조리 부순 뒤, 내부에 있던 기계 심장을 찾아낸 재환은 탈바꿈을 들어 올려 기계 심장을 향해 내리쳤다.
‘아무리 쓰레기가 싫다고 해도, 쓰레기랑 같이 평생 썩어가는 건 미친 짓이니까. 그래서야 그냥 자학이랑 다를 게 없는 거니까.’
재환은 기계 심장에서 핏물을 닮은 기름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숨을 내쉬었다.
심장을 잃은 고문관은 활동을 중단했고, 주변에서는 사이렌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토막 난 자경단원들과 스스로 목을 맨 죄수들을 훑어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괴물이랑 싸우는 거면 몰라도, 사람이랑 싸우는 건 역시 못할 짓이야…’
그는 피로 물든 거리에서 시선을 돌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타인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거지.’
담배를 문 채 휴식을 취하던 재환은 저편에서 또 다른 고문관들과 자경단원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다. 저들은 사이렌의 경보음을 듣고 몰려온 지원군들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다 부숴버리고 싶긴 하지만…’
그는 죄수들과 자경단원들을 상대하면서 체력을 상당히 소모했음을 자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는 내 체력이 떨어지는 게 먼저겠지. 저쪽 전력을 줄이려다가 내 전력이 먼저 다 떨어지면, 그것만큼 웃기는 일도 없을 거야. 본말전도도 정도가 있는 거니까.’
자경단의 전력이 얼마나 더 남아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이 이상 자경단원들을 상대하는 것은 체력을 낭비하는 일이었다.
그릇이 남아있는 한 자경단은 계속 남아있을 것이고, 시간이 되돌아간다면 아예 원상복구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이든 사람이든. 노리려면 심장을 노려야지.’
그는 그릇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화관으로 달려가며 각오를 다졌다.
‘이 정도로 독한 놈들이면, 방심했다가는 내 쪽이 먼저 끝장날 테니까. 아직 여력이 남아있을 때 심장을 노리러 가야지.’
그는 아직 자경단의 모든 것을 알아냈다고 여기지 않았다.
자경단이 무슨 수를 더 남겨뒀을지는 알 수 없었고, 영화관의 내부에 무엇이 있을지도 알 수 없었으며, 그릇에 임한 악마의 정체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그는 자경단의 심장부로 달려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설령 그곳에 그 어떤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기꺼이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자경단의 본거지인 영화관 시네마 천국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자경단의 수장인 사냥꾼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얼굴을 알아본 재환은 자신이 자경단의 설립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고 말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냥꾼은 그가 만난 적 있는 인물이었고, 그 남자가 눈을 뜨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