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Hunter of Destroyed Seoul RAW novel - Chapter 9
괴물의 거리 (3)
괴물 두 마리와 대치하던 재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기습으로 괴물 하나를 처리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아직 두 마리가 남아있다는 게 문제였다.
‘빨리 끝내는 게 좋겠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다른 괴물이 몰려올 수 있었다. 그러므로 속전속결로 끝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에 재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냥 대상: 조용히 시키는 가재, 스크랍스터] [분류: 비선공형] [큰 소리를 싫어하는 괴물. 단단한 껍질을 지녔다.] [사냥 대상: 비명을 쫓는 문어, 옥토사일] [분류: 비선공형] [큰 소리를 싫어하는 괴물. 16개의 촉수를 빠르게 휘두른다.]‘빨리 끝나진 않겠어.’
재환은 문어 괴물이 날린 촉수 하나를 도끼로 막아냈다. 무게가 실린 일격에 그는 한 걸음 뒤로 밀려나갔다. 그리고 가재 괴물이 그 틈을 노려 집게를 휘둘렀다. 재환은 그 일격을 간신히 피해내며 가재 괴물의 집게를 향해 도끼를 올려쳤다. 도끼를 쥔 손에 느껴지는 충격이 묵직했다.
‘씨발…’
하지만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한 공격으로는 가재 괴물의 껍질에 금을 조금 냈을 뿐이었다. 갈라진 틈에서 나온 괴물의 체액이 햇볕에 증발하면서 상처를 지혈했다. 가재 괴물의 껍질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무슨 딜러랑 탱커 조합도 아니고…’
두 괴물을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은 까다로웠다. 가재 괴물의 껍질은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치명타를 넣기 힘들 정도로 단단했고, 문어 괴물의 촉수는 여러 방향에서 날아와 그를 압박했다.
“비켜주세요. 발포하겠습니다.”
등 뒤에 있던 경찰이 재장전을 끝낸 뒤 괴물에게 권총을 겨눴다.
“잠깐만요.”
하지만 재환은 경찰을 말려야 했다. 지금 괴물 두 마리를 상대하는 것이 까다롭기는 했지만,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순 없었다.
“좀만 기다려주세요. 총소리 때문에 괴물이 더 오면 끝이에요.”
“여기서… 여기서 다 죽으면 무슨 소용이에요···.”
경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창백한 것을 바라보던 재환은 경찰이 혼자 돌아다닌다는 사실에 의문을 느꼈다. 탈영이라도 한 게 아닌 이상, 이런 시국에 군인이나 경찰이 혼자 돌아다닌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군 생활을 통해 배운 상식으로는 위화감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는 불길한 추측을 접어둔 뒤 눈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여차하면 이 사람 데리고 튀자. 여기서 목숨을 걸 필요는 없으니까.’
다행히 두 괴물은 이동하는 속도가 느린 편에 속했다. 평범한 사람도 전력을 다해 뛰면 간신히 도망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작정하고 도망친다면 어렵지 않게 도망칠 수 있었다.
“위험할 것 같으면 말하세요. 같이 도망치죠.”
재환이 두 괴물의 공격을 계속 받아내며 그렇게 말한 순간, 거리 곳곳에서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도 있었고,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도 있었다. 그 소리에 가뜩이나 창백했던 김 순경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지금 도망쳐야 될 것 같은데요?”
“아니요.”
재환은 자신의 앞에 선 두 괴물의 주의가 흐트러진 것을 보며 말했다. 괴물은 특정한 행동에 집착하고, 이 괴물들은 소리 나는 것을 혐오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 순간이 기회라고 여겼다.
“이거, 괴물끼리 싸우는 소리 같아요.”
그는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가재 괴물을 향해 뛰어올랐다. 노리는 것은 가재 괴물이 아니었다. 그는 가재 괴물을 발판삼아 뛰어넘고, 그 뒤에 있던 문어 괴물의 정수리에 도끼를 꽂아 넣었다.
“끼이에에에엑!”
