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89
만인의 지옥 (6)
토막 난 자경단원들의 시신과 고문 기계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재환은 영화관의 간판을 올려다봤다.
‘시네마 천국이라…’
그는 간판에 적혀져 있는 글자를 바라보며 실소를 흘렸다.
‘지옥을 만들어 놓고 천국을 본부로 쓴다니.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군.’
자경단이 점령한 충무로는 지옥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교수형을 당한 죄수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풍경은 물론이고, 이들을 관리하는 간수인 자경단원과 고문관 역시 지독한 악의를 내뿜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기가 진짜 천국은 아니겠지. 저 안에는 분명 이 지옥을 만든 원흉이 있을 테니까. 성자든, 악마든, 괴물이든… 뭔가가 있는 건 분명한 거야.’
그는 영화관의 내부에서 풍겨오는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정문을 응시했다. 그는 저 안에 무엇이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예지력을 사용했고, 그러자 공간감이 일그러지는 감각과 함께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느낌은… 그때랑 비슷하군.’
재환은 예술의 전당의 내부에 들어섰을 때를 떠올리며 숨을 들이쉬었다.
‘청와대에서 데이드럼의 공방으로 넘어가려고 했을 때랑 비슷해. 그때도 이렇게 어두컴컴한 것만 보였지. 여기서도 이러는 걸 보면… 일종의 보안체계라고 봐야 하는 건가?’
영화관 내부의 공간감은 한 걸음의 거리마저도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모호하게 느껴졌고, 이를 통해 재환은 눈앞에 있는 이 건물의 내부에 무엇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속삭임이 안 들리는 것도 그렇고… 예지력이 방해 받는 것도 그렇고… 하여간 기분 나쁜 동네란 말이지…’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에 대한 공포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정보가 제한되는 상황은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저 안에 정신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괴물이나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능력을 지닌 괴물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자칫 잘못했다간 임현아의 연구소에 있던 실험체들처럼 죽느니만 못한 신세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모른다고 해서 도망칠 순 없지. 그런 이유로 도망치다간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갈 테니까.’
그는 등 뒤에서 점점 가깝게 들려오는 자경단원과 고문관들의 소리를 등진 채 앞으로 나아갔다.
‘겁을 잃어버렸다는 것만 따지고 보면… 이럴 때는 미쳐 있다는 게 도움이 되는군.’
그는 정문 너머에 펼쳐진 어둠을 응시하며 그릇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대여섯 걸음 정도를 걸어가자 건물의 내부가 밤하늘이 펼쳐진 것처럼 넓어지는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이건 청와대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랑 똑같군.’
공간이 넓어지는 감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고, 어두컴컴했던 영화관의 내부는 어느샌가 형형색색의 조명들로 인해 밝아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각이 회복되자 재환은 주변을 살폈고, 주변의 풍경을 살펴보던 그는 이곳에 어째서 ‘시네마 천국’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를 깨달았다.
바깥에서 보았을 때는 건물 하나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던 영화관의 내부에는 조명과 스크린으로 이루어진 도시가 펼쳐져 있었고, 사방에 설치된 스크린들에서는 비극으로 보이는 영상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영화관의 모습을 한 도시라… 상영되는 건 지옥이어도, 제작자들한테는 천국이란 건가?’
그는 스크린으로 이루어진 건물과 거리의 곳곳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며 시선을 집중했다. 그들은 영화감독, 극작가, 촬영기사 등으로 보였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비극’을 만들 수 있을지 회의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고문만 하는 걸론 부족합니다. 희망이 있어야 절망도 있는 건데, 낙차도 없이 계속 고통만 주는 걸로 충분하겠습니까?”
“어설프게 희망을 심어줬다간 고문이 아예 소용없어지는 걸 어떡하겠어요. 자칫 잘못하면 고문 받는 걸 좋아하게 되거나 기억을 리셋시켜야 하는 경우도 생기잖아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처럼 트라우마를 심는 게 더 효과적인 거죠.”
“이러니 저러니 해도 구관이 명관입니다. 어찌됐든 목매달려 있는 동안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 뭔지 느끼게 하고,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걸 알게 해주기만 하면 우리 할 일은 다 한 거니까요. 이제는 매너리즘이기는 해도, 클리셰가 괜히 오래가는 건 아니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듣던 재환은 그들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음을 확인한 뒤 ‘그릇’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보아하니 내가 여기에 침입한 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굳이 건드릴 필요는 없겠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거든, 정말로 모르는 거든, 어느 쪽이든 먼저 건드려 봐야 긁어 부스럼이니까.’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곳은 목매달린 죄수들에게 심어줄 악몽을 창작하고, 점검하고, 비평하는 영화 공방이었다.
사람의 몸 대신 사람의 정신에 대해 연구한다는 점에서 이곳은 임현아의 연구소보다 나을 게 없는 곳이었지만, 그렇기에 재환은 오히려 냉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얼마 안 남았어. 이 느낌이 무슨 느낌인지는 질리도록 알고 있으니까.’
그는 300m 정도 거리에 위치한 원형 경기장을 바라봤다. 콜로세움을 닮은 이 건물의 외벽에는 다른 건물들처럼 스크린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죄수들의 악몽을 구현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심장. 별의 심장이야.’