문어 괴물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괴한 신음을 흘렸다. 괴물의 발성 기관으로 듣는 비명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문어 괴물은 자신의 모든 촉수를 사용해 머리 위에 들러붙은 재환에게 복수하려 했다. 하지만 재환은 문어 괴물을 상대하는 대신 도끼를 회수해 문어 괴물의 뒤쪽으로 뛰어올랐다. 간발의 차이로 촉수가 그를 스쳐 지나갔다.
“끼이이익!”
문어 괴물은 재환이 착지한 방향을 향해 연이어 촉수를 뻗었다. 하지만 그는 저 촉수가 자신에게 닿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가재 괴물이 문어 괴물의 머리를 집게로 내리찍은 것이다. 그의 귀에 들리는 소리가 가재 괴물에게 거슬리지 않을 리 없었다.
퍽!
물컹거리는 살덩어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문어 괴물의 몸이 곤죽이 되었다. 터져버린 괴물의 몸에서 나온 피는 태양에 닿자마자 증발해버렸다.
‘소리를 낼 줄 알아서 다행이야.’
재환은 괴물에게 발성 기관이 달렸다는 사실을 감사히 여겼다. 덕분에 소리를 싫어하는 두 괴물의 사이가 틀어질 수 있었다. 괴물들이 서로 자신의 성향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가재 괴물은 자신의 집게로 문어 괴물의 몸통을 집었다. 그리고 분노를 담아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재환은 가재 괴물의 집게가 문어 괴물을 향해 쏠린 순간을 노렸다.
도끼가 닿는 거리까지 순식간에 접근한 그는 제대로 자세를 잡은 뒤 전력을 다해 도끼를 휘둘렀다. 노리는 것은 가재 괴물의 집게 관절이었다.
쩌적!
전력을 다해 관절을 노린 공격은 효과가 있었다. 껍질이 갈리지는 소리와 함께 가재 괴물의 체액이 땅에 쏟아졌다. 치명타를 허용한 가재 괴물의 한쪽 집게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덜렁거렸다.
“크그그그그극…”
가재 괴물은 기괴한 소리를 흘리며 남은 집게를 휘둘렀다. 조금 전의 공격 탓에 움직임이 둔해져 있었고, 덕분에 그는 어렵지 않게 괴물의 공격을 피했다.
쩌적!
가재 괴물의 공격을 피해낸 재환이 또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이번에도 정타였다. 가재 괴물의 남은 한쪽 집게가 체액을 쏟아내며 무력화됐다.
“끄그그극…”
재환은 집게를 휘두를 수 없게 된 가재 괴물의 머리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도끼를 내리쳐 가재 괴물의 목을 끊어냈다.
치익!
체액이 튀기는 소리와 함께 가재 괴물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튀어 오른 체액이 햇볕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증발했다.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괴물의 피를 보며 재환은 숨을 내쉬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괴물의 피는 햇볕에 닿으면 순식간에 증발한다. 라디오가 멀쩡하던 시절에 전해 들은 잡지식이었다. 낮에 괴물을 사냥하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가 방금 괴물을 죽인 이유는 괴물의 피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찰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는 경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경찰은 몇 초 만에 전황이 뒤집힌 모습에 얼떨떨해하는 모습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경찰의 반응을 살피던 재환은 미뤄뒀던 질문을 꺼냈다. 경찰을 발견했을 때부터 묻고 싶은 질문이었고, 반쯤은 확신을 담아 말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저 같은 사람, 보신 적 있으신가 봐요?”
그의 신체 능력은 인간의 힘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저 경찰은 처음부터 그의 움직임에 놀라거나 의아해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재환은 경찰의 반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아… 네. 몇 명 계시거든요···. 사냥꾼분들이요.”
“사냥꾼이요?”
재환은 그렇게 되물었고, 이어지는 말에 숨을 죽였다.
“네, 저희는 괴물 사냥꾼, 아니면 그냥 사냥꾼이라고 불러요. 다들 괴물 피를 마셨다고 하더라고요. 믿기 힘든 얘기긴 하지만, 초인인 건 맞아요. 사람이 아니라 괴물인가 싶을 정도로요.”
김 순경은 그렇게 말한 뒤 주변을 살폈다.