그는 별의 기운이 점점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하자 자신의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별에서 내려온 괴물을 상대하려면 최대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둘 중 하나겠지. 성자가 이곳에 있거나, 성자의 힘을 구현한 누군가가 있거나. 어느 쪽이든 쉽게 끝날 리는 없겠지만…’
그는 품속에서 전투자극제를 꺼내 몸에 추가로 투여했다. 본격적으로 사냥이 시작되면 감각이 최대한 날카로워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포기할 수는 없지. 애초에 질 걸 생각하고 시작하면, 이길 수 있는 것도 지게 될 테니까. 몸은 부서져도 상관없지만, 마음까지 부서져 버리면 안 되는 거야.’
그는 성자가 얼마나 끔찍한 괴물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갓 성자가 된 마태오 신부는 그 힘이 미약했음에도 끔찍한 환영을 보여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사랑의 성자인 암브락사스는 일주일 안에 서울을 자신의 낙원으로 개간했으며, 자상의 성자인 블레인은 한없이 단단한 칼날을 두른 채 한없이 빠른 참격을 휘둘렀으며, 악상의 성자인 데이드럼은 생명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며 그를 농락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없이 죽고, 정신이 으스러지며, 괴물이 되기까지도 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끔찍한 기억으로서 뇌리에 새겨졌다.
‘그래, 나는 불나방이지.’
그는 원형경기장의 입구로 들어서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어색할 지경이니까. 이 짓도… 결국은 익숙해져 버렸군.’
그는 그렇게 죽을 곳으로 뛰어드는 것마저 익숙해져 버린 자신의 처지에 조소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불구덩이’를 만든 장본인을 경기장의 한가운데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갑옷을 입은 남성이었고, 그의 주변에는 스크린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객석에 앉아 죄수들의 악몽을 보여주고 있었다.
* * *
경기장에 처음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객석을 가든 매운 수만 명의 ‘스크린 인간’들이었다.
이들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음에도 이목구비가 없었고,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이 흘러나오는 영상을 틀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남의 일터에 마음대로 들어오다니. 예의가 없는 줄은 알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군.”
재환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경기장의 한복판에서 전신에 강철 갑옷을 착용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갑옷… 분명 본 적이 있었지…’
재환은 남자가 두른 갑옷을 보며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떠올렸다.
저 갑옷은 암브락사스를 상대할 당시에 재환이 건넨 ‘위대한 피’를 첫 번째로 받아 마셨던 사냥꾼인 강철우가 입었던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너한테는 고마워하고 있어. 아주 고마워하고 있지.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여전히 장님 신세였을 거고, 이 정도로 멋진 복수를 해 보지도 못했을 테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강철우는 허리에 차고 있던 철퇴를 꺼내 근처에 있던 ‘스크린 인간’에게 휘둘렀다. 그러자 ‘스크린 인간’의 몸이 비추고 있던 ‘주인공’의 몸에서 피가 흐르더니 경기장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래, 저런 원리로군… 저 관객들은 죄수들을 대신해서 세워 둔 거였나.’
재환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강철우를 바라보며 상황 파악을 끝냈다. 객석을 매운 스크린 인간은 죄수들의 분신이었고, 강철우는 스크린 인간을 공격함으로써 죄수들에게 직접 고통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강철우에게 사로잡힌다면 저 스크린 인간들 중 하나가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재환은 품속에서 핸드캐넌을 꺼내며 말했다.
“경고는 고맙습니다. 생각보단 의리가 있으셔서 다행이네요. 그때랑은 다르게 말이죠.”
핸드캐넌에 탄환이 장전되어있는 것을 확인한 재환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강철우에게 말했다.
“기왕 의리 챙기는 거, 부탁 하나만 더 할게요.”
그는 천천히 걸어오는 강철우에게 핸드캐넌을 겨눴다.
“그냥 날 용산으로 보내주면 안 됩니까? 나는 당신이 무슨 복수를 하든 신경 안 쓰고, 당신은 내가 어디로 가든 신경을 안 쓰는 거죠. 당신한테는 당신의 복수가 있는 것처럼, 나한테는 내가 할 복수가 있는 거거든요.”
“안 되는 건 알고 있겠지. 용산으로 가려는 사냥꾼들은 전부 끝을 원했으니까.”
강철우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괴물은 없어져선 안 돼. 그랬다간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테니까. 100년을 넘게 해온 이 짓거리가 끝나버리면…”
강철우는 그렇게 말한 뒤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철퇴가 들려있었다.
“…그러면 이놈들이 해방될 테니까.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꼴은 도저히 못 볼 것 같거든.”
재환은 핸드캐넌의 가늠쇠 너머로 말없이 멈춰선 강철우를 바라봤다. 그는 철갑을 두른 사냥꾼의 갑옷 안쪽에서 별의 심장이 은은하게 기운을 풍겨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든, 괴물이든. 저건 이미 성자나 다름없다고 봐야겠지.’
그는 자신이 별의 심장을 사냥하는 사냥꾼임을 되새기며 강철우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면 그때는 쏘지 못했죠. 직접 쏘는 대신 경고 사격만 했으니까요.”
재환은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에 천천히 힘을 주면서 말했다.
“일이 이렇게 돼서 유감입니다. 진심으로요.”
결국 방아쇠는 완전히 당겨졌고, 총성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곧이어 괴물에 가까워진 사냥꾼들의 피가 경기장의 바닥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