“일단 좀 움직이면서 얘기할까요? 다른 괴물이 언제 올지도 모르잖아요. 괜찮으시면 대피소로 안내해드릴게요.”
김 순경이 순찰을 나온 이유는 주변의 상황을 정찰하고, 생존자를 수색해 대피소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간 탓에 오히려 구조 당하긴 했어도, 그의 임무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재환은 김 순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은 괴물들끼리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지만, 저들의 관심이 언제 다른 쪽으로 쏠릴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죠. 앞장서 주세요. 어차피 저도 지금 노숙자 신세라서요.”
“네, 안내해드릴게요. 30분 정도 걸어가면 돼요.”
재환은 경찰을 따라 걸어가며 생각에 잠겼다.
‘하긴, 나만 괴물 피를 마시란 법은 없지.’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서울은 인구 천만의 대도시였고,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특이체질인 사람이 몇 명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알아볼 게 많아. 다른 사냥꾼들도 나처럼 죽을 때마다 부활하는지도 알아야 하고, 나처럼 환청을 듣는지도 알아봐야지.’
그는 죽을 때마다 과거로 되돌아간다. 이 기이한 현상이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냥꾼들 역시 마찬가지인지는 그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내가 미친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도 미친 건지, 시간이 나면 확인해봐야겠어.’
생각 정리를 끝낸 재환이 입을 열자 짧았던 정적이 끝났다.
“혹시 그 사냥꾼분들, 나중에 만나볼 수 있을까요? 얘기 좀 나눠보고 싶어서요.”
“소개는 해 드릴 수 있는데… 별로 추천해 드리고 싶진 않아요.”
김 순경의 난처해 하는 태도에 재환은 의아해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음…”
말끝을 흐리던 김 순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재환은 김 순경의 표정을 눈여겨봤다. 골칫거리를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사냥꾼 분들은 서로 초면부터 사이가 안 좋더라고요. 총 네 분이 계시는데,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재환은 그가 골치 아파하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치안을 유지해야 하는 경찰의 시점으로는 초인적인 힘을 지닌 ‘사냥꾼’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꼴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서울의 인프라가 마비된 상황이라면 더욱 그랬다. 만약 초인적인 힘을 지닌 사냥꾼들이 작정하고 날뛰기 시작하면 그 피해가 얼마나 클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괴물의 힘을 지닌 사람이 얼마나 위험할지는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서로 싸우다 중상을 입은 분도 계실 정도예요.”
재환은 김 순경의 말을 들으며 황당해 했다. 서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시국에 싸움질이라니.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팀워크였다.
‘하긴, 생판 남끼리 조별과제 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는 지난 대학 생활을 떠올렸다. 조별과제는 항상 제대로 굴러간 적이 없었다. 빌런이나 트롤러가 없으면 다행이었고, 혼자서 과제의 대부분을 소화하는 것 정도는 양반이었다. 애초에 저마다 생각이 다른 타인끼리 협력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는 걸 실감했던 순간들이었다.
‘고생하시는구만.’
재환은 서울을 나가려 했을 때의 일을 떠올리며 경찰을 동정했다. 지금 서울은 도시 규모의 조별과제를 해야 했고, 경찰들은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서울 시민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누가 언제 탈영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고려하면 비범한 일이었다.
‘그래도 아예 안 만날 수도 없는 거니까.’
그는 아무런 대가 없이 경찰을 도우려 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남을 돕는 게 얼마나 순진한 행동인지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김 순경이라는 개인이 아닌 경찰이라는 조직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전했다.
“그래도 나중에 잘 좀 소개해주세요. 오가는 게 있어야 정도 있죠.”
재환의 말에 김 순경은 쓴웃음을 지었다. 정에나 맞지 않으면 다행인 시국에 정이라니. 씁쓸한 너스레였다.
“서장님한테 안내해드릴게요. 사냥꾼분들 만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사실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재환은 고개를 끄덕인 뒤 김 순경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약 30분가량 걸어갔을 무렵, 김 순경이 안개 너머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바리케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 왔네요.”
재환은 김 순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동서울 대피 구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는 점점 뚜렷해지는 실루엣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바리케이드 틈새로 탱크의 주포와 기관총이 늘어선, 살벌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었다